쾅-!
방음문이 거칠게 뜯겨 나가며 대리석 바닥을 긁었다.
뿜어져 나온 먼지 구덩이 사이로, 등 뒤에 거대한 대검을 멘 사내가 보였다.
소드마스터 강태훈.
그가 내뿜는 푸른 뇌전이 실내의 어둠을 찌릿하게 갈랐다.
파지직! 파직!
그의 등 뒤에 메인 마검 '뇌신'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내 눈이 가닿은 곳은 뇌전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푸른 전류가 스쳐 지나가는 검신 깊숙한 곳.
그곳에 가느다랗게 실금처럼 가 있는 검은색 마력 균열.
카르텔이 철저히 숨기려 들던 아킬레스건이 내 눈에 똑똑히 박혔다.
내 입꼬리가 느슨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누구 맘대로 내 사냥감을 건드리려 드는 거냐, 이 카르텔 개새끼들아!"
강태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회의실 천장을 흔들었다.
하지만 대학살을 예고하던 차진욱의 살기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소름 끼치는 미소가 걸렸다.
"크흐흐…… 강태훈이냐? 냄새를 맡고 기어왔군."
차진욱이 쇠사슬 긁는 듯한 소리로 웃어 젖혔다.
"하지만 늦었어. 이 새끼는 오늘 여기서 합법적으로 매장당할 테니까!"
그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그 뒤로 카르텔 소속 대형 로펌 변호사단과 한준서의 최측근들이 가득 포진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서늘한 조소가 담겨 있었다.
마치 덫에 걸린 쥐새끼를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한 시선.
그들은 내가 이 청문회장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임강우 씨."
카르텔 측 수석 변호사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들고 있던 가죽 서류 가방을 단상 위에 탁 소리 나게 던졌다.
"당신이 강남 미지정 구역 던전에서 저지른 행위는 명백한 범죄입니다."
그가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얼음장 같은 목소리를 뱉었다.
"사유지 무단침입, 그리고 카르텔이 공들여 추적하던 희귀 핵심 영혼의 불법 절도 및 흡수 혐의."
수석 변호사는 내 얼굴 바로 앞까지 서류 한 장을 들이밀었다.
"헌터 특별법 제12조에 의거, 당신은 즉각 구속 수사 대상입니다."
그의 뒤에 선 변호사단이 비웃음을 흘렸다.
지들이 법이고, 지들이 국가라는 식의 오만한 태도.
나는 가만히 서서 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머릿속으로 그들이 던진 미끼와 내가 쥐고 있는 패를 빠르게 대조했다.
하나.
둘.
셋.
대조 끝.
"절도?"
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사유지 무단침입?"
"웃음이 나옵니까? 지금 당신이 삼킨 영혼은 카르텔의 자산입니다."
변호사가 턱을 빳빳이 세웠다.
"그 자산의 가치는 최소 수백억에 달하지요. 당신 인생 전체를 팔아도 갚지 못할 값입니다."
나는 단상 앞 제어 콘솔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 발걸음에 차진욱의 칼날 같은 시선이 따라붙었다.
"야, 변호사 양반."
나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USB 하나를 꺼내 콘솔에 꽂았다.
"법 공부 열심히 하셨다면서, 정작 지들이 만든 법은 안 읽어보나 봐?"
"무슨 소릴……."
웅-!
회의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이 거칠게 켜졌다.
그 위로 복잡한 법조문 파일이 빼곡하게 떠올랐다.
**[헌터법 제21조 강제 징발 면제 조항 및 하위 면책 단서]**
그것은 과거 2화에서 유설아가 내게 몰래 넘겨주었던 국가 기밀급 서류였다.
스크린에 뜬 문서를 본 수석 변호사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맹렬하게 흔들렸다.
"이, 이건……!"
"왜? 눈에 익은 문서라 반갑냐?"
나는 스크린을 툭툭 쳤다.
"니들이 하위 헌터들 전리품 합법적으로 뺏으려고 만든 법이잖아."
카르텔은 그동안 이 법을 이용해 약자들의 목을 쥐어짰다.
자기들 사유지 근처에서 나온 모든 기연을 '영토 수호 규칙'이라는 명목으로 강탈해 갔다.
하지만 그 법의 가장 밑바닥에는, 그들 스스로가 파놓은 치명적인 함정이 있었다.
"여기 아주 작게 적혀 있는 하위 시행령 제3조 4항을 읽어보지 그래."
나는 문장의 특정 구절을 붉은색으로 강조했다.
['무소속 F급 이하 헌터가 길드 점유지 경계 바깥의 미지정 던전에서 독자적으로 전리품을 획득할 경우, 해당 전리품에 대한 강제 징발은 면제된다. 만약 길드 측에서 이를 강탈하거나 사법 처리를 시도할 시, 해당 길드가 보유한 인접 던전의 소유권 및 운영권 전체를 임시 동결한다.']
회의실 안의 모든 이들의 숨소리가 멎었다.
"이…… 이 조항은 이미 사문화된……!"
변호사가 말을 더듬었다.
"사문화? 국가 법령에 엄연히 박혀 있는 조항이 사문화라고?"
나는 피식 웃으며 가슴팍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바스락.
그것은 헌터 협회 직인이 찍힌 공식 문서였다.
**[마력 측정 결과: 마력 미달 (F급 판정)]**
"자, 봐라."
나는 판정서를 변호사 면상 앞에 흔들어 보였다.
"나 무소속 F급 헌터 임강우다. 니들이 기기 오작동이라며 사기꾼 취급하고 직접 발급해 준 따끈따끈한 공식 문서지."
"……!"
"그리고 내가 들어간 던전은 니들 사유지 경계에서 정확히 5미터 벗어난 미지정 구역이었어. 내 말이 틀려?"
변호사단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들이 나를 f급 사기꾼으로 몰아세우기 위해 발급해 준 그 'F급 판정서'가.
지금은 그들의 목을 치는 단두대의 칼날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 그건 측정기 오류에 의한 임시 판정일 뿐입니다! 실제 당신의 마력은 최소 S급 이상……!"
"증거 있어?"
내가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협회 공식 측정기가 F급이라는데, 니들이 무슨 수로 내 마력을 증명할 건데? 사설 측정기라도 들이대게? 그게 법적 효력이 있나?"
"아……."
변호사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법은 글자로 말하는 법이다.
아무리 내가 강한 힘을 지녔어도, 서류상 나는 'F급 무소속 헌터'였다.
그리고 내가 턴 곳은 '미지정 던전'이었다.
법령에 따르면, 카르텔이 내 전리품을 건드리는 순간 그들의 강남 핵심 던전 소유권 전체가 묶이게 된다.
수조 원대의 자산이 한순간에 묶이는 대참사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개새끼가……!"
차진욱이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들려 했다.
쇠붙이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회의실을 채웠다.
스릉-!
"어딜 움직이냐, 사냥개 놈이."
강태훈이 대검을 바닥에 쾅 내리찍었다.
대리석 바닥이 쩍 갈라지며 엄청난 충격파가 차진욱의 발끝을 때렸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네놈 목을 먼저 베어버리겠다."
강태훈의 눈에 서린 기운은 장난이 아니었다.
비록 그의 마검 뇌신에 균열이 가 있을지언정, 소드마스터의 무력은 진짜였다.
"태훈 씨, 잠시만요."
회의실 뒤편, 방청석의 어둠 속에서 맑고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설아였다.
그녀가 천천히 걸어 나와 단상 위의 마이크를 잡았다.
"카르텔의 불법적인 행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녀가 들고 있는 태블릿 PC에서 수많은 문서 파일이 스크린으로 전송되었다.
그것은 카르텔이 그동안 하위 헌터들을 협박하고, 전리품을 강탈해 간 실제 사례들과 피해자들의 진술서였다.
"헌터법 제21조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입니다. 하지만 카르텔은 대형 로펌의 힘을 빌려 이 법을 왜곡하고, 하위 헌터들의 피땀어린 성과를 무단으로 징발해 왔습니다."
유설아의 목소리가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회의실 안을 파고들었다.
마치 법정 고시를 읊는 듯한 완벽한 논리였다.
"여기 계신 협회 사법위원회 위원장님."
유설아가 단상 중앙에 앉아 있는 박성태 위원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 명백한 법적 증거들을 두고도 카르텔의 편을 드실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 청문회의 모든 내용은 지금 실시간으로 언론과 시민 단체에 전송될 것입니다."
"무, 무슨……!"
박성태 위원장의 대머리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 역시 카르텔의 뒷돈을 받아먹는 처지였지만, 대중의 눈과 법적 명분 앞에서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박 위원장님! 한 말씀 해주십시오!"
"카르텔의 독점 행위가 정말로 불법이었습니까?!"
"임강우 헌터의 F급 판정서는 유효한 겁니까?!"
회의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수석 변호사는 미친 사람처럼 서류 뭉치를 찢어발겼다.
"이건 무효야! 조작된 음해라고!"
그의 비명은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완전히 파묻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가슴 속에서 아레스의 심장이 요동치며 기분 좋은 열기를 뿜어냈다.
'지들이 만든 규칙에 갇혀 질식하는 기분이 어떠냐?'
철저한 불신 속에서 갈고닦은 이빨이, 마침내 카르텔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물어뜯었다.
카르텔이 지배하던 법의 왕국이, 그들이 만든 법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가자."
나는 유설아와 강태훈에게 눈짓을 보냈다.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법적 명분과 방어막은 완벽하게 완성되었으니까.
나는 유유히 몸을 돌려 회의실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뒤에서 차진욱이 이빨을 갈며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강태훈의 대검이 그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 탁. 탁.
내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대리석 복도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복도 모퉁이를 도는 순간.
스스스스-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다.
피부를 찌르는 듯한 살기와 차가운 기운.
그리고 내 앞길을 가로막는 네 개의 거대한 그림자.
그들은 검은색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었으며, 가슴팍에는 한준서의 가문을 상징하는 붉은 태양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한준서의 직속 호위 기사단.
그들이 허리춤의 검에 손을 올린 채, 얼음 같은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임강우 헌터."
가장 앞에 선 기사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한준서 대표님께서 조용히 모셔오라 하셨다."
동시에 그들의 전신에서 내뿜는 마력이 복도의 벽면을 쩍쩍 갈라놓기 시작했다.
살얼음판 같던 공기가 순식간에 폭발 직전의 화약고처럼 변했다.
내 가슴 속 아레스의 심장이, 다시금 붉은 빛을 내뿜으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비켜라. 개 냄새난다."
내 뱉은 한마디에 복도의 온도가 급강하했다.
기사단의 맨 앞에 선 사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손가락이 검자루를 잡고 가볍게 튕겼다.
철컥.
"주제를 모르는 쥐새끼가 입만 살았군."
스스스스―
그들의 발끝에서부터 검은 마력이 피어올랐다. 협회 복도의 대리석 바닥이 얼어붙으며 하얀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마력의 중압감. 보통의 F급 헌터라면 이 압력만으로도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을 터였다.
하지만 내 심장은 달랐다.
두근!
가슴 깊은 곳에서 붉은 박동이 요동쳤다. 아레스의 심장이 뿜어내는 적색 투기가 내 전신을 감싸 안았다. 기사단이 뿜어내는 검은 마력이 내 몸에 닿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어라?"
기사단장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F급 짐꾼 새끼가 자신의 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내고 있었으니까.
"이게 어디서 힘자랑질이야?"
뒤늦게 쫓아온 강태훈이 대검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의 등 뒤에서 푸른 뇌전이 다시금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파지직!
"비켜라, 카르텔의 사냥개들아. 내 검이 이빨을 드러내기 전에."
강태훈이 한 걸음 내딛으려 했다. 그의 대검 '뇌신'이 푸른 광폭함을 더해가는 순간.
나는 슬쩍 손을 뻗어 강태훈의 어깨를 짚었다.
"태훈 씨, 멈춰."
"엉? 임강우, 네가 왜 날 말려? 저 새끼들이 널 잡아 가려는데!"
강태훈이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지만, 내 시선은 오직 그의 대검 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장난감, 지금 쓰면 부러져."
"뭐, 뭐라고?!"
"검신 안쪽의 마력 순환로가 꼬였어. 뇌전을 억지로 쥐어짜다간 한 방에 반동강 난다고."
내 말에 강태훈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카르텔조차 철저히 숨기려 들던 '뇌신'의 마력 균열을 내가 단번에 간파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너, 그걸 어떻게……."
강태훈이 멍하니 검을 내려다보는 사이.
스윽.
나는 기사단장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바짝 좁혀진 거리.
"한준서가 전하라는 말이 뭔데?"
내가 빈정거리듯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기사단장은 내 뻔뻔한 태도에 실소를 흘리며 품 안에서 최고급 태블릿 하나를 꺼내 들었다.
스으으―
태블릿의 화면이 켜지며, 푸른색 홀로그램이 허공에 펼쳐졌다. 그 안에서 나타난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언제나처럼 부드럽고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준서였다.
"안녕, 강우 군. 청문회는 아주 재미있게 잘 봤어."
화면 속 한준서가 들고 있던 만년필로 책상을 가볍게 톡, 톡, 두드렸다.
"법의 허점을 찔러 내 사유지를 동결시키다니. 꽤나 영리한 짓을 했더군. 하지만 말이야……."
한준서의 미소가 기괴할 정도로 짙어졌다.
"네 가슴속에 들어 있는 그 신기한 장난감."
쿵.
순간, 내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거, 힘을 쓸 때마다 네 수명을 갉아먹고 있지?"
"……!"
"세포가 괴사하는 고통을 참아가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앞으로 일주일? 아니면 한 달?"
한준서의 눈동자가 화면 너머에서 나를 뱀처럼 옭아맸다.
"네 시한부 인생의 유일한 치료제인 '상위 몬스터의 핵'. 그걸 공급할 수 있는 국내의 모든 던전은 이미 내 손아귀에 있어."
그가 만년필 끝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살고 싶다면, 제발로 걸어 들어와 내 개가 되어라. 아니면……."
한준서가 잔인하게 웃었다.
"그 가슴을 쥐어뜯으며 서서히 썩어 죽어가던가."
화면이 뚝 끊겼다. 정적이 내려앉은 복도.
두그근!
가슴 속에서 아레스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가슴팍의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내 전신을 지배했다.
'설마…… 내 디버프를 벌써 눈치챈 건가?'
식은땀 한 방울이 턱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앞의 기사단이 검을 뽑아 들며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