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 헉……! 끄 윽……!"
오태식의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가 쥔 무전기는 이미 강우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적색 오라에 휩싸여 있었다.
치지직! 치직! 지지지지징―!
비정형의 마력 노이즈가 주파수를 타고 그대로 역류했다. 무전기 메인 기판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콰직!
"본사……! 응답하라, 수송 1조! 무슨 상황……!"
무전기 너머 들려오던 오퍼레이터의 긴박한 목소리가 단번에 끊겼다. 강우는 힘을 빼고 손을 놓았다.
털썩.
오태식이 바닥으로 무너지며 거친 숨을 내몰아쉬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고 공포로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강우가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비웃음을 흘렸다.
"누구 맘대로 전화를 거냐고."
강우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투기와 푸른 서리가 서서히 심장 안으로 거두어들여졌다. 빙령의 핵을 통째로 집어삼킨 아레스의 심장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럽게 요동치고 있었다. 살을 갉아먹던 괴사의 통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마력이 전신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스스스스…….
골목 끝,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강우는 즉각 반응했다. 몸을 돌려 경계 태세를 취하는 그의 눈앞에, 익숙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임강우 씨! 이쪽이에요!"
유설아였다. 그녀는 다급한 표정으로 강우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카르텔의 위성 추적망이 이 일대를 전부 훑고 있어요. 3분 뒤면 타격대가 들이닥칠 거예요. 빨리 움직여야 해요!"
강우는 유설아의 손길을 가볍게 쳐내며 빈정거렸다.
"걱정 마. 이미 손은 써 뒀으니까."
그가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아레스의 심장이 내뿜는 특유의 비정형 마력 오라. 인간의 기술로는 규격화할 수 없는 이 노이즈 주파수가 허공으로 흩어지며 기묘한 파동을 그리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강남 상공을 가르며 날아오던 카르텔 소속 특수 수색 헬기 내부.
"타깃 마나 파형 감지! 현재 좌표,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인근!"
최첨단 마력 추적기를 들여다보던 차진욱의 수하가 소리쳤다. 차진욱은 쇠소리가 섞인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쥐새끼 같은 놈, 드디어 꼬리를 잡았군. 당장 전 대원 강하 준비시켜!"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알 리가 없었다. 추적기 화면에 표시된 붉은 점은 강우의 진짜 위치가 아니었다. 그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노이즈 오라가 카르텔의 추적 전파를 교란해 만들어낸 '가짜 좌표'였다.
삐이이이―!
수색 헬기가 가짜 좌표를 향해 급선회하는 사이, 강우와 유설아는 유유히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지하 도수로를 통해 빠져나갔다.
* * *
여의도의 한 지하 아지트. 불빛이 흐릿하게 켜진 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수십 장의 법률 문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진짜 괴물 같네."
유설아가 숨을 몰아쉬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강우의 가슴팍에 머물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검게 타들어가던 피부가 지금은 흉터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아니, 오히려 강철처럼 단단한 마나의 밀도가 살갗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몸은 정말 괜찮은 거예요? 세포 괴사가 그렇게 순식간에 회복되다니, 상식적으로 불가능해요."
강우는 대답 대신 오른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의 머릿속은 유설아의 행동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었다.
'나를 돕는 진짜 이유가 뭐지? 법을 무기로 카르텔을 무너뜨리겠다는 명분? 아니면 내 힘을 이용하려는 속셈인가?'
가스라이팅으로 점철된 F급 짐꾼 시절의 기억이 자꾸만 그의 발목을 잡았다. 강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쓸데없는 걱정 할 시간 있으면 가져온 서류나 보여주지. 한준서 그 인간, 지금쯤 눈 뒤집어졌을 텐데."
유설아는 강우의 경계 어린 태도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단호한 눈빛으로 서류 더미를 밀어 놓았다.
"예상대로예요. 카르텔 법무팀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임강우 씨를 '불법 침입 및 절도 혐의'로 엮어서 영구 정직시키고, 헌터 협회 공권력을 이용해 체포하겠다는 시나리오예요."
그녀가 서류 한 장을 짚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게 있죠. 바로 헌터법 제21조 강제 징발 면제 조항의 하위 면책 단서."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2화에서 유설아가 건넸던 바로 그 비밀 서류의 내용이었다.
"설명해 봐."
"카르텔이 지정한 사유지 던전이라 하더라도, '공식 마력 미달(F급)' 판정을 받은 무소속 헌터가 채굴한 전리품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강제 주장할 수 없다는 예외 조항이 있어요. 약자들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법안인데, 카르텔은 이게 아직 살아있는 줄도 모를 거예요."
강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지들이 약자들 등쳐먹으려고 생색내기용으로 만든 법에 지들이 발목 잡힌다?"
"정확해요."
유설아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빠르게 쏘아붙였다.
"게다가 소드마스터 강태훈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요. 최근 그의 마검 '뇌신'에 미세한 마력 균열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요. 카르텔은 지금 강태훈을 통제하기 위해 이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있어요."
강우는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강태훈의 마검 뇌신. 그리고 그 검에 생긴 균열이라.
'재미있군. 쓸 만한 패가 하나 더 늘었어.'
그때였다.
드르르륵―!
테이블 위에 올려둔 유설아의 단말기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화면에 뜬 발신인은 '헌터 협회 사법위원회'.
[임강우 헌터 귀하. 귀하는 카르텔 사유지 무단 침입 및 자산 강탈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금일 오후 2시, 협회 법률 회의실에서 개최되는 긴급 청문회에 출석하십시오. 불참 시 즉각 수배 조치됩니다.]
"왔군."
강우가 단말기를 낚아채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유설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생각보다 너무 빨라요! 아직 법적 방어막 논리가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았는데……."
"아니, 딱 좋아."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길이 품속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협회 공식 마력 검사기 폭발 이후 발급받은 '마력 미달(F급) 판정서'가 들어 있었다.
사기꾼 헌터의 자격을 완벽하게 증명해 줄 최고의 무기.
강우는 판정서를 서랍 깊숙이 밀어 넣으며 차갑게 웃었다.
"지들이 파놓은 함정에 지들 목이 날아가는 꼴을 보여주지."
* * *
헌터 협회 본관 7층, 법률 회의실 앞 복도.
구두 굽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울렸다. 강우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의 뒤로 유설아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뒤따랐다.
회의실 문 앞에는 이미 수십 명의 사람이 포진해 있었다. 검은색 명품 수트를 맞춰 입은 남녀들. 카르텔의 전속 법률 대리인인 대형 로펌 '태산'의 변호사단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한준서의 최측근이자 카르텔의 사냥개, 차진욱.
그는 강우를 발견하자마자 입가에 침을 흘리며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쥐새끼가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오는군."
변호사단이 갈라지며 강우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들의 눈빛에는 F급 짐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오만함과, 차가운 조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임강우 씨. 오늘부로 당신의 헌터 자격은 박탈될 것이며, 평생 빛도 보지 못하는 감옥에서 썩게 될 겁니다."
수석 변호사가 서류 가방을 두드리며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강우는 그들을 향해 그 어느 때보다 짙은 비웃음을 날렸다.
"그래? 어디 한번 짖어봐라."
강우가 회의실 문고리를 잡았다. 그의 손끝에서, 아레스의 심장이 보이지 않는 붉은 오라를 뿜어내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철컥.
강우가 무심하게 문고리를 돌려 꺾었다. 육중한 방음문이 열리며 회의실 내부의 서늘한 공기가 복도로 쏟아져 나왔다.
수십 개의 시선이 일제히 강우에게로 꽂혔다. 원탁의 상석에는 카르텔의 자본으로 길들여진 협회 징계위원들이 거만하게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늦었군, 임강우 헌터."
징계위원장 박성태가 서류를 툭툭 털며 가늘어진 눈으로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사유지 무단 침입에, S급 보스 '빙령의 숨결'의 핵을 무단 횡령한 혐의. 본인이 인정합니까?"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태산 로펌의 수석 변호사가 기다렸다는 듯 태블릿 PC를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강우가 수송 차량의 문을 찢어발기던 당시의 흐릿한 CCTV 캡처 화면이 떠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입니다. 피고인은 카르텔의 정당한 사유 재산을 약탈하고 수송 대원들을 위협했습니다. 이는 현행 헌터법상 즉각적인 자격 박탈 및 무기징역에 처해질 중범죄입니다."
변호사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뒤에 선 차진욱은 아예 입꼬리를 귀밑까지 찢으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강우의 목을 꺾어버리고 싶다는 살기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하."
회의실의 팽팽한 긴장감을 깨트린 건 강우의 짧은 실소였다. 그는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원탁 한가운데로 툭 던졌다.
툭.
종이가 미끄러져 박성태 위원장의 코앞에 멈췄다. 국가 공인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마력 미달(F급) 판정서'였다.
"이게 뭡니까?"
변호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눈이 있으면 똑바로 읽어봐."
강우가 턱짓을 하며 뻔뻔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나 마력 미달 F급이야. 그것도 기계가 측정조차 못 해서 에러 뿜어낸 공식 약골이라고. 근데 뭐? 내가 S급 보스의 핵을 훔쳐?"
"무슨 헛소리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라, 이 빡대가리들아."
강우가 테이블을 탁탁 두드렸다.
"F급 짐꾼 새끼가 S급 전초기지를 박살 내고, 수송대 통신망을 마력으로 녹여버렸다고? 니들이 그렇게 주장하면 세상 사람들이 참 잘도 믿겠다. 아, 카르텔 경비대는 F급 짐꾼 한 명한테 털리는 당나라 군대라고 광고하고 싶은 건가?"
"이, 이 새끼가……!"
차진욱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주먹을 꽉 쥔 그의 손가락 뼈마디에서 빠드득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맞는 말이었다. 헌터 협회의 공식 판정서에 적힌 임강우의 등급은 F급. 만약 카르텔이 강우를 'S급 핵 절도범'으로 공식 기소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삼엄한 경비망이 최하위 등급의 헌터 단 한 명에게 무력화되었다는 치욕적인 사실을 전 세계에 자백하는 꼴이 된다.
길드의 주가와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이 갈 수밖에 없는 외통수였다.
"게다가."
유설아가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품에서 두꺼운 법률 서류 파일을 꺼내 위원들의 테이블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쾅!
"헌터법 제21조 시행령, 강제 징발 면제 조항의 하위 면책 단서입니다."
유설아의 맑은 목소리가 회의실 안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소속 없는 F급 이하의 하위 헌터가 미지정 구역에서 획득한 전리품에 대해서는, 대형 길드가 사유 재산권을 주장하며 강제 징발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반하고 강제 압류를 시도할 경우, 해당 길드의 사유지 던전 소유권 전체가 즉시 '법정 동결' 처리됩니다."
"뭐, 뭐라고요?!"
수석 변호사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그들이 과거 약자들을 등쳐먹고 생색을 내기 위해 만들어둔 구닥다리 독소 조항의 예외 단서. 그 부메랑이 지금 카르텔의 심장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설마…… 그걸 노리고 일부러 마력 미달 판정서를 요구한 건가?"
박성태 위원장의 손이 잘게 떨렸다. 강우는 대답 대신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아레스의 심장이 가슴 속에서 요동치며 기분 좋은 박동을 전해왔다.
'지들이 만든 규칙에 갇혀 질식하는 기분이 어떠냐?'
철저한 불신 속에서 갈고닦은 이빨이 카르텔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물어뜯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차진욱은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차진욱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쇠사슬이 긁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회의실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법률? 조항? 그딴 종이 쪼가리가 널 지켜줄 것 같나, 임강우?"
차진욱의 손끝이 강우의 미간을 겨누었다.
"여기서 널 찢어 죽이고, 던전 안에서 실종되었다고 처리하면 끝나는 일이다. 한준서 대표님이 주신 '특별 징발 권한'은 초법적이니까!"
파지직! 파직!
회의실의 형광등이 그의 마력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불꽃을 튀기며 깨져 나갔다.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은 회의실.
강우의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그 역시 주머니에서 천천히 손을 빼냈다.
"어디 해봐."
쿵!
강우의 발끝이 바닥을 디디는 순간, 아레스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압도적인 적색 투기가 회의실 바닥을 거미줄처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쾅―!
회의실의 두꺼운 방음문이 통째로 뜯겨 나가며 벽면에 처박혔다. 엄청난 마력 폭풍과 함께,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누구 맘대로 내 사냥감을 건드리려 드는 거냐, 이 카르텔 개새끼들아!"
먼지 구덩이 사이로 나타난 거대한 체구. 그의 등 뒤에 메인 전설적인 마검 '뇌신'이 푸른 뇌전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소드마스터 강태훈이었다.
그의 등장에 회의실 안의 모든 이들이 경악하며 숨을 멈추었다. 그러나 강우의 시선은 강태훈의 얼굴이 아닌, 그의 등에 메인 마검 '뇌신'의 칼날로 향했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미세하고 불길한 검은색 균열.
강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카르텔조차 숨기려 들던 아킬레스건이 제 발로 청문회장에 기어들어 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