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쿠콰콰콰쾅!

대지를 집어삼킬 듯한 굉음이 고막을 찢었다.

자신의 전초기지가 붉은 화염과 연기 더미로 가득 찬 광경 속에 선 차진욱. 그는 이성을 완전히 잃고 날뛰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왜 기지가 날아가는 거야! 왜!"

차진욱이 손에 쥐고 있던 가짜 좌표 추적 장치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미친개처럼 구두 굽으로 그것을 짓밟아 뭉개며 분노의 포효를 질렀다.

"임강우우우우!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아아앗!"

그의 목에 핏대가 터질 듯 솟아올랐다.

원래대로라면 차진욱이 품고 있던 '마력 자폭 핵'이 강우의 코앞에서 터져 동귀어진했어야 했다. 하지만 폭발한 것은 강우가 서 있던 자리가 아니었다. 차진욱 지들이 목숨처럼 아끼던 카르텔의 전초기지 한복판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1화에서 강우가 아레스의 심장을 삼킨 그 순간부터, 그의 심장은 고유의 비정형 마력 오라를 내뿜고 있었다. 인간의 마력 측정기 따위는 인식조차 못 하는 미세한 노이즈 주파수. 그 기묘한 파동이 차진욱의 최첨단 마력 추적기 센서를 완전히 교란해 버린 것이다.

가짜 좌표. 완벽히 왜곡된 마나 흐름.

그 결과 차진욱이 자폭 핵을 기동한 순간, 폭발 주파수는 강우가 아닌 전초기지의 마나 저장고로 유도되었다. 지들이 판 함정에 지들이 기어들어 가 폭사한 꼴이었다.

"커, 헉……!"

차진욱이 시뻘건 피를 울컥 토해내며 무릎을 꿇었다. 자폭 핵의 역류 여파와 기지 붕괴의 충격이 그의 전신을 헤집어 놓았다.

강우는 그 처참한 광경을 피어오르는 불길 너머로 냉정하게 응시했다.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꼬락서니 하고는."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사방을 메운 불꽃의 파열음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하지만 강우 역시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두근! 두근! 두근!

갑자기 가슴속에서 아레스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끄, 윽……!"

강우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무리하게 심장의 비정형 마력 오라를 방출해 자폭 핵의 주파수를 간섭한 대가였다. '신의 과부하(Overload)'가 무서운 속도로 전신을 잠식해 들어왔다.

파지직!

오른쪽 손끝에서부터 불길한 검은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세포가 실시간으로 썩어 문드러지는 네크로시스(괴사) 현상이었다. 순식간에 손등을 타고 올라온 검은 괴사는 손목을 넘어 팔뚝으로 치달았다.

피부가 딱딱하게 굳으며 숯처럼 변해갔다. 피의 흐름이 끊기고, 뼈마디가 통째로 으스러지는 듯한 극통이 뇌리를 때렸다.

"흐, 읍……!"

강우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이빨이 깨져라 입술을 사정없이 깨물었다. 입술 사이로 붉은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과거 길드 놈들에게 개처럼 가스라이팅 당하며 짐꾼 노릇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생긴 뼈저린 타인 불신증.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제 몸을 부숴버리는 게 편했다. 강우는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지탱하며 벽을 짚었다.

"강우 씨!"

그때, 자욱한 연기를 헤치고 유설아가 달려왔다. 검게 죽어가는 강우의 오른팔과 핏기 없이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본 유설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게 무슨…… 과부하가 흘러넘치고 있어요! 세포가 썩어 들어가잖아요!"

"오지, 마……."

강우가 으르렁거리며 유설아를 밀쳐내려 했다.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꼼지락댔다. '이 여자, 지금 내가 약해진 틈을 타서 뒤통수를 치려는 건가?' 머릿속의 경고등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하지만 유설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강우의 억센 어깨를 움켜쥐며 버텼다.

"고집 피우지 마요! 이러다 진짜 죽는단 말이에요!"

유설아는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손목을 그대로 그어버렸다.

서걱!

붉고 신선한 피가 상처 틈새로 솟구쳤다. 유설아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피가 흐르는 손목을 강우의 입가로 강제로 밀어붙였다.

"마셔요! 얼른!"

"미쳤어……?"

"카르텔의 추적을 피하려면 당신이 살아야 해요! 내 피에는 고위 마법 계통의 순수한 마나가 흐르고 있어요. 심장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유설아의 목소리는 법정 고시를 읊을 때처럼 빠르고 단호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한 점의 거짓도, 음흉한 속셈도 없었다. 오직 불공정한 카르텔을 무너뜨리겠다는 단단한 신념과, 눈앞의 동맹을 살리겠다는 순수한 의지만이 가득했다.

강우는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차가운 불신으로 가득 찼던 심연에 아주 작은 균열이 일었다.

꿀꺽, 꿀꺽.

강우는 유설아의 손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삼켰다. 따뜻하고 비릿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마자, 날뛰던 아레스의 심장이 거짓말처럼 차분해졌다.

화아아악!

순수한 마력이 심장에 들어가며 맹렬한 과부하를 억눌렀다. 팔뚝을 타고 올라오던 검은 괴사가 멈추고, 피부색이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완벽한 치료는 아니었지만,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하아, 하아……."

유설아가 손목의 상처를 움켜쥐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강우는 입가에 묻은 피를 거칠게 닦아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까지 하지?"

"말했잖아요. 카르텔 그 쓰레기들이 만든 악법을 부숴버릴 거라고. 그러려면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유설아는 품에서 빛바랜 서류 한 장을 꺼내 보였다. 2화에서 강우에게 전해주었던 '헌터법 제21조 강제 징발 면제 조항의 숨겨진 하위 면책 단서' 서류였다.

"차진욱은 실패했지만, 본사에서는 곧 대규모 수색대를 보낼 거예요. 그리고 지금…… 아주 좋은 기회가 있어요."

유설아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기회?"

"카르텔이 강남 인근 미지정 던전에서 합법적인 '징발'을 가장해 극비리에 수송 중인 물건이 있어요. S급 보스 몬스터의 정수인 '빙령의 숨결' 핵이에요."

빙령의 숨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강우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반응했다. 더 강력한 몬스터의 핵을 갈구하는 아레스의 심장의 본능이었다.

"그 핵을 강우 씨가 흡수한다면, 과부하를 완전히 치료하고 신성을 진화시킬 수 있어요. 게다가 그 수송 차량은 헌터법 제21조의 면책 단서 영역을 지나가요. 우리가 탈취해도 그들은 법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죠."

강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자신을 짓밟으려 만든 법의 그물망을 역으로 이용해, 놈들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탈탈 털어먹는다. 이보다 더 짜릿한 시나리오가 어디 있겠는가.

"안내해."

강우가 몸을 일으켰다. 눈빛에는 이미 사냥감을 포착한 포식자의 살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 * *

끼이이이익-!

어두운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거대한 장갑 수송 차량 석 대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차량 표면에는 대형 길드 카르텔의 황금빛 문양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현재 지점, 면책 단서 해당 구역 진입 3분 전. 전방 주시 철저히 해라."

수송 대장 오태식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호위 헌터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비록 카르텔의 철저한 보안 속에 움직이고 있었지만, 수송 중인 '빙령의 숨결' 핵은 탐내는 자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다른 길드의 습격이 아니었다.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사신이었다.

콰아아아앙-!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듯한 충격과 함께 선두 장갑차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뭐, 뭐야?!"

오태식이 비명을 질렀다.

선두 차량의 보닛 위에 한 남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임강우였다. 그가 가볍게 오른손을 내뻗어 장갑차의 전면 유리를 그대로 내리쳤다.

콰직-!

"미친...! 괴물이다!"

장갑차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도로 바닥을 뒹굴었다. 뒤따르던 수송 차량들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다. 타이어가 타들어 가는 비린내가 진동했다.

문이 열리며 카르텔의 정예 호위 헌터 이십여 명이 무기를 치켜들고 쏟아져 나왔다.

"습격이다! 전원 전투 태세!" "침입자의 목을 쳐라!"

헌터들이 마력을 개방하며 강우를 향해 쇄도했다. 검기가 빗발치고, 화염구가 어두운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강우는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붉게 일렁이는 아레스의 심장 오라를 전신에 두른 채, 적들의 한복판으로 폭풍처럼 파고들었다.

전투는 학살에 가까웠다.

스으읍-!

강우가 오른손을 뻗어 가장 먼저 달려온 헌터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커헉?!"

콰우우우웅!

아레스의 심장이 굶주린 괴수처럼 포효했다. 웅장한 노이즈 주파수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헌터들의 마나 서클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강우와 접촉한 헌터의 몸에서 푸른 마력이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와 강우의 손끝으로 흡수되었다.

"끄아아아악! 마력이... 내 마력이 빨려 들어간다고!"

헌터가 순식간에 미라처럼 말라붙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다른 헌터들의 얼굴에 극도의 공포가 서렸다.

"이, 이 자식 대체 뭘 하는 거야?!" "괴물이다! 헌터가 아니라 괴물이라고!"

"다음."

강우가 낮게 읊조리며 신형을 좁혔다.

파앗!

그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순식간에 대열을 붕괴시켰다.

퍽! 콰직! 크아악!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격자로 울려 퍼졌다. 강우의 주먹이 나갈 때마다 카르텔의 정예 헌터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단순한 물리적 타격이 아니었다. 부딪치는 순간마다 그들이 가진 생명력과 마력이 강우의 아레스의 심장으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다.

"아아…… 기분 좋군."

강우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쓰러진 헌터들의 마력을 흡수할 때마다, 가슴속의 시한폭탄 같던 과부하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스탯이 실시간으로 고동치며 영구적으로 상승하는 쾌감이 척추를 타고 짜릿하게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 대의 장갑차는 이미 폐차장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강우는 천천히 걸어가 가장 거대한 중앙 수송 차량의 뒷문을 바라보았다. 두꺼운 특수 합금으로 봉인된 문. 하지만 강우의 손끝에 붉은 오라가 모여들자, 그 견고한 문도 한낱 깡통 캔에 불과했다.

쩌어어억!

강우가 양손으로 문틈을 잡고 찢어발겼다. 그러자 차량 내부에서 극도의 한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휘이이이잉-!

사방의 도로가 순식간에 하얗게 얼어붙었다. 그 중심에, 푸른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거대한 결정체가 공중에 부유하고 있었다. 카르텔이 온갖 악법을 동원해 약탈해 낸 S급 보스 '빙령의 숨결'의 핵이었다.

"이건 내 거다."

강우가 손을 뻗어 빙령의 핵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스아아아아-!

아레스의 심장이 한계를 모르는 탐욕을 드러내며 빙령의 핵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푸른 한기의 마력이 강우의 오른팔을 타고 심장으로 들이쳤다. 검게 괴사했던 피부 세포가 완벽하게 재생되다 못해, 강철보다 단단한 질감으로 거듭났다.

[아레스의 심장이 신성을 진화시킵니다.] [영구 스탯이 대폭 상승합니다!] [빙한(氷寒) 속성에 대한 절대 면역을 획득합니다.]

머릿속에 울리는 신의 음성. 강우의 전신에서 푸른 서리와 붉은 투기가 동시에 소용돌이치며 압도적인 위압감을 만들어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한 단계 더 높은 격(格)으로 진화한 것이었다.

"하, 하아…… 말도 안 돼……."

피투성이가 된 채 간신히 살아남은 수송 대장 오태식이 그 광경을 보며 기겁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붙잡았다. 어떻게든 본사에 이 재앙 같은 사실을 알려야 했다.

지이이잉-

"본, 본사! 들립니까! 습격입니다! 임강우가…… 임강우가 빙령의 핵을 통째로 삼켰……!"

터벅. 터벅.

얼어붙은 아스팔트를 밟는 군화 소리가 오태식의 귀에 저승사자의 발걸음처럼 울렸다. 오태식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임강우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리와 붉은 안개가 뒤섞인 눈동자가 기괴하게 빛났다.

"누구 맘대로 전화를 걸어."

강우가 단숨에 오태식의 목덜미를 움켜쥐어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커, 헉……! 끄 윽……!"

"본사에 전해라."

강우가 비웃음을 흘리며, 아레스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비정형 마력 오라를 오태식의 목과 그가 쥐고 있던 무전기에 그대로 밀어 넣었다.

지이이이이이잉- 콰직!

무전기 너머로 카르텔 본사 오퍼레이터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강우의 마력 노이즈가 통신 장비의 회로를 완전히 녹여버리며, 오태식의 마지막 비명조차 차갑게 단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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