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콰아아앙!

귀를 찢는 굉음이 밀폐된 검문소를 강타했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강화유리 파편. 퓨즈가 완전히 나가버린 천장의 전등들이 틱, 틱 소리를 내며 일제히 숨을 죽였다.

암전. 그리고 비상용 붉은 경보등만이 괴기스럽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정전인가? 야! 차단기 내려갔어!"

사방에서 비명과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 김태형을 비롯한 카르텔 길드원들이 옷소매로 코와 입을 막으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붉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단상 위. 검사관은 화상을 입은 손을 움켜쥔 채, 박살 난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액정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깨져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꺼지기 직전, 회로가 마지막 발악을 하며 띄워 올린 붉은 글자만은 선명했다.

[Error (측정 불가)]

"이, 이게..."

검사관이 부르르 떨리는 손가락으로 액정을 가리켰다.

"마력 측정기가... 터졌다고? 고작 F급 짐꾼 놈 마력을 측정하다가?"

김태형이 눈을 부릅뜨며 강우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끝에 시퍼런 C급의 마력이 맺혔다.

"야, 임강우. 너 이 새끼 기계에 무슨 장난질을 친 거야? 솔직히 말해. 어디서 불법 마력 교란 장치라도 구해왔냐?"

강우는 대답 대신 입꼬리를 가볍게 비틀었다. 비웃음. 가장 직관적이고 확실한 거절의 의사 표시였다.

강우가 손가락을 미세하게 꼼지락거렸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버릇이었다.

'바보들이 따로 없군.'

기계가 터진 건 아레스의 심장이 가진 신화급 마력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하지만 저 무식한 헌터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F급 임강우는 평생 착취당하던 만년 짐꾼일 뿐이니까.

"장치라니. 돈 없는 F급 짐꾼이 그런 고가 장비를 어디서 구합니까?"

강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뻔뻔하게 대꾸했다.

"기계가 노후화돼서 터진 걸 왜 나한테 따지는지 모르겠네. 카르텔이 협회에 기부금 좀 덜 내서 기계 수준이 이 모양인 것 아닙니까?"

"이 새끼가 진짜 죽고 싶나...!"

김태형이 주먹을 치켜든 순간, 검사관이 다급하게 그를 가로막았다.

"멈추세요, 김태형 헌터! 협회 검문소 내에서 사적 제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검사관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기계가 박살 난 건 골치 아픈 일이었지만, 규정은 규정이었다. 마력 판정 시스템이 완전히 먹통이 된 상황에서 수동으로 마력을 감지하는 휴대용 센서를 강우의 몸에 갖다 댔다.

삐— 삐—

조잡한 비프음과 함께 센서 화면에 극소량의 수치가 잡혔다. 아레스의 심장이 스스로의 파동을 완벽하게 숨긴 채, 오직 껍데기뿐인 F급의 마력만을 흘려보낸 결과였다.

"마력 반응... 극소. 일반인과 다름없는 수준이군."

검사관이 한숨을 쉬며 서류판에 도장을 쾅 찍었다.

"마력 측정기 오작동으로 인한 기기 파손. 피측정자 임강우는 마력 미달로 판정함. 가짜 헌터 등록증이나 다름없는 서류지만... 일단 발급은 해드리지요."

탁.

강우의 손에 쥐어진 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

[F급 마력 미달 판정서]

국가 공인 헌터 협회에서 발급한, 사실상 '이 사람은 쓸모없는 일반인 수준입니다'라는 인증서나 다름없는 폐급 서류. 김태형과 카르텔 길드원들이 그 서류를 보며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푸하하! 마력 미달 판정서란다! 야, 임강우. 너 이제 헌터 일도 못 하겠다? 어디 가서 막노동이나 알아봐라!"

"평생 짐이나 들다가 척추 부러져서 뒤지겠네, 병신."

사방에서 쏟아지는 조롱. 하지만 강우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완벽해.'

이 판정서가 발급된 순간, 강우는 국가와 대형 길드의 마력 추적 레이더망에서 완벽하게 지워졌다. 협회의 감시 그리드는 오직 '유효한 마력을 가진 헌터'들만을 추적한다. 마력 미달자로 분류된 강우는 이제 법적 감시망의 거대한 사각지대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강우는 말없이 뒤를 돌아 검문소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윽...!"

검문소 뒤편, 어두컴컴한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강우는 벽을 짚고 주저앉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찢어지고 있었다.

치이이익—

가슴팍의 피부가 검게 변하며 괴사(Necrosis)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레스의 심장이 가진 신성의 권능을 억지로 억누르고, 기계를 폭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의 과부하(Overload)'.

"하아... 하아...!"

뜨거운 프라이팬으로 심장을 직접 지지는 듯한 극통이 휘몰아쳤다.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이 악물고 참았다.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문 탓에 붉은 피가 턱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누군가의 도움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믿을 놈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강우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스윽.

그때, 어둠 속에서 고요한 인기척과 함께 구두 굽 소리가 들렸다.

강우가 늑대처럼 눈을 부릅뜨며 품 안의 단도를 움켜쥐었다. 방어 기제가 극에 달한 눈빛이었다.

"경계하지 마세요. 찔러봤자 당신 손해니까."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유설아였다. 그녀는 여전히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지만, 눈빛에는 묘한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강우는 그녀를 믿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믿을 수가 없었다. 카르텔 길드 소속의 헌터가 왜 자신을 쫓아온단 말인가.

"원하는 게 뭐야."

강우가 핏물이 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유설아는 그의 거친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강우의 단말기를 나포하듯 낚아채 갔다.

"무슨 짓거리야!"

"조용히 해요. 시간 없으니까."

유설아의 손가락이 단말기 화면 위를 폭풍처럼 움직였다. 마치 법정 고시를 외우듯, 그녀의 입에서 속사포 같은 설명이 흘러나왔.

"카르텔 법무팀이 최근 개정한 특별 시행령이에요. 헌터법 제21조 강제 징발 면제 조항. 대형 길드가 사유지 던전의 소유권을 영구 독점하기 위해 만든 악법이죠. 하지만 이 법에는 치명적인 설계 결함이 있어요."

그녀가 강우의 단말기에 의문의 암호화 파일을 전송했다.

띠링.

[전송 완료: 헌터법 제21조 시행령 하위 면책 단서 및 미지정 구역 좌표]

"이게 뭐지?"

강우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당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요."

유설아가 단말기를 강우의 손에 쥐여주며 한 단계 뒤로 물러섰다.

"소속 없는 F급 헌터가, 길드의 공식 사유지 경계선 '밖'에 존재하는 미지정 던전의 코어를 먼저 선점할 경우... 카르텔이라 할지라도 그 전리품을 강제로 빼앗을 수 없어요. 만약 억지로 빼앗으려 했다간 법적 분쟁으로 번져 길드 소유권 전체가 동결되니까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들이 법을 무기로 약자를 짓밟는다면, 우리도 법으로 그들의 목을 졸라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당신 가슴속에 있는 거... 심장이 썩어 들어가기 전에 채워 넣어야 할 테니까."

그녀는 강우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강우는 단말기의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유설아가 보내온 법조문과 좌표들. 강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하... 미친년인 줄 알았더니, 제법 쓸 만한 패를 던져주고 갔군."

법이란 결국 강자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견고한 성벽이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성벽이라도 개구멍은 존재하는 법. 특히 카르텔처럼 탐욕스럽게 영토를 확장하는 놈들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법적 등록을 미뤄둔 '미지정 허브 던전'을 반드시 남겨두기 마련이다.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눈빛만큼은 굶주린 야수처럼 번뜩였다.

'한준서. 네놈들이 만든 규칙으로 네놈들의 목을 쳐주마.'

* * *

새벽 3시. 서울 외곽의 한 폐공장 지대.

이곳은 카르텔이 삼엄하게 통제하고 있는 '블랙 레어' 사유지의 경계선과 맞닿은 완충 지대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콘크리트 장벽처럼 보이지만, 그 너머에는 카르텔이 숨겨둔 특급 허브 던전이 숨 쉬고 있었다.

경비 초소에는 C급 헌터 두 명이 하품을 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야, 담배 있냐?"

"저기 경보 장치나 잘 봐. 요즘 쥐새끼들이 꼬인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에이, 이중 마나 차단 장벽이 처져 있는데 어떤 미친놈이 경보도 안 울리고 들어오냐? S급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방벽 주변에는 스치기만 해도 침입자의 마나 파형을 감지해 본사로 신호를 보내는 최첨단 감시망이 촘촘하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스르륵.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장벽을 향해 다가왔다. 임강우였다.

강우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레스의 심장이 그의 의지에 반응해 고동쳤다.

쿵. 쿵. 쿵.

[신권 영역(Divine Domain)을 전개합니다.] [기존 시스템의 소유권 장벽 및 마나 감지 그리드를 일시적으로 기만합니다.]

웅—

강우의 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노이즈 주파수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현대 과학이나 기존 마법 체계로는 해석할 수 없는, 규격 외의 신적 파동이었다.

지이잉.

적외선 센서와 마나 감지기가 강우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센서의 인공지능은 강우의 마력을 '자연 상태의 공기' 혹은 '존재하지 않는 무(無)'로 인식하고 있었다.

스윽.

강우는 유령처럼 장벽의 틈새를 통과했다. 경비병들은 바로 코앞을 지나가는 강우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여전히 담배 불을 붙이고 있었다.

"들어가 볼까."

강우의 발걸음이 던전 입구의 붉은 포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던전 내부. 음산한 냉기가 뼈마디를 시리게 만들었다.

이곳은 아직 카르텔이 공식적으로 클리어하지 않고, 자신들의 '마력 허브'로 쓰기 위해 방치해 둔 미개척 구역이었다. 그만큼 강력한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위험지대.

하지만 강우에게는 이곳이 거대한 뷔페식당이나 다름없었다.

파스스스...

어둠 속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인간의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갑옷을 입은 몬스터. 이 구역의 보스, '네크로 워리어(Necro Warrior)'였다.

그 강대한 존재감에 일반적인 F급 헌터라면 숨도 쉬지 못하고 압사당했을 터였다. 하지만 강우의 눈에는 그저 신선한 '먹잇감'으로 보일 뿐이었다.

강우가 단도를 고쳐 잡았다. 그의 가슴속에서 아레스의 심장이 미친 듯이 굶주림을 호소하고 있었다.

'저놈의 마력을 삼켜라.' '그러면 살 수 있다.'

스부붑!

강우의 신형이 허공을 갈랐다. 상식적인 인간의 속도가 아니었다. F급이라는 껍데기 아래 가려진, 신화급 성물의 압도적인 신체 강화 능력이 폭발했다.

콰아아앙!

네크로 워리어가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지만, 강우는 이미 그의 등 뒤로 돌아선 뒤였다.

"가자."

강우의 오른손이 검붉은 마력 오라로 뒤덮였다.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다. 공간을 찢고 들어가는 파괴의 권능.

콰직!

"크오오오오!"

네크로 워리어의 단단한 뼈 갑옷이 두부처럼 으깨졌다. 강우의 손아귀가 몬스터의 흉벽을 뚫고 들어가, 그 중심에 박혀 있는 푸른빛의 코어를 정확히 움켜쥐었다.

그리고.

콰드득!

강우는 망설임 없이 코어를 움켜쥐어 터뜨렸다.

그 순간, 네크로 워리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영혼 마력이 강우의 팔을 타고 쓰나미처럼 밀려 들어왔다.

슈우우우욱!

"아...!"

극상의 쾌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썩어 들어가던 가슴팍의 피부가 순식간에 재생되며, 타들어 가던 심장의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몬스터 '네크로 워리어'의 영혼을 흡수했습니다.] [아레스의 심장이 활성화됩니다.] [괴사율이 0%로 안정화됩니다.] [영구 스탯이 대폭 상승합니다.]

강우는 가슴을 움켜쥐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시한부의 사슬을 잠시나마 끊어낸 것이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타아앗!

갑자기 던전 입구 쪽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눈이 멀 것 같은 강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기 누구야?!"

"누가 허가 없이 이 구역에 침입했나!"

카르텔 소속의 정예 순찰조였다. 그들의 서치라이트 불빛이 어둠 속에 서 있는 강우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강우는 피가 흐르는 네크로 워리어의 사체를 등 뒤로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빛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입꼬리를 잔혹하게 끌어올렸다.

사냥의 규칙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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