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F급은 F급답게 굴어야지."

무거운 철제 방패가 등을 가차 없이 내리쳤다.

콰당!

흙먼지 섞인 차가운 바닥이 강우의 안면으로 사정없이 들이닥쳤다.

푸른 마력이 은은하게 맴도는 중갑옷. 그 육중한 부츠가 강우의 시야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카르텔 길드의 1공격대 레이드 조장, 김태형이었다.

"어이, 짐꾼. 정신 안 차려? 너 여기서 낙오하면 시체도 못 찾는다니까?"

김태형이 강우의 머리맡에 침을 퉤 뱉었다.

강우의 양 어깨에는 성인 남성 몸통만 한 보급 가방 세 개가 얹혀 있었다.

강남 던전에서 채굴한 고순도 마력석과 길드원들의 예비 장비들. 합치면 가뿐히 80킬로그램이 넘어가는 무게였다.

F급 헌터의 신체 스펙으로는 서 있는 것조차 기적인 무게였지만, 강우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강우는 이를 악물고 목구멍 너머로 대답을 짜냈다.

그의 오른손 손가락이 미세하게 꼼지락거렸다.

극심한 모멸감과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나오는 오랜 버릇이었다. 상대의 오만함과 그 대가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강박적인 움직임.

"죄송하면 똑바로 기어다녀. 우리 한준서 길드장님이 이번 강남 던전 수율에 얼마나 민감하신지 알지? 길드에서 밥 먹여주고 던전 구경까지 시켜 주는데, 밥값은 해야 할 거 아냐."

김태형이 비열하게 킥킥거렸다. 주변에 서 있던 카르텔 소속 헌터들도 일제히 비웃음을 흘렸다.

"태형 형, 얘 진짜 여기서 뒤지는 거 아냐? 안색이 벌써 썩었는데."

"뒤지긴 왜 뒤져? F급도 명색이 헌터인데 일반인보다는 질기겠지. 야, 임강우."

김태형이 거대 거합도를 툭툭 치며 어둡고 눅눅한 통로 끝을 가리켰다.

"저기 앞방에 가서 덫 있는지 밟아봐."

그곳은 공식 지형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미개척 구역, 일명 '심연의 방'으로 통하는 입구였다.

음산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꼴이, 대놓고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광고하는 수준이었다.

"저기는 아직 안전 확보 핑이 안 찍힌 구역입니다..."

"그러니까 네가 가라는 거야, 이 등신아."

김태형이 강우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앞으로 거칠게 밀쳤다.

"네 몸뚱이로 트랩 하나 빼면 우리 길드원들 마력 물약 하나 아끼는 거야. 국가와 사회를 위한 봉사라고 생각해라, 응?"

늘 이런 식이었다.

고아원 출신에 빽도 없는 F급 헌터.

카르텔 길드는 강우를 인간 고기방패이자 가스라이팅의 완벽한 타깃으로 삼아 삼 년 동안 착취해 왔다.

너 같은 쓰레기를 거둬준 게 누구냐며, 은혜를 갚으라는 말로 영혼까지 털어먹었다.

강우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심연의 방 입구를 묵묵히 응시할 뿐이었다.

어차피 거부해 봤자 이 안에서 '사고'를 가장해 뒤통수에 칼을 꽂을 자들이었다.

강우는 피멍이 든 다리를 이끌고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어두운 조각상들이 늘어선 심연의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발끝에서 기이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바닥 돌판이 쑥 꺼졌다.

드드득!

"어...?"

뒤편에서 김태형의 썩은 미소가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거봐, 덫 맞네! 수고했다, 임강우!"

콰아아앙!

바닥이 완전히 붕괴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의 구멍이 강우의 발밑을 집어삼켰다.

동시에 천장에서 수십 톤에 달하는 돌무더기들이 메테오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이봐! 퇴로 차단된다! 전원 후퇴!"

김태형의 긴박한 외침을 마지막으로, 강우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 * *

콰르릉! 쿵!

얼마나 떨어졌을까.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충격과 함께 강우는 거대한 돌더미 아래 갇혔다.

허파가 짓눌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왼팔은 이미 감각이 없었다. 거대한 낙석에 깔려 뼈가 가루가 된 것이 분명했다.

울컥.

목구멍에서 검붉은 선혈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죽는 건가.'

평생을 짐꾼 노예로 살다가, 쓰레기들의 고기방패로 소모되어 차가운 던전 바닥에서 썩어가는 삶.

억울했다. 분해서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때였다.

두근.

귀를 찌르는 이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깊고, 아주 포악한 고대의 고동 소리였다.

두근! 두근!

무너진 돌무더기 틈새로 눈이 시릴 정도로 붉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 중심에 떠 있는 것은 하나의 결정체였다.

인간의 심장 형상을 한, 거칠고 투박하지만 압도적인 신성을 품은 붉은 보석.

전설로만 전해지던 신화급 성물, '아레스의 심장'이었다.

[적격자 감지.]

[투쟁의 의지를 품은 필멸자의 영혼을 확인했습니다.]

[신화급 성물 '아레스의 심장'이 영혼 각성을 구현합니다.]

머릿속을 직격하는 고풍스럽고도 서늘한 음성.

강우는 생각할 겨루조차 없었다.

살아야 했다. 살아서 자신을 이 지옥으로 밀어 넣은 자들의 목을 전부 꺾어버려야 했다.

"으... 으윽!"

강우는 손톱이 전부 뒤집어지는 고통을 무릅쓰고 오른손을 뻗었다.

그리고 붉게 박동하는 아레스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손바닥을 타고 타오르는 불꽃이 혈관을 역류해 들어왔다.

화아아악!

그것은 단순히 만나는 수준이 아니었다.

성물이 액체 상태의 용암처럼 변해 강우의 찢어진 가슴팍을 뜯고 들어가, 본래 있던 심장을 통째로 태워버리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콰아아아앙!

강우의 전신이 활처럼 꺾였다.

F급이라는 보잘것없는 그릇에 신화의 신성이 강제로 주입되는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혈관이 터지고 재구성되기를 수천 번.

"아아아아아악!"

던전 심연에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성물 '아레스의 심장'이 성공적으로 이식되었습니다.]

[사용자의 'F급' 성장 한계 장벽을 영구히 파괴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제한 없이 상승할 수 있는 '무한 성장' 상태로 각성합니다.]

[경고: 신의 과부하(Overload)가 발생합니다.]

[현재 사용자의 육체 등급이 성물의 격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실시간 세포 괴사(Necrosis) 진행 중...]

[잔여 수명: 30일]

[※주의: 수명 단축을 막으려면 더 강력한 몬스터의 핵이나 고위 헌터의 마력을 지속적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눈앞에 번쩍이는 붉은 경고창들.

강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심장이 위치한 곳 주변의 피부가 회백색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시체의 살점처럼 죽어가는 세포들.

성물의 엄청난 마력이 육체를 갉아먹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불끈.

강우가 오른주먹을 쥐었다.

콰직!

그저 가볍게 힘을 주었을 뿐인데, 공기 중에서 파열음이 일었다.

전신을 채우고 있는 이 밀도 높은 마력은 이전의 F급 시절과는 궤를 달리했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수십 톤의 돌더미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스윽.

강우가 한 손으로 가로막힌 거석을 밀어냈다.

스르륵, 콰앙!

집채만 한 돌 덩어리가 허공으로 날아가 벽면에 처박혔다.

살아남았다.

단순히 살아남은 수준이 아니었다.

강우의 눈동자에 날 선 살기가 서렸다.

"한준서. 카르텔."

그들의 오만한 목줄을 끊어버릴 발톱이 마침내 장착된 것이다.

* * *

"강우 씨! 임강우 씨!"

위쪽의 무너진 통로 사이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지 구덩이를 헤치며 한 여성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유설아였다.

그녀는 카르텔 길드에서 몇 안 되는 개념인으로 통하는 서포터 헌터였다.

항상 불합리한 길드의 행태에 반감을 가지며, 남몰래 강우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인물.

하지만 강우에게 그녀는 그저 경계 대상 1호일 뿐이었다.

"세상에... 살아 계셨군요!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유설아가 흙먼지투성이가 된 얼굴로 강우에게 달려왔다.

그녀가 강우의 상처 입은 어깨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빨리 제 손 잡으세요. 김태형 조장님이 철수 명령을 내렸지만, 저 위쪽에 아직 빠져나갈 틈새가 있어요. 제가 힐로 버텨줄 테니까..."

스윽.

강우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그녀의 손을 가볍게 쳐냈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한번 규칙적으로 꼼지락거렸다.

'왜 나를 도우려 하지?'

'이 위험한 상황에서 F급 짐꾼을 구해서 얻는 이득이 뭐길래?'

'위선인가. 아니면 길드 내의 평판을 위한 쇼인가.'

과거에 호의를 베풀던 자들이 결국 자신을 어떻게 이용하고 버렸는지, 강우는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었다.

타인의 호의는 가장 치명적인 독약이었다.

"필요 없어."

강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네? 하지만 그 몸으로 혼자서는..."

"가까이 오지 마.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해."

강우는 유설아를 싸늘하게 지나쳐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빛에는 늑대와 같은 경계심과 깊은 불신이 가득 차 있었다.

유설아는 허공에 멈춰 선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가 알던 유약하고 착취당하던 임강우가 아니었다.

그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묘하고도 거대한 압도감에, 그녀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 * *

강우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그의 가슴속에 깃든 아레스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쿠우우웅—!

보이지 않는 무형의 충격파가 심연의 방 전체를 휩쓸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마력 파동이 아니었다.

지지직, 지직!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어긋났을 때 나는 듯한 기이한 노이즈.

공간 자체가 미세하게 찌그러지며, 붉은색 검은색 주파수 오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이, 이게 무슨 소리..."

유설아는 귀를 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영혼이 통째로 뒤흔들리는 듯한 공포가 그녀를 엄습했다.

아레스의 심장이 뿜어낸 고유의 비정형 노이즈 주파수.

이 기이한 파동은 동굴 벽면과 마력 흐름에 깊은 낙인처럼 각인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어떤 폭풍을 불러올지, 이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 * *

던전 출구 검문소.

카르텔 길드의 철수 부대가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결국 그 새끼 시체도 못 건졌네. 쯧, 가방에 든 마력석 아깝게시리."

김태형이 이쑤시개를 씹으며 뱉었다.

"어차피 F급 기생충 놈 하나 없어진 건데 신경 쓰지 마십쇼, 조장님. 협회에는 대충 던전 붕괴로 인한 실종으로 보고하면 끝입니다."

부하들의 아부에 김태형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그렇지. 한준서 길드장님도 귀찮은 쓰레기 하나 정리됐다고 좋아하실... 어?"

그때, 포탈의 푸른 막이 출렁이며 두 개의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탈진한 기색의 유설아.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의 임강우였다.

심지어 강우의 한쪽 어깨에는 던전 깊은 곳에서 회수한 고가치 자원들이 가득 담긴 가방이 들려 있었다.

김태형의 이쑤시개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너... 너 이 새끼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야?"

강우는 대답 대신 김태형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냉혹한 시선에 김태형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어이, 임강우. 너 거기서 뭘 빼돌린 거냐? 그 가방 당장 이리 내놔."

김태형이 기세를 잡기 위해 C급의 마력 압박을 사방으로 방출했다.

보통의 F급이라면 무릎을 꿇고 덜덜 떨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강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비틀어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방치된 구역에서 주운 전리품이다. 카르텔 법무팀이 그렇게 강조하던 '소유권 장벽' 규칙에 따르면, 길드가 포기한 구역의 획득물은 발견자 소유일 텐데?"

"이 새끼가 어디서 말대꾸야!"

김태형이 주먹을 쥐고 다가서려던 찰나.

"거기 카르텔 길드원들! 소란 피우지 말고 순서대로 마력 측정기 통과하세요!"

단상 위에 설치된 국가 표준 공인 마력 판정기 앞에서 협회 소속 검사관이 확성기를 대고 소리쳤다.

대형 길드라 할지라도 협회 공식 검문소 앞에서는 몸을 사려야 했다.

"쳇, 쥐새끼 같은 놈. 나가서 보자고."

김태형이 이를 갈며 먼저 측정기 위로 올라섰다.

웅—

[김태형 - C급. 정상.]

[유설아 - D급. 정상.]

검사관들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판정 결과를 읊었다.

그리고 마침내, 임강우가 측정기 단상 위에 발을 올렸다.

김태형을 비롯한 카르텔 길드원들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F급 똥통 수치나 구경해 보자고."

"기계가 인식이나 하려나 몰라."

웅성거리는 비아냥 속에서, 강우는 가슴속 깊은 곳에 깃든 아레스의 심장을 굳이 억누르지 않았다.

성물의 신성이 혈관을 타고 폭발적으로 맥동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위이이이이잉—!

마력 측정기에서 들려오던 부드러운 구동음이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굉음으로 변했다.

"어? 기계가 왜 이래?"

검사관이 당황해 모니터를 두드렸다.

단상 주변을 둘러싼 푸른색 LED 라이트들이 순식간에 핏빛 붉은색으로 역전되었다.

치지직! 파팍!

기기 내부에서 감당할 수 없는 초고농도의 마력 오라가 역류했다.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며 검문소의 천장 전등이 일제히 점멸했다.

"피해랏!"

콰아아앙!

마력 측정기의 중심 코어가 폭발했다.

산산조각 난 강화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고, 검문소 전체의 전력이 차단되며 완벽한 어둠이 찾아왔다.

암전 속에서, 비상용 붉은 전등만이 깜빡거렸다.

그리고 박살 난 액정 화면 위에, 마지막 전력으로 띄워진 붉은 글자가 선명하게 명멸하고 있었다.

[Error (측정 불가)]

숨이 막히는 적묵 속에서, 강우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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