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휘의 양손이 붉게 물들었다. 그가 펼친 것은 수중 삼매 지진법이었다. 대지가 비틀리며 울부짖었다. 계곡의 수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야금성 보의 내부 틈새가 벌어졌다. 미세한 균열로 수류가 비집고 들어갔다. 수압의 고유 진동수가 흔들렸다. 이대로 두면 보의 구조 자체가 소실된다. 파열 수치가 임계점을 향해 치솟았다.
"서자 놈아, 대자연의 기를 이길 순 없다!"
제갈휘가 진기를 극한으로 뿜었다. 그의 목소리가 계곡 전체에 공명했다. 하류의 옹벽이 가루가 되어 흘러내렸다. 흙먼지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수압 터빈의 회전축이 흔들렸다. 내부의 독고천우가 터빈을 갉아먹었다. 외우내환의 격랑이 몸판을 덮쳤다.
무혁의 두 눈이 붉게 충전되었다. 정밀 제어 연산안이 강제로 개방되었다. 시각 정보가 격자로 쪼개졌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이명처럼 울렸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신경통이 일었다. 척추를 타고 올라온 고주파 진동. 그것이 중추신경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무혁은 이를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비린 혈향이 배어 나왔다.
"소소, 터빈의 회전수를 유지해라."
"무혁아! 배관이 완전히 녹고 있어!"
"수치상 아직 12초의 여유가 있다."
목소리는 기계처럼 건조했다. 감정은 배제된 지 오래였다. 무혁의 시야에 수많은 수식이 나열되었다. 제갈휘가 전개하는 진법의 흐름. 그것은 대지의 탄성파를 비트는 역학이다. 무혁은 기억의 심부를 헤집었다. 제3화에서 각인했던 파형이 떠올랐다. 제갈세가 풍수 수맥 제어용 호신패. 그곳에서 흘러나오던 에너지 굴절식 파형. 그것이 연산안의 좌표계에 겹쳐졌다.
오버랩 연산이 시작되었다. [진기 배출 주파수: 412Hz] [위상 편차: 0.032Rad] [공명점 분석 완료. 오차 범위 0.01mm]
수식의 해답이 도출되었다. 대지의 진동은 파동이다. 파동은 같은 주파수의 역위상으로 상쇄된다. 물리학적 인과율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기괴한 진법이라도 예외는 없다.
"철옥 형님."
무혁이 기형적 철륜 의체를 굴렸다. 바퀴가 삐걱이며 흙바닥을 긁었다. 당철옥이 무거운 검을 쥔 채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복잡한 심경이 스쳤다.
"무엇을 하려는 거냐, 무혁아."
"대지의 맥을 끊을 겁니다."
무혁이 소매 속에서 제어 장치를 꺼냈다. 가공된 강철 실린더 네 개가 드러났다. 그것은 강철 도도 강인 주파수 침이었다. 내부에 특수 진동판과 압축 스프링이 내장된 기계 장치다. 외부의 음향 진동을 역수용하여 증폭한다.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역방향으로 뱉어낸다.
"주파수 침을 진안에 박아야 합니다."
"진안이라니? 저 폭풍 속으로 들어가란 말이냐?"
"좌표는 제가 제시합니다. 오차는 용납 안 됩니다."
무혁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리켰다. 연산안이 비추는 네 개의 붉은 광점. 그곳이 대지의 기운이 모이는 진안이었다. 당철옥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무혁의 눈에서 흐르는 핏줄기를 보았다. 저 서자는 목숨을 걸고 계산하고 있다. 가문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기계를 증명하기 위해서.
"알겠다. 길을 열어라."
당철옥이 신형을 날렸다. 그의 비도술이 허공을 갈랐다. 그 무거운 칼날 끝에 강철 침이 실렸다. 슈우우웅! 첫 번째 강철 침이 대지에 박혔다. 정확히 동쪽의 바위 틈새였다. 쿠우웅! 지반이 요동치는 소리가 변했다. 미세한 고음이 계곡에 섞여 들었다.
"두 번째, 남서쪽 삼 보 앞 황토층."
무혁의 목소리가 고통으로 갈라졌다. 경맥이 찢어지는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뇌가 타오르는 것 같았다. 안구가 뒤집힐 것 같은 안압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연산안의 수식은 흐려지지 않았다. 공학자의 편집증이 육체의 고통을 억눌렀다.
쾅! 쾅! 쾅! 당철옥의 신형이 허공에서 세 번 꺾였다. 나머지 세 개의 주파수 침이 대지에 박혔다. 네 개의 강철 침이 피스톤처럼 구동했다. 쉬이이익! 탁! 탁! 탁! 기계식 제어 밸브가 고속으로 개폐되었다. 대지가 머금은 삼매 진동이 침 내부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특수 합금 진동판을 거쳐 위상이 뒤집혔다. 정확한 역위상의 파동이 대지로 환류되었다.
파지직! 파지작!
흙먼지 속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다. 제갈휘가 구축한 자연의 진동이 급격히 감쇠했다. 동시에 역방향으로 증폭된 에너지가 역류했다. 그것은 거대한 물리적 반탄력이었다.
"이, 이게 무슨……!"
제갈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신이 보낸 대지의 힘이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그것도 몇 배로 증폭된 충격파가 되어. 계곡의 수맥을 제어하던 제갈세가의 전사들. 수백 명의 무사가 동시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들의 발밑에서 고주파 진동이 폭발했다.
콰콰콰콰광!
흙바닥이 뒤집히며 무사들이 허공으로 붕떴다. 장기가 파열되는 둔탁한 파열음이 이어졌다. 무사들의 입에서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졌다. 진동의 역풍은 무자비했다. 그들의 뼈가 고주파에 공명하여 바스러졌다. 전장 전체가 비명과 혈우로 가득 찼다.
"커헉!"
제갈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공중에서 진법을 주도하던 그였다. 가장 거대한 역류가 그의 단전을 때렸다. 경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 제갈휘는 붉은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가 자랑하던 음양오행의 법진이 무너졌다. 오직 기계의 진동 침 네 개에 의해. 대자연의 역학이 물리학적 계산에 격파당했다.
사방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살아남은 제갈세가의 무사들은 기어 다녔다. 그들의 귀와 코에서 검붉은 피가 흘렀다. 고유 진동수의 붕괴가 가져온 참상이었다.
당철옥이 숨을 몰아쉬며 무혁을 보았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학의 정수가 아닌, 지독한 계산의 결과물. 그것이 일류 문파의 진법을 분쇄했다. 기괴하면서도 압도적인 힘이었다. 철옥의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의구심이 깨졌다. 이것은 가문을 망칠 이단이 아니다. 가문을 천하의 정점에 올릴 철혈의 힘이다.
"무혁아…… 너는 참으로 지독하구나."
철옥의 나직한 목소리에는 경의가 담겨 있었다. 무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고 있었다. 연산안의 대가가 육체를 잠식했다. 눈앞이 암흑으로 변해갔다. 중추신경의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를 찔렀다. 하지만 그는 쓰러질 수 없었다. 아직 내부의 연산이 끝나지 않았다.
치이이이익-!
야금성 심부의 고압 배관음이 다시 들렸다. 독고천우의 부식 속도는 멈추지 않았다. 터빈의 회전축 편심이 더욱 심해졌다. 진동이 계곡의 벽면을 타고 전해졌다. 이대로 두면 10분 내로 터빈이 폭발한다. 천공야금성 전체가 날아갈 위기였다.
그때였다.
야금성 상부, 식수 공급용 원류 정화 수조 방향. 그곳에서 기괴한 증기가 피어올랐다. 단순한 수증기가 아니었다. 돌과 쇠마저 녹여버리는 지독한 냄새. 가문 최고 비전의 독공, 철혈부식산(鐵血腐蝕酸). 그것이 수조 전체를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하하하! 서자 놈아! 야금성과 함께 녹아내려라!"
벼랑 위에서 당무진 파벌의 장로가 광소를 터뜨렸다. 그들의 손에는 빈 독항아리가 들려 있었다. 제갈세가가 패하자 극단적인 수를 쓴 것이다. 식수원이 오염되면 야금성의 인부들은 몰살당한다. 터빈의 냉각수로 쓰이는 물마저 강산으로 변한다. 배관의 붕괴 속도가 수십 배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경고: 냉각수 산도 급증] [터빈 케이싱 용해율 78% 돌파] [대폭발까지 남은 시간: 180초]
암전된 무혁의 시야 속에서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철혈부식산이 도관을 타고 흘러들었다. 강산의 독액이 구리 배관을 사정없이 녹였다.
"무혁아! 제어 밸브의 나사산이 뭉개졌어! 압력 제어가 안 돼!"
소소의 절규가 수증기 사이로 찢어지듯 들렸다. 무혁은 보이지 않는 눈을 감았다. 망막은 타버렸으나 뇌의 연산은 멈추지 않았다. 초당 수백만 번의 수식이 신경망을 스쳤다.
산(Acid)의 폭주는 화학적 중화로만 막을 수 있다. 야금성 제3창고에는 제련용 석회석 가루가 쌓여 있다. 탄산칼슘은 강산과 만나면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된다. 이것은 극히 단순한 화학적 인과율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수조를 중화하려면 정확한 질량 계산이 필요하다. 오차가 발생하면 미중화된 산이 터빈을 날린다. 혹은 과도한 찌꺼기가 회전축을 막아버린다.
"소소, 제3창고의 석회 수송 도관을 열어라."
"뭐? 거긴 야금용이잖아!"
"수조로 바로 연결되는 바이패스 밸브가 있다. 서보모터의 출력을 최대치로 올려라."
"하지만 그 도관은 기동하려면 수동으로 기어를 맞물려야 해! 그 고압 증기 속으로 누가 들어간단 말이야!"
무혁이 자신의 기형적 기계 의체를 내려다보았다. 하반신의 수압 실린더가 과열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氣)를 의체의 구동축에 직접 동기화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경맥의 내벽이 날카로운 면도날로 긁히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진기가 기어와 실린더로 스며들었다. 피가 기어 틈새로 흘러내려 증기와 함께 타들어 갔다. 그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기계처럼 몸을 움직였다. 휠체어의 바퀴가 축을 고정하고, 상체의 보조 의체가 수송선 기어 레버를 향해 뻗어나간 것은 찰나였다.
"내가 간다."
"무혁아! 안 돼! 경맥이 완전히 끊어질 거야!"
소소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으나, 무혁은 냉혹하게 그 손을 뿌리쳤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0.01g 단위의 화학적 질량 계산만이 흐르고 있었다. 인간의 감정은 계산을 흐리게 만드는 불순물에 불과했다.
철옥이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서자의 몸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그럼에도 그의 움직임에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철옥은 칼을 거두고 무혁의 의체 뒤편으로 다가섰다.
"내가 밀겠다. 좌표만 말해라."
"……우측 15도, 7보 앞입니다."
두 남자의 신형이 증기와 독무가 자욱한 심부로 뛰어들었다.
치이이이익!
배출되지 못한 압력이 용기 벽면을 때렸다. 무혁이 강철로 된 레버를 움켜쥐었다. 그의 손바닥 가죽이 고온의 철 표면에 달라붙어 타들어 갔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단백질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무혁은 미간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그저 의체에 흐르는 기의 출력을 12% 더 끌어올렸을 뿐이다.
쩍!
하는 파열음과 함께 경맥의 일부가 기어이 파열되었다.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선혈을 삼키며, 그는 레버를 바닥까지 꺾었다.
덜커덩! 쿠구구구구!
야금성 상부의 석회 수송 도관이 열렸다. 수십 톤의 백색 석회 가루가 식수 수조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검붉은 철혈부식산과 백색의 탄산칼슘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치이이이이이익-!
거대한 중화 반응이 일어나며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 가스가 뿜어 나왔다. 강산의 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터빈 케이싱의 용해 수치가 눈에 띄게 하락했다.
[용해율 79%에서 정지. 하강 중]
소소가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성공이야! 독액이 중화되고 있어!"
그러나 무혁의 연산안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흐릿한 인지 속에서 새로운 위협의 수치가 붉게 치솟았다. 중화 반응은 열을 동반한다. 밀폐된 수조 내부에서 발생한 수십만 칼로리의 반응열. 그 열이 냉각수의 온도를 순식간에 비등점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체적의 급격한 팽창. 즉, 증기압의 폭발적 상승이었다.
[경고: 수조 내부 압력 임계치 초과] [압력 수치: 45기압…… 50기압 돌파] [배출 밸브 작동 불능. 수문 폐쇄 상태]
"당무진……!"
철옥이 이빨을 갈았다. 상부의 배출 수문이 완전히 잠겨 있었다. 배신자들이 압력을 배출할 유일한 숨통을 철저히 봉쇄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터빈이 녹기 전에, 수조 자체가 거대한 화약고가 되어 야금성 전체를 날려버린다. 남은 시간은 30초. 수조의 외벽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고압의 증기가 균열 틈새로 칼날처럼 뿜어져 나와 석벽을 깎아냈다.
무혁이 피로 물든 얼굴을 들어 올렸다. 보이지 않는 두 눈이 허공의 한 점을 향했다.
"압력을 강제로 배출해야 합니다."
"방법이 있느냐?"
철옥이 다급하게 물었다.
"수문의 고정 핀을 직접 파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50기압의 초고온 증기가 전방 30장 이내의 모든 것을 증발시킬 겁니다."
그것은 죽음의 선고였다. 누군가는 그 증기 폭풍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야 했다. 수문을 여는 자는 뼈조차 남지 않고 녹아내릴 것이다. 철옥의 손이 검자루를 꽉 쥐었다. 무혁의 연산안이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대폭발까지 남은 시간: 15초]
그때, 야금성 상부의 봉쇄된 수문 위로 예기치 못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당무진 파벌의 장로들이 아니었다. 가문 비전의 백색 의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무인이 수문 고정 장치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푸른 기운이 서린 병기가 쥐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