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격동된 주위 대지가 진동하더니 계곡 정상 벼랑에 군청색 진법 기치를 쥔 제갈세가의 수석 역학 조사관 제갈휘가 안광을 내뿜으며 솟구쳤다.
벼랑 끝에 발을 디딘 사내의 도포가 광풍에 거칠게 펄럭였다. 그가 쥔 군청색 기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진기가 계곡의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뻗어 나갔다. 지면을 뒤흔드는 진동이 무혁의 철륜 의체 바퀴를 타고 척추로 고스란히 흘러들었다. 등뼈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격통이 일었으나 무혁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안구 내부의 정밀 제어 연산안이 급격히 회전하며 붉은빛의 광학 수치들을 허공에 띄웠다.
지반의 진동 주파수, 45헤르츠.
진폭은 매 초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었다. 자연의 섭리를 인위적으로 비틀어 압력을 가중시키는 기괴한 역학의 흐름이었다.
"서자의 얄팍한 잔재주가 감히 제갈의 법역을 건드렸구나."
제갈휘의 목소리가 계곡의 암벽에 부딪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그의 눈동자는 차가운 살의로 빛나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기계 공학이 만들어 낸 철제 장치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깊은 멸시가 담겨 있었다.
"천지자연의 기 흐름을 왜곡하는 저런 쇠붙이들이 이곳에 설 자리는 없다. 대지가 스스로 불경한 것을 뱉어낼 것이다."
제갈휘가 군청색 기치를 허공에서 크게 휘둘렀다.
스스스스-!
계곡 상단의 거대한 흙더미가 들끓기 시작했다. 단순한 흙의 무너짐이 아니었다. 수맥의 흐름을 강제로 뒤틀어 대지 자체를 액상화하는 진법이었다. 토사와 거대한 암석들이 물처럼 뒤섞여 침강류를 형성했다.
풍천낙지수맥진(風天落地水脈陣).
수만 톤의 진흙과 바위가 뒤섞인 거대한 해일이 천공야금성의 상단 축대를 향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질량과 가속도가 결합한 물리적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연산안의 시야에 붉은색 경고등이 명멸했다.
운동에너지 산출값, 1억 2천만 줄(Joule).
이대로 충돌한다면 야금성의 외벽은 물론이고 내부의 수력 터빈까지 흔적도 없이 함몰될 터였다.
"무혁아! 피해라! 저건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소가 비명을 지르며 무혁의 철륜을 잡아끌려 했다. 그러나 무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퀴를 고정하는 수압식 제동 장치가 지면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피할 곳은 없다."
무혁의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건조했다.
"이곳이 무너지면 가문의 야금 기지는 소멸한다. 계산상 후퇴는 손실률 100%를 의미한다."
바로 그 순간, 무섭게 쏟아지는 토사의 굉음 사이로 묵직한 파공음이 울렸다.
파아아앗!
자색의 강렬한 기운이 허공을 가르며 무혁의 등 뒤로 착지했다. 묵직한 철갑 장포를 두른 사내, 당철옥이었다. 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으나, 눈빛에는 가문을 수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서자, 네놈의 오만함이 결국 제갈세가의 비전 진법을 불러들였구나."
당철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 야금성은 당가의 자산이다. 무인의 혼이 깃든 이곳을 저들의 진법 따위에 내줄 수는 없다."
당철옥이 이를 악물며 두 손으로 무혁의 철륜 의체 후방 지지대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 독공과 강인한 내경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절정 고수의 내공이 철륜의 금속 프레임으로 흘러들었다.
쿠구구구!
철륜 의체가 당철옥의 조력을 받아 지면에 더욱 견고하게 밀착되었다.
"커헉……!"
그 순간, 당철옥이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그의 입술 사이로 붉은 혈조(血潮)가 튀어 나와 차가운 철륜의 표면을 적셨다. 극심한 기병(氣病)이 그의 오장육부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충격으로 인해 당철옥의 품속에서 백색의 도화 부적 한 장이 삐져나와 허공에 흔들렸다. 선대 가주의 진원이 담겨 있다는 비전의 도화 부적이었다. 무혁의 연산안이 그 부적의 표면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에너지 파형을 실시간으로 포착했다.
'저 부적의 에너지 밀도는 일반적인 영석의 열 배에 달한다. 유사시 극단적인 냉각 동력원으로 전환할 수 있겠군.'
무혁은 머릿속의 메모리에 그 파형의 수치를 즉각 각인했다.
"당철옥, 무리하지 마라. 당신의 내공 효율은 현재 40% 이하로 급감했다. 무의미한 에너지 낭비다."
"닥쳐라, 서자! 무인은 죽어도 싸움터에서 죽는 법이다!"
당철옥이 기침을 참으며 더욱 강하게 내공을 주입했다.
벼랑 위의 제갈휘가 그 모습을 보며 비소했다.
"당가의 적통이라는 자가 고작 서자의 쇠붙이 뒤에 숨어 목숨을 구걸하는구나. 가소롭다!"
제갈휘가 기치를 번쩍 들어 올리며 가산 진법(加算陣法)의 출력을 극대화했다.
"이 진흙더미는 대지의 무게 그 자체다. 강호의 규칙을 벗어난 저 불경한 폐물들과 함께 대지 밑바닥으로 가라앉거라!"
스르릉!
침강하는 토사의 속도가 두 배로 빨라졌다. 거대한 바위들이 서로 부딪치며 불꽃을 일으켰다. 야금성의 콘크리트 외벽이 미세하게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소소는 망치를 꽉 쥔 채 입술을 깨물었고, 당철옥은 전신의 힘을 짜내며 버텼다.
그러나 무혁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강호의 규칙이라."
무혁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자연의 법칙을 이길 수 있는 진법은 없다. 중력과 질량, 그리고 장력의 법칙은 그 누구도 왜곡할 수 없지."
무혁이 철륜 의체의 제어반을 가로질러 통제실의 메인 레버를 움켜쥐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기가 흘러나와 조종 장치와 동기화되었다.
우우웅!
경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오른팔을 타고 뇌로 치솟았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었으나, 무혁은 연산안의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가이드 와이어 윈치 시스템 가동.'
천공야금성의 양측 축대에 설치된 거대한 지브 크레인과 수밀 강철 와이어들이 요란한 톱니바퀴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장치는 수압 터빈의 회전력을 기계적인 인장력으로 변환하는 거대한 물리 제어 장치였다.
무혁은 연산안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토사의 낙하 벡터를 실시간으로 분해했다.
[진흙의 밀도: 2.1 g/cm³] [유속: 15 m/s] [충격 분력: X축 45,000 N, Y축 -82,000 N]
"소소! 3번 밸브를 개방해라! 수압을 120기압까지 끌어올려!"
"어? 어! 알았어!"
소소가 비명을 지르며 거대한 스팀 밸브를 발로 차서 열었다.
치이이이익-!
고압의 증기가 배출되며 수압 윈치의 드럼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강철 와이어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비명을 질렀다. 무혁이 노린 것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었다.
합산 벡터의 역전.
쏟아져 내리는 토사의 하강 운동 에너지를 강철 와이어의 횡방향 인장력과 결합하여, 야금성의 견고한 화강암 축대 벽면으로 흐름을 유도하는 물리적 편향 공학이었다.
서로 다른 방향의 두 힘이 만나면 새로운 합력 벡터가 생성된다. 강철 와이어의 강력한 장력이 토사의 낙하 각도를 강제로 꺾어, 야금성을 비껴가게 만드는 원리였다.
콰르르릉!
마침내 거대한 토사 더미가 야금성 바로 앞까지 들이닥쳤다.
그러나 그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수십 줄의 수밀 강철 와이어가 그물망처럼 허공을 가로질렀다. 와이어에 가해진 수백 톤의 인장력이 토사 더미의 중심부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깡! 깡! 깡!
강철과 바위가 충돌하는 금속성이 계곡을 찢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야금성을 쓰나미처럼 집어삼킬 듯 쏟아지던 토사와 바위들이, 강철 와이어의 장력에 이끌려 좌우의 거대한 배수로 구역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스르르르큭!
거대한 흙더미가 야금성의 외벽을 단 1인치도 건드리지 못한 채, 좌우의 인공 계곡 아래로 힘없이 흘러내려 갔다. 수만 톤의 대참사가 한순간에 무해한 진흙탕물로 변하여 배출되는 광경이었다.
"이, 이게 무슨……!"
벼랑 위에서 제갈휘가 들고 있던 군청색 기치가 크게 흔들렸다. 그의 오만한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대지의 침강을…… 일낱 쇠줄 몇 개로 받아넘겼단 말이냐? 가산 진법의 중력 배가가 어찌하여 통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의 뒤에 서 있던 제갈세가의 역학자들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비명을 질렀다. 그들이 평생 연구해 온 음양오행의 역학 원리가, 오직 강철의 인장력과 정확한 각도 계산만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장벽에 허무하게 상쇄된 것이다.
당철옥 역시 움켜쥐고 있던 철륜의 지지대를 놓으며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네가 말한 계산이라는 것인가."
"말했을 텐데."
무혁이 차가운 눈으로 벼랑 위의 제갈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얇은 조소가 걸려 있었다.
"당신들의 진법은 자연의 법칙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법칙 자체를 수치화하여 제어한다. 모조품이 진품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
제갈휘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그의 자부심이 철저하게 짓밟혔다.
"서자 놈이 감히 제갈의 학문을 능멸하는구나!"
제갈휘의 전신에서 푸른 진기가 광폭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의 눈이 핏빛 안광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오냐, 그렇다면 대지의 표면이 아니라, 그 심장부를 흔들어 주마!"
제갈휘가 군청색 기치를 거꾸로 쥐고 지면을 향해 강하게 내리꽂았다.
쿠웅-!
계곡 깊숙한 곳, 야금성의 거대한 수중 보(洑) 내부에서 기괴한 고주파의 진동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수중의 미세한 틈새들을 찾아내어 그 공명 주파수를 극대화시키는 극단적인 파괴 술법이었다.
수중 삼매 지진법(水中三昧地震法).
야금성의 가장 취약한 콘크리트 기초 지반의 미세 균열들이 공명하기 시작하며, 성체 전체가 내부에서부터 붕괴할 위기에 직면했다. 무혁의 연산안에 사상 최악의 주파수 경고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이명(耳鳴)이 귓전을 때렸다.
연산안의 붉은 수치들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기초 사석부 공명 주파수: 120Hz] [구조물 붕괴 확률: 87.4%…… 91.2%……]
콘크리트 옹벽에 실금들이 뱀처럼 기어갔다. 지반이 진동하며 무혁의 척추를 타고 올라온 고주파 진동이 뇌수를 헤집었다.
"끄으윽……!"
무혁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기를 기계 장치와 직접 동기화한 대가였다. 경맥이 마모되며 타들어 가는 극통이 전신을 지배했다. 눈앞의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각 인지 영역이 좁아지는 일시적 암전(暗電) 현상이었다.
하지만 무혁의 손가락은 제어반 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오직 기학(幾何)의 수식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공명(Resonance)은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외부 주파수가 일치할 때 진폭이 무한대로 증폭되는 현상이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선 동일한 주파수의 역위상(逆位相) 파동을 물리적으로 발생시켜 에너지를 제로로 수렴시켜야 한다."
무혁이 수압 터빈의 바이패스 제어봉을 움켜쥐었다.
"소소! 바이패스 밸브를 12도 방향으로 미세 조정해라! 기어비 1대 4로 역진동을 유도한다!"
"하지만 무혁아, 네 눈에서 피가……!"
"당장 실행해라! 0.1초라도 지체되면 지반이 바스러진다!"
소소가 눈물을 훔치며 복동식 제어 레버를 힘껏 당겼다.
쿠구구구!
야금성 지하의 고압 수압 실린더들이 역방향으로 격동했다. 제갈휘가 대지로부터 유도한 진동 파형에 정확히 계산된 수압식 역진동이 충돌했다.
파지직!
공중에서 무형의 음파가 맞부딪쳐 고막을 찢는 파열음이 일었다. 굉음과 함께 옹벽의 균열이 기적처럼 멈춰 섰다.
벼랑 위 제갈휘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역방향 진동으로 내 법진의 공명을 깼단 말이냐? 이 무도한 서자 놈이 끝까지……!"
제갈휘가 진법 기치를 양손으로 쥐고 남은 진기를 극한으로 짜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치이이이익-!
야금성 심부의 고압 증기 파이프라인에서 기괴한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단순한 가압 소음이 아니었다. 무혁의 연산안이 배관 내부의 유체 흐름을 급격히 포착했다. 배관을 타고 순환하는 배수 밀도가 비정상적으로 가중되어 있었다.
그것은 물이 아니었다. 끈적이고 탁한 검푸른 액체였다.
"독(毒)……?"
당철옥이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급히 소매로 코를 가로막았다.
"이건 가문 비전의 내부 부식독, 독고천우(毒蠱千雨)다!"
내부의 밀고자가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당무진의 정통 독공 파벌이 이 혼란을 틈타 수력 터빈의 냉각 유로에 부식독을 방류한 것이다. 강산성의 독액이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터빈 날개를 무서운 속도로 녹여 내리기 시작했다.
[경고: 터빈 날개 파손율 45% 돌파] [회전축 편심 발생. 열폭주 임박]
터빈의 균형이 깨지면 천공야금성 전체가 압력 폭발로 산산조각 난다. 외부에서는 제갈휘의 진법이 다시 기세를 올렸고, 내부에서는 터빈이 폭발할 위기에 처했다.
이중의 도겁이 무혁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기 직전, 연산안의 경고 수치가 99%를 가리키며 붉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