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득! 쿠구구구!
계곡의 가장자리를 지키던 백 년 묵은 침엽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도끼 자국 하나 없는 단면이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칼날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간 형국이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산신(山神)이 노하셨다! 계곡이 무너진다!"
가마를 지키던 야금노들이 혼비백산하여 주저앉았다. 대지를 흔드는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위이이이잉-!
고주파의 금속성 음향이 사방의 수풀을 장악했다. 단순한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고막을 찌르고 뇌막을 흔드는 인위적인 기계음이자, 기(氣)를 비틀어 자아내는 기하학적 파동이었다.
무혁의 두 눈이 기이하게 점멸했다.
[경고: 주변 기류 파형의 비정상적 왜곡 감지.] [풍수 수맥 제어 진기의 간섭 발생. 주파수 대역 분석 중…….]
붉은색 경고 도표가 그의 망막 위로 수없이 명멸했다.
시야가 붉게 물들며 계곡 경사면 곳곳에 박힌 이물질들이 포착되었다. 수풀 속에 은밀히 배치된 청동 기둥들이었다. 대략 팔 척 높이의 원통형 기둥들. 그 표면에는 제갈세가 특유의 은색 기하학적 문양이 빽빽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제갈세가의 자성(磁性) 기둥이다."
무혁이 건조하게 읊조렸다.
그의 기형적 철륜 구동 의체가 덜컹거리며 정지했다. 하반신을 대체한 바퀴의 축에서 미세한 증기가 뿜어 나왔다.
숲속 어둠 속에서 푸른 장포를 입은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갈세가의 침입 공작병들이었다. 그들은 손에 기이한 자철석 판을 들고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자연의 기맥을 인위적으로 비틀어 압착하는 전자기 자기장 기둥이 사방에 세워진 것이다.
"공기가…… 공기가 무겁다. 무혁아, 몸이 움직이지 않아!"
소소가 망치를 쥔 채 비틀거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철퇴가 자성에 이끌려 허공으로 무겁게 쏠리고 있었다.
무혁은 연산안의 출력을 올렸다.
두통이 두개골을 쪼개듯 밀려들었다. 뇌세포가 연산 과부하로 타들어 가는 고통이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붉은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수치만이 뇌리를 지배할 뿐이었다.
[자성 밀도: 4.8T (테슬라)] [기맥 굴절률: 92.1%] [공명 주파수: 142Hz]
제갈세가의 노림수가 명확히 분석되었다.
그들은 서천의 풍수 흐름 자체를 막으려 하고 있었다. 이 계곡은 천공야금성의 심장이다. 수압 구동계와 수력 터빈이 작동하려면 일정한 유량과 기맥의 안정이 필수적이었다. 저들이 자성 기둥으로 지맥을 뒤흔들어 수맥의 압력을 상쇄하면, 무역이 구축 중인 동력원은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철공 전기를 차단하여 당가의 철혈공학파를 싹부터 틔우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오만하구나."
무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뇌리에 3화에서 포착했던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당시 그는 제갈세가의 수석 조사관 제갈휘가 흘렸던 풍수 수맥 제어용 호신패의 파형을 연산안으로 완벽히 역공학 분석해 둔 바 있었다.
[메모리 데이터 대조 중…….] [일치율 99.8%. 제갈세가 고유의 에너지 굴절 파형 확인.]
"소소."
"응? 윽, 무혁아, 숨이 안 쉬어져……."
"지체할 시간 없다. 저기 구석에 처박아 둔 특수 기어 스풀식 기계 고속 연사 작살을 가져와라. 조립해라."
"작, 작살? 하지만 이 기압 속에서는 기계도 제대로 안 돌아갈 텐데……."
소소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사방을 에워싼 푸른 장막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실질적인 물리적 압력으로 육체를 짓누르는 고밀도의 에너지 장벽이었다. 약한 영지민들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거품을 물고 있었다.
"가져와라."
무혁의 목소리에는 자비가 없었다.
소소는 이를 악물고 휠체어 뒤편의 가죽 자루를 헤집었다. 묵직한 강철 부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탄성 합금으로 제작된 태엽 스프링, 정밀하게 맞물린 이중 기어 스풀, 그리고 세 척 길이에 달하는 탄소강 작살 촉들이었다.
소소의 손이 떨렸다. 두려움이 그녀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볼트 하나를 끼우려다 손치기를 쳤다.
깡!
볼트가 바닥으로 굴러갔다.
"무혁아, 안 되겠어! 손이 떨려…… 저들의 술법은 꼭 귀신의 장난 같아서, 내 망치질이 통하지 않을 것만 같아!"
전통적인 무인과 야금사들에게 제갈세가의 기하학적 진법은 미지의 공포였다. 자연의 이치를 비틀어 부리는 그들의 힘은 신비(神秘)의 영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무혁이 바퀴를 굴려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차가운 손가락이 소소의 턱을 거머쥐었다. 강제로 시선을 맞추게 했다. 무혁의 눈에서 흐른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눈동자는 유리알처럼 투명했고, 동시에 지독히 기계적이었다.
"귀신 따위는 없다."
"……어?"
"저것은 술법이 아니다. 단지 자철석의 배열을 통해 국소적인 전자기장을 형성하고, 기맥의 고유 진동수를 왜곡하는 정밀한 물리 현상일 뿐이다. 무가치한 자연의 변형에 겁먹지 마라. 모든 현상은 수치로 환원된다."
"수, 수치……?"
"이 작살 장치는 고탄성 스프링의 복원력을 이중 기어로 배가시킨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초속 백오십 미터의 속도를 보장한다. 기를 동기화하면 관통력은 배가된다. 저들의 조잡한 자기 장막 따위는 이 질량과 속도의 합을 이겨내지 못한다. 계산은 끝났다. 너는 조립만 하면 된다."
그의 목소리는 기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모든 공포를 배제하고 오직 사실만을 나열하는 기계의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소소는 침을 꿀꺽 삼키며 볼트를 주워 올렸다. 그녀의 눈빛이 다시 야금사의 그것으로 변했다.
철컥! 철커덕!
그녀의 정밀한 손놀림이 빛을 발했다. 기어들이 제자리를 찾아 물리며 맞물렸다. 고탄성 스프링이 스풀 내부에 빽빽하게 감겼다.
그사이 계곡 사방의 자성 기둥들은 더욱 거세게 진동했다. 푸른 장막이 점차 좁혀져 오고 있었다. 장막에 닿은 바위들이 과열되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완성했어!"
소소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무혁의 눈앞에 완성된 고속 연사 작살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했다."
무혁은 주저 없이 작살총의 제어 손잡이를 휠체어의 수압 구동계에 직접 연결했다. 의체와 무기를 하나로 묶는 동기화 작업이었다.
[동기화 개시. 기(氣) 에너지 주입 시작.] [경고: 경맥 내벽의 급격한 마모 감지. 마모율 14% 돌입.]
"크윽……!"
무혁의 척추가 활처럼 휘었다.
인간의 경맥은 기계를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인위적인 고압 수압 실린더에 내공을 주입할 때마다, 그의 온몸의 혈관이 바늘에 찔리는 듯한 가혹한 고통이 몰려왔다. 기계 장치 내부의 고주파 진동이 여과 없이 척추를 타고 뇌로 역류했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암전되었다. 그러나 연산안의 연산 장치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뇌세포의 과부하를 비웃듯 더욱 정교한 물리적 공명 주파수를 계산해 냈다.
"철수압 증기 장치의 대형 회전 동력을 순간 축압한다."
무혁이 의체 측면의 바이패스 밸브를 최대로 열었다.
쉬이이이이익-!
강한 고압 증기가 분출되며 휠체어 뒤편의 수압 실린더가 한계치까지 압착되었다.
[동력 압축률: 120%] [압력: 380bar]
"목표, 삼 킬로미터 밖 산림 초입. 제갈세가 자성 기둥의 공명 주점(中心點)."
무혁의 시야에 3km 밖 숲속에 숨겨진 청동 기둥들이 붉은 점으로 표시되었다. 그 기둥들은 서로 보이지 않는 에너지 선으로 연결되어 거대한 삼각 진법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진법의 정중앙, 즉 에너지의 상쇄 간섭이 일어나는 핵심 안구가 존재했다.
3화에서 획득했던 호신패의 파형 분석 데이터가 완벽한 유도선이 되어 주었다. 저들이 전자기 결계를 아무리 단단하게 쳐도, 그것을 유지하는 기둥 자체는 한낱 구리와 철의 합금일 뿐이다. 고유 진동수를 타격당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물리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부서져라."
무혁이 발사 장치를 격발했다.
콰콰콰콰쾅-!
수압 실린더가 폭발적인 힘으로 이완되며 작살총의 스풀이 초고속으로 회전했다.
쉬이이익!
세 척 길이에 달하는 고탄성 강철 작살이 허공을 갈랐다. 단순한 발사가 아니었다. 작살 축에 새겨진 나선형 홈이 공기를 찢으며 초고속의 회전 운동을 만들어 냈다.
초속 이백 미터에 달하는 강철의 탄환이 제갈세가의 푸른 전자기 장막을 향해 직사로 날아갔다.
치이이이이익!
작살이 장막과 충돌하는 순간, 엄청난 불꽃과 함께 전자기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기계적 질량과 순간적인 회전 관통력은 장막의 저항력을 압도했다.
푸른 장막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퍼어억!
첫 번째 자성 기둥의 정중앙에 작살이 정확히 박혔다.
무혁은 멈추지 않았다. 연산안의 보정치를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수정하며 연이어 트리거를 당겼다.
투콰쾅! 투콰쾅!
세 발의 작살이 연속으로 포성을 울리며 사출되었다.
각각의 작살은 정확히 3km 밖, 숲속에 은밀히 숨겨진 나머지 자성 기둥들의 기하학적 약점을 관통했다. 그것은 제갈세가가 자랑하는 진법의 물리적 사각지대이자, 공명 주파수가 극대화되는 파괴점이었다.
콰아아앙!
마침내 거대한 폭음이 계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기둥들이 박살 나며 그들이 가두어 두었던 고밀도의 자성에너지가 갈 곳을 잃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아악! 사, 상쇄 파동이 역류한다!"
"진법이 무너진다! 피해라!"
숲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제갈세가의 공작병들이 자신들이 펼친 결계의 역류 에너지에 휘말려 사지가 뒤틀린 채 나뒹굴었다. 청동 기둥들이 자성 과부하로 인해 스스로 열폭주하며 폭발했다.
사방을 짓누르던 푸른 장막이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 나며 사라졌다.
계곡에 다시 맑은 바람이 불어왔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대기가 제자리를 찾자, 쓰러졌던 영지민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깨어났다.
"진법을…… 단순한 쇠붙이 작살로 깨뜨렸다고?"
소소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망치를 내려다보았다.
제갈세가의 비전 법술이, 오직 기어의 회전과 수압의 힘, 그리고 정확한 탄도 계산만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타격에 허무하게 붕괴한 것이다. 그것은 강호의 상식을 뒤흔드는 해소(사이다)였다.
무혁은 차갑게 식어가는 작살총의 총신을 바라보았다.
"말했을 텐데."
그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소소를 돌아보았다.
"모든 것은 계산의 영역이다. 예외는 없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쿠구구구구-!
갑작스레 계곡 전체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게 격동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장막의 역류가 아니었다. 계곡의 원천 지맥 자체가 거대한 손길에 의해 강제로 들어 올려지는 듯한 기괴한 진동이었다.
"어, 저기 봐!"
소소가 손가락으로 계곡 정상의 벼랑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군청색 진법 기치를 손에 쥔 채,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사내. 그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안광이 어두운 계곡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제갈세가의 수석 역학 조사관, 제갈휘였다.
그가 들고 있는 진법 기치가 기이한 공명을 일으키며 계곡 전체의 수맥을 광폭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서자의 얄팍한 잔재주가 내 법역을 건드렸구나."
벼랑 위에서 들려오는 제갈휘의 목소리가 계곡 전체를 짓눌렀다. 진짜 위기가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