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철옥의 가죽 장화가 피웅덩이를 밟았다.
척.
무겁고 정교한 보법이었다. 바닥에 고여 있던 적색 혈류가 그의 발바닥 밑에서 사방으로 비산했다. 튕겨 나간 핏방울들은 이내 대기를 가르는 묵직한 진기에 밀려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수하들의 정수리를 밟고 내려선 그의 눈동자는 깊고 어두운 심연과 같았다.
“서자 무혁.”
당철옥의 음성이 폐각의 콘크리트 벽면과 철판을 울렸다. 쇠를 긁는 듯한 탁성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내력은 웅혼하기 그지없었다.
무혁은 휠체어의 조종 레버를 쥔 손가락끝을 미세하게 까딱였다. 수압식 실린더의 내부 압력은 현재 120바(bar). 언제든 고압의 유체가 밸브를 뚫고 나와 피스톤을 밀어 올릴 수 있는 임계 상태였다.
지르르릉.
휠체어 하단에서 기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작게 스며 나왔다. 무혁의 눈동자는 여전히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정밀 제어 연산안의 과부하가 초래한 모세혈관의 파열이었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붉게 점멸하며, 당철옥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내력의 흐름을 실시간 수치로 환산해 내기 시작했다.
[대상: 당철옥] [기경팔맥 내력 순환율: 94.2%] [응력 집중점: 양 무릎 관절 및 대퇴부 부근] [추정 출력: 3,500N 이상]
인간의 육체가 낼 수 없는 압력이다. 저것은 단순한 근력이 아니었다. 기(氣)라는 미지의 에너지가 세포의 분자 결합을 강제로 압축하여 발생시키는 초자연적 척력이었다.
당철옥이 허리춤의 도화색 보검을 매만졌다. 그의 시선은 무혁의 얼굴이 아닌, 그가 타고 있는 기형적인 철륜 의체에 머물러 있었다.
“가문의 사철(死鐵)을 가공하여 해괴한 흉기를 만들었구나.”
철옥의 목소리에는 살기 대신 깊은 우려와 멸시가 섞여 있었다.
“독과 암기는 가문의 혼이다. 그것은 무인의 기백과 내력의 정수가 합일되어 비로소 완성되는 법. 그러나 네놈이 만든 저 쇳덩이에는 무덕(武德)이 없다. 오직 살상만을 위해 설계된 비열한 기계 장치일 뿐이다.”
무혁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기형적인 냉소가 그의 창백한 얼굴에 그려졌다.
“무덕이라.”
무혁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감정이 배제된 기계의 마찰음과 같았다.
“가문에서 버려진 서자에게 무덕을 논하는가. 내게 그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이 쇳덩이가 비열하다면, 저기 누워 있는 자객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무엇인가? 기하학적 궤적과 운동에너지의 합산이다. 그것이 본질이다.”
당철옥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진기가 폐각 내부의 습기를 증발시키기 시작했다.
“기계는 가짜 힘이다. 스스로 단련하지 않은 철 기어에 의지하는 자는 결국 그 기계의 톳니바퀴에 물려 파멸할 것이다. 사천당가는 무학의 가문이다. 이런 사도(邪道)의 장난감으로 가문의 정통성을 더럽히게 둘 수 없다.”
철옥은 진심으로 가문을 걱정하고 있었다. 무혁의 천재적인 기계 공학이 가문의 뿌리 깊은 무학 전통을 붕괴시킬 것이라 믿는 눈치였다. 그것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었다. 가문을 수호해야 한다는 무겁고 왜곡된 의무감이었다.
무혁은 연산안의 초점을 철옥의 하반신으로 고정했다.
위이이잉.
망막 위에 녹색의 연산 격자판이 겹쳐졌다. 철옥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그의 양 무릎 관절을 지나는 기맥의 흐름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특히 대선풍 기공(大旋風 氣功)을 전개할 때 발생하는 하체의 회전 모멘트가 무릎의 인대 부근에서 극심한 변형률을 유발하고 있었다.
비틀림 변수율(Torsional strain rate).
기공의 회전력이 뼈와 관절의 마찰 한계를 초과하여 축적되는 물리적 피로 현상이었다.
“대선풍 기공.”
무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삼십육 회전의 원심력을 이용해 신형을 극대화하는 신법. 가문 최고의 경공이지. 하지만 그 회전의 축이 되는 양 무릎의 연골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
당철옥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푸른 안광이 거세게 흔들렸다.
“무슨 개소리를…….”
“수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무혁은 휠체어의 레버를 가볍게 튕겼다.
탁.
“당신이 대선풍 기공을 전개할 때, 대퇴골과 경골 사이의 마찰 계수는 정상 범위를 0.47 이상 초과한다. 회전할 때마다 발생하는 비틀림 응력이 무릎 안쪽의 음곡혈(陰谷穴)과 슬양관(膝陽關)에 집중되고 있지. 내력이 흐르는 경맥의 정체율은 무려 18.2%에 달한다. 쉽게 말해, 당신은 도약할 때마다 무릎 뼈를 스스로 갈아내고 있는 것이다.”
비틀림 응력이란 물체가 회전할 때 내부에서 발생하는 전단 저항력이다. 무혁은 철옥의 신법이 가진 회전 에너지가 관절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 경맥을 파괴하고 있음을 물리학적 응력 해석으로 도출해 낸 것이다.
“이것이 당신들이 자랑하는 그 위대한 무공의 대가인가? 오차투성이의 인체 구조를 강제로 쥐어짜 내는 원시적인 방식이지. 기계라면 이미 폐기 처분되었을 불량 설계다.”
폐각 내부가 침묵에 잠겼다.
당철옥의 이마에 굵은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것은 가문에서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던 비밀이었다. 최근 반년 동안, 대선풍 기공을 극성으로 전개할 때마다 무릎 깊은 곳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발생하곤 했다. 의원들은 그저 가벼운 풍습(風濕)이라 진단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서자는, 단 한 번의 움직임도 없이 오직 눈으로만 자신의 고질적인 내상과 그 수치적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설마…….”
철옥의 손가락이 보검의 자루에서 미끄러졌다. 그의 자부심이, 가문 최고의 천재라는 위상이 무혁의 냉혹한 정량적 분석 앞에 힘없이 바스러지고 있었다.
무혁은 멈추지 않았다. 연산안의 가동률을 90%까지 끌어올렸다.
아아악!
머릿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엄습했다. 뇌세포가 연산 과부하로 타들어 가는 감각이었다. 눈꺼풀 틈새로 다시 오염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무혁은 눈을 부릅떴다. 이 고통마저도 수학적 변수의 일부로 통제해야 했다.
연산안의 붉은 시야 속에서, 당철옥의 허리춤에 매달린 가죽 주머니가 포착되었다.
그 주머니 측면에는 특이한 기하학적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 문양 주변의 대기가 미세하게 굴절되며, 주변의 자연 진기(眞氣)를 이상한 파형으로 흡수하고 배출하는 흐름이 관측되었다.
[분석 완료: 고대 역학 무명 부각 문양] [진기 굴절 파형: 주파수 420Hz, 진폭 불규칙] [특이 사항: 외부 공간의 물리적 압력을 왜곡하는 간섭 무늬 감지]
제갈세가의 풍수 수맥 제어 진기를 배출하는 호신패의 파형과 일치했다.
무혁은 그 에너지를 자신의 뇌리 깊숙한 곳에 고스란히 기입했다. 이 정보는 추후 제갈세가와의 역학 제어 대결에서 결정적인 역공학의 단서가 될 터였다.
동시에, 무혁의 하반신을 지탱하고 있는 강철 의체 내부에서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고오오옹.
의체 깊은 곳에 내장된 불안정한 고압 '선천 코어'였다. 아직 완벽하게 제어되지 않은 이 코어는 무혁의 심장 박동과 동기화되어 불규칙한 주파수로 요동치고 있었다. 조금만 압력이 치솟아도 하반신의 의체 전체를 폭발시킬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무혁은 이 통제 불능의 에너지를 억누르며, 철옥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당철옥. 당신의 무릎은 앞으로 세 번의 전력을 다한 도약 이상을 견디지 못한다. 다음 도약에서 당신의 음곡혈은 완전히 파열될 것이고, 다시는 가문 제일의 신법을 펼치지 못하겠지. 이것이 수학이 내린 당신의 미래다.”
철옥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무인이었다. 상대의 말이 허풍인지, 아니면 자신의 무학을 완벽하게 꿰뚫어 본 진실인지 직감적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 무혁의 진단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스스스.
철옥을 감싸고 있던 푸른 진기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의 얼굴에서 오만함과 멸시가 사라지고, 대신 깊은 고뇌와 경외감이 그 자리를 채웠다.
철옥은 진정한 무인의 도량을 지닌 자였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시인할 줄 아는 강자였다.
“……놀랍군.”
철옥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내 무학의 허점을 이토록 명백하게 짚어낸 자는 가주의 어른들 중에서도 없었다. 비록 쇳덩이에 의지하는 사도라 할지라도, 네놈의 안목과 연산은 가히 천하를 뒤흔들 만하다.”
그가 도화색 보검에서 손을 완전히 떼어냈다.
“하지만 무혁아. 네가 아무리 천재적인 연산으로 나를 굴복시켰다 한들, 가문의 거대한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철옥의 눈빛에 다시금 무거운 살기가 서렸다. 이번 살기는 무혁을 향한 것이 아닌, 가문을 둘러싼 음모를 향한 것이었다.
“당무진 숙부님이 이끄는 가문 주류 평의회는 이미 네놈을 제거하기로 결의했다. 네가 만든 그 기계 의체와 기술을 가문의 반역물로 규정했지.”
“예상했던 바다.”
무혁의 답변은 담담했다.
“머지않아 평의회 대련이 열릴 것이다. 가문의 규율에 따라 네놈의 생존권을 결정하는 재판의 자리지. 숙부님은 그곳에서 합법적으로 네 목을 벨 준비를 마쳤다.”
철옥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서서히 묻혀 들어갔다.
“그 대련에서 패하는 순간, 네놈은 물론이고 네놈을 도운 야금사 계집까지 사지가 찢겨 가문의 사철 더미에 묻힐 것이다. 죽기 싫다면 가문을 떠나거라.”
“도망은 연산식에 존재하지 않는다.”
무혁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평의회 대련이라. 가문의 최정예들을 공식적으로 짓밟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무대군.”
철옥은 무혁의 오만한 태도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네놈이 상대해야 할 대결마가 누구인지 안다면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 터인데.”
철옥의 신형이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그의 마지막 경고가 폐각의 차가운 정적을 깨뜨렸다.
“숙부님이 내세운 자는 가문의 직계가 아니다. 오직 살인만을 위해 가문이 어둠 속에서 길러낸 그림자.”
철옥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사천당가 최정예 그림자 자객, 고영(孤影). 그가 평의회 대련에서 네놈의 심장을 노릴 것이다. 준비해라, 서자 무혁. 그것은 대련이 아니라 도살이 될 테니.”
바람이 불어 폐각의 거대한 철문이 쾅 하고 닫혔다.
철옥은 사라졌다.
폐각 내부에는 오직 기계의 낮게 웅웅거리는 진동음과, 피눈물을 흘리며 휠체어 위에 앉아 있는 무혁만이 남겨졌다.
무혁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의 연산 장치가 새로운 데이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당무진, 평의회, 그리고 최정예 자객 고영.
변수들이 늘어날수록, 무혁의 심장박동은 빨라졌고 휠체어 내부의 선천 코어는 더욱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문의 거대한 음모가 그를 짓누르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