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콧구멍을 찔렀다.
화려한 조명과 수만 명의 함성, 그리고 마지막 무대 뒤편에서 흐느끼던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닿은 뺨에서부터 지독한 냉기가 올라왔다.
허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시야가 흐릿했다. 손가락 끝에 닿는 것은 끈적한 수분기를 머금은 장판지였다. 벽면을 더듬자 툭, 하고 고장 난 제습기의 플라스틱 필터가 떨어져 내렸다.
"여기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도경은 반사적으로 주머니를 뒤적였다. 손에 잡힌 것은 모서리가 다 깨진 구형 스마트폰이었다. 액정을 켜자 푸르스름한 불빛이 어둠을 밝혔다.
[2014년 7월 15일 화요일]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2014년. 아레스(Ares)가 데뷔를 고작 석 달 앞두고, 기획사 JS 엔터테인먼트가 첫 번째 부도 위기를 맞이했던 바로 그 지옥 같은 해였다.
눈앞에 번지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풍경이 아니었다. 찌지직, 하는 기괴한 기계음과 함께 귓가에 고주파 이명이 몰아쳤다.
-삐이이이이이!
"으윽!"
머리를 깨부수는 듯한 통증에 도경은 바닥을 뒹굴었다. 관자놀이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달팽이관이 마비되는 감각. 귀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목덜미를 적셨다.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 감았던 눈을 뜨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어두컴컴한 반지하 연습실의 허공에 붉은색 반투명 인터페이스가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미래 음원 싱크로율 감응(Sync-Induction) 기동 중……] [동기화 대상: 그룹 '아레스(Ares)'] [경고: 시스템 가동 시 청각 과부하 및 파트너의 육체적 피로 누적 전이 발생.]
붉은 선들이 궤적을 그리며 얽히고설켰다. 그것은 단순한 그래픽이 아니었다. 10년 뒤, 2024년의 전 세계 음원 차트를 지배했던 메가 히트곡들의 주파수 파형이자,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기하학적이고 완벽한 안무 동선이 실시간으로 변환되어 뇌리 속으로 꽂혀 들어오는 감각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손을 뻗었지만 붉은 궤적들은 허공을 스치듯 사라졌다. 대신 도경의 머릿속에는 한 곡의 완벽한 멜로디라인과 보컬 분배, 그리고 멤버들의 잠재적 가창 대역이 시각화된 데이터로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단순히 미래의 곡을 머리로 기억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곡의 주파수가 어느 대역에서 가장 아름답게 울리는지, 어떤 음색을 가진 보컬이 이 파트를 불러야 대중의 심장을 저격할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간파할 수 있었다.
다만, 머릿속을 찌르는 이명과 일시적으로 둔해진 청력이 그 대가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귀가 완벽히 먹먹해져 마치 물속에 잠긴 기분이었다.
도경은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일어섰다. 귀가 먹먹한 와중에도, 얇은 합판 문 너머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민우야, 음정 쳐지잖아. 다시. 처음부터."
"하아, 하아……."
연습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미약한 불빛. 도경은 숨을 죽인 채 문고리를 잡았다. 미세하게 열린 틈 사이로 비참한 현실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였다.
지하 2층의 공기는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무거웠다. 사면을 둘러싼 거울 중 두 면은 이미 깨져서 테이프로 얼룩덜룩하게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거울 한가운데에는 붉은색 압류 딱지가 선명하게 붙어 있었다.
"다시 하자. 포기하면 진짜 끝이야."
리더 서채아였다. 스무 살의 채아는 무릎에 감은 더러운 압박붕대를 더욱 꽉 조여 매고 있었다. 연골판이 닳아 오를 대로 올라 걸을 때마다 통증이 밀려올 텐데도, 그녀는 이 악물고 중심을 잡았다.
그 옆에는 메인 보컬 이민우가 주저앉아 있었다. 열아홉의 민우는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그의 목에서는 쇠비린내가 섞인 거친 숨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채아 누나…… 우리 진짜 데뷔할 수 있는 거야? 대표님은 벌써 일주일째 연락도 안 되고, 식비 지원도 끊겼잖아. 어제는 보일러실 아저씨가 우리 다음 달에 쫓겨난다고……."
민우의 목소리가 젖어 들어갔다. 그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먼지 가득한 바닥에 작은 원을 그렸다.
"할 수 있어. 도경 형이 어떻게든 구하러 온다고 했잖아. 우리 매니저 형이잖아. 한 번도 거짓말한 적 없잖아."
채아가 민우의 어깨를 꽉 쥐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끝 역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경은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핏기가 가셨다.
과거의 자신은 무능했다. 기획사가 파산하고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쳤을 때, 그저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결국 아레스는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무대도 서보지 못한 채, 엔터포스 카르텔의 횡포 속에서 '망돌'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흩어졌다.
다시는. 다시는 그 비참한 눈물을 방관하지 않겠다.
도경의 눈앞에서, 채아와 민우의 몸 주변으로 황금빛 아우라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그것은 '미래 음원 싱크로율 감응'이 보여주는 보컬의 잠재력 지표였다.
[이민우 - 보컬 잠재력: SSS (미개발)] [서채아 - 댄스 및 리더십 잠재력: SS (무릎 부상으로 인한 효율 저하 40%)]
도경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미래의 곡을 그대로 2014년에 들고 오면 대중은 거부감을 느낀다. 2024년의 미니멀한 이지리스닝과 숏폼 위주의 훅송은 지금 시대에는 그저 성의 없는 소음으로 취급받을 뿐이니까.
하지만 자신에게는 능력이 있다. 머릿속에 새겨진 그 미래의 명곡을, 이 시대의 감성에 맞게 처절하게 편곡하고 다듬어 낼 기술이 있었다. 빈티지 신디사이저와 아날로그 비트를 결합해 2014년의 리스너들을 미치게 만들 '로컬라이징'의 청사진이 뇌리에 완벽하게 그려졌다.
이 아이들의 재능과, 자신의 미래 정보가 결합한다면 불가능은 없다. 지옥 밑바닥에서 시작하더라도, 저 거대한 방송 카르텔의 대가리를 깨부수고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섰다.
도경은 심호흡을 하며 문을 열려 했다.
콰아앙!
철제 현관문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안쪽으로 꺾여 들어왔다.
"이 씨발, 쥐새끼만도 못한 년놈들이 아직도 여기서 굴러먹고 있네?"
가죽 재킷을 걸친 덩치 큰 사내 셋이 연습실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섰다. 가죽 냄새와 지독한 담배 연기가 밀폐된 지하 공간을 단숨에 오염시켰다.
선두에 선 사내는 JS 엔터테인먼트의 사채 채권을 쥐고 있는 악덕 사채업자, 배태식의 행동대장인 강철두였다. 그의 손에는 기름때가 묻은 두꺼운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악!"
민우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고, 채아는 본능적으로 민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누구세요! 여기 사유지예요. 당장 나가세요!"
"사유지? 야, 이 기집애가 입만 살았네."
강철두가 이빨을 드러내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는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바닥에 툭 던졌다. 먼지가 파르르 일었다.
"느그 사장 새끼가 잠적하면서 뭘 남겨두고 갔는지 알아? 여기 있는 니들 신용보증 각서야. 장기든 몸뚱이든 뭐든 팔아서 빚 갚겠다는 각서에 지장까지 아주 예쁘게 찍어놨더라고."
"그럴 리가 없어요! 대표님이 왜 우리를……."
채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강철두는 가죽 재킷 안주머니에서 붉은 인주가 묻은 신체포탈 신용보증 각서 수십 장을 꺼내 흔들었다. 종이가 파르르 떨리는 소리가 마치 아레스의 목숨줄이 끊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돈 안 되면 얼굴 반반한 년놈들 데려다가 어디 해외 선박에라도 태워야지, 안 그래? 계약서에 그렇게 적혀 있어. 오늘 당장 첫 이자 안 내놓으면, 니들 오늘부로 우리 가게에서 서빙부터 시작하는 거다."
강철두가 거친 손을 뻗어 채아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채아는 겁에 질려 눈을 감았다.
그 손목을, 누군가의 손이 허공에서 무섭게 낚아챘다.
탁!
"……뭐야, 어떤 새끼가?"
강철두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손목을 쥔 것은,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강도경이었다. 도경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직 청력 마비의 통증이 가시지 않아 귀에서 미세한 이명이 울리고 있었지만, 그의 손아귀 힘은 살벌할 정도로 단단했다.
"매니저 형……!"
민우가 울먹이며 도경의 이름을 불렀다.
도경은 강철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과거의 도경이라면 이 깡패들 앞에서 싹싹 빌며 시간을 달라고 애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도경은 10년의 풍파를 겪은 베테랑이었다. 사채업자들이 흔드는 저 각서가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는 사기 계약서라는 것쯤은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강철두 씨."
도경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오히려 그 차분함이 기괴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안 놔? 손목 뼈 부러지고 싶어?"
강철두가 힘을 쓰며 손을 빼려 했지만, 도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 끝에 힘을 더 주어 강철두의 관절 부위를 강하게 압박했다.
"악! 이 새끼가 진짜……!"
"2014년 현행법상 제3자의 동의 없는 신체포탈 보증 계약은 원천 무효입니다. 게다가 미성년자인 이민우 군의 법정대리인 동의서도 없는 이 각서는 형법 제347조 사기죄 및 공갈협박죄에 해당하죠."
도경이 한 걸음 다가서며 강철두의 눈빛을 짓눌렀다.
"지금 당장 이 폐쇄된 지하에서 무단 가택침입 및 미성년자 협박으로 현행범 체포당하고 싶지 않으면, 그 더러운 손 치우시죠."
"뭐, 뭐라고?"
강철두의 얼굴이 황당함과 분노로 일그러졌다. 법이고 뭐고 주먹이 먼저인 바닥에서 살아온 그에게, 법조항을 들이밀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도경의 태도는 이질적이다 못해 오싹했다.
뒤에 서 있던 덩치 둘이 침을 뱉으며 앞으로 나섰다.
"형님, 이 새끼 그냥 묻어버릴까요?"
일촉즉발의 상황. 좁고 눅눅한 지하 연습실의 공기가 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채아와 민우는 숨을 죽인 채 도경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작고 초라해 보였던 매니저의 등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거대한 성벽처럼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도경은 주머니 속에서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의 녹음 버튼을 슬며시 눌렀다.
"묻어버린다고? 방금 그 발언, 협박 및 살인 예비음모로 아주 잘 녹음됐습니다."
도경이 비열하게 웃으며 강철두의 손목을 거칠게 뿌리쳤다.
"배태식 사장한테 가서 전해. 일주일만 준다. 일주일 뒤에 원금과 법정 최고 한도 이자까지 정확히 계산해서 계좌로 쏴줄 테니까."
강철두는 붉게 멍든 자신의 손목을 만지며 이빨을 갈았다. 이 하룻강아지 같은 매니저 놈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살기가 장난이 아니었기에, 쉽게 덤벼들지 못했다.
"일주일……? 좋다, 이 새끼야. 일주일 뒤에 단 한 푼이라도 모자라면, 그땐 법이고 나발이고 니들 손가락 다 잘라버릴 줄 알아."
강철두가 바닥에 침을 뱉고는 부하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철문이 부서질 듯 닫히는 소리가 지하 연습실을 세차게 울렸다.
정적이 찾아왔다.
"도경 형……."
민우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도경에게 매달렸다. 채아 역시 무릎의 통증을 잊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경은 두 사람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일주일. 사채 빚을 해결하고, 이 지하 연습실을 지켜내며, 아레스의 데뷔곡을 완성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7일이었다.
골든핑거의 붉은 인터페이스가 다시 한번 도경의 시야에 떠올랐다. 이번에는 더 짙고 붉은 경고음과 함께였다.
[돌발 퀘스트 발생: 7일 이내에 데뷔곡 'Ares'의 2014년 맞춤식 편곡을 완성하고 첫 자금을 확보하라.] [실패 시: 기획사 강제 파산 및 아티스트 전원 계약 해지.]
도경은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옥 같은 미래는 이제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울지 마라."
도경의 목소리가 어두운 지하 연습실에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이제 너희가 눈물 흘릴 일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