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뚝.
어두운 서재 아래, 깊은 공동(空洞)을 타고 올라오는 단조로운 진동이 내 발밑을 가볍게 두드렸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제 도르래가 기어와 맞물리며 발생하는 미세한 마찰음이자, 무언가 거대한 기계 장치가 구동을 준비하며 내뿜는 점화 연동 신호음이었다.
틱, 틱, 틱.
내 뇌리 속에 구축된 3D 청각 지도가 순식간에 저택의 지하 깊숙한 곳으로 하강했다. 한 번도 발을 디뎌보지 못한, 도윤이 철저히 차단해 둔 지하 밀실의 비밀 리프트가 움직이고 있었다. 소리는 차갑고 둔탁한 주파수를 그리며 배수로의 틈새를 타고 거실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저 아래에 누군가 있다. 혹은 무언가 존재하고 있다.
귓가에 맴도는 이 차가운 기계음은 내 안의 흐릿하던 안개를 완전히 걷어냈다.
사흘 전, 나는 몸을 숙여 도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거실 구석에 놓인 가습 미스트 기기의 카트리지를 통째로 바꿔치기했다. 매일 오후 3시만 되면 내 머리를 짓누르며 몽롱한 환각 속으로 빠뜨리던 그 약물 대신, 정수기에서 받아낸 맑은 물을 채워 넣었다.
그 결과는 경이로울 정도로 즉각적이었다.
골막을 찌르던 둔탁한 편두통이 사라졌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혀끝에 맴돌던 기분 나쁜 단맛과, 사물의 거리를 왜곡시키던 뇌의 과부하가 씻은 듯이 가라앉았다. 머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투명해졌다. 맑아진 뇌는 내게 잃어버렸던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씩 돌려주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미스트 기기가 작동할 때마다 들리던 기묘한 소리였다.
‘치익-’ 하는 안개 분사음 직후에, 아주 미세하게 고막을 긁던 하이피치 밸브음.
‘핏-’
그것은 초당 18,000헤르츠에 달하는, 일반적인 성인은 거의 듣지 못하는 초고주파의 작동음이었다. 도윤이 나를 위해 준비했다던 그 ‘안정 미스트’는 단순한 보습제가 아니었다. 그 하이피치 밸브음이 울릴 때마다 내 기억의 회로는 강제로 단절되었고, 나는 그가 주입하는 가짜 일상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순종적인 인형이 되었다. 미스트의 분사 주기와 내 일시적 기억상실의 주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나를 가둔 달콤한 감옥의 열쇠는, 다름 아닌 그 미스트 기기의 주파수 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안다.
내가 미쳐서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도윤이 설계한 그 정밀한 소음과 약물의 합작품이 내 뇌를 망가뜨려 왔을 뿐이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턱을 단단히 맞물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은 분노할 때가 아니라 움직여야 할 때다.
지하 리프트의 진동이 서서히 잦아들 무렵, 저 멀리 복도 끝에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도윤이었다.
그의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딛는 소리는 언제나 일정하다. 0.8초의 간격. 흐트러짐 없는 규칙성. 그것은 가해자가 가진 기만적인 여유의 방증이었다.
"지수야."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꿀을 바른 듯한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 목소리 이면에 숨겨진 미세한 성대의 긴장과, 나를 감시하듯 훑어보는 시선의 무게가 진동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직 안 자고 있었네? 불도 안 켜고 어두운 데서 뭐 하고 있어."
"그냥…… 바람 소리를 듣고 있었어. 여보."
나는 짐짓 초점을 흐린 눈으로 그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내 손끝은 이불 자락을 가볍게 쥐고 있었지만, 손바닥에는 이미 축축한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바람 소리라니, 우리 지수 감각이 날로 예민해지네. 하지만 밤공기는 차니까 창문은 닫아둘게. 당신 머리 아파지면 안 되잖아."
도윤이 창가로 걸어가 섀시를 닫았다. 쾅, 하는 묵직한 폐쇄음이 방 안을 채웠다. 바깥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가 다시 한 번 차단되는 소리였다. 그는 내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닿는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받아들였다.
"나 잠깐 씻고 올게. 당신은 먼저 누워 있어."
"응, 천천히 해요."
도윤이 욕실로 향하는 발소리가 멀어졌다. 문이 닫히고, 곧이어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수압의 물소리가 욕실 벽면을 때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뒤이어 가전제품의 모터가 돌아가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헤어드라이어였다. 도윤은 항상 샤워를 할 때 욕실의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드라이어를 켜놓는 버릇이 있었다. 약 70데시벨에 달하는 고주파의 회색소음이 욕실 문틈을 흘러나와 복도를 가득 채웠다.
이 소음은 내게 기회이자, 거대한 장막이었다. 이 정도 데시벨의 소음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내가 저택 안에서 일으키는 미세한 마찰음이 도윤의 귀에 도달하지 못한다.
지금이다.
나는 침대에서 소리 없이 내려왔다. 맨발이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았다. 발바닥을 통해 전달되는 저택의 미세한 진동을 느끼며, 나는 이 조율된 감옥의 중심부로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2층 복도의 세 번째 계단이었다.
도윤은 늘 내게 경고했었다.
‘2층 복도의 세 번째 계단은 밟지 마, 지수야. 나무가 삭아서 밟으면 무너질 수도 있어. 위험하니까 항상 건너뛰어야 해.’
그것은 내 동선을 제한하기 위한 얄팍한 거짓말에 불과했다. 일전에 내 공감각 지도로 파악한 세 번째 계단 아래의 공간은 텅 비어 있었고, 그 안에는 묵직한 철제의 공명음이 숨겨져 있었다. 무언가가 그곳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드라이어 소리가 웅웅거리는 복도를 지나 계단 앞에 섰다.
시각이 차단된 어둠 속에서, 내 발바닥의 평형감각이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두 번째 계단을 지나, 문제의 세 번째 계단 앞에 멈춰 섰다.
단순히 계단 판을 들어 올리는 구조가 아니었다. 도윤처럼 철두철미한 인간이 그런 허술한 장치를 해두었을 리가 없다. 나는 무릎을 꿇고 계단 옆벽을 타고 올라가는 가짜 장식용 목제 기둥에 손을 얹었다.
손끝으로 부드러운 나뭇결의 미세한 틈새를 더듬었다. 일반적인 기둥이라면 벽면에 완전히 밀착되어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기둥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유격이 있었다.
나는 기둥을 잡고 힘을 주었다. 앞으로 당겨도, 뒤로 밀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가정부 김옥자가 주방에서 식기를 정리할 때 내던 독특한 진동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는 항상 놋그릇을 내려놓을 때 ‘두-두-둑’ 하는 3현의 마찰음을 냈다. 서재 도어록 근처에서 청소할 때도 그녀의 손끝은 항상 특정한 리듬을 그리며 벽을 두드렸었다. 그것은 이 저택의 폐쇄적인 규칙에 억눌린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흘린 일종의 힌트였다. 회전. 사선.
나는 장식용 기둥의 하단부를 잡고, 비틀어 돌리듯 힘을 가했다.
스스슥.
미세한 나무 마찰음과 함께 기둥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사선 15도 각도였다. 그 각도에 도달한 순간, 둔탁한 금속성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내 귀청을 때렸다.
찰칵.
계단 판의 모서리에서 부드러운 스위치 축음이 울렸다. 정밀하게 조율된 유압식 실린더가 작동하듯, 세 번째 계단의 나무 판이 스르륵 위로 밀려 올라갔다. 소음은 극도로 억제되어 있었지만, 내 공감각 지도에는 그 기계적 메커니즘이 선명한 3D 그래픽처럼 그려졌다.
계단 내부의 텅 빈 공간이 드러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밀어 넣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관리된 내부의 감촉. 차가운 철제 금고의 외벽이 만져졌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묵직한 무언가가 손끝에 걸렸다.
가죽 바인더 파일이었다.
바인더를 꺼내 품에 안았다. 가죽의 빳빳한 질감과 거친 스티치의 촉감이 손가락을 통해 뇌로 전달되었다. 바인더를 열자, 특유의 종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밀도 80g 정도의 고급 인쇄 모조지였다.
그리고 종이 표면에 오톨도톨하게 솟아오른 미세한 돌기들이 느껴졌다.
점자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나를 위해 도윤이 만든 자료일 리가 없었다. 이것은 타인을 위한, 혹은 나를 철저히 통제하기 위해 외부의 누군가와 공유하던 극비 문서였다.
내 손끝이 점자 위를 빠르게 훑어내려 갔다. 맹인 학교에서 피가 나도록 연습했던 점자 해독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손가락 끝의 신경이 글자 하나하나를 뇌 속에서 번역해내기 시작했다.
[대상자: 민지수] [임상 프로젝트 코드명: 사일런트 쉘터(Silent Shelter)] [담당 주치의: 백현우 / 협조자: 박진우 (지역 경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관자놀이에 미세한 편두통의 전조가 느껴졌지만, 나는 이성을 악물고 손끝을 움직였다.
[본 프로젝트는 교통사고 이후 발생한 인지 장애 및 기억 왜곡을 인위적으로 유지, 강화하여 대상자의 자립 능력을 완전히 거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약물 투여 계획: 오후 3시, 에어로졸 형태의 신경 안정제(환각 성분 다량 함유) 분사. 하이피치 주파수 자극을 통한 단기 기억 소거 유도.] [외부 접촉 차단 강령: 여동생 대역(한소희)을 주기적으로 투입하여 정서적 안정감과 가짜 연대감을 형성하되, 외부 탈출 시도를 사전에 탐지하여 보고할 것.]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여동생 소희도, 나를 도와주겠다며 찾아왔던 경찰 박진우도, 내 머리를 치료해 준다던 주치의도 전부 가짜였다. 그들은 도윤이 막대한 돈을 주고 고용한 배우이자 공범들이었다. 이 저택은 단순한 요양처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의 영혼과 인지 능력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정밀하게 설계된 임상 실험실이었던 것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삼켰다. 대신 입꼬리가 기묘하게 위로 올라갔다.
진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것은 이 저택과, 나를 인형으로 만들려 한 강도윤뿐이다.
바인더의 맨 뒷장 포켓에서 딱딱한 플라스틱 카드가 만져졌다. 손끝으로 모서리를 더듬었다. 칩이 내장된 인트라넷 계정 카드였다. 이 저택의 모든 시스템과 통제실에 접근할 수 있는 마스터 키이자, 그들의 범죄 모의 대본이 저장된 인트라넷 계정 정보가 적혀 있는 카드였다.
"찾았어……."
나는 소리 없이 속삭였다. 이 바인더와 카드는 도윤의 목을 죌 가장 완벽한 올가미이자, 내가 이 지옥 같은 감옥을 깨부수고 나갈 무기였다. 이제 주도권은 내게 있었다. 남편이 짜놓은 가스라이팅의 규칙을 역이용해, 그를 이 소리 감옥의 심연으로 밀어 넣을 차례였다.
나는 가죽 바인더를 품에 안고, 계단 판을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렸다. 기둥을 다시 반대 방향으로 15도 돌려 완벽하게 잠갔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흔적은 없었다.
바인더를 품에 꼭 안은 채, 나는 2층 복도를 가로질러 내 방으로 향했다.
한 걸음, 두 걸음. 맨발이 디디는 바닥의 진동을 느끼며 급히 걸음을 옮기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 예리한 귀에 기이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욕실에서 들려오던 쏴아아아- 하는 수압 헤드의 분사음이 비자연적으로 약화되었다. 물줄기가 가늘어지더니, 타일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뚝 끊겼다.
그리고 뒤이어 저택 전체를 채우고 있던 헤어드라이어의 웅웅거리는 70데시벨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일시에 정지했다.
위이이이잉…… 툭.
드라이어가 꺼졌다.
순간, 저택 안은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은 초침 단위의 무거운 고요 속으로 침잠했다.
욕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지는 잔향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욕실의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철제 마찰음이 복도의 정적을 가르고 내 고막을 파고들었다.
달칵.
"지수야?"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도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