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막을 찢을 듯한 고주파의 진동이 뇌하수체를 직접 타격했다.
둥, 둥, 둥, 둥.
머릿속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전두엽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120데시벨. 이것은 고작 소리가 아니었다. 두개골 전체를 사정없이 뒤흔드는 물리적인 둔기였다. 안구가 뒤집힐 것 같은 구토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고, 관자놀이는 송곳으로 비벼 파내는 것처럼 쑤셔댔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며 귀를 틀어막고 바닥을 뒹굴고 싶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 한 줄기가 차갑게 흘러내렸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단 1밀리미터의 미동도 허용되지 않았다.
내 얼굴 바로 위, 불과 1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도윤의 고른 숨결이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손가락이 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감각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했다. 뱀의 혀가 살갗을 핥는다면 아마 이런 느낌일 것이다. 도윤은 곤히 잠든 아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을 하고 있을 터였다. 만약 내가 여기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눈을 뜨거나 신음해 버린다면, 약을 먹는 척 속였다는 사실이 발각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 지옥 같은 연극의 막이 그대로 내려앉을 터였다.
이를 악물었다. 어금니가 서로 맞물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내 귓속을 크게 울렸으나, 다행히 120데시벨의 폭압적인 저주파 소음 속에서는 도윤조차 내 미세한 골전도 음을 듣지 못했다.
나는 깊고 일정한 호흡을 유지하려 애썼다. 허파로 차가운 거실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도윤의 시선이 내 감긴 눈꺼풀 위를 한참 동안 배회했다. 그의 시선이 주는 중압감이 귓가의 소음보다 더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마침내, 그의 몸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면직물 코트가 사각거리며 마찰하는 소리, 뒤이어 바닥 카펫을 밟는 묵직한 구두 굽 소리가 가청 주파수의 경계를 넘어 내 3D 청각 지도 위로 그려졌다.
"내일 봐, 지수야. 푹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도윤의 목소리는 다정했으나, 그 안에는 묘한 확신과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철컥, 띠리릭.
육중한 현관문이 닫히고 디지털 도어록이 잠기는 금속음이 들렸다. 뒤이어 저택 앞마당의 자갈밭을 짓이기며 멀어지는 도윤의 세단 엔진 소리가 낮게 으르렁거리다 이내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기척이 완전히 소멸한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참았던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상체를 일으켰다.
"허억, 흑……!"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시각을 잃은 대신 얻은 초청각적 공감각이 오히려 독이 되어 뇌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거실 구석, 앤티크 장식장 뒤편에 숨겨진 특수 음향 필터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뇌 세포를 파괴하는 저주파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도윤은 내가 약에 취해 잠든 몇 시간 동안 이 소음에 무방비로 노출되도록 설계해 놓은 것이다.
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장식장을 향해 기어갔다. 손끝으로 벽면의 질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가구의 위치가 1센티미터만 틀어져도 내 안의 공간 지도가 왜곡되기에, 나는 도윤이 완벽하게 고정해 둔 장식장의 틈새를 정확히 짚어냈다.
장식장 뒤편, 손가락 두 개가 겨우 들어갈 만한 틈새 안쪽에 미세하게 진동하는 기계장치의 외벽이 만져졌다.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차가운 본체. 그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백색소음과 60헤르츠의 미세한 전류음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이 장치가 뿜어내는 가짜 규칙들을 알고 있었다. '창가 근처에는 바람이 불어 머리가 아프니 가지 말라'던 도윤의 속삭임은, 사실 이 스피커의 고출력 음파가 창문 유리를 진동시켜 발생하는 공진 현상을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기만이었다.
손톱이 부러질 듯 힘을 주어 스피커의 전원 커넥터 라인을 더듬었다. 얇은 전선 몇 가닥이 손가락 끝에 걸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움켜쥐고 힘껏 잡아당겼다.
툭.
순간, 뇌를 찌르던 둔탁한 통증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보이지 않는 파동이 가라앉고, 고요함이 찾아왔다.
정적.
비로소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안심할 시간은 없었다. 도윤이 저택을 비우는 시간은 길어야 서너 시간 남짓이었다. 그가 돌아오기 전에, 나를 이 영원한 망각의 감옥에 가둔 진짜 주범을 무력화해야 했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거실 바닥을 기어 안방 침대 옆에 있는 협탁으로 향했다. 타깃은 매일 오후 3시마다 내 얼굴을 향해 미세한 안개를 뿜어내던 가습기 형태의 '신경 안정 미스트' 기기였다.
그 기기는 겉보기에는 세련된 인테리어 소품처럼 생겼지만, 내 공감각 지도에는 가차 없는 독가스 살포기나 다름없었다. 매주 정기적으로 도윤이 직접 카트리지를 교체하곤 했던 그 기계.
스으으으- 하는 아주 미세한 하이피치 밸브음.
그 소리가 울릴 때마다 나를 찾아왔던 지독한 두통과 함께 흐릿해지던 기억들. 2화에서 느꼈던 그 이질적인 밸브음의 정체는 단순한 기계 작동음이 아니었다. 약물이 고압으로 분사되며 노즐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특유의 마찰음이었다.
"이 소리였어……."
나는 협탁 위에 놓인 미스트 기기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기계의 하단부를 돌려 열자, 묵직한 액체가 담긴 전용 카트리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용기를 부드럽게 흔들자 출렁이는 액체의 점성이 느껴졌다. 일반적인 물의 가볍고 경쾌한 파동이 아니었다. 기름처럼 끈적이고 무거운 공진음. 신경을 마비시키고 뇌 세포의 연결을 느슨하게 만드는 고농축 환각 물질이 분명했다.
나는 욕실로 향했다. 문을 닫고,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콸콸콸-.
물소리가 욕실의 타일 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반사되며 내 머릿속에 욕실의 완벽한 3D 가상 지도를 그려냈다. 나는 세면대 배수구에 카트리지의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쏟아부었다.
쪼르르륵, 꿀꺽.
점성 있는 약물이 배수관을 타고 흘러내려 가는 소리가 기괴하게 울렸다. 수년간 내 뇌를 갉아먹고, 나를 쓸모없는 인형으로 만들었던 독이 씻겨 내려가는 소리였다. 가슴 속 한구석에서 묘한 해방감이 솟구쳤다.
나는 카트리지를 깨끗한 물로 여러 번 헹구어 냈다. 미세한 약물 잔해조차 남지 않도록 집요하게 씻어낸 뒤, 미리 준비해 둔 소독된 깨끗한 수돗물을 용기 가득 채워 넣었다.
뚜껑을 닫고 다시 미스트 기기 본체에 결합했다.
딸깍.
밸브가 정확하게 맞물리는 금속음이 들렸다. 완벽했다. 외관상으로는, 그리고 도윤의 안목으로는 그 어떤 변화도 감지할 수 없을 터였다.
코끝을 스치는 약물의 비릿한 화학취가 사라지고, 오직 차가운 물의 냄새만이 욕실 안을 채웠다.
***
그로부터 사흘이 흘렀다.
지옥 같던 사흘이었다. 도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매일 아침 나에게 헌신적인 미소를 지으며 알약을 건넸고, 나는 매번 소매 안으로 약을 떨어뜨리는 연극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그리고 매일 오후 3시, 거실의 미스트 기기는 어김없이 작동했다.
찌이이익-.
미세한 하이피치 밸브음이 거실에 울려 퍼질 때마다, 나는 소파에 기대어 그 안개를 정면으로 들이마셨다. 하지만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것은 나를 몽롱하게 만들던 독약이 아니었다. 오직 차갑고 맑은 수증기뿐이었다.
약물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72시간이 지났을 때, 내 몸에는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이례적인 시원함이었다.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회색빛 안개가 바람에 쓸려가듯 순식간에 걷혔다. 전두엽의 뉴런들이 수년 만에 제자리를 찾아 활성화되며, 뇌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도윤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던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차례대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지수야, 네가 조심하지 않아서 사고가 난 거야.' '네가 운전대를 잡지만 않았어도 우리 아이는…….' '괜찮아, 내가 평생 책임질 테니까 넌 가만히 내 곁에만 있어.'
그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을 조여왔던 그 무겁고 어두운 죄책감. 내가 가해자라는 낙인.
하지만 뇌가 맑아지자, 그 기억들의 이음새가 터무니없이 어설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나는 사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극심한 두통과 함께 도윤의 목소리만을 이정표 삼아 기억을 재구성해야 했을까? 왜 내 스스로의 감각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었을까?
"아니야……."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턱을 파르르 떨었다.
"내가 한 게 아니야."
수년간 나를 지배했던 죄책감의 거대한 성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지은 죄가 아니었다. 도윤이 내 뇌에 강제로 주입하고 설계한 '가짜 기억'이자 심리적 족쇄였다.
그 순간, 내 안의 초청각적 공감각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뇌의 과부하로 인한 편두통이 올 것이라 예상했으나, 약물의 찌꺼기가 사라진 깨끗한 뉴런들은 오히려 터질 듯한 정보들을 놀라운 속도로 처리해 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거대한 오디오 디코딩 작업이 시작되었다.
수년간 뇌의 심해 속에 가라앉아 있던, 사고 당일의 진짜 청각 데이터들이 수면 위로 솟구쳤다.
빗소리.
아주 거센 장대비가 차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타이어가 수막현상으로 인해 젖은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며 내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귓가를 스쳤다.
나는 내 기억 속에서 내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공감각 지도가 재구성한 공간의 배치는 완전히 달랐다.
엔진의 웅웅거리는 진동음과 스티어링 휠의 미세한 마찰음은 내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운전석의 위치는 오른쪽이었다. 내가 앉아 있던 곳은 조수석이었고, 내 왼쪽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강도윤이었다!
"도윤 씨……."
내 입술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사운드가 뇌의 중심부를 강타했다.
사고 직전, 내가 조수석에서 비명을 지르던 그 찰나의 순간. 내 비명 소리 뒤에 아주 교묘하게 숨겨져 있던 날카롭고 기괴한 금속 파열음이 디코딩되었다.
깡! 찌기기긱-!
그것은 단순한 충돌음이 아니었다. 운전석 아래쪽, 자동차의 제동 장치 부근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도윤의 묵직한 구두 굽이 보조석 아래에 설치된 브레이크 페달 라인의 홀더를 아주 강하고 정밀하게 짓밟아 파열시키는 소리. 철제 홀더가 꺾이면서 브레이크 액이 고압으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분출음이 뒤따랐다.
쉬이이이익-!
"아……!"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올 것 같았지만,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사고는 우연이 아니었다. 내가 운전을 미숙하게 해서 일어난 비극도 아니었다.
도윤이 일부러 차량의 브레이크 시스템을 파괴했고, 제어 불능 상태로 만들어 차량을 전복시킨 것이다. 그는 조수석에 있던 나를 죽이거나, 혹은 완벽하게 불구로 만들어 자신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해 이 끔찍한 연극을 기획했던 것이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었다.
나는 철저하게 기획된 살인 미수 사건의 유일한 생존아이자, 가장 비참한 피해자였다. 그리고 저 남자는 나를 살려둔 구원자가 아니라, 내 눈을 멀게 하고 내 영혼을 가둔 잔혹한 가해자였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뼛속까지 시려오는 차가운 분노이자, 진실을 마주한 자의 가슴 웅장한 전율이었다.
"강도윤……."
남편의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목소리에는 더이상 소심한 아내의 떨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맑아진 뇌와 완벽하게 복원된 기억이 나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를 쥐여 주었다. 이제 사냥꾼과 먹잇감의 위치는 뒤바뀔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복수와 탈출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숨을 고르던 내 감각 레이더에 기이한 소리가 포착되었다.
뚝.
……뚝.
아주 미세하고 일정한 주기를 가진 타격음이었다.
거실 바닥 아래, 더 깊은 곳. 서재 뒤편에 위치한 지하 배수로의 틈새를 타고 올라오는 기묘한 소리였다.
그것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금속과 금속이 맞물리며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적 신호음이자, 무언가가 점화되기 직전에 울리는 단조로운 연동음이었다.
틱, 틱, 틱.
내 공감각 지도가 순식간에 저택의 지하 공간으로 하강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하의 어둠 속에서, 철제 와이어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도르래가 돌아가는 둔탁한 진동이 감지되었다.
지하 밀실의 비밀 리프트가 작동하고 있었다.
누군가 아래에 있다.
이 저택의 지하 깊은 곳, 도윤이 숨겨둔 가장 어두운 비밀이 그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