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김옥자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녀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려던 축축하고 다급한 음성이 허공에 채 닿기도 전에, 뚝 끊겼다.

탁. 스으으윽.

두껍고 단단한 홍목 문 너머, 거실 복도의 대리석 바닥을 긁는 가죽 구두 굽의 마찰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도윤의 발걸음이었다. 지면을 딛는 무게 배분이 자로 잰 듯 정확하고, 구두 굽의 가장자리가 바닥에 닿을 때 발생하는 미세한 공명음이 머릿속에 수놓아진 3차원 공간 지도 위로 붉은색 파형을 그리며 번져 나갔다. 그 소리는 무겁고 집요하게 방 안의 공기를 짓눌렀다. 옥자의 호흡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그녀의 거친 옷자락이 가늘게 떨리며 내는 사각거림이 내 손끝의 진동을 타고 전해졌다.

"아주머니."

문이 열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도윤은 이미 문틀 바로 뒤편에 서 있었다. 이가 맞지 않아 미세하게 흔들리는 문틀 사이로 그의 낮고 일정한 호흡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단 1밀리미터의 틈새를 통과한 음파가 내 귀를 자극할 때마다 관자놀이 안쪽에서 얇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편두통이 고개를 들었다.

"그릇 비우는 시간이 평소보다 사 분이나 늦었네."

그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극도로 절제되어 흐트러짐이 없는, 잔잔한 호수 같은 어조. 그러나 그 매끄러운 표면 아래에는 사냥감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맹수의 잔혹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가 문고리를 쥐는 소리가 들렸다. 놋쇠 문고리가 축을 따라 회전하며 내는 금속성의 마찰음이 뇌세포를 하나하나 갉아먹는 것처럼 날카롭게 울렸다.

옥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분당 90회 이상으로 치솟으며 내는 불규칙한 박동음이 내 공감각적 지도 위에서 사정없이 요동쳤다. 그녀가 들고 있는 은제 쟁반 위에서 찻잔이 가볍게 부딪히며 '칭, 칭' 하는 금속음을 냈다. 공포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베개를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세상에서 가장 유약하고 무해한 아내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선을 허공의 한 점에 고정시킨 채,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를 도윤이 서 있을 문 방향으로 천천히 돌렸다.

"내가 아주머니께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댔어요, 도윤 씨. 사고 나기 전에 내가 좋아했던 정원 꽃밭에 대해서 묻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목소리를 낼 때 일부러 성대를 살짝 긁어 가냘픈 떨림을 섞었다. 가스라이팅을 당해 자신감을 잃고 오직 남편의 온기만을 갈구하는 가련한 맹인의 목소리.

문고리가 완전히 내려가고 문이 열렸다. 도윤의 가죽 구두가 방 안의 카펫을 밟으며 소리를 죽였다. 하지만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카펫의 미세한 섬유들이 그의 체중에 눌려 압착되는 서걱거림이 내 뇌내 지도에는 오히려 더 선명한 진동으로 감지되었다.

"그랬구나."

도윤이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시더우드 향과 차가운 바깥 공기가 침실의 묵직한 공기를 갈랐다. 그는 옥자의 옆을 지나치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그것은 부드러운 격려처럼 보였겠지만, 옥자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퇴장 명령이었으리라. 옥자는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가 나갈 때 발끝이 카펫 모서리에 걸려 스치는 불협화음이 방 안을 빠져나갔다.

철컥, 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 방 안의 압력이 미세하게 변했다. 밀폐된 감옥의 문이 굳게 닫힌 느낌이었다.

도윤은 내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그의 체중 때문에 매트리스의 스프링이 '찌그덕' 하며 짧고 둔탁한 비명을 질렀다. 그 진동이 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머릿속 청각 지도를 뒤흔들었다. 편두통이 다시 한번 관자놀이를 강하게 압박했다. 과도한 감각 유지의 대가였다. 귓가에서 이명이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지수야, 아주머니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피곤하게 만들면 안 돼. 네 뇌는 아직 안정이 필요하잖아. 바깥세상에 대한 기억을 억지로 떠올리려고 하면…… 다시 그 끔찍한 두통이 발작을 일으킬 거야."

도윤의 손가락끝이 내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손가락 지문이 내 피부의 솜털을 스치는 감각이 마치 거친 모래종이를 대고 문지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나는 주먹을 꽉 쥐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게 함으로써 터져 나오려는 혐오감을 억눌렀다.

"알아요, 도윤 씨. 그냥…… 가끔은 내 방 창문 너머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요. 이 저택의 바람 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꼭 누군가 우는 소리 같아서요."

내 말에 도윤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멈칫했다.

"그건 산속이라 기압 차이 때문에 나는 소리야. 걱정할 것 없어. 내가 네 곁에 있잖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달콤했지만,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심장 소리는 아주 미세하게 빨라져 있었다. 분당 74회. 그가 내뱉는 부드러운 거짓말의 이면에 도사린 긴장감이 소리의 주파수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바로 그때였다.

창밖에서 우르릉하는 거대한 진동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멀리서 산맥을 타고 몰려오던 먹구름이 마침내 저택 하공을 장악한 모양이었다. 대기를 찢는 천둥소리가 고막을 강타하기 직전, 대기 중에 급격히 흐드러진 천둥 번개의 전자기적 기류가 내 초청각적 공감각을 자극했다. 공기 중의 수분 입자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정전기의 지직거림이 피부로 느껴졌다.

쿠구구구궁--!

저택의 유리창들이 일제히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창틀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소리, 벽면 내부의 목재 프레임이 비틀리며 내는 신음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가죽 구두가 바닥을 딛는 소리가 평소보다 무거웠다.

"비가 꽤 많이 오려나 보네. 정원 쪽 창문들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하고 올게. 지수 너는 침대에서 꼼짝 말고 쉬고 있어."

"네, 다녀오세요……."

나는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 올리며 대답했다.

도윤의 발자국 소리가 침실을 빠져나가 거실로 향했다. 나는 귀를 한껏 열었다. 뇌의 에너지를 청각에 집중시키자, 관자놀이가 터질 것처럼 아파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그의 구두 발자국 소리가 거실 바닥을 딛고 나아갔다.

터벅, 터벅, 터벅.

소리의 울림이 변하고 있었다. 거실 중앙을 지나 서재 쪽 복도로 향할 때, 발자국 소리의 주파수가 둔탁한 저음에서 다소 가볍고 텅 빈 고음으로 미세하게 전이되었다. 거실 바닥재의 두께가 달라지는 경계선이었다.

'바닥재 밑이 비어 있어.'

내 뇌내 3D 지도 위에 거실 바닥의 단면도가 그려졌다. 특정 구역 아래의 공간이 비어 있고, 그 두께에 비례해 발소리의 공명이 변하고 있었다. 도윤은 서재의 구석, 벽면 책장 근처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스르륵' 하는 무거운 목재 마찰음이 들렸다. 책장을 옆으로 밀어내는 소리였다. 뒤이어 철제 래치가 맞물려 돌아가는 '탈칵' 하는 기계적인 소리가 고막에 닿았다.

그곳이었다. 남편이 나 몰래 드나들던 숨겨진 밀실의 입구.

거실 바닥재의 울림 변화를 통해 그 통로가 지하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신하는 순간,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거대한 섬광의 진동이 저택을 내리쳤다.

콰르릉--! 콰광!

단순한 천둥소리가 아니었다. 저택 근처의 고압 송전탑이나 피뢰침에 낙뢰가 직접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내 고막을 찌르던 모든 소리들이 일시에 비정상적인 궤적을 그리며 요동쳤다.

지지직- 펑!

저택 내부의 변전실에서 무언가 터지는 둔탁한 파열음이 멀리서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스으으으으…… 툭.

저택 전체를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던 그 지긋지긋한 소음들이 일제히 정지했다.

매일 오후 3시마다 내 뇌를 마비시키던 미스트 기기의 미세한 모터 구동음, 벽면 환풍구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와 내 이성을 갉아먹던 60헤르츠 대역의 저주파 백색소음, 그리고 창가 근처에만 가면 머리를 깨질 듯하게 만들던 인위적인 고주파 방출기들의 소리가 단 한순간에 전부 꺼져 버렸다.

완벽한 무음 지대.

그것은 내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례적으로 말끔하고 광활한 침묵이었다.

머릿속을 짓누르던 무거운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는 기분이었다. 늘 나를 괴롭히던 만성적인 편두통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시야가 맑아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비록 눈앞은 여전히 어둠뿐이었지만, 내 뇌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선명하게 각성하고 있었다.

'이거였어…….'

입술 사이로 차가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여태껏 나를 괴롭히던 그 끔찍한 두통과 환청은 내 사고 후유증 때문이 아니었다. 도윤이 저택 곳곳에 설치해 둔 인위적인 주파수 방출기들과 미스트 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해한 전류음들이 내 뇌의 인지 체계를 왜곡하고 파괴해 왔던 것이다. 정전으로 인해 그 모든 기계적 가스라이팅 장치들이 멈추자, 내 두뇌는 본래의 완벽한 이성과 평온을 되찾았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주먹을 쥔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나를 미치광이로 만들고, 오직 자신만을 의지하게 만들려 했던 남편의 추악한 설계가 이 완벽한 침묵 속에서 그 민낯을 드러냈다.

"아, 지수야!"

거실 저편에서 도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정전이 됐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지? 거기 가만히 있어. 내가 발전기를 확인하고 올 테니까."

그의 발소리가 허둥대기 시작했다.

완벽한 어둠.

빛이 사라진 저택은 눈이 보이는 도윤에게는 거대한 장애물과 함정으로 가득 찬 미로였다. 하지만 내게는 달랐다. 소리의 반사와 진동으로 구축된 내 3D 청각 지도는 이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 밝고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발소리의 흐트러짐으로 보아 도윤은 거실 테이블 모서리에 정강이를 부딪힌 듯했다.

"윽……!"

그가 짧은 신음을 뱉으며 멈춰 섰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단 한 걸음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 발바닥이 차가운 마룻바닥을 딛는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나는 이 어둠 속에서 완전한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마치 빙판 위를 미끄러지는 스케이트 선수처럼, 나는 머릿속 지도를 따라 거실로 내달렸다.

어둠 속에서 허둥대는 도윤의 거친 호흡 소리가 이정표처럼 내 감각을 이끌었다.

그가 서 있는 위치, 그의 몸의 각도, 심지어 그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키 홀더가 미세하게 흔들리며 내는 짤랑거림까지 전부 내 공감각적 지도 위에 실시간으로 그려졌다.

스아앗.

나는 유령처럼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도윤은 자신이 어둠 속에서 가구들을 피해 다니느라 급급해, 내 접근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그의 오른쪽 어깨 뒤편을 스치듯 지나는 찰나, 내 손가락끝이 그의 벨트 고리에 매달린 금속 키 홀더를 아주 가볍게, 깃털처럼 스쳤다.

찰랑.

극도로 미세한 금속 마찰음이 내 손가락의 촉각적 깊이감과 결합하여 뇌 속에서 거대한 입체 정보로 변환되었다.

키 홀더에 매달린 열쇠들의 개수는 총 네 개. 그중 가장 무겁고 복잡한 요철을 가진 열쇠는 끝부분이 이중 구조로 깎여 있었다. 그것은 저택 지하 밀실의 자물쇠 구조였다. 은밀하게 손끝으로 전해진 그 차가운 금속의 형태와 홈의 깊이가 내 기억 장치 속에 고스란히 각인되었다.

도윤은 그저 스치는 바람인 줄 알고 고개를 두리번거렸을 뿐이었다.

"지수야? 거기 있니?"

그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늘 나를 지배하던 그 완벽주의자의 통제력이 어둠이라는 불청객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이미 그를 지나쳐 계단 근처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상태였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승리감에 도취된 심장 박동이 고요하게 요동쳤다. 오직 내 감각과 대담함만으로 쟁취한 첫 번째 유효한 반격이었다.

그때, 저택 지하 깊은 곳에서 둔탁한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백업 발전기가 작동을 재개하려는 신호였다. 전력이 다시 공급되면 이 완벽한 침묵의 감옥 역시 다시 가동될 터였다.

비상 전원이 들어오기 직전의 찰나, 내 귀가 2층 벽장 모서리 쪽을 향했다.

스스스스…… 툭.

두꺼운 고무 실링으로 밀폐되어 있던 벽장 틈새에서, 속도가 가변적으로 변하는 미세한 모터 회전음과 함께 정체불명의 금속 함체가 다시 작동을 시작하는 기계음이 포착되었다. 백업 전력을 가장 먼저 수급받아 돌아가는, 도윤이 숨겨둔 또 다른 장치의 소리였다.

그 기괴한 기계음은 마치 내 귓가에 대고 저주를 퍼붓는 뱀의 슉슉거림처럼 들렸다. 저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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