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어둠은 단순히 빛이 부재하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무겁고, 축축하며, 끊임없이 미세한 소리 입자들을 증식시키는 거대한 유기체에 가깝다.

철컥, 하는 자비 없는 빗장 소리와 함께 방안에 갇힌 지 몇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맡 협탁 위에 놓인 아날로그시계의 초침이 서걱서걱 톱니를 갉아먹는 소리가 고막을 짓눌렀다. 새로 교체되었다는 미스트 기기에서는 60헤르츠의 날카로운 고주파음이 뱀의 혓바닥처럼 흘러나와 내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쑤셔대고 있었다.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밀려와 이마를 짚은 채 숨을 몰아쉬던 그때였다.

두꺼운 목재 방문 너머, 복도의 미세한 공기 흐름을 타고 끈적한 속삭임이 새어 들어왔다.

“……언니가 드디어 어제부터, 그 계단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어.”

한소희의 목소리였다. 내 동생을 자처하며 며칠 전 이 저택의 문을 두드렸던 여자. 그녀의 음성은 평소 나를 대할 때의 살갑고 높은 톤이 아니었다. 낮고 거칠게 내려앉은 발성 속에서, 특히 ‘계단’이라는 단어를 뱉을 때 혀끝이 입천장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파열음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졌다. 그것은 연극 무대 위에서 대사를 읊는 삼류 배우들이 긴장했을 때 흔히 범하는, 호흡 조절의 실패에서 기인한 인위적인 조음이었다.

“바보같이 굴지 마. 지수는 아무것도 몰라.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으니까.”

이어진 것은 도윤의 목소리였다. 평온하고 부드러운, 그러나 뼈마디를 얼려버릴 듯이 차가운 음색. 두 사람의 발소리가 계단 아래로 멀어지는 진동이 이층 바닥을 타고 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손끝이 잘게 떨렸다. 뇌내에 그려진 3D 지도가 붉은색 경고등처럼 깜빡였다. 저들이 나누는 대화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내 머릿속에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박혔다. 소희는 내 진짜 동생이 아니다. 그리고 도윤은 내가 계단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나를 이 방 안에 가둔 것이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베갯잇을 적셨다. 이대로 저들이 설계한 규칙 속에 갇혀 말라 죽을 수는 없었다.

어느덧 고주파의 울림 너머로 창밖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안개가 정원의 잔디를 적시며 단단하게 뭉치는 눅눅한 소음, 그리고 저 멀리 국도를 달리는 대형 트럭의 타이어 마찰음이 저주파의 파동으로 방 안을 가볍게 흔들었다. 아침이었다.

지잉- 툭.

방 안의 미스트 기기가 작동을 멈추는 미세한 금속성 차단음이 들렸다. 머리를 짓누르던 고주파가 사라지자, 가라앉았던 감각들이 다시 정밀하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철컥.

바깥에서 쇠빗장이 풀리는 둔탁한 마찰음이 복도를 울렸다. 이어서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규칙적이지 않은 기묘한 발소리가 방 안으로 진입했다.

스으윽, 툭. 스으윽, 툭.

슬리퍼 밑창이 바닥 매트를 쓸 때 발생하는 마찰음의 간격이 비대칭이었다. 왼쪽 발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는 가볍고 매끄러운 반면, 오른쪽 발이 내려앉을 때는 묵직한 체중이 실리며 ‘툭’ 하는 깊은 진동을 만들어냈다. 발걸음의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심하게 쏠려 있었다. 가벼운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나이 든 가정부, 김옥자의 걸음걸이였다.

“사모님…… 아침 식사 가져왔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옥자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았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 불필요한 호흡의 단절이 존재했다. 그녀의 성대가 가늘게 떨리며 만들어내는 음파는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침대 위의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리며 목소리를 최대한 나약하게 가다듬었다.

“머리가…… 조금 무거워요, 아주머니. 남편은요?”

“바깥일 때문에…… 일찍 나가셨어요. 소희 양도 같이…… 차를 타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옥자가 침대 옆 협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들고 있는 쟁반 위에서 식기들이 부딪치며 가볍게 잘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식기가 내는 소리는 단순한 금속 마찰음이 아니었다. 옥자는 지금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그녀의 거친 호흡이 내 가상의 3D 지도 위에서 가쁜 파형을 그리며 흩어졌다.

스윽.

옥자가 쟁반을 협탁 위에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탁.

보통의 식사 서빙이라면 한 번의 둔탁한 착지음으로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옥자는 쟁반을 내려놓은 뒤에도 숟가락과 식기를 손끝으로 지그시 누르며 기묘한 진동을 만들어냈다.

두-두-둑.

마치 단단한 나무판자 위를 손가락 끝으로 연속해서 두드리는 듯한, 아주 미세하지만 일정한 리듬을 가진 타격음이었다. 옥자의 얼굴 근육이 팽팽하게 수축하며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내 귀에 선명하게 잡혔다.

두-두-둑.

그녀의 손가락 끝이 숟가락의 금속 표면을 마찰하며 발생하는 주파수는 정확히 세 번의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손가락의 미세한 근육 떨림이 식기를 타고 협탁의 목재를 울린 뒤, 바닥을 거쳐 내가 누워 있는 침대의 프레임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수전증이나 노환으로 인한 떨림이 아니었다. 옥자는 지금 도윤의 눈을 피해 나에게 무언가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다. 죄책감에 짓눌린 자가 보낼 수 있는, 가장 은밀하고 소리 없는 비상 신호.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돌렸다.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향하고 있었지만, 모든 신경은 옥자의 손가락 끝이 만들어내는 그 ‘두-두-둑’ 하는 3현 진동에 집중되어 있었다.

‘무엇을 말하려는 거지?’

머릿속에서 그 진동의 간격과 주파수를 정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간격은 약 0.2초. 첫 번째 타격음은 강했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꼬리를 흐리듯 약하게 이어졌다.

그 순간, 벽 내부에서 또 다른 소리가 내 감각의 그물망을 흔들었다.

꾸르륵, 쿠구구구…….

방 뒤편, 두꺼운 석고보드 벽면 너머를 관통하는 급수 배관 속에서 거친 물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생활용수의 흐름이 아니었다. 배관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불규칙한 와류를 형성하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는데, 이 와류가 특정 주기마다 딱, 딱, 끊기며 멈췄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배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배관의 진동은 저택의 지하에서 시작되어 1층 서재를 거쳐, 내 방의 환풍구와 연결된 벽면으로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물이 흐르다가 멈추는 간격, 그리고 그때마다 저택 전체의 전압이 미세하게 떨어지며 백색소음의 피치가 낮아지는 현상.

‘이것은…….’

뇌내의 3D 소리 지도가 순식간에 저택의 뼈대를 가로지르며 정밀한 전력 계통망을 그려나갔다. 이 불규칙한 와류와 전력의 기류 변환은 저택의 중심부, 즉 도윤이 그토록 철저히 감추려 했던 비밀 공간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루에 세 번, 미스트 기기가 작동하기 직전에만 발생하는 배관의 역류 소리. 그것은 내 방안을 채우는 가스라이팅 약물을 기화시키고 송출하는 미지의 ‘음향 가습 기기 작동실’로 용수가 이송될 때 생기는 물리적 마찰음이었다. 그리고 그 작동실의 전력망은 서재의 전력선과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있었다.

생각의 타래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그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어떤 오래된 청각적 기억의 파편이 옥자의 3현 진동과 맞물려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두-둑.

머릿속에서 찢어지는 듯한 편두통이 다시 한번 기습적으로 찾아왔다. 삐이이이- 하는 이명과 함께, 차가운 빗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타이어 소리, 그리고 유리가 깨지는 굉음이 환청처럼 귀를 찢었다.

그 아비규환의 기억 속에서, 유독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하나의 소리가 있었다.

클랙슨 소리.

사고가 나기 직전, 빗길 너머에서 우리 차를 향해 미친 듯이 경고를 보내던 대형 트럭의 경적 소리였다.

빠앙-- 빵-빵.

길게 한 번, 그리고 짧게 두 번 연속되던 그 독특한 소절의 경적음. 그것은 지금 옥자가 식기를 누르며 만들어낸 ‘두-두-둑’ 하는 3현 진동의 리듬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주파수의 고저만 다를 뿐, 시간적 간격과 호흡의 배치가 자로 잰 듯이 똑같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갈비뼈를 때렸다.

옥자는 알고 있었다. 내가 시력과 기억을 잃게 만들었던 그날 밤의 사고, 그 고속도로 위의 진실을 그녀는 목격했거나, 혹은 그 사건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지금 남편의 감시를 피해 식기를 통해 내게 보내는 이 소리는, 내 잃어버린 기억의 빗장을 푸는 열쇠이자 도윤의 거짓을 폭로하는 결정적인 간접 경고였다.

나는 입술을 굳게 깨물며 손가락으로 이불보를 움켜쥐었다. 도윤이 설계한 완벽한 통제의 미로 속에서, 마침내 균열의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옥자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이 작은 불협화음이, 나에게는 이 감옥을 무너뜨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나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슬며시 숟가락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손가락끝으로 숟가락의 목을 가볍게 튕겼다.

팅.

답신이었다. 나는 네 신호를 이해했다는,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진 나만의 은밀한 대답.

옥자의 호흡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그녀의 거친 손이 쟁반을 잡으며 가늘게 떨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내 손끝에서 흘러나온 주파수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차린 듯했다.

옥자가 침을 크게 삼키며, 내 쪽으로 상체를 바짝 기울였다. 그녀의 옷깃이 스치는 바스락거림이 아주 가깝게 다가왔다. 미세한 온기와 함께, 그녀의 입술이 열리며 공기를 가르는 작은 마찰음이 발생했다.

“사모님…… 실은…… 그날 밤에…….”

그녀가 마침내 목구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진짜 비밀을 속삭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척. 스으으윽, 탁.

복도 끝에서부터,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아주 익숙하고 단단한 가죽 구두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도윤의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긁으며 다가오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발걸음처럼 차갑고 거침이 없었다.

옥자의 호흡이 턱 하고 막혔다. 그녀의 성대가 하얗게 질려 굳어버리는 소리가 내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 문손잡이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문손잡이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끼이익, 미세하게 기름칠이 말라붙은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방 안을 감돌던 공기의 밀도가 급격하게 변했다. 문틈으로 밀려드는 서늘한 복도의 한기가 내 맨살을 소름 끼치게 훑고 지나갔다.

옥자의 어깨가 단단하게 굳어지는 소리가 옷감의 마찰음을 통해 전해졌다. 그녀의 거친 호흡이 턱 하니 멈췄고, 허공을 헤매던 손끝이 쟁반의 모서리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달그락. 놋그릇이 가늘게 비명을 질렀다.

“아주머니.”

도윤의 목소리였다. 낮고, 부드러우며, 허공에 뜬 먼지 한 톨조차 흔들지 않을 만큼 정돈된 음색. 그의 목소리가 방안의 고요를 깨뜨리는 순간, 내 목덜미의 잔털들이 일제히 곤두섰다.

두 짝의 가죽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딛고 방 안으로 완전히 진입했다. 척, 척. 일정한 간격. 뒤꿈치부터 앞꿈치로 이어지는 무게 중심의 이동이 자로 잰 듯이 완벽했다. 그는 문가에 멈춰 서서 방 안의 풍경을 눈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기묘한 압박감이 피부로 느껴졌다.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도윤의 질문은 다정했으나, 그 끝에 매달린 어조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이불 속에서 손가락을 꽉 맞잡았다. 심장이 갈비뼈를 세차게 두드려 대는 통에 내 목소리마저 떨릴 것 같았다. 나는 호흡을 길게 내쉬며, 초점을 잃은 눈동자를 멍하니 허공에 고정했다.

“어머, 서방님…….”

옥자가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변명하듯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성대가 극도로 수축해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사, 사모님 아침 식사를 챙겨드리느라…… 몸이 많이 안 좋으시다고 하셔서요.”

“그렇군요.”

발소리가 다시 움직였다. 척, 스으윽, 척. 도윤이 침대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였다. 그의 옷깃에서 풍기는 은은한 시더우드 향과 차가운 바깥바람 냄새가 내 코끝을 찔렀다.

도윤은 협탁 앞에 멈춰 섰다. 그가 가죽 장갑을 벗어 협탁 위에 내려놓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사각, 하는 마찰음 뒤로, 그의 손가락이 옥자가 놓아둔 식기 위를 부드럽게 쓰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주머니, 손을 많이 떠시는군요.”

도윤의 음성이 낮게 가라앉았다.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복도 끝까지 들렸습니다. 지수는 작은 소음에도 심한 편두통을 느끼는데…… 내가 주의해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드리지 않았던가요?”

“죄송합니다, 서방님. 제가 눈이 어두워 그만…….”

“나이가 드셔서 그런 거라면 이해합니다만.”

도윤이 아주 미세하게 웃음 섞인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숨결 속에 섞인 살의에 가까운 통제력이 방 안의 온도를 순식간에 영하로 끌어내렸다.

“다음번에도 이런 소란이 생긴다면, 아주머니의 그 고단한 손을 쉬게 해드려야 할 것 같네요. 이 저택에는 조용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정중함을 가장한 잔혹한 해고 통보였다. 옥자의 호흡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리는 발걸음으로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스으윽, 툭, 스으윽, 툭. 멀어지는 그녀의 비대칭적인 발소리 속에는 절망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철컥.

방문이 닫히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아니, 정적이 아니었다. 내 방안에는 이제 가장 위험한 포식자와 나, 단둘만이 남겨져 있었다.

침대 매트리스가 지긋이 내려앉았다. 도윤이 내 침대맡에 걸터앉은 것이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이불 너머로 느껴졌다.

“지수야.”

차가운 손가락 끝이 내 뺨에 닿았다. 닿는 순간 척추를 타고 소름이 쫙 돋았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얼굴 근육을 이완시키며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윤 씨? 소희랑 같이 나간 줄 알았는데…….”

“아, 소희는 먼저 차에 태워 보냈어. 놓고 간 물건이 있어서 잠시 올라왔는데, 아주머니가 네 방에 오래 머물러 있더군.”

도윤의 손가락이 내 뺨을 지나 관자놀이 부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은 다정했지만, 손끝에 실린 힘은 언제든 내 목을 조를 수 있을 만큼 단단했다.

“아주머니가…… 혹시 너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니?”

그의 나지막한 질문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 3D 지도가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이명과 함께 관자놀이를 찌르는 극심한 편두통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어제 교체했다는 미스트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보이지 않는 약물의 잔향이 내 신경을 마비시키려는 듯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옥자가 식기를 통해 남긴 그 ‘두-두-둑’ 하는 3현 진동. 그리고 사고 날 밤의 그 빗길 속 경적 소리. 도윤은 지금 내가 무언가를 알아챘는지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요…… 그냥, 입맛이 없다고 하니까 걱정해 주셨어요.”

나는 목소리를 최대한 가늘고 나약하게 내며 그의 품으로 고개를 살짝 기댔다.

“머리가 너무 아파요, 도윤 씨. 그 미스트 기기…… 새로 바꾼 뒤로 소리가 너무 날카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내 불평에 도윤의 손가락 움직임이 일시 정지했다.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뇌내 지도 위에서 평소보다 미세하게 빨라지는 파형을 그렸다. 분당 72회에서 78회로의 급격한 상승. 그가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 네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기기인데…… 소리가 거슬렸구나. 미안해, 내가 다시 조율해 둘게.”

도윤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상체를 더 가까이 밀착시켰다.

바로 그때였다.

도윤의 상체가 협탁에 놓인 미스트 기기 쪽으로 다가가는 순간, 내 고막을 찢을 듯한 기괴한 이조음이 발생했다.

위이이이잉-- 삐이이이-!

그것은 단순한 기계의 고주파 소음이 아니었다. 마이크와 스피커가 너무 가까이 접촉했을 때 발생하는 특유의 날카로운 하울링(Howling) 현상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과 함께, 내 초청각적 공감각이 그 주파수의 근원을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소리의 시작점은 벽 속의 미스트 기기가 아니었다. 하울링은 도윤이 내 침대 쪽으로 다가와 협탁에 가까워질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고 있었다.

‘설마…….’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심연 속으로 추락하는 듯했다.

미스트 기기 작동 시 발생하던 60헤르츠의 고주파음. 그것은 이 방의 공기를 정화하는 기계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방 전체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송수신하는 고감도 도청 장치의 주파수였고, 그 수신기는 지금 도윤의 옷 안쪽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도윤이 협탁 밑에 숨겨진 송신기 근처로 다가오자, 그가 소지한 수신기와 주파수가 충돌하며 비정상적인 하울링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렇다면 옥자가 나에게 식기를 누르며 전했던 그 은밀한 ‘두-두-둑’ 하는 타격음 역시, 이 방의 송신기를 통해 도윤의 귀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단 뜻인가?

내 이성이 차갑게 마비되어 갔다.

도윤이 내 머리칼을 쓸어내리던 손길을 멈추고, 천천히 내 귀밑으로 입술을 가깝게 가져다 댔다. 그의 숨결이 닿는 귓가에서, 도윤의 외투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수신기의 미세한 진동음이 ‘웅, 웅’ 하며 울려 퍼졌다.

도윤의 목소리가 뱀처럼 스산하게 내 고막을 파고들었다.

“지수야. 너 방금 아주머니가 놓아둔 숟가락을…… 세 번 두드리지 않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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