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린 미스트의 차가운 입자들이 허파 깊은 곳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선명하게 채우고 있던 파란색과 보라색의 3D 청각 지도가 마치 물에 젖은 수채화처럼 사정없이 흐려졌다. 귓가에서 잔인하게 고동치던 도윤의 심장 소리가 먼지 낀 유리창 너머의 소음처럼 먹먹해졌고, 늘 내 어둠을 지탱해 주던 가상의 따뜻한 가디언 형체는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이내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관자놀이를 길고 날카로운 바늘로 사정없이 쑤셔 넣는 듯한 편두통이 뇌를 관통했다.

아, 이 끔찍한 감각.

도윤이 내민 달콤한 약물이 내 신경망을 하나씩 끊어내며 인지 체계를 무너뜨리는 소리 없는 비명이었다. 귓가에 남은 것은 오직 찢어질 듯한 삐이이이- 하는 이명의 잔해뿐이었다. 나는 깊고 어두운 심연 바닥으로 한없이 추락하며, 내 영혼의 감옥 문이 단단히 걸어 잠기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사흘 뒤 아침.

나는 침대 머리맡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사흘 동안 도윤은 매일 오후 세 시마다 어김없이 그 주황색 병을 흔들었고, 그때마다 내 세계는 무채색의 늪으로 침전했다. 하지만 어제부터 나는 들이쉬는 숨을 길게 늘이고 내쉬는 숨을 극도로 압축하는 방식으로 호흡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약 기운이 폐부를 장악하기 전에 기저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어 뇌로 가는 혈류를 강제로 비트는 나만의 은밀한 저항이었다.

후우우, 흐읍.

들숨과 날숨의 일정치 않은 마찰음이 고요한 방 안을 메웠다. 어지러운 머릿속에서 흐트러졌던 소리의 실타래들이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완전히 복구되지는 않았지만, 관자놀이의 찌릿한 통증 너머로 방 안의 기하학적 구조가 미세한 진동을 타며 다시 머릿속에 가상의 입체 지도로 그려졌다. 침대 모서리의 직각, 삐걱거리는 옷장 문틈의 2밀리미터짜리 틈새, 그리고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커튼을 쳐서 만들어내는 가벼운 마찰음까지.

그때, 저택 아래층 정문 방향에서 낯선 진동이 감지되었다.

쿵.

묵직한 철제 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타이어가 정원의 자갈밭을 짓밟는 둔탁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도윤의 세단이 내는 세련된 6기통 엔진 소리가 아니었다. 불규칙하게 털털거리는 소형 가솔린 엔진의 소음. 뒤이어 구두 굽이 자갈을 짓이기는 가볍고 빠른 발소리가 이어졌다.

또각, 또각, 또각.

발소리는 망설임 없이 현관을 지나 이층 계단으로 향했다. 도윤이 그토록 밟지 말라던, 비어 있는 세 번째 계단을 아주 자연스럽게 건너뛰는 기묘한 보폭의 발소리였다. 그 발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소희. 내 하나뿐인 친여동생이라고 도윤이 소개해 주었던,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찾아와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그 존재였다.

방문 손잡이가 회전하며 쇠붙이가 맞물려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것은 지독할 정도로 인위적인 백합 향수 냄새였다.

“언니! 나 왔어! 몸은 좀 어때? 보고 싶었어, 정말로…….”

소희가 요란스러운 발소리를 내며 침대로 달려와 나를 와락 껴안았다. 어깨를 파고드는 그녀의 가냘픈 손길과 내 목덜미에 닿는 축축한 뺨의 감각. 그녀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끄윽, 흑, 하는 목구멍 뒤쪽을 쥐어짜는 비강음이 방 안의 음향 지도를 어지럽혔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어둠 속에서 그녀의 소리를 분해하고 있었다.

인간이 정말로 슬퍼서 울 때의 호흡은 횡격막의 불규칙한 떨림을 동반한다. 폐포가 수축하며 공기가 기도를 통과할 때 발생하는 마찰음은 아주 낮고 축축하며, 심장 박동 역시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다소 느리거나 불규칙하게 가라앉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내 목덜미를 적시는 이 여자의 울음소리는 어땠던가.

소희의 목소리 기저에 깔린 포먼트(Formant) 주파수는 놀라울 정도로 일정하고 균일했다. 마치 잘 짜인 연극 무대 위에서 대본을 낭독하는 배우처럼, 그녀의 하이 피치 톤은 단 1헤르츠의 흔들림도 없이 기계적인 궤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슬픔을 연기하기 위해 억지로 콧소리를 섞어 내는 비정상적인 구강 구조의 움직임이 내 공감각 지도에 고스란히 형상화되었다.

게다가 냄새가 달랐다.

내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 속에서, 내 동생 소희는 늘 은은한 비누 냄새나 때로는 아주 가벼운 시트러스 향을 풍기던 아이였다. 하지만 내 품에 안겨 있는 이 여자의 몸에서는 오직 도윤의 서재에서나 맡을 수 있었던 고가의 수입 백합 향수 냄새만이 진동할 뿐이었다. 진짜 동생 특유의 체취는 단 한 줌도 섞여 있지 않은, 완전히 낯선 타인의 냄새.

그녀는 진짜 소희가 아니었다. 도윤이 만들어낸 정교한 연극의 주연 배우일 뿐이었다.

“소희야…… 많이 걱정했어?”

나는 최대한 힘이 없는 목소리로 물으며 그녀의 가슴팍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그녀의 심장 박동이 내 뇌의 청각 지도에 수치로 환산되어 나타났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분당 120회(bpm).

슬픔에 젖은 사람의 박동이 아니었다. 거짓말을 들킬까 봐 극도로 긴장한 가짜 구원자의 터질 듯한 심박수였다. 피붙이라는 허울을 쓰고 내 앞에서 눈물짓는 이 가식적인 침입자의 불안을 진단하는 일은, 생각보다 짜릿한 유희였다. 나는 어둠 속에서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이 저택 전체가 나를 속이기 위한 거대한 무대라면, 나 역시 관객이 아닌 주연 배우가 되어 주어야 했다.

“언니가 아프니까 내 마음이 너무 찢어져……. 형부도 매일 밤 언니 걱정에 잠도 못 자고 울어. 그러니까 언니, 형부 말 잘 들어야 해, 알았지? 딴생각 하지 말고…….”

소희의 손이 슬며시 내 침대 옆 협탁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소매깃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협탁 위에 놓인 작은 유리 스탠드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탁.

그녀가 협탁 밑면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더듬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내 골든핑거가 그 순간 협탁 다리를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기묘한 진동을 잡아냈다.

우웅-.

그것은 아주 일정한 파형을 가진 초저주파의 진동이었다. 일반적인 가구에서는 결코 날 수 없는, 전기가 흐르는 기계 장치의 미세 보이스 코일 소리.

나는 호흡을 죽이고 그 진동의 발원지를 뇌내 3D 지도로 추적했다.

그것은 협탁 밑바닥, 가장 깊숙한 나뭇결 사이에 교묘하게 매립된 초소형 소음 차단 댐퍼(Active Noise Damper)였다. 매 정각 주기로 작동하여 방 안의 특정 데시벨 이상을 흡입하고 교란하는 물리적 장치. 도윤이 내 공감각 능력을 교란하고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설치해 둔 정밀한 가스라이팅 도구가 분명했다. 소희는 지금 그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손끝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응, 소희야. 나 도윤 씨 말 잘 듣고 있어. 도윤 씨는 내게 너무 과분한 사람인걸.”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소희의 손을 맞잡았다. 힘을 주어 쥔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소희야.”

“어, 어? 왜, 언니?”

소희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더 높아졌다. 심장 소리가 다시 125bpm을 향해 치닫는 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네 손에서…… 낯선 백합 냄새가 나네. 네가 예전에 좋아하던 그 상큼한 레몬 향은 어디로 간 거야?”

순간, 방 안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은 듯 정적에 휩싸였다.

소희의 호흡이 일시에 멈췄다. 그녀는 잡힌 손을 뒤로 빼려 했지만, 나는 오히려 손가락에 부드럽게 힘을 주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내 눈동자가 정확히 그녀의 얼굴이 있을 허공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아, 그, 그거……? 요즘 피곤해서 향수를 좀 바꿔봤어. 형부가 선물해 준 거기도 하고……. 언니,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푹 쉬어.”

소희는 서둘러 내 손을 뿌리치듯 빼냈다. 그녀의 옷자락이 거칠게 쓸리는 소리가 방 안의 소음 차단 댐퍼에 흡수되어 둔탁하게 흩어졌다.

“나, 나 이제 가봐야겠어. 형부가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거든. 다음에 또 올게, 언니.”

그녀의 발소리가 도망치듯 문가를 향했다. 다급하게 움직이는 구두 굽 소리가 방바닥을 사정없이 찧었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방을 빠져나가는 순간까지도 나는 침대에 가만히 앉아 그 뒷모습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전송했다.

철컥.

방문이 닫혔다.

하지만 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관자놀이를 찌르는 편두통을 억누르며, 닫힌 방문 틈새의 좁은 공간으로 내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귀를 기울이자, 방금 설치를 확인한 협탁 밑 댐퍼의 백색소음 너머로 복도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아주 은밀한 발소리가 감지되었다.

사락, 사락.

도윤의 부드러운 실크 슬리퍼 소리와 소희의 가죽 구두 소리가 복도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두 사람의 거리는 약 1.5미터. 서로의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어땠어?”

도윤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에서 나를 대할 때의 그 다정하던 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오싹할 정도로 건조한 음색이었다.

“형부, 이상해. 언니가 향수 냄새가 달라진 걸 단번에 알아챘어. 게다가…….”

소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극도로 낮추었다. 그녀의 성대가 팽팽하게 조여들며 흘려보내는 주파수가 문틈을 타고 내 고막에 와서 꽂혔다. 속삭임 속에 섞인 비전형적인 발음과 굳어버린 혀의 마찰음이 내 뇌의 청각 지도에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수집되기 시작했다.

“언니가 드디어 어제부터 계단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어. 세 번째 계단 밑을 더듬는 걸 내가 똑똑히 봤단 말이야.”

그 순간,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들켰다. 어제 내가 도윤 몰래 계단 아래의 금고를 탐색했던 그 은밀한 움직임이, 이 가짜 동생의 눈에, 혹은 저택 곳곳에 숨겨진 또 다른 감시 장치에 포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복도 너머에서 도윤의 깊고 무거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그의 슬리퍼 바닥이 바닥 천을 지긋이 비틀며 내 방 문 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트는 불길한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스르륵, 사박.

바닥을 스치는 슬리퍼의 마찰음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10미터, 7미터, 5미터.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내 척추를 타고 차가운 전율이 흘렀다. 나는 재빨리 침대 안쪽으로 몸을 미끄러뜨렸다. 이불을 깃까지 끌어올리고, 조금 전 소희에게 보여주었던 흐트러진 호흡을 지워내기 시작했다.

흐읍, 후우.

가슴의 오르내림을 최대한 완만하게 조절하며, 깊은 잠에 빠진 환자의 호흡 주파수를 흉내 냈다. 약물에 취해 의식을 잃은 아내의 완벽한 박동.

철컥.

이윽고 문손잡이가 돌아갔다. 기름칠이 잘 되지 않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벌어졌고, 방 안의 공기 흐름이 일시에 뒤틀렸다. 문틈으로 밀려드는 도윤의 체취가 내 코끝을 찔렀다. 소희의 몸에 묻어 있던 그 지독한 백합 향수와, 그 너머에 숨겨진 그만의 건조하고 서늘한 스킨 냄새.

침대 머리맡의 카펫이 그의 몸무게를 지탱하며 짓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각, 사각. 옷깃이 스치는 미세한 마찰음이 내 머릿속 3D 지도를 따라 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찍어내고 있었다. 그는 침대 바로 옆까지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눈꺼풀 위로 그의 시선이 주는 기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뺨 위로 닿는 그의 거친 숨결은 지나치게 고요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지수야.”

나직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섞인 성대의 떨림을 분석했다. 방금 전 복도에서 소희와 속삭이던 그 건조한 주파수와는 달랐다. 다시 아내를 극진히 아끼는 자상한 남편의 가면을 쓴, 인위적으로 부드럽게 다듬어진 저음이었다.

그의 차가운 손가락 끝이 내 이마를 쓸어내렸다. 닿는 부위마다 소름이 돋아 살죽이 잘게 떨리려는 것을,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자고 있네. 소희가 다녀간 것도 모를 정도로…….”

손가락이 뺨을 타고 내려와 내 목줄기 부근에서 멈췄다. 그의 검지와 중지가 내 경동맥이 뛰는 자리를 지긋이 눌렀다. 맥박을 확인하려는 교묘한 손길이었다.

쿵, 쿵, 쿵.

나는 뇌내의 시뮬레이션을 가동해 심장 박동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약물에 절어 있는 육체가 보일 법한, 느리고 탁한 박동을 연출했다. 내 손가락 손톱이 이불 밑에서 살을 파고들 정도로 강한 통증을 자아내어, 뇌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켰다.

내 연출이 통했는지, 목덜미를 누르던 그의 손가락 끝에서 힘이 살포시 빠졌다. 하지만 안심할 틈도 없이, 그의 목소리가 내 귀밑샘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지수야. 어제는 왜 이층 계단 아래를 서성였을까.”

심장이 찰나의 순간 강하게 요동치려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허벅지 안쪽을 꼬집었다. 날카로운 통증이 뇌를 때리자, 비정상적인 심박수의 상승을 겨우 억누를 수 있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약 기운에 취해 겨우 눈을 뜨는 것처럼 눈꺼풀을 깜빡였다. 물론 내 세계는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었지만, 소리가 가리키는 그의 얼굴 방향을 향해 초점 없는 눈동자를 맞추었다.

“……도윤 씨?”

목소리를 일부러 잠기게 만들고, 갈라진 비음을 섞어 뱉었다.

“응, 나야. 어제 몸도 불편한 사람이 왜 계단까지 내려갔어? 소희가 그러더군. 네가 세 번째 계단 밑을 더듬고 있었다고.”

그의 어조는 부드러웠지만, 손가락은 내 턱끝바디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대답을 강요하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조금이라도 주파수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끝장날 터였다. 나는 뇌의 과부하로 인해 관자놀이에서 시작된 편두통이 눈 뒤쪽을 찌르는 것을 느끼며, 차분하게 목소리를 골랐다.

“그냥……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요.”

“이상한 소리?”

“네. 밤마다 세 번째 계단 아래에서…… 쇠붙이가 맞물려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어요. 마치 쥐가 갇혀서 갉아먹는 것처럼 둔탁한 진동이 발끝으로 전해져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만져본 것뿐이에요.”

나는 불안에 떠는 시각장애인 아내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어깨를 가볍게 떨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이마를 기대자, 그의 안쪽에서 뛰고 있는 심장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두근. 두근. 두근.

안도감.

그의 심장 박동 주파수가 미세하게 느려지며 안정적인 파형을 그렸다. 내 터무니없는 핑계를 믿은 모양이었다. 비어 있는 계단 밑 수납공간의 존재를 들킨 줄 알고 긴장했던 그의 소시오패스적 방어기제가, 내 ‘환청’ 핑계에 무장해제된 것이다.

“아, 쥐가 있었나 보구나. 오래된 주택이라 방역을 더 철저히 해야겠어.”

그가 내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 하지만 내 귀는 그의 품속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미세한 마찰음에 집중하고 있었다.

바스락.

그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 금속 재질의 물건이 쓸리는 소리가 났다. 얇고 납작한 카드 키, 혹은 정밀한 원격 제어 장치 같았다.

“지수야. 널 위해 새로운 규칙을 하나 더 추가해야겠어.”

도윤의 목소리가 귓가를 부드럽게 긁었다. 그러나 그 다정함 뒤에 숨은 칼날 같은 통제력이 내 등줄기를 서늘하게 적셨다.

“네가 밤중에 몽유병처럼 돌아다니다가 다치면 내가 견딜 수가 없거든. 그래서 오늘부터 밤 열 시 이후에는…… 이 방 문을 밖에서 잠글 거야.”

머릿속 3D 지도가 순간적으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감금.

그가 마침내 내 행동반경을 완전히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네 두통을 완화해 줄 미스트 기기도 성능이 더 좋은 새것으로 교체해 두었어. 이제 방 안의 공기가 한결 더 맑아질 거야.”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방구석 환풍구 너머에서 들려오던 미세한 백색소음의 주파수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이전의 미스트 기기보다 훨씬 더 높은 피치의 고주파 진동음이었다. 고막을 찌르는 듯한 60헤르츠의 전류음이 방 안의 벽면을 타고 공명하며, 내 머릿속에 정밀하게 그려져 있던 가상의 소리 지도들을 가차 없이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아, 뇌가 타들어 가는 것 같다.

능력을 과도하게 유지한 대가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한 새로운 약물의 인지 왜곡 효과가 결합하여 내 이성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시야가 아닌 ‘청야’가 붉은색 경고음으로 가득 찼다.

“푹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 내 사랑.”

도윤이 내 이마에 차가운 입맞춤을 남기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이윽고 묵직한 방문이 닫혔다.

철컥. 스르릉, 툭.

방 문 너머에서 두꺼운 쇠빗장이 걸쇠에 맞물려 들어가는 무겁고 둔탁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이제 나는 이 정밀하게 설계된 음향 감옥 속에 완벽하게 고립되었다.

머리를 깨부술 듯한 이명 속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손가락을 뻗어 협탁 다리를 짚었다. 바닥을 타고 흐르는 그 기묘한 초저주파의 진동.

하지만 그 진동 너머로, 내 방 바닥 바로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낯선 소리가 내 감각의 그물망에 걸려들었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정한 주기로 무언가 아날로그식 다이얼이 회전하며 태엽을 감는 듯한, 극도로 미세하고 기계적인 금속 마찰음이었다.

도윤이 내 방 바로 밑, 혹은 벽면 속에 숨겨둔 또 다른 장치가 작동을 시작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마치 내 생명의 남은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는 시한장치처럼, 어둠 속에서 불길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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