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 터벅. 터벅.
아래층 서재에서 시작된 발소리가 계단 참을 향해 꺾어지는 순간, 내 귓바퀴가 미세하게 떨렸다. 도윤의 발걸음은 언제나처럼 정교했다. 뒤꿈치가 바닥에 닿을 때의 압력, 앞꿈치로 중심이 이동하며 발생하는 섬유의 마찰음까지 완벽하게 통제된 걸음걸이. 마치 자로 잰 듯한 0.8초의 간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규칙적인 박자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일고 있었다. 평소보다 0.1초 빠른 템포. 발바닥이 나무 계단을 누르는 힘의 불균형. 그가 초조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혹은, 내가 이 금기 구역에 서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했거나.
‘2층 복도의 세 번째 계단은 절대로 밟지 마라. 부실해서 무너지기 쉬우니까.’
내 머릿속에 수없이 주입되었던 도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맴돌았다. 그러나 내 발끝이 조금 전 톡, 하고 건드렸던 그 계단은 썩어가는 나무의 푸석함 따위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철저한 금속의 질감을 품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도윤이 계단 꺾임 주차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6초.
나는 호흡을 코끝으로 아주 가늘게 몰아쉬며 오른발을 뒤로 물렸다. 체중을 왼발 뒤꿈치에 싣고, 무릎 관절의 마찰음을 줄이기 위해 허벅지 근육을 극도로 긴장시켰다. 뼈와 뼈가 부딪쳐 나는 둔탁한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지 않도록, 모든 움직임을 액체처럼 부드럽게 이어갔다.
그 짧은 찰나에도 내 뇌는 방금 획득한 음파 정보를 맹렬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틱, 하고 울렸던 그 날카로운 마찰음의 잔향. 소리는 계단 디딤판 표면에서 꺾인 뒤 아래로 통과하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목재의 다공성 구조라면 당연히 흡수했어야 할 고주파 영역의 음역대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반사파가 돌아오는 시간은 고작 0.0026초.
공기 중 음속 340미터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디딤판 바로 아래에서 음파를 차단한 장애물까지의 거리는 정확히 45센티미터였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벽면의 진동 감쇄율은 알루미늄이나 철제 합금의 그것과 일치했다.
그것은 무너지기 쉬운 함정이 아니었다. 도윤이 설계한 이 거대한 인지 감옥의 중심부,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겨진 강철 보관함이었다.
그가 나에게 심어놓은 ‘부실한 계단’이라는 가짜 규칙은, 오직 이 45센티미터 깊이의 철제 금고를 수호하기 위해 고안된 심리적 방어벽이었던 셈이다. 머릿속에서 도윤이 짜 맞춘 세계의 파편 하나가 툭 부러져 나가는 불협화음이 들렸다. 불안으로 차오르던 심장박동이 기묘할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공포는 논리적인 수치 앞에서 힘을 잃는 법이니까.
터벅. 터벅.
발소리가 이제 다섯 번째 계단까지 도달했다. 그의 옷자락이 스치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따갑게 닿았다.
나는 안방 문턱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한 걸음, 두 걸음. 내 맨발은 카펫의 올 사이를 미끄러지듯 소리 없이 밟아 나갔다. 문틈의 이가 맞지 않아 미풍이 불 때마다 덜컹거리던 안방 문의 미세한 진동을 몸으로 느끼며, 나는 문고리를 조용히 거머쥐었다.
도윤의 머리가 2층 복도 위로 완전히 올라서기 직전, 나는 문을 소리 나지 않게 닫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문 너머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고요했다. 시계 초침 소리가 서재에서보다 더 무겁게 고막을 때렸다. 뚝, 뚝, 뚝. 1초가 지나갈 때마다 복도의 공기 흐름이 아주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도윤이 그 자리에 서서 내가 남긴 흔적을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계단 위에 흩어졌을 미세한 먼지의 일렁임이나, 내가 뿜어낸 온기를 사냥개처럼 맡고 있으리라.
이윽고 방 문고리가 돌아가는 쇳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스르륵.
“지수야.”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물기 어린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닿는 내 피부는 소름이 돋아 닭살이 돋아났다.
“어두운 데서 혼자 뭘 하고 있었어? 불도 안 켜고.”
도윤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발걸음이 내 침대 옆 협탁 앞에서 멈췄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미세한 만년필 잉크 냄새와 가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냥요. 바람 소리가... 조금 이상해서요.”
나는 시선을 허공에 둔 채, 최대한 초점이 맞지 않는 맹인의 눈빛을 연기하며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지만,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터져 나오려는 방어 기제를 억누르기 위한 이성적 통제 때문이었다.
“바람 소리?”
도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내려앉았다. 그의 안구가 안와 속에서 오른쪽으로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소한 의심을 품었을 때 나타나는 그의 고유한 버릇이었다. 안구 뒤편의 미세한 근육이 수축하며 내는 극미세한 습윤음이 내 초청각적 공감각 지도에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그래, 요즘 환절기라 외벽 창문 틈새로 바람이 많이 들어오지. 내가 지침서에 적어두었잖아. 창가 근처는 이명과 두통을 유발하니까 가까이 가지 말라고. 내 말 잊은 건 아니지?”
그의 손이 내 어깨를 지긋이 눌렀다. 체온이 따뜻하게 전해져 왔지만, 그것은 독사가 먹이를 휘감기 전에 나누어주는 치명적인 온기에 불과했다.
“잊지 않았어요. 그냥... 도윤 씨 발소리가 듣고 싶어서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편의 헌신에 감동한 무력한 아내의 표정. 내 얼굴 근육 하나하나가 도윤이 원하는 완벽한 인형의 형태로 조율되었다.
도윤의 호흡이 한순간 부드러워졌다. 가슴뼈가 내려앉으며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의심의 끈을 조금 늦춘 모양이었다.
“착하네, 우리 지수.”
그가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쓸리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서 기분 나쁘게 증폭되었다.
그때, 거실 쪽에서 나직한 전자 알람음이 울렸다.
띠리링. 띠리링.
정확히 세 번의 기계음. 방 안의 공기가 일순간 팽팽하게 얼어붙었다.
오후 3시였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무릎 관절에서 시큼한 마찰음이 미세하게 흘러나왔다. 그는 협탁 위에 놓여 있던 하얀색 원통형 기기 쪽으로 다가갔다. 그것은 매일 오후 3시만 되면 내 머리맡에서 미스트를 뿜어내는 가습 기기였다. 도윤은 이것을 '뇌 신경 안정용 허브 추출물 분사기'라고 불렀다. 사고 이후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발작에 시달리던 나를 위해 그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기기라고 했다.
기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틱.
날카로운 금속성 타격음이 먼저 울렸다. 뒤이어 아주 빠른 속도로 무언가가 회전하는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샤아아아아-.
미세한 수증기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소리였다. 하지만 내 청각 지도는 그 단순한 수증기의 분사음 너머에 숨겨진 또 다른 불협화음을 정확하게 포착해 내고 있었다.
기기 내부 깊숙한 곳, 아주 작은 실린더 형태의 공간에서 초소형 피스톤이 고속으로 왕복 운동을 하고 있었다. 징- 하는 미세한 유도 모터의 소음과 함께, 액체가 밸브를 통과할 때 발생하는 특유의 하이피치 마찰음이 고주파의 영역에서 찢어지듯 울렸다.
‘틱-샤아. 틱-샤아.’
규칙적인 가습기라면 결코 내지 않을, 액체의 압력을 강제로 제어하는 정밀한 밸브 압착음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기화식 가습기가 아니다. 아주 미세한 나노 입자로 약물을 강제 분사하기 위해 고안된 초정밀 압축 분무 장치다. 기류의 흔들림을 따라 내 코끝으로 흘러드는 라벤더 향 이면에는, 혀끝을 마비시키는 듯한 씁쓸하고 비릿한 화학 물질의 냄새가 아주 얇은 막처럼 겹쳐져 있었다.
나는 머릿속 3D 청각 지도에 이 기기의 작동 소음 주파수를 붉은색 격자로 마킹했다. 60Hz의 전원 유도음, 그리고 12,000Hz 주변에서 요동치는 초소형 밸브의 압착음. 이 소리의 파형을 기억해 두어야 했다. 이것이 내 잃어버린 기억을 묶어두는 쇠사슬의 정체일지도 모른다.
“지수야, 깊게 들이마셔 봐. 마음이 아주 편안해질 거야.”
도윤이 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스트를 손바닥으로 모아 내 얼굴 앞으로 부드럽게 부쳐주었다. 그의 손바닥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텁텁한 약물 냄새가 내 콧속으로 들이닥쳤다.
“이 향을 맡으면... 예전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는 느낌이 들어요.”
나는 일부러 몽롱한 목소리를 내며 속삭였다. 도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미끼였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윤의 신체 반응이 급격하게 변했다.
그의 심장 박동수가 분당 72회에서 순간적으로 88회까지 치솟았다. 흉곽이 좁아지며 호흡이 짧아졌고, 그의 안면 근육 중 오른쪽 입꼬리 끝을 당기는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그것은 인간이 가장 감추고 싶어 하는 비밀이 폭로될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생리적 거부 반응이었다.
“기억?”
도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아졌다. 그는 내 어깨를 쥔 손가락에 은근한 힘을 주어 압박했다.
“어떤 기억이 나는데, 지수야? 구체적으로 말해봐. 내가 도와줄게.”
그의 겉모습은 다정한 남편이었지만, 내 뼈를 타고 전해지는 그의 손아귀 진동은 사냥감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포식자의 잔인함 그것이었다. 그는 지금 내 기억이 돌아오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냥... 아주 따뜻하고 넓은 정원이 있는 집이었어요. 도윤 씨가 내 손을 잡고 걷고 있었고... 우리는 아주 행복하게 웃고 있었어요.”
나는 그가 구축해 놓은 가짜 과거의 대본을 그대로 읊어주었다. 그가 내 기억상실증을 이용해 끊임없이 주입했던, 그 조작된 일기장의 내용들.
내 대답을 들은 도윤의 어깨에서 마침내 긴장이 탁 풀리는 소리가 났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그의 성대 떨림이 다시 유연해졌다.
“그래, 맞아야. 우리는 그 정원에서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었지. 지수 네가 사고로 시력을 잃기 바로 전날에도, 그 정원에서 내 품에 안겨 울었잖아. 기억나지?”
그의 부드러운 속삭임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분노로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
거짓말이다.
내 공감각 지도는 그의 목소리에 섞인 위선을 낱낱이 분해해 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내를 향한 애틋함이나 슬픔의 잔향이 전혀 없었다. 오직 상황을 통제했다는 안도감과, 나를 완벽하게 속였다는 소시오패스 특유의 차가운 유희만이 그 주파수 사이에 일그러진 형태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럼요. 기억하고 있어요. 도윤 씨 없이는...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나는 그의 가슴에 조용히 머리를 기대었다. 그의 셔츠 깃 너머로 들려오는 심장 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규칙적이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 남자의 숨통을 어떻게 끊어놓아야 할지, 이 정밀한 감옥을 어떻게 무너뜨려야 할지 수십 가지의 경로가 소리 지도를 따라 어지럽게 그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반격의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쉬이이이이-.
미스트 기기에서 뿜어져 나온 차가운 입자들이 내 코와 입을 통해 허파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다. 목젖 너머로 씁쓸하고 끈적한 약물의 기운이 스며드는 순간, 내 뇌세포를 자극하던 선명한 주파수 신호들이 일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그려져 있던 3D 청각 지도의 선들이 지독한 안개 속으로 가라앉듯 흐려졌다.
도윤의 심장 소리도, 미스트 기기의 밸브 마찰음도, 문틈의 흔들림도 전부 거대한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먹먹하게 변해갔다.
관자놀이 안쪽에서 쇠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다시금 치밀어 올랐다. 아, 이 느낌. 또 시작이었다.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대가이자, 이 약물이 내 뇌를 마비시키며 발생하는 부작용이었다.
귓가에서 삐이이이- 하는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어둠 속에서, 늘 나를 지켜주던 가상의 기억 속 따뜻한 가디언의 형체가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먼지처럼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정신이 암전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 도윤의 나직한 음성이 멀리서 들려왔다.
“잘 자, 내 사랑.”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다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철창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우는 교도관의 차가운 금속음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