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은 단순히 빛의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끈적거리는 타르처럼 귓구멍 속으로 흘러들어와 뇌수를 적시는 무겁고 축축한 실체였다.
눈꺼풀을 깜빡여 보았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망막 위에 내려앉은 영원한 밤은 내 안구 표면을 지질러대는 둔탁한 통증으로만 존재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내가 매달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귓가로 파고드는 소리들의 일그러진 파편뿐이었다.
달가닥.
시계 초침이 톱니바퀴를 물고 넘어가는 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이 저택의 초침 소리는 유독 불규칙했다. 사소하게 어긋나는 톱니의 마찰음이 이가 맞지 않는 문틈의 흔들림처럼 뇌막을 긁어댔다. 서늘한 공기가 방 안을 부유하는 느낌이 피부로 전해질 때쯤, 낡은 마룻바닥이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잘게 신음했다.
그가 오고 있었다.
“지수야.”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고요를 깨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부드러우며, 과도하게 정제된 음색. 내 남편, 강도윤의 목소리였다. 그의 발소리는 늘 일정했다. 오른쪽 뒤꿈치가 바닥에 닿을 때 아주 미세하게 가죽이 쓸리는 소리가 났고, 이어서 왼쪽 발가락 끝이 마루를 누르는 소리가 규칙적인 박자로 이어졌다.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맹인 아내를 향한 헌신적인 남편의 걸음걸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정밀한 시계추의 움직임과도 같았다.
“또 침대 바깥으로 발을 내밀고 있었네. 조심해야지.”
도윤의 손길이 내 어깨에 닿았다.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서늘하고 매끄러운 손가락끝이 닿는 순간 척추를 타고 가느다란 전율이 달렸다. 그는 나를 침대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으며 내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손가락이 두피를 스칠 때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징징거리는 이명이 솟구쳤다.
“내가 준 맹인 적응 지침서, 머릿속으로 계속 복기하고 있지? 이 방 안의 가구들은 네가 다치지 않도록 내가 아주 정밀하게 배치해 둔 거야. 침대 왼쪽 협탁은 정확히 서른 걸음 거리에 있고, 욕실 문고리는 문틀에서 1미터 20센티미터 높이에 있어. 내 통제를 벗어나면 너는 금방 다치고 말 거야, 지수야.”
그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내 고막을 두드리는 공기의 파동은 어딘지 모르게 기이했다. 목소리의 끝자락이 가늘게 흔들리는 주파수. 그것은 아내의 안위를 걱정하는 자의 호흡이 아니었다. 마치 잘 짜인 연극의 대사를 한 자 한 자 음미하며 뱉는 자의 지루하고도 집요한 읊조림에 가까웠다.
“알아, 여보…….”
내 목구멍에서 긁혀 나온 목소리는 바짝 마른 낙엽 같았다. 침을 삼키자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조여들었다. 도윤은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내 뺨을 가볍게 토닥였다.
그 순간이었다.
관자놀이 안쪽에서 불꽃이 튀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치솟았다. 뇌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에 나도 모르게 신음을 삼켰다. 머릿속에서 거대한 쇠사슬이 엉켜 굴러가는 듯한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2년 전, 내 시력과 기억의 절반을 앗아간 그 끔찍한 교통사고의 파편들이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일어섰다. 쇠붙이가 찌그러지는 굉음, 깨진 유리창이 사방으로 튀는 파열음이 환청이 되어 뇌리를 난도질했다.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허파가 쪼그라들고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날뛰었다.
‘안 돼, 제발…….’
정신이 붕괴하기 직전의 그 벼랑 끝에서, 기적처럼 이명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사방이 고요해졌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고요가 아니었다.
귀를 짓누르던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감각이 솟구쳐 올랐다. 시각이 완전히 차단된 내 뇌 속에서, 소리와 진동이 기하학적인 선과 입체적인 입자로 치환되기 시작했다.
뚝.
방구석 천장에서 떨어지는 미세한 물방울 소리. 그 소리가 바닥에 닿아 일으키는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벽면에 부딪히고 되돌아오는 잔향이 느껴졌다. 그 잔향의 고저와 지연 시간을 통해, 내 머릿속에 방의 정확한 크기와 높이가 3D 디지털 지도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가로 4.2미터, 세로 5.5미터, 높이 2.8미터.
오른쪽 구석에 놓인 옷장의 거친 나무 질감이 진동을 흡수하는 흡음 패턴으로 인지되었고, 철제 전등갓의 매끄러운 곡면이 소리를 반사하는 각도까지 뇌리에 고스란히 박혔다. 내 머릿속에 펼쳐진 것은 소리로 그려진 완벽한 가상의 저택 지도였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사물의 정확한 거리와 공간의 배치를 촉각적인 깊이감으로 완벽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그것은 초청각적 공감각이었다. 신이 내 눈을 빼앗아 간 대가로 부여한, 어둠 속의 유일한 무기.
“지수야? 왜 그래? 또 머리가 아픈 거야?”
도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제 그의 목소리는 이전과 다르게 들렸다. 공감각의 지도가 작동하는 순간, 그의 목소리에 담긴 물리적 정보들이 내 뇌내 컴퓨터에 실시간으로 분석되어 나타났다. 목소리의 진동수가 비정상적으로 일정했다. 감정이 실린 인간의 목소리라면 존재해야 할 미세한 배음의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아니야. 잠깐 어지러워서 그래.”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침대 시트를 축축하게 적셨다.
“그래, 다행이네. 널 위해 따뜻한 차를 준비했어. 이거 마시고 좀 쉬어.”
바스락거리는 옷자락 소리와 함께 도윤이 다가왔다. 그가 내 손에 찻잔을 쥐여 주었다. 세라믹 잔의 매끄러운 촉감과 함께, 잔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음향적 떨림이 내 손가락 끝을 타고 뇌로 전달되었다.
보글, 톡.
찻잔 온도가 내려가면서 액체 표면의 미세한 기포들이 터지는 소리였다. 아주 미세한 고음의 파열음. 그것은 단순한 허브차가 끓을 때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화학물질이 액체에 용해되면서 발생하는 가스의 미세한 지속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공감각 필터가 도윤의 신체에서 흘러나오는 가장 본질적인 소리를 포착했다.
두근. 두근. 두근.
그의 왼쪽 가슴팍에서 울리는 맥박 소리였다.
나는 숨을 멈췄다. 1분에 정확히 62회. 아내의 갑작스러운 두통과 발작을 목격한 남편의 심장박동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그것은 소름 끼치도록 일정하고 차분했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차가운 평정심이 그 고요한 박동 속에 깃들어 있었다. 우려와 걱정을 담은 다정한 속삭임 이면에는, 얼음장처럼 얼어붙은 냉혹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괴리감이 내 전신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고마워요, 여보. 정말 따뜻하네…….”
나는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는 척하며 교묘하게 입술만 갖다 대었다가, 다시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 도윤의 맥박은 여전히 62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단 1회의 미동도 없이.
“천천히 마셔. 그리고 절대로 창가 쪽으로는 가지 마. 지침서에도 적어두었지? 요즘 바깥바람이 거세서, 외벽 창문 근처에 가면 네 편두통이 더 심해진다고 주치의가 신신당부했으니까.”
“응, 안 갈게. 여보 말대로 침대에만 있을게.”
“착하네, 우리 지수.”
그가 내 뺨을 다시 한 번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손가락의 마찰음이 내 귀에는 거친 사포로 유리를 긁는 소리처럼 거슬리게 들렸다. 이윽고 도윤의 발소리가 침대에서 멀어졌다. 문이 열리고, 부드럽게 닫히는 소리가 났다. 철컥, 하고 자물쇠가 걸리는 미세한 핀의 맞물림 소리가 복도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방 안에 다시 나 혼자 남겨졌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니, 눈은 이미 감겨 있었으니, 마음의 눈을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도윤이 나간 방 안은 기묘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구축된 3D 소리 지도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방 안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는 차가운 공기의 흐름이 내 피부를 스치며 미세한 진동을 만들어냈다.
나는 침대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맨발이 차가운 원목 마루에 닿았다. 도윤이 늘 강조하던 지침서의 내용이 머릿속을 스쳤다.
‘2층 방 창문가에는 바깥바람이 두통을 일으키니 절대로 다가가지 말라.’
정말 바람 때문일까?
나는 소리 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가상의 지도 위에서 창문은 정확히 여덟 걸음 앞에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룻바닥의 미세한 휨 정도가 발바닥을 통해 진동으로 느껴졌다.
다섯 걸음째에 접어들었을 때, 관자놀이 부근에서 미세한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무거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도윤의 말대로 정말 창가 근처로 가니 두통이 유발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초청각적 공감각은 다른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웅웅웅웅…….
귀로는 들리지 않는, 그러나 내 뼈와 고막의 미세한 떨림을 통해 피부로 전해지는 극저음이 있었다. 60Hz 이하의 초저주파 진동.
나는 고개를 들어 진동의 발원지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창문 바깥의 자연스러운 바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창문 바로 위, 외벽 환기구 모양을 한 석고보드 안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곳에는 가짜 환풍구 서브우퍼가 숨겨져 있었다.
그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위적인 초저주파가 내 전정기관을 자극하고, 까닭 없는 불안감과 극심한 어지러움, 그리고 편두통을 강제로 유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이 불 때 두통이 심해진다는 것은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도윤은 내가 창가로 다가가 바깥세상의 소리를 듣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이 교묘하고 잔인한 과학적 억압 장치를 설계해 둔 것이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를 향한 그의 모든 헌신과 다정함은 철저히 계산된 감옥의 창살이었다. 내가 스스로를 ‘아픈 사람’, ‘남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믿게 만들기 위해, 그는 이 집 전체를 정밀한 인지 왜곡의 미로로 개조해 놓은 것이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톡.
그 작은 소리가 바닥을 치며 다시 한 번 방 안의 공간을 울렸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통증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깨웠다.
‘내 감각을 믿어야 해. 그의 말이 아니라, 내 귀가 듣는 진실을.’
이제 내게 남겨진 것은 오직 스스로의 지능과 이 비정상적인 감각뿐이었다. 도윤이 설계한 이 가짜 규칙들의 균열을 찾아내야 했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방문으로 향했다. 문고리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문틀 틈새로 흘러들어오는 복도의 소리에 집중했다.
도윤은 아래층 서재로 내려간 듯했다. 멀리서 아주 미세하게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와 만년필 촉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나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경첩에 기름칠이 잘 되어 있어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지만, 문이 열리며 발생하는 미세한 공기의 압력 변화가 내 뺨을 스쳤다.
복도는 길고 어두웠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3D 소리 지도는 이미 복도의 기하학적 구조를 실시간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백색소음, 그리고 저 멀리 계단 쪽에서 불어오는 미풍의 흐름.
도윤의 지침서에 적혀 있던 또 다른 절대적인 규칙이 떠올랐다.
‘2층 복도의 세 번째 계단은 절대로 밟지 마라. 부실해서 무너지기 쉬우니까.’
나는 소리 지도의 안내를 받으며 계단 참을 향해 조용히 걸어갔다. 내 맨발은 마치 어둠 속을 유영하는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마루를 밟았다.
계단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두 걸음만 더 내딛으면 그 ‘세 번째 계단’이었다.
나는 계단 근처의 공기 흐름과 진동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자 관자놀이가 다시금 지끈거리며 쪼개질 듯 아파왔지만, 나는 이빨을 악물고 버텼다. 지금 여기서 멈추면 평생 이 달콤한 감옥에서 인형으로 썩어갈 뿐이었다.
나는 오른발 끝을 살짝 들어 세 번째 계단 표면을 툭, 하고 가볍게 건드렸다. 아주 아주 미세한 타격음이 발생했다.
틱.
그 진동이 목재를 타고 계단 내부로 파고들었다가 되돌아왔다.
내 뇌릿속에 그려진 소리의 잔향은, 도윤의 경고와는 전혀 다른 파형을 나타내고 있었다.
부실한 나무 계단이라면 당연히 존재해야 할 불규칙한 틈새의 쓸림 소리나, 하중을 이기지 못해 삐걱거리는 마찰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바닥을 치고 되돌아온 음파는 극도로 단단하고 차가운 물질에 가로막혀 굴절되고 있었다.
그 아래는 텅 비어 있었다.
단순히 텅 빈 것이 아니라, 사방이 정밀하게 가공된 강철판으로 구획된 가로 40센티미터, 세로 20센티미터 크기의 완벽한 사각형 공간이었다. 진동의 감쇄율이 너무나 정밀했다. 그것은 썩어서 무너지기 쉬운 무덤이 아니라, 무언가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설계된 비밀스러운 ‘데드 스페이스’였다.
도윤은 이곳을 숨기기 위해 내게 ‘부실한 계단’이라는 가짜 규칙을 주입했던 것이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강철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내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일까, 아니면 나를 이 지옥에 가두기 위해 그가 숨겨놓은 또 다른 추악한 증거일까.
그때였다.
아래층에서 사각거리던 만년필 소리가 뚝, 하고 멈췄다.
그리고 멀리서 의자가 뒤로 밀리는 둔탁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도윤의 발소리가 계단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터벅.
침착하고 규칙적인, 그러나 조금 전보다 훨씬 빠른 템포의 발소리였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계단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어둠 속에서, 남편의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