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박진우의 젖은 구두가 거실의 카펫을 짓뭉개며 들어오던 순간, 내 세계를 채운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닌 터질 듯 팽창하는 소리의 격자망이었다.
귓가에서 울리는 백색소음 환풍구의 60Hz 초저주파 유도음이 뇌막을 사정없이 난타했다. 관자놀이가 쩍쩍 갈라지는 듯한 편두통이 엄습했고, 안구 뒷근육이 굳어 들어갔다. 도윤의 차가운 손가락이 내 뺨을 쓸어내리는 촉각은 마치 얼어붙은 쇠붙이가 살을 긁는 것처럼 생생했다. 하지만 나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초청각적 공감각의 격자를 극도로 팽팽하게 끌어당겼다.
도윤은 내가 그가 깔아놓은 레일 위를 기어 다니는 인형에 불과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품 안의 금속 카트리지를 빼앗길까 봐 사시나무 떨듯 떠는 가련한 맹인 아내로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완벽한 계산에는 치명적인 구멍이 존재했다.
그는 소희가 돈을 요구하며 날카로운 숨을 몰아쉬던 이틀 전 밤, 2층 복도에서 스스로 내뱉었던 그 은밀한 음성을 내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소희야, 가짜 계약서 보정본을 서재 지하 밀실 통제 스피커 드라이버 함체에 넣어뒀어.'
그 말을 내뱉으며 거칠게 발걸음 수치를 떨어뜨리던 도윤의 구두 굽 진동파. 2층 복도 바닥면을 타고 아래층 천장으로 꺾여 내려가던 그 불규칙한 주파수의 궤적이 내 뇌내 3D 매핑 시스템에 좌표로 고정되었다. 스피커 드라이버 함체. 저택 전체의 소리 장치를 제어하는 심장부이자, 그가 숨긴 가장 추악한 기만이 고여 있는 곳.
내 가상 지도 위에 붉은 낙인이 찍히듯 그 위치가 정밀하게 지정 기입되었다.
"박 순경님, 늦었네요."
도윤의 목소리가 거실의 공기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의 성대가 미세하게 떨리며 만들어내는 위선적인 고주파가 칼날처럼 선명하게 잡혔다.
이어 현관문 언저리에서 멈춰 선 박진우 순경의 발소리가 들렸다. 가죽화 밑창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찌걱거리는 축축한 수분음과 함께, 자잘한 자갈들이 마찰하는 서걱거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 오는 외곽 고속도로를 달려왔다던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그 가죽화 굽에 짓눌린 진흙의 점도와 수분량은 오직 한 곳, 이 저택 뒷마당의 축축한 호숫가 흙에서만 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호수가에 매장된 내 교통사고 블랙박스 보관함을 확인하고 오는 길이었다. 도윤의 사냥개 노릇을 하는 부패 경찰의 발소리가 내 가상 지도 위에서 둔탁하게 쿵, 쿵, 울렸다.
"민지수 씨 상태가 또 심각해졌군요, 강 대표님."
박진우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나를 동정하는 척하지만, 그의 호흡 주기는 도윤의 호흡과 완벽하게 동조하고 있었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수긍하는 그 찰나의 침묵마저 내 귀에는 거대한 음모의 소음으로 들려왔다.
나는 품 안에 감춘 금속 카트리지를 손가락 끝으로 꽉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의 땀에 젖어 들었다. 도윤은 이것을 내가 스스로 미쳐서 지껄인 망상의 파편이라 매도하려 하지만, 이 안에 담긴 생모의 협박 음성과 사망 보험금 위조 서류의 진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머릿속이 깨질 듯이 아파왔다. 초청각 능력을 과도하게 유지한 대가로 관자놀이에서 시작된 박동이 뇌 전체를 흔들었다. 과거 그 끔찍했던 교통사고 당시의 쇠 긁는 소리, 트럭의 굉음이 환각처럼 귓가를 스쳤다. 귀를 틀어막고 바닥을 구르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지금 무너지면 영원히 이 감옥의 벽 뒤에 묻힌다.
나는 호흡을 고르고, 이들이 설계한 규칙의 틈새를 바라보았다.
매일 오후 3시마다 내 얼굴을 적시던 그 신경 안정 미스트. 기기가 작동할 때마다 미세하게 울리던 그 하이피치 밸브음의 정체를 이제는 안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내 기억 세포를 죽이고 인지 체계를 왜곡하기 위해 도윤이 정밀하게 조율해 놓은 특정 주파수의 음파와 약물의 합작품이었다. 사흘 전, 내가 그 미스트의 내용물을 맹물로 채워 넣고 나서야 내 뇌를 짓누르던 안개가 걷혔다. 맑아진 정신은 내게 무기가 되었고, 동시에 그들이 파놓은 함정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
가정부 김옥자가 매일 아침 내 식탁 위에 식기를 놓을 때마다 발생시키던 이질적인 타격음. 얇은 은식기가 유리 상판에 닿으며 자아내던 3현 진동의 마찰음.
'챙, 채쟁, 챙.'
단순한 실수처럼 보이던 그 소리는 사실 아주 느리고 규칙적인 주파수의 조합이었다. 9-3-2.
그것은 김옥자가 도윤의 감시를 피해 내게 남긴 유언 같은 비상 전원 주파수 리듬이었다. 서재 도어록의 압전 소자 배선을 무력화하고 지하 밀실로 통하는 비상 버튼을 활성화하는 유일한 열쇠.
그들이 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기 위해 지어낸 가짜 규칙들이, 이제는 도윤의 목을 죄는 올가미로 변모하고 있었다. 나는 고요히 침잠하며 기회를 노렸다. 그들이 나를 미치광이로 몰아세우려 할 때, 나는 그들의 탐욕과 불신을 이용해 이 견고한 유리 성벽을 안에서부터 부숴버릴 것이다.
***
이틀 뒤 아침.
저택의 다이닝 룸은 기이할 정도로 정막했다. 창밖에는 며칠째 그치지 않는 장마비가 유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혀 흘러내리는 소리는 불규칙한 타격음이 되어 거실 바닥에 깔렸다.
식탁 위에는 김옥자가 차려놓은 따뜻한 수프와 빵이 놓여 있었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도윤의 거친 호흡 소리가 식탁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의 심장 박동은 평소의 침착함을 잃고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는 물속을 가라앉는 모래알처럼 나직하고 평온했다.
"도윤 씨."
"어, 지수야. 왜? 입맛이 없니?"
도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정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의 성대 떨림에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이틀 전 밤, 박 순경을 동원해 나를 압박하려던 계획이 내 뜻밖의 침묵과 순종으로 인해 뒤틀린 이후, 그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내가 카트리지를 순순히 내놓지 않고 비밀 서랍 깊숙이 숨겨두었다는 사실을 그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도윤의 얼굴이 있을 방향을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초청각 지도가 그의 상반신 실루엣을 뇌내에 3D로 그려냈다. 그의 어깨가 굳어 있고, 손가락이 식탁보를 잘게 문지르는 진동이 식탁을 타고 내 손끝으로 전해졌다.
"어제 말이에요... 소희가 밤늦게 제 방에 잠깐 들어왔었어요."
도윤의 호흡이 일순간 멎었다.
"소희가? 그 시간에 왜?"
"그냥... 무서워서 잠이 안 온다면서요. 그런데 소희 목소리가 평소랑 많이 달랐어요. 무척 화가 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나는 일부러 말을 흐리며 숟가락 끝으로 접시 가장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댕, 하는 맑은 소리가 다이닝 룸을 채웠다.
"무슨 이야기를 하던데?"
도윤의 질문이 날카롭게 날아왔다. 그의 심박수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75bpm에서 90bpm으로.
"도윤 씨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서요. 소희가 그러더라고요. 형부가 자기한테 약속한 서재 보상금 계좌의 분할 비율이 너무 적다고요."
도윤의 몸이 굳어지는 진동이 식탁 전체를 타고 내게 전달되었다. 나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더욱 조용하고 은밀한 주파수로 말을 이어붙였다.
"자기가 이 연극을 위해 포기한 게 얼마나 많은데, 겨우 그 정도 지분만 주는 건 말도 안 된다면서... 도윤 씨가 자기 몫을 더 늘려주지 않으면, 자기가 가진 가짜 계약서 보정본을 들고 경찰에 진짜로 가버리겠다고... 그렇게 불평하더라고요. 저는 소희가 왜 그런 무서운 농담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도윤 씨, 소희가 말한 보상금이랑 계약서가 대체 무슨 뜻이에요?"
식탁 아래에서 도윤의 다리가 떨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바지 깃이 마찰하는 스르륵 소리.
그의 좌심방 펄스가 이례적으로 거친 지수형 수축을 기록하며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100, 110... 마침내 130bpm을 돌파했다. 가식적인 미소 뒤에 숨겨진 그의 심장은 지금 터질 것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완벽주의자이자 지배자인 그에게 있어, 자신이 부리는 사냥개인 소희의 배신은 그 어떤 것보다 치명적인 모욕이자 위협이었다.
"지수야... 소희가 정말로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도윤의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억지로 내리누르려는 분노가 목구멍을 긁는 거친 소리로 새어 나왔다.
"네. 소희가 아주 화난 목소리로 그랬어요. 자기는 도윤 씨가 숨겨둔 그 '스피커 드라이버 함체'의 위치도 전부 알고 있다고... 형부를 무너뜨리는 건 일도 아니라고..."
나는 도윤이 이틀 전 복도에서 소희에게 지시했던 그 비밀 장소를 소희가 내게 누설한 것처럼 꾸며냈다. 기만과 거짓으로 가득 찬 그들의 동맹에, 내가 직접 만든 가장 정교한 오디오 균열을 밀어 넣은 것이다.
도윤의 호흡은 이제 거친 짐승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그의 이성이 탐욕과 불신이라는 톱니바퀴에 끼여 처참하게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잠시... 실례하마, 지수야. 회사에 급한 연락이 와서."
도윤이 의자를 거칠게 뒤로 밀며 일어섰다. 의자 다리가 대리석 바닥을 긁는 찢어지는 듯한 마찰음이 다이닝 룸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그의 발걸음은 2층 서재가 아닌, 저택 구석의 유선 송신망 마이크로폰 제어실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내 머릿속의 3D 청각 지도를 가동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벽면의 흡음재 틈새로, 도윤이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들어 올리는 소리가 걸려들었다.
틱, 하는 비직관적인 기계적 연결음과 함께 저택 내 유선 송신망 마이크로폰 대역이 활성화되었다. 소희의 방으로 연결되는 스피커 라인이었다.
"한소희."
도윤의 목소리가 유선망을 타고 고요한 저택의 빈 공간을 파고들었다. 그 소리는 벽을 울리고 천장을 타고 내려와 내 귀로 수렴했다. 평소의 부드러운 가공된 톤은 완전히 사라진, 살의가 뚝뚝 떨어지는 위협적인 음조였다.
- 형, 형부? 갑자기 왜 그래요?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소희의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공포가 섞여 있었다.
"네가 감히 내 뒤통수를 치려고 해? 내 아내한테 붙어서 수작을 부려?"
-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제가 언제...
"비율이 적어? 가짜 계약서 보정본을 들고 경찰에 가겠다고 협박을 해? 한소희, 네가 미쳤구나. 돈 몇 푼에 눈이 멀어 네가 누구 덕에 숨을 쉬고 있는지 잊었어?"
도윤의 입에서 짐승 같은 폭설과 분노가 배출되었다. 저택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그의 정교한 제어력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소희는 영문도 모른 채 도윤의 광기 어린 폭언에 직면했고, 그녀의 목소리 역시 억울함과 악에 받친 비명으로 변해갔다.
- 대체 누가 그래요? 내가 언제 지수 언니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형부, 그 미친년 말만 믿고 나한테 이러는 거예요? 나한테 약속한 지분 지키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 모를 줄 알아?
- 입 닥쳐! 네년이 내 서재 지하 통제실 스피커 드라이버 함체까지 언급했다며! 그건 나랑 너밖에 모르는 일이야! 지수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네가 흘린 게 아니라면!
도윤의 고함이 저택의 벽을 타고 쿵쿵 울렸다.
나는 식탁에 앉아 차갑게 식어가는 수프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내 인지 능력을 거세하기 위해 정밀하게 설계한 이 감각의 감옥 속에서, 정작 서로를 파멸로 이끄는 것은 나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품고 있던 추악한 의심과 탐욕, 그리고 내가 던진 단 한 마디의 주파수 파문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살을 뜯어먹는 잔혹한 역가스라이팅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물리적인 힘은 단 한 줌도 쓰지 않았다. 오직 그들의 목소리와 호흡, 그리고 기만의 에너지가 스스로 부딪혀 불을 뿜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저택 뒤편에서 육중한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정전이 되었을 때 내 뇌를 마비시키려던 그 60Hz의 초저주파 백업 발전기의 공진 주파수가 다시 작동하는 소리였다. 도윤이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저택 전체의 보안 시스템과 백업 전원을 수동으로 가동한 것이 분명했다. 웅웅거리는 저음의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척추를 타고 뇌로 뻗어 나갔다.
두통이 다시 몰려왔지만, 이번에는 참을 수 있었다. 내 뇌는 이미 그 주파수의 패턴을 완전히 해독하고 있었으니까.
이 저택을 무너뜨릴 마지막 트리거의 배선이 내 머릿속 지도 위에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쿵!
갑자기 저택 뒤뜰 쪽에서 유리창이 흔들릴 정도의 거친 충격음이 들려왔다.
- 이거 놓으라고! 이 미친 인간아!
소희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도윤의 거친 숨소리가 뒤엉켰다. 2층에서 뒤뜰로 이어지는 통로를 통해 두 사람이 밖으로 뛰어 내려간 소리가 들렸다. 비가 쏟아지는 마당의 진흙탕 위로 두 사람의 발소리가 엉키며 둔탁한 타격음이 발생했다.
서로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밀치며 발생하는 옷감의 마찰음, 빗속에서 육체가 진흙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둔탁한 파열음.
천둥소리가 하늘을 가르며 저택을 뒤흔들었지만, 내 귀에는 뒤뜰에서 울려 퍼지는 두 가해자의 파멸적인 물리 충돌 마찰음만이 쿵, 쿵, 가파르고 선명하게 고조되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만의 감옥이, 마침내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