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블랙박스 인양 직후 뒤돌아 서는 내 귀가 사위의 안개 속을 사가사각 헤집는 정체불명의 가짜 동생 한소희의 고르지 못한 숨소리와 날카로운 메탈 스크래퍼 소리 음향 효과를 경고음처럼 수집했다.

축축하게 젖은 잔디가 그녀의 무거운 발걸음에 짓눌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진흙 범벅이 된 구두 굽이 땅바닥을 긁어대며 내는 신경질적인 파열음이 귓가를 예리하게 찔렀다. 뺨을 때리는 차가운 빗방울 사이로, 그녀가 거칠게 뱉어내는 가쁜 호흡의 파동이 내 3D 청각 지도 위에 불규칙한 붉은 점들로 흩뿌려졌다.

"언니, 추운데 왜 자꾸 밖에 나와 있어? 응? 내가 걱정되잖아."

한소희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방금 전까지 진흙 바닥에 처박혀 욕설을 내뱉던 거친 어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과장되게 다정한 목소리로 내 한쪽 팔을 덥석 부여잡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과 축축함이 그녀의 살갗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겉으로는 우아한 척 웃고 있겠지만, 내 머릿속 입체 지도는 그녀가 주머니 안에서 메탈 스크래퍼를 쥔 채 손가락 마디마디에 잔뜩 힘을 주고 있음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었다.

"차 안에서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하면 안 되지. 비도 오는데 얼른 들어가자, 응? 형부가 보면 또 화낼 거야."

그녀는 내 몸을 반쯤 밀치듯 끌어당기며 저택 거실 안쪽으로 나를 억압하듯 유도했다. 힘의 균형을 잃은 척 순종적으로 끌려가 주었다. 품 안쪽, 갈비뼈 부근에 깊숙이 밀어 넣은 블랙박스 칩의 단단한 모서리가 살갗을 찔러왔다. 이 칩 안에는 내 눈을 멀게 하고 기억을 조각낸 그날 밤의 진실이 담겨 있을 것이다.

거실 문이 닫히자 사방을 때리던 거친 빗소리가 일순간 차단되었다. 대신 저택 특유의 고요하고 기괴한 흡음재 냄새와 저주파 백업 발전기의 미세한 공진음이 고막을 무겁게 짓눌렀다. 정전이 되었을 때 흐르던 그 60Hz의 전류음이 벽면 깊은 곳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심장을 약하게 흔들고 있었다. 언제든 이 저택의 전원을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자, 내 머릿속에 각인된 차가운 진동 주파수였다.

"소희야."

내가 나지막이 입을 열자, 내 어깨를 꽉 쥐고 있던 한소희의 손가락 끝이 굳어졌다.

"응, 언니? 왜 그래? 몸이 아직 안 좋아?"

그녀의 목소리 톤이 미세하게 치솟았다. 거짓을 말할 때 인간의 성대가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고주파의 흔들림이었다.

"머리가 맑아."

나는 천천히 거실 쇼파 쪽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상하지. 매일 오후 3시만 되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방금 들은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았는데. 그 미스트 기기가 내뿜던 차가운 안개 속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하이피치 밸브음 말이야. 그 기분 나쁜 기계음이 울릴 때마다 내 뇌세포가 하나씩 죽어가고 있었다는 걸, 사흘 전 수돗물로 미스트를 바꾼 뒤에야 겨우 깨달았어."

정적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한소희의 호흡이 완전히 멎었다. 가슴팍의 오르내림이 멈추고, 그녀의 심장 박동 주파수가 분당 120회 이상으로 급격히 치솟는 소리가 내 예민한 고막을 타고 뇌로 연결되었다.

"너, 너 지금 무슨 소리를..."

"매번 아침 식탁에서 김옥자 아주머니가 은식기를 놓으며 남기던 기묘한 3현 진동음도 이제는 아주 선명하게 이해돼."

나는 품 안에 숨겨둔 도윤의 위조 보험 계약서를 손끝으로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녀가 식탁을 톡, 톡, 두드리며 흘렸던 9-3-2 리듬 주파수. 그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었어. 서재 비밀 벽체의 압전 소자 비상 배선을 제어하고, 도윤이 숨겨둔 밀실 도어록을 강제로 해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신호였지. 아주머니는 도윤이 무서우면서도, 나를 향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그 소리 암호를 매일같이 내 귀에 주입했던 거야.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 소리로 서재의 비밀 벽을 열었지."

한소희의 구두 굽이 바닥을 짓이기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사각, 사각.

그녀의 옷자락이 마찰하는 소리에서 극도의 불안감이 베어나왔다. 나는 쉬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너희들이 경찰이라고 부르던 박진우 순경도 마찬가지야."

"박, 박 순경님이 왜..."

"그가 외곽 고속도로를 달려 방금 도착했다고 거짓말을 했을 때, 나는 그의 가죽화 밑창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어. 자갈이 짓눌리는 소리와 함께 비정상적인 머드 수분량이 느껴졌지. 고속도로 아스팔트에는 존재할 수 없는, 오직 이 저택 뒷마당 사유지 호숫가에서만 밟을 수 있는 점토질의 진흙 소리였어. 박 순경은 도윤의 사주를 받고, 내가 가졌던 차량의 블랙박스를 호수 깊은 곳에 매장하고 오는 길이었던 거야. 그렇지?"

내 목소리는 한없이 고요했고, 건조했다. 이미 모든 진실의 조각이 맞춰진 뇌 속에서 불필요한 감정의 낭비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직 이 비정상적인 소리 공간을 지배하는 나의 차가운 지성만이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한소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공기 중의 산소를 급격히 빨아들이고 있었다. 탐욕과 공포가 뒤섞인 그녀의 뇌 속 연산 장치가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쇼파에 기대어 앉아, 품 안에서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런데 소희야, 너는 참 불쌍해."

"뭐? 내가 왜 불쌍해? 정신 나간 소리 그만해!"

"강도윤이 너에게 약속한 대가 말이야."

나는 목소리를 한 단계 더 낮추며, 오직 그녀의 청각에만 꽂히도록 주파수를 조절했다. 다정하지만 뼈를 깎아내는 듯한 왜곡된 음성으로 속삭였다.

"너는 그 대가로 7억을 받기로 했다며? 참 소박하네. 강도윤이 나를 죽이고 청구할 사망 보험금의 총액이 얼마인지 알아? 백억이 넘어. 게다가 내 명의로 된 부동산 계약서까지 전부 위조해 뒀더군. 그런데 너한테는 겨우 7억이라니."

"7, 7억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도윤 씨가 나한테 준 건..."

한소희가 본능적으로 말을 내뱉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당혹감과 억울함은 감출 수 없었다. 나는 그 틈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어라? 이상하네. 너는 그날 도윤 씨에게 7억이 아닌 10억을 받았잖아? 내가 잘못 들었나? 도윤 씨가 다른 사람에게 준 돈을 착각했나 보네. 하긴, 도윤 씨가 너 몰래 다른 파트너를 두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10억?! 그 인간이 다른 사람한테 10억을 줬다고?!"

한소희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찢어졌다. 탐욕이 이성을 집어삼키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은 이제 폭주하듯 요동치고 있었다. 수축기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며 혈관을 흐르는 피의 마찰음이 내 공감각적 지도 위에 붉은 스파크를 일으켰다.

"나한테는 겨우 몇 푼 쥐여주면서 뒤로 딴주머니 차고 있었다고? 박 순경 그 새끼한테 더 챙겨준 건가? 아니면 그 늙은 가정부한테?"

그녀의 자제력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자신이 연기자라는 사실도, 나를 감시하고 억압해야 한다는 임무도 망각한 채, 오직 빼앗긴 돈에 대한 집착만이 그녀의 뇌를 지배했다.

"도윤 씨가 그럴 리 없어... 아니, 그럴 인간이야. 날 속였어. 감히 날 속여?"

그녀는 제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구두 굽을 쾅쾅 울렸다.

"내 불법 대여 금고 계좌... 신한은행 110-482-9901... 거기에 들어온 돈이 전부인데. 겨우 그 푼돈으로 도박 빚 막고 나면 남는 것도 없는데! 나한테는 인생을 걸고 이 미친 짓을 연기하라고 해놓고서!"

그녀는 분에 겨워 허둥대며 혼잣말을 쏟아냈다. 소액 도박에 중독되어 파멸해 가는 삼류 배우의 비참한 외침이 거실의 흡음 벽면에 부딪혀 지저분하게 흩어졌다.

나는 옷 안쪽에 숨겨둔 금속 카트리지의 녹음 버튼을 손끝으로 지시하듯 꾹 누르고 있었다. 그녀가 뱉어내는 모든 자백과 계좌 번호, 그리고 강도윤과의 사기 공모 사실이 소리의 진동파 그대로 메모리 칩에 무결성 상태로 보존되고 있었다.

배신자들의 연극은 이토록 조잡하고 가벼웠다. 치밀하게 짜인 도윤의 가스라이팅 감옥 안에서, 오직 탐욕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부품 하나를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소희야, 진정해."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초점이 없는 내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을 향하자, 한소희는 순간 소름이 끼친 듯 숨을 멈추었다.

"도윤 씨에게 직접 가서 물어보는 게 어때? 왜 너를 속였는지. 왜 너한테는 그 정도밖에 주지 않았는지."

내 이지적이고 깔끔한 대화 해법은 그녀의 탐욕 회로를 완벽하게 오작동시켰다. 그녀는 이제 나를 감시하는 늑대가 아니라, 동료 늑대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이빨을 드러낸 성난 짐승에 불과했다.

"그래... 물어봐야겠어. 당장 그 인간한테 따져야..."

한소희가 씩씩거리며 내 가슴팍을 향해 손을 뻗어 돈을 요구하듯 날카롭게 소리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2층 복도 끝에서부터 묵직한 진동이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단순한 발소리가 아니었다. 분노와 살의를 가득 담아 발바닥 전체로 바닥을 짓누르는, 극도로 정제되었으나 무서운 무게감을 실은 발걸음이었다. 강도윤의 구두 굽이 계단 디딤판을 내리누를 때마다, 저택의 기하학적 구조 전체가 웅웅거리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소희야."

계단 중간에서 들려오는 도윤의 목소리는 평소의 다정함을 완전히 잃어버린, 쇠를 긁는 듯한 저음이었다.

"가짜 계약서 보정본을 서재 지하 밀실 통제 스피커 드라이버 함체에 넣어뒀어. 박 순경이 곧 올 테니 그걸로 마무리해."

그의 발걸음 수치가 거칠게 떨어지며 내는 강한 진동파가 복도를 사정없이 난타했다. 계단을 한 칸씩 내려올 때마다, 그의 오른손에 쥐어진 긴 금속 막대가 계단 난간을 턱, 턱, 치며 내는 둔탁한 타격음이 내 3D 청각 지도를 온통 핏빛 경고등으로 물들였다.

도윤의 발소리가 거실 문턱을 넘어설 때까지 남은 시간은 단 10초.

내 등 뒤로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다시금 뇌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과부하가 걸린 청각 지도 위로, 도윤의 거대한 실루엣이 괴물처럼 확장되며 다가오고 있었다.

...진동파가 복도를 난타했다.

스으으윽, 탁. 스으으윽, 탁.

그가 바닥을 쓸며 내려오는 것은 묵직한 황동 손잡이가 달린 지팡이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을 때리는 그 금속성 마찰음이 정적을 깨뜨릴 때마다, 내 왼쪽 관자놀이 부근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솟구쳤다. 뇌 세포들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신호였다. 귓가에서 "삐이이—" 하는 고주파의 이명이 시작되며, 시야 대신 펼쳐져 있던 3D 청각 지도의 외곽선들이 진흙처럼 흐물거리며 일그러졌다.

"소희야, 왜 그렇게 사색이 되어 있어?"

계단 끝에 멈춰 선 도윤의 목소리가 거실의 흡음 벽면에 부딪혀 낮게 깔렸다. 평소의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미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만함과 냉소가 가득 찬, 젖은 가죽 같은 음색이었다.

한소희는 거칠게 몰아쉬던 숨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그녀의 구두 가죽이 바닥에 쓸리며 내는 마찰음에서 극도의 당혹감이 묻어났다. 그녀는 도윤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형, 형부... 그게 아니라, 언니가... 언니가 다..."

"알아."

도윤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그의 구두 굽이 거실 카펫의 미세한 보풀을 짓밟는 소리가 내 발바닥을 타고 척추로 올라왔다. 내 코끝으로 비에 젖은 양모 코트 냄새와 가벼운 소독약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가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멈췄다. 황동 지팡이 끝이 바닥을 가볍게 툭 치는 소리가 내 고막을 강타했다.

"우리 지수가 드디어 다 기억해 냈다는 거, 나도 알고 있었어."

품 안에서 서재의 위조 계약서를 쥔 내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갔다.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불규칙한 타격음 사이로, 도윤의 낮고 일정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분당 65회. 그는 이 상황에서조차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극도의 평온함이 오히려 내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지수야. 네가 매일 오후 3시마다 뿌려지던 미스트의 밸브 소리에 의문을 품었을 때부터, 나는 다 보고 있었단다."

도윤이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의 거친 숨결이 내 뺨에 닿았다.

"김옥자가 은식기를 놓으며 내던 그 유치한 리듬 주파수... 내가 정말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니? 그 늙은 여편네가 네 귀에 대고 탈출 암호를 속삭이도록 방치한 건, 내가 기획한 이 완벽한 극장의 마지막 막을 열기 위해서였어."

머릿속이 번쩍하는 통증과 함께 과거의 파편이 뇌리를 스쳤다. 뒤집힌 차량, 깨진 유리창 사이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 그리고 내 귀에 대고 "그냥 자, 지수야"라고 속삭이던 도윤의 목소리. 이명이 극에 달하며 숨이 가빠왔다.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호흡이 짧아졌다.

"네가 훔쳐낸 그 위조 보험 계약서와 협박 음성 카트리지... 참 공들여 찾더구나."

도윤이 내 주머니 위로 손을 얹었다. 그의 단단하고 차가운 손가락뼈가 옷감을 넘어 내 갈비뼈를 압박했다.

"하지만 어쩌지? 그 카트리지에 담긴 목소리는... 네가 극심한 조현병 증세로 스스로를 위협하며 혼자 지껄인 망상의 파편으로 디지털 변조되어 있단다. 네가 내 서재의 기밀 벽체를 열고 침입하는 모습은 홈 네트워크 카메라에 아주 선명하게 녹화되었고 말이야."

머릿속의 3D 지도가 완전히 깨져 나갔다.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며, 오직 그가 내뿜는 악의적인 주파수만이 귓가를 가득 채웠다.

"너는 스스로 진실을 찾아냈다고 믿었겠지만, 결국 내가 깔아놓은 레일 위를 기어온 것에 불과해. 소희 씨에게 돈을 덜 줬다고 이간질을 한 것도 아주 재미있는 시도였지만... 애초에 소희 씨의 몫은 7억도, 10억도 아니었거든."

도윤이 고개를 돌려 한소희를 바라보았다. 한소희의 거친 호흡이 일순간 굳어졌다.

"그렇지, 소희 씨? 박 순경이 가져올 서류에 서명만 하면, 원래 약속대로 이 저택의 지분 절반이 소희 씨 명의로 넘어갈 텐데... 겨우 몇 억의 현금에 눈이 멀어 내 아내의 허술한 이간질에 놀아나다니. 실망이야."

"형, 형부... 그게 아니라! 저는 그냥..."

한소희의 목소리가 공포로 찢어졌다. 그녀의 발걸음이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그때였다. 저택 외부 진입로의 축축한 자갈밭을 거칠게 뭉개며 들어오는 차량의 타이어 마찰음이 내 귀에 걸려들었다. 젖은 진흙을 헤치며 다가오는 육중한 무게감. 박진우 순경의 차였다.

동시에, 내 머리 위 2층 천장 구석에 설치된 백색소음 환풍구에서 미세한 전기 유도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정전이 되었을 때 내 뇌를 마비시키려던 그 60Hz의 초저주파 백업 발전기의 공진 주파수가, 이번에는 거실 전체를 포위하듯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귓속의 달팽이관이 찢어질 듯한 통증과 함께 몸의 균형 감각이 무너져 내렸다. 쇼파 손잡이를 잡은 내 손끝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도윤이 내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손가락 끝은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자, 지수야. 이제 박 순경이 들어오면 모든 상황이 정리될 거야. 아내의 망상증 발작으로 인한 자해 소동, 그리고 그것을 말리려다 다친 가짜 여동생... 모든 증거는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단다. 네 품 안의 그 카트리지가 네 정신병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열쇠가 되겠지."

그가 내 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 목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며 박진우의 젖은 구두 소리가 거실 안으로 무겁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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