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오후 9시 14분. 대한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 하이브리드 수술실 안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당신의 눈앞에 누워 있는 환자는 이 병원의 최대 재정적 지주이자, 불법 임상시험의 가장 거대한 피해자가 된 강석주 회장이다. 모니터의 경고음이 기계적인 박자로 수술실 벽을 때린다.

하트 레이트 48회. 혈압 180에 110. 쿠싱 반사(Cushing reflex)다. 두개골 내부의 압력이 극한으로 치솟자, 뇌로 피를 어떻게든 보내기 위해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치는 마지막 단명(短命)의 비명이다.

"글래스고 혼수 척도(GCS) 4점. 양측 동공 이완 5.5밀리리터. 빛 반사 없음."

당신의 입술 사이로 마른 음성이 흘러나온다. 곁에 선 1년 차 전공의는 겁에 질려 손을 떨고 있다. 뇌간이 밑으로 밀려 내려가는 뇌 탈출(Herniation) 직전의 단계. 지금 당장 두개골을 열고 압력을 낮추어 주는 긴급 감압술을 시행하지 않으면, 이 환자는 5분 이내에 되돌릴 수 없는 뇌사에 빠진다.

그때, 수술실 전동문이 거칠게 열린다. 붉은 수술복 차림의 백현우 교수가 보안요원 둘을 대동한 채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다. 평소의 정돈된 천재 의사의 모습은 간데없고, 충혈된 눈망울 속에는 비장함마저 서려 있다. 그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이 환자가 살아나 증언을 하는 순간, 자신이 쌓아 올린 상아탑과 병원의 불법 임상시험 프로젝트가 흔적도 없이 무너진다는 것을.

"손 놓으십시오, 백 교수."

백현우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지만 단호하다.

"이 환자는 공식적으로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힌 서류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현재 의료 과실 혐의로 직무 정지 상태입니다. 지금 무단으로 집도칼을 대는 순간, 그건 의학적 행위가 아니라 법적인 '살인'이 됩니다."

그의 논리는 치밀하다. 법정에서 자신과 병원을 방어하기 위해 오랜 시간 정교하게 설계된 방패막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의 떨리는 눈꺼풀 밑에 감춰진 압도적인 두려움을 본다. 그는 그저 태어날 때부터 악마인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의료계 최고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실패하면 파멸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처절한 인간일 뿐이다.

"이대로 두면 정말 죽습니다, 백 교수님."

전공의의 애원 섞인 목소리에 백현우는 차갑게 쏘아붙인다.

"임상시험 부작용이 아니라, 기존 지병의 악화로 인한 심정지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어. 하지만 저 미치광이가 손을 대는 순간 모든 의료 과실은 저 자가 독박을 쓰게 된다. 물러서라."

삐------

모니터의 심전도 곡선이 가파르게 평탄해지기 시작한다. 바이탈 사인의 완전한 붕괴. 뇌압(ICP)은 이미 정상치의 세 배를 웃도는 45밀리미터를 넘어섰다. 환자의 생명이 우주의 먼지처럼 회색빛으로 흩어지기 직전인 이 순간, 당신의 손에 쥐인 메스가 무영등 불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인다.

백현우가 당신의 앞을 막아서며 보안요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낸다. 당신의 외과 의사 인생을 통째로 끊어버릴 가짜 법적 덫과, 환자의 마지막 숨결이 대치한다. 침묵을 깨는 적색 경고등 속에서, 당신은 마침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