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14분. 서울중앙지법 제51민사부 법정.
이곳은 수술실과 닮아 있다. 무영등 대신 형광등 지지대가 완강한 백색광을 뿜어내고, 메스 대신 서류 뭉치가 날을 세우고 있으며, 멸균 소독약 냄새 대신 오래된 종이와 법복의 묵직한 가죽 냄새가 공기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당신은 채권자 석에 앉아 테이블 맞은편을 응시한다. 거산대학병원 측 대리인단 뒤편, 피고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신경외과 백현우 교수가 보인다. 그의 눈 밑은 짙은 피로로 젖어 있다. 그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다. 그저 난치성 뇌종양 치료제인 '뉴로-X'의 상용화가 수만 명의 환자를 구할 유일한 길이라 믿으며, 그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몇 명의 '불가피한 희생'을 의학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비용으로 정의한 타협주의자일 뿐이다. 동료를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도덕적 부채감이 그의 꼿꼿한 어깨를 미세하게 누르고 있다.
오전 10시 22분. 판사의 목소리가 엄숙한 법정에 울려 퍼진다. "피고 거산대학병원 측은 신청인(당신)의 정신적 불안정성과 독단적인 객관성 상실이 환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본안 판결 전까지 '진료행위 금지 및 의사면허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가처분. 본격적인 법정 공방이 시작되기도 전에 당신의 손발을 묶어 병원 밖으로 영원히 추방하려는 거대 로펌의 전형적인 '사회적 고사' 전술이다. 만약 이 신청이 허가된다면, 당신은 더 이상 메스를 잡을 수도 없고, 대학병원 내부망에 접속해 불법 임상시험의 결정적 증거를 복구할 수도 없다. 의사로서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오전 10시 29분. 재판장의 시선이 병원 측 법률 대리인이 제출한 두꺼운 탄원서 더미에 머문다. 국내 의학계 권위자들과 정재계 유력 인사 수십 명의 친필 서명이 담긴 서류다. "신청인이 주장하는 내부 비리의 실체는 아직 불분명한 반면, 당장 대학병원의 핵심 심뇌혈관 전문의가 의료 일선에서 배제됨으로써 발생할 공익적 피해는 매우 명확해 보입니다. 본 재판부는 신청인의 면허 효력 정지의 필요성을 깊이 검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판사의 논조는 차갑고 이성적이다. 거대 권력이 쌓아 올린 정교한 서류의 성벽 앞에서, 당신의 진실은 그저 '통제 불가능한 이단아의 광기'로 희석되고 있었다. 백현우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가늘게 한숨을 내쉰다. 자신의 침묵이 가져온 결과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처절한 무의식의 발로다.
이대로 가면 수술은 실패다. 재판장의 손이 판결봉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일촉즉발의 순간, 당신은 손끝에 숨을 불어넣는다. 미세 가위를 쥐고 직경 1밀리미터의 뇌혈관을 봉합할 때처럼, 온 신경이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는다. 이 판세를 단번에 뒤집기 위해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예리한 메스를 꺼내 들어야 한다. 당신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