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12분, 인적 없는 신경외과 보조연구실. 당신은 불 꺼진 모니터 앞에서 홀로 녹화 본을 복기하듯 마우스 휠을 내린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어제 오후부터 쏟아진 인터넷 기사들과 누리꾼들의 서늘한 댓글들이다.
[거산대병원 스타 교수, 의료 과실 은폐 의혹… 조현병적 망상 증세까지?]
내부 고발 서류를 권익위에 접수하려 했던 움직임은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당신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병원 기획조정실은 당신을 정의로운 고발자가 아닌, 자신의 의료 실수를 덮기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정신적 불안정자로 낙인찍었다.
그들이 증거로 제시한 3개월 전의 수술 동영상을 분석한다. 러닝 타임 02시 14분 15초. 당신의 마이크로 시저스(미세 가위)가 교모세포종 환자의 종양 경계면을 섬세하게 박리하고 있다. 02시 14분 40초. 전대뇌동맥 분지에서 미세한 박동성 출혈이 발생한다. 당신은 침착하게 바이폴라 포셉(양극성 응고기)을 가져가 단 3.2초 만에 지혈을 완료했다.
의학적으로 이는 수술 중 흔히 발생하는 미세 출혈에 대한 완벽한 ‘지혈(Hemostasis)’이었다. 환자는 후유증 없이 걸어서 퇴원했다. 하지만 언론에 배포된 편집본 속에서 당신의 손끝은 악마의 편집을 통해 떨리는 것처럼 보였고, 병원이 붙인 자막에는 ‘의원성 혈관 손상(의사의 과실로 인한 혈관 파열)’이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붉은 글씨로 박혀 있었다. 의학 지식이 없는 대중이 보기에는 의사가 수술 중 큰 사고를 치고 허둥대는 것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사태를 주도한 강 기조실장의 집무실에서 들었던 그의 냉혹한 음성이 귓가를 맴돈다. 강 실장 역시 한때는 환자를 살리던 유능한 흉부외과 의사였다. 그는 담배를 비벼 끄며 나지막이 말했었다. "김 교수, 자네의 얄팍한 정의감 때문에 임상시험 투자가 끊기면, 당장 다음 달에 문을 닫아야 하는 소아암 병동 어린이들은 어떻게 되지? 이 거대한 병원을 유지하려면 때로는 더 큰 선을 위해 작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네. 자네가 미쳐줘야 병원이 살아." 그의 눈빛에는 악의가 아닌, 거대한 조직을 지키기 위한 나름 철저한 공리주의적 맹신이 깃들어 있었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동료 의사들은 당신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어제까지 수술 기법을 묻던 레지던트들은 당신이 다가오자 스윽 흩어진다. 의사 면허 박탈 처분 사전 통지서가 든 흰 봉투가 주머니 속에서 무겁게 바스락거린다.
병원이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미로 속에서 당신은 철저하게 고립되었다. 이대로 있으면 광인(狂人)으로 박제되어 의사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당할 터였다. 완전히 차단당한 퇴로 속에서, 당신의 뇌는 가장 차갑고 이성적인 돌파구를 찾기 위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