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시 14분. VIP 전용 병동 내 비밀 연구실의 내부 온도는 섭씨 18도. 서늘한 공기가 당신의 노출된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다. 초미세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는 헤파필터의 단조로운 기계음만이 고요를 채우고 있다.
당신은 조심스럽게 냉장 보관함의 두 번째 서랍을 당긴다. 차가운 냉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차광용 갈색 바이알들이다. 라벨에는 ‘N-Neuro-7’이라는 코드명과 함께 극비 임상시험용이라는 붉은 낙인이 찍혀 있다. 이 약물은 신경세포 재생을 촉진하기 위해 개발된 고농도 단백질 제제지만, 임상 단계에서 치명적인 심독성(Cardiotoxicity)이 발견되어 폐기되었어야 마땅한 물질이다. 대량 투여 시 급성 심근경색을 유발해 부검을 하더라도 일반적인 ‘수술 후 급성 심정지’와 구분하기가 극히 어렵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간 다섯 명의 환자들 역시 이 투명한 액체에 의해 심장 박동을 멈추었을 것이다.
"이걸로 사람을 살리려 했다니."
한때 백현우가 취중에 흘렸던 독백이 스친다. 난치성 뇌종양으로 고통받던 자신의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밤을 새우며 연구에 매달리던 젊은 날의 그의 모습. 비록 그 열망이 거대 제약회사의 자본과 결탁하며 괴물로 변해버렸을지언정, 그의 눈빛 밑바닥에 깔려 있던 절망을 당신 또한 완벽히 타인으로서만 바라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신념을 잃은 의사의 메스는 더 이상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아닌, 그저 칼날일 뿐이다.
딸깍. 주사기와 바이알 세 개를 완충재에 감싸 가죽 가방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는 순간, 육중한 이중문 너머로 미세한 진동이 감지된다.
23시 17분. 발소리다.
정적을 깨고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구두 굽 소리는 둘. 하나는 사설 경비업체의 두꺼운 군용 부츠가 내는 불규칙하고 묵직한 마찰음이고, 다른 하나는 백현우 특유의 반듯하고 자로 잰 듯한 가볍고 예리한 걸음걸이다. 그들의 거리는 대략 30미터. 보안 구역의 복도 벽면은 소리를 반사하는 대리석이라 그 거리는 수축하듯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서버 장애가 아니고 물리적인 침입 흔적이야. VIP 병동 게이트를 전부 차단해."
백현우의 날카로운 음성이 소음 차단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비록 그가 야망에 눈이 멀어 손을 더럽혔을지라도, 신경외과 분야에서 그의 동물적인 감각과 집요함은 당신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지금 이 문이 열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확보한 증거물도,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했던 당신의 마지막 저항도 물거품이 될 터였다.
당신의 심장 박동수가 분당 110회까지 솟구친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감각이 선명하다. 손가락 끝은 차갑게 얼어붙어 가지만, 머릿속은 지나치게 맑아진다. 지금 이 어둠 속에서 당신은 단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