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오른쪽 아래, 암호화된 메신저 창에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인다. 언론사로 송고한 고발 파일 옆에 거절을 뜻하는 회색 표식이 떴다. 동기였던 대한일보 사회부 기자의 다급한 메시지가 뒤이어 도착한다.
[당신 미쳤어? 방금 국장 선에서 킬 당했어. 병원 이사회에서 내년도 광고 집행 건으로 사장을 직접 만났대. 이거 발행하면 우리 신문사 문 닫아야 해. 기사는 못 나가.]
심장이 차갑게 식어내린다. 수십억 원의 광고비라는 자본의 방패막이 앞에서, 당신이 환자들의 목숨이 가볍게 여겨지지 않기를 바라며 밤새 정리한 5명의 조작된 임상 차트는 그저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실패한 신약 '뉴로젠-H'. 원래는 혈뇌장벽(BBB)을 통과해 뇌종양 세포만을 정밀 타격하는 꿈의 치료제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참혹했다. 약물이 뇌 조직 내에서 비정상적인 삼투압 변화를 일으켜 급격한 뇌부종(Brain Edema)을 유발했고, 부풀어 오른 뇌가 연수(뇌간)를 압박해 환자들은 호흡 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이 끔찍한 부작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백현우 부원장이다. 그 또한 처음부터 환자를 죽이려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한국 신경외과학회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기형적인 열망, 그리고 임상이 실패할 경우 병원 재단이 입을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막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딜레마가 그를 타협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는 소수를 희생시켜 다수를 살린다는 자기합리화의 늪에 빠져 있었다.
치직, 치지직-.
연구실 문 저편, 정적을 깨고 거친 무전기 음성이 들려온다.
"5층 교수 연구동 서쪽 복도 진입 완료. IP 추적 결과 정확히 504호 앞입니다. 강제 개방 장비 준비해."
보안팀의 발소리다. 병원 전산망의 비정상적 트래픽을 감지한 백현우의 사냥개들이 마침내 당신의 문턱 앞까지 도달했다. 보안팀이 문을 따고 들어오는 순간, 당신의 의사 면허는 박탈될 것이고 손에 쥔 유일한 증거인 테라바이트급 하드디스크는 압수되어 영원히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초침이 가혹하게 흐른다. 저녁 9시 42분. 복도의 발소리는 이제 열 걸음 앞까지 조여온다.
언론이라는 공적인 확성기는 가로막혔다. 거대한 권력의 보호막을 뚫어내려면, 평범한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문고리가 덜컹거리며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수술용 라텍스 장갑을 낀 손가락 끝이 키보드 위에서 팽팽한 긴장감으로 떨린다. 시간이 없다. 당신의 이성적인 뇌가 생존과 폭로를 위한 확률을 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한다.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