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이 침묵에 잠겼던 그 마지막 10분의 기록을, 당신은 태블릿 PC 화면을 통해 차분히 복기한다.
오후 3시 42분. 백현우가 제출한 임상시험 데이터의 모순을 지적하던 순간의 화면이다. 당신은 녹화본 속 자신의 단호한 목소리를 가만히 경청한다.
"피험자들의 미만성 뇌소혈관 혈전증(Diffuse microvascular thrombosis)은 단순 노환이 아닙니다. 약사법 제34조를 위반하고 승인받지 않은 바이러스 벡터를 고용량 투여하여 발생한 인위적인 부작용입니다."
수술실에서 미세 혈관을 박리하듯, 당신은 법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언어로 카르텔의 부정행위를 해체해 나갔다. 임상시험 관리기준(GCP)이라는 복잡한 법적 장벽은, 당신이 제시한 환자들의 뇌 MRI 대조군 자료 앞무대에서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피해자 유족들이 흐느끼던 소리가 녹음 장치 너머로 나직하게 울려 퍼진다.
화면 속, 피고인석에서 초점을 잃고 무너지던 백현우의 얼굴이 스친다. 거산대 병원장인 숙부의 기대와 가문의 그림자 속에서, 오직 일등만을 강요받으며 자랐던 사내. 그 또한 처음 의학을 접했을 때는 순수한 열정을 가졌을 터였다. 한 사람의 의사를 괴물로 만든 것은 거대한 병원이라는 시스템의 탐욕이었음을 알기에, 당신의 마음속에는 단순한 승리감 대신 쓸쓸한 인류애가 번진다. 편협한 선악의 이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일그러진 집착을, 당신은 묵묵히 응시한다.
화면이 꺼진다. 어두워진 액정 위로 현재 당신의 모습이 비친다.
법원은 결국 병원의 불법 임상시험을 주도한 이사진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여론은 당신을 향해 '신념을 지킨 천재 의사'라는 찬사를 보냈다. 면허 정지 처분은 완전히 무효화되었으며, 거산대학병원의 썩은 환부를 도려낸 당신에게 새로이 '신경외과 과장 겸 부원장'이라는 책임이 주어졌다.
집무실 책상 위에는 혁신적인 환자 중심 치료 시스템 개편안과 함께, 오늘 오후에 집도해야 할 난도 높은 소아 뇌종양 환자의 차트가 놓여 있다. 권력의 정점이라는 왕좌에 올랐으나, 당신이 머물러야 할 진정한 장소는 달라지지 않았다.
똑똑.
"부원장님, 수술실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간호사의 목소리에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흰 가운을 걸친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메스의 온기,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온 삶을 걸고 지켜낸 가장 소중한 가치다. 당신은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수술실을 향해 걸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