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진정한 피의 제단을 가동했다! 너희 가문의 모든 인명은 사흘 뒤 죽음의 비 제물이 되리라!”

사당 바닥에 쓰러진 마교 하부 호법의 목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심연에서 긁어 올린 듯한 저주였고, 사방으로 흐트러진 피비린내와 함께 허공으로 흩어졌다. 호법의 육신이 검붉은 재가 되어 부서지는 순간, 우향의 머릿속에서 수천 마리의 벌떼가 고막을 찢는 듯한 이명이 일어났다.

쿵. 쿵. 쿵.

대지가 고동쳤다. 사당 지하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설호룡맥의 울음소리가 음산하게 지표를 뚫고 올라왔다. 기둥이 흔들리고 기와가 흘러내렸다.

우향은 검자루를 쥔 손을 바르르 떨었다. 검선인결(劍仙因結). 방금 호법을 베며 끌어다 쓴 압도적인 내공의 대가가 그의 영혼을 난도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숨을 거둔 자들의 원한과 미련, 그리고 흙바닥에 뿌려진 핏방울마다 서린 저주가 붉은 실이 되어 우향의 손목을 묶고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우윽……!”

우향이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검은 피를 토해냈다. 위장이 뒤틀리고 시야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눈앞에 방금 목을 벤 호법의 일그러진 얼굴이 환각이 되어 아른거렸다. 허공에서 수십 개의 썩어 들어가는 손들이 뻗어 나와 그의 덜미를 움켜쥐는 듯한 환청이 귓가를 때렸다.

“우향! 정신 차려라!”

설천교가 비틀거리며 우향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손 역시 피투성이였다. 철혈검법의 반동으로 전신의 혈도가 터져 나간 천교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우향은 천교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어가는 흑색 광기로 번들거렸다.

“손 치워라. 내 안의 검이 네놈의 목을 가르기 전에.”

“이 어리석은 놈이……!”

천교가 이를 악물었으나,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각혈했다.

그때, 연화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밀쳐냈다. 그녀의 하얀 소맷자락에서 은은한 약향이 퍼졌으나, 덮쳐오는 마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 있으면 모두 죽습니다. 사당의 결계가 역류하고 있어요. 어서 피해야 합니다!”

연화는 우향의 허리를 단단히 부축했다. 우향은 그녀를 밀쳐내려 했으나, 전신을 타고 흐르는 음한(陰寒)한 진기가 수시로 맥락을 끊어놓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셋은 무너져 내리는 사당의 잔해를 뚫고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등 뒤에서는 사당의 검붉은 마기가 기둥을 타고 올라가며 밤하늘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

깊은 밤, 설가 후원의 가장 은밀한 구석에 자리한 고대 나락천 약초전.

천 길 낭떠러지인 나락천의 서늘한 음기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내려앉은 이곳은, 목연화가 오랜 세월 동안 가문의 눈을 피해 귀한 약초를 재배하고 환자를 돌보던 비밀 초막이었다.

초막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우향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커흑!”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고통에 우향은 바닥을 긁으며 구토를 시작했다. 뱉어낸 것은 검붉은 핏덩이와 시커먼 마기의 잔재들이었다. 검선인결의 대가로 쌓인 영적 외채가 그의 단전을 짓누르고 있었다. 벤 자들의 죽음 직전의 공포와 원망이 환각이 되어 뇌리를 헤집었다.

“우향, 내 말을 들으세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단전의 기운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연화가 다급히 은침을 꺼내 우향의 인중과 대추혈을 찔렀다. 그러나 침 끝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를 뿐, 우향의 발작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피부 위로 검붉은 혈관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솟아올랐다.

그 옆에서 간신히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천교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거친 호흡 소리에 우향이 번뜩 눈을 떴다. 광기에 물든 시선이 천교의 오른손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굳은살과 함께 기이하게 뒤틀린 칼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우향의 머릿속에 기억 하나가 섬전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락천 절벽에서 피를 흘리며 기어 나오던 날, 가문 경계목에 칠해진 뒤틀린 흑철 흔적과 기형적인 검흔을 손으로 만졌던 기억.

그 기형적인 검흔과 지금 천교의 손목에 남은 흉터,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철혈검법의 궤적이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경계목의 흔적…….”

우향이 피를 흘리는 입술을 열어 읊조렸다.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 더러운 마공의 흔적을 남긴 연놈이…… 바로 네놈이었군, 설천교.”

천교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피하려 하지 않고 우향의 살기 어린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그래. 나다.”

“백협 설가의 소가주라는 자가, 밤마다 가문 경계에서 마교의 금기된 비기인 철혈검법을 연마하고 있었다니. 가문의 명예를 입에 담던 입으로 마공을 삼켰단 말이냐? 가증스러운지고.”

우향의 비웃음에 천교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다.

“가증스럽다고? 네놈이 가문의 몰락을 알기나 하느냐!”

천교의 목소리에 맺힌 한이 서려 있었다.

“아버님은 병들어 누우셨고, 장로들은 외세와 결탁해 가문을 찢어발기려 했다. 내 힘으로 이 가문을 지킬 방법이 없었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서라도, 마공을 뼈에 새겨서라도 저들을 도륙할 힘이 필요했다. 백협 설가가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을 보느니, 내 영혼을 마교에 팔아넘기는 편이 나았다!”

그것은 처절한 고백이었다. 가문의 존속이라는 무거운 멍에를 혼자 짊어지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온 고결한 대적자의 비장한 절규였다.

우향은 천교의 눈동자에서 묵직한 가슴앓이를 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심마의 고통이 극에 달해 더 이상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우향의 눈동자가 다시 칠흑 같은 암흑으로 물들어가며, 검자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검을 뽑아 천교를 베려 하는 찰나였다.

“그만하세요!”

연화가 우향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흔들림 없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서로를 죽인다고 해서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향, 지금 당신의 적은 천교 소가주가 아니라, 당신의 심장을 갉아먹고 있는 그 심마입니다!”

연화는 주저 없이 우향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바람이 창문을 흔들며 초막 안으로 차가운 서기를 불어넣었다. 은은히 피어오르는 약향 사이로, 연화의 따뜻한 체온이 우향의 차가운 가슴에 닿았다.

“무슨 짓이냐…… 비켜라……!”

우향이 이를 악물며 경고했으나, 연화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두 팔로 우향의 목을 끌어안으며, 자신의 이마를 우향의 이마에 맞대었다.

“도망치지 마세요. 당신이 짊어진 그 수많은 원혼의 무게를, 내게도 나누어 주셔요.”

연화의 목소리는 가느다랗게 떨렸지만, 그 안에는 태산도 움직일 법한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침을 놓고 약을 주는 기계적인 의술을 넘어서고 있었다. 자신의 영혼과 정신력을 침 끝에 실어, 우향의 뒤틀린 내면과 결착시키려는 명의(名醫)로서의 헌신이었다.

“흐읍……!”

연화가 깊은 숨을 들이쉬며 손끝으로 우향의 백회혈을 가볍게 눌렀다.

순간, 우향의 전신을 채우고 있던 피비린내 나는 살기가 연화의 몸을 타고 흘러들었다. 연화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고통으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녀는 우향을 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숙이 그를 품어 안았다.

그녀의 입술에서 나직한 독경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음을 정화하는 고대 도가의 구결이자,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는 자장가였다.

따뜻한 온기가 우향의 차가운 혈도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맹렬하게 타오르던 붉은 심마의 불길이, 맑은 시냇물 같은 연화의 진기에 닿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우향은 느꼈다. 평생 아무도 믿지 못하고, 세상 모두가 자신을 천대하고 버렸다고 믿었던 가슴속의 깊은 불신의 벽에, 연화의 체온이 온화한 균열을 내고 있음을.

연화는 품 안에서 푸른 빛을 발하는 영단을 꺼내 들었다. 나락천 침전의 극한지에서 겨우 채취해 냈던 '빙로단의 정수'였다. 비록 지금 우향의 도심이 정화되지 않아 완전히 복용할 수는 없었으나, 연화가 그 정수를 우향의 가슴 위에 얹자, 서늘하고 맑은 기운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 단전의 폭주를 강하게 억제해 주었다.

우향의 호흡이 점차 평온을 되찾아갔다. 칠흑 같던 눈동자에 맑은 광채가 다시 돌아왔다.

***

깊은 의식의 수렁 속에서, 우향은 차가운 바람을 맞았다.

눈을 뜨니 그곳은 나락천의 천 길 절벽 위였다. 끝없는 심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거칠게 흔들었다.

그 절벽 끝, 푸른 안개 속에서 한 노인이 공중에 가부좌를 틀고 부유하고 있었다. 등 뒤로 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는 존재. 백발검선이었다.

“허어, 꼴이 말이 아니구나, 녀석아.”

검선이 혀를 쯧쯧 차며 깐족거렸다.

“남의 목을 벨 때는 신이 났겠지. 검선인결의 위력이 짜릿했더냐?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네놈이 벤 그 하찮은 목숨들의 미련이 네 단전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숨쉬기조차 힘들 터이지.”

우향은 차가운 눈으로 검선을 올려다보았다. 고통 속에서도 그의 자존심은 꺾이지 않았다.

“이 고통을 피할 비책이 없다면 사라지십시오. 시끄럽습니다.”

“허허, 성질 머리 하고는. 여전히 오만하기 그지없구나.”

검선이 허공에서 발을 구르며 우향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형체는 푸른 안개처럼 흐릿했지만, 그 눈빛만큼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예리하게 빛났다.

“피하려 하지 마라. 인과란 도망칠수록 더 거대한 그물망이 되어 네 목을 조여올 뿐이다. 검선인결을 얻은 자의 숙명은 벨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벤 자들의 원한을 온전히 제 몸으로 삼켜 정화할 때 완성되는 법이다.”

검선이 우향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실체가 없는 손가락이었음에도, 우향의 가슴속에 묵직한 도가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들이 남긴 인과적 외채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여 네 손으로 청산할 때, 비로소 무결(無缺)한 선천진기가 각성할 것이다. 천하에 무결한 독존자(獨尊者)가 되고 싶다 하지 않았더냐? 그렇다면 그 피비린내 나는 인과를 전부 삼켜 네 검의 양분으로 삼아라.”

검선의 형체가 점차 푸른 빛 무리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흘이다. 사흘 뒤에 네 가문은 피의 제단이 되리라. 도망칠 테냐, 아니면 마교의 심장을 찢고 독존의 길을 걸을 테냐?”

그의 비장한 질문이 나락천의 계곡 사이로 길게 메아리쳤다.

***

“……!”

우향이 번쩍 눈을 떴다.

초막 안의 서늘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 들어왔다. 전신의 혈도를 짓누르던 통증은 연화의 헌신적인 치유와 빙로단의 기운 덕에 기적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옆을 바라보니, 연화는 우향의 손을 꼭 쥔 채 지쳐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우향의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타인을 믿지 못하던 우향의 마음속에,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때였다.

쉬이이익!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파공음이 대기를 갈랐다.

우향은 급히 연화를 안아 들고 초막 밖으로 몸을 날렸다. 천교 역시 기력을 간신히 회복했는지 검을 짚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들의 눈앞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가문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어둠이 돌연 붉은색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솟구쳐 오른 검붉은 장막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반구 형태의 결계를 형성했다. 수라한빙결계(修羅寒氷結界). 마교의 비기 중 하나이자, 생명체는 물론 영기까지 가두어 말려 죽이는 잔혹한 결계였다.

“이, 이것은……!”

천교의 신음성이 들렸다.

북방의 검은 밤하늘 한가운데, 붉은 결계의 꼭대기에서 검붉은 마기가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날개를 펼친 불타는 새의 형상, 마교의 상징인 봉황(鳳凰)의 표식이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검붉은 봉황 표식이 기괴하게 붉은 빛을 뿜어내며 점화되었다. 가문 전체가 붉은 지옥의 감옥에 갇힌 것이다.

사흘 뒤의 파멸을 예고하는 종소리처럼, 대지가 다시 한번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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