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자욱하게 밀려드는 밤안개는 대나무 숲의 청량한 향취마저 집어삼키고 있었다. 숲의 음산한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바람 소리만이 아니었다. 쇠사슬이 긁히는 듯 거칠고 탁한 숨소리가 축축한 대기 속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설우향은 걸음을 멈추었다. 사각, 사각, 마른 잎을 밟는 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신형을 안개 속에 묻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낮 동안 밀정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격돌이 벌어졌던 폐가 뒤편의 공터였다.

달빛이 구름 틈새로 겨우 비집고 나와 희뿌연 은색 선율을 대지에 드리웠다. 그 미약한 빛 아래, 한 사내가 고목을 붙잡고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끄으으윽……! 헉, 후우……."

짐승이 목을 긁는 듯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사내의 상체가 앞으로 꺾이더니, 이내 검붉은 선혈 한 움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밤이슬을 머금은 풀잎들이 핏방울에 닿아 검게 타들어 가며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렸다.

설천교였다.

백협 설가의 독보적인 천재이자 차기 가주로 추앙받던 소가주.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으로 가문의 권위를 대변하던 그의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마에서부터 턱밑까지, 검붉은 혈선들이 실핏줄처럼 돋아나 꿈틀거렸다. 그것은 정종(正宗)의 내공이 아닌, 마교의 금기된 비기인 철혈검법(鐵血劍法)을 억지로 끌어다 쓴 자만이 겪는 주화입마의 징후였다.

천교의 손에 쥐어진 검 역시 설가의 상징인 설호검이 아니었다. 뒤틀린 칼날 위로 검붉은 기운이 뱀처럼 똬리를 틀며 사악한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향은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안광이 천교가 짚고 서 있는 사당 뒤편의 고목 기둥으로 향했다. 순간, 우향의 미간이 좁아졌다.

검게 그을린 나무 표면. 그곳에는 기형적으로 뒤틀린 검흔과 함께 끈적한 흑철 흔적이 눌어붙어 있었다.

‘이 흔적은…….’

우향의 뇌리에 기억의 파편이 스쳤다. 나락천의 깊고 어두운 심연에서 죽음의 사투를 벌이고 마침내 지상으로 기어 나왔던 첫날 밤. 가문의 경계선에 서 있던 거대한 경계목을 만졌을 때 손끝을 타고 흐르던 그 기괴하고 차가운 이질감. 그때 만졌던 뒤틀린 흑철 흔적과 지금 천교가 짚고 있는 고목의 검흔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하고 있었다.

그것은 타인의 흔적이 아니었다. 가문을 지키겠노라 큰소리치던 소가주 설천교가, 밤마다 아무도 모르게 이곳에서 마교의 금단 무공을 수련하며 내공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해 흘린 피와 검기가 남긴 참혹한 증거였다.

"결국…… 네놈이 가문의 경계에 그 더러운 마공의 흔적을 남긴 주범이었군."

안개 속에서 울려 퍼지는 우향의 건조하고 차가운 음성에 설천교의 신형이 크게 움츠러들었다. 천교는 황급히 검을 돌려세우며 뒤를 돌아보았다. 핏발이 선 그의 안광이 우향을 향해 쏘아졌다.

"설…… 우향……!"

천교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입가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소맷자락으로 거칠게 훔쳐내는 그의 손길은 떨리고 있었다.

그 격렬한 움직임에 천교의 겉옷이 찢어지며 어깨너머로 흘러내렸다. 달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의 등허리를 본 순간, 우향은 묵묵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천교의 등허리는 온전한 살점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척추를 따라 길게 늘어선 검붉은 낙인들은 마치 수십 마리의 지네가 가죽을 뚫고 지나간 것처럼 흉측하게 굳어 있었다. 마교의 철혈검을 수련하기 위해 억지로 기혈을 뒤튼 흔적이었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굳어 생겨난 그 처절한 흉터들은, 그가 이 금단의 힘을 얻기 위해 얼마나 지옥 같은 고통을 스스로 감내해 왔는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백협 설가의 소가주라는 자가, 마교의 썩은 오폐수를 단전에 채워 넣고 있었단 말이냐."

우향의 목소리에는 깊은 멸시와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

천교는 비틀거리면서도 검을 고쳐 잡았다. 그의 눈빛에는 굴복하지 않겠다는 오만함과, 그 오만함 뒤에 숨겨진 깊은 슬픔이 혼재되어 있었다.

"서자 주제에…… 네가 가문의 멸문 압박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

천교의 절규가 대나무 숲의 정적을 깨뜨렸다.

"아버님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셨고, 가문의 장로라는 자들은 천명회방의 은광태에게 꼬리를 흔들며 가문을 통째로 넘기려 했다! 내게 남겨진 것은 껍데기뿐인 소가주의 명예뿐이었단 말이다! 내가 이 더러운 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설가는 이미 사흘 전에 중원 지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피를 토하는 듯 비장했다. 가문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괴물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광기 어린 집념. 그것은 평생 천대받으며 자라나 타인을 믿지 못하는 우향의 결함과는 또 다른, 가문이라는 굴레에 묶인 자의 처절한 족쇄였다.

"그것이 네가 선택한 길인가?"

우향의 손이 자연스럽게 검자루로 향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검선인결의 푸른 진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벤 적들의 원한과 미련이 심마가 되어 가슴을 조여 왔지만, 우향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힘의 본질을 흐리는 자는 결국 그 힘에 잠식당할 뿐이다. 편법으로 얻은 마공으로 가문을 지키겠다는 것은, 도둑에게 열쇠를 쥐여주는 것과 다름없지."

"닥쳐라! 나락천 절벽 아래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고 해서 네가 가문의 구원자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구나!"

천교의 눈에 서린 핏빛 기운이 극도에 달했다.

"나는 백협 설가의 적자다! 설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내 혼백을 마교의 제단에 바쳐서라도 그놈들을 멸할 것이다! 설사 그것이 파멸의 길일지라도!"

스릉!

천교의 뒤틀린 검이 허공을 가르며 붉은 궤적을 그렸다. 철혈검법의 흉포한 검풍이 대나무 숲의 안개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붉은 검기가 우향의 턱밑까지 쇄도했다.

우향은 피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백협 설가의 설호검이 달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다.

정종의 차가운 설호진기와 마교의 흉포한 철혈검기가 허공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쿠우우웅!

두 천재의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고요하던 사당 주변의 대지가 일제히 요동쳤다. 사당의 기와들이 비명처럼 덜컹거리며 깨져 내렸다.

천교의 철혈검기는 날카롭고 잔인했으나, 우향의 검 끝에 실린 검선인결의 묵직한 힘을 뚫지 못했다. 우향의 내공은 이미 십대 고수 반열에 오른 것. 비록 심마의 대가가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그가 펼치는 초식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절대자의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크윽……!"

천교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그의 검붉은 혈선들이 더욱 짙어지며 입가에서 다시금 피가 흘러내렸다. 우향은 검을 거두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천교를 내려다보았다. 가문을 위해 스스로를 훼손한 자의 뜨거움과, 그 뜨거움을 심연처럼 차갑게 짓누르는 우향의 압도적인 무력이 공터의 분위기를 지배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기운이 팽팽하게 맞서던 사당 지붕 위로, 난데없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파아아앗!

단순한 밤의 어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정제된, 사람의 생기를 말려 죽이는 사악한 천외 마공(天外 魔功)의 독기였다.

"흐흐흐…… 가문의 두 천재가 여기서 골육상쟁을 벌이고 있군. 참으로 눈물겨운 광경이로다."

스산한 웃음소리가 사당의 기와지붕을 흔들며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우향과 천교는 동시에 검을 거두며 지붕 위를 올려다보았다. 안개 속에서 스르륵 나타난 형체들. 그들은 검은 가사를 걸치고, 얼굴에는 피 흘리는 귀면(鬼面)을 쓴 자들이었다.

"천명회방의 척살 호법들……!"

천교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지붕 위뿐만이 아니었다. 사당을 둘러싼 대나무 숲 도처에서 서늘한 살기가 일제히 피어올랐다. 어둠을 타고 소리 없이 나타난 자들의 수가 어림잡아 백여 명에 달했다. 그들은 천명회방주 은광태의 최측근 정예 무사들이었다.

가장 앞에 선 거구의 귀면 호법이 음침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방주님께서 전하시는 전언이다. 백협 설가의 후계 구도는 이미 의미가 없다. 스스로 무릎을 꿇고 우리의 제단에 피를 바친다면, 가문의 명맥만큼은 유지해 주겠노라고 하셨다. 어찌하겠느냐? 가문과 함께 멸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주인을 모셔 살아남을 것인가?"

백여 명의 무사가 뿜어내는 숨 막히는 살기가 사당을 완벽하게 에워쌌다.

우향은 검자루를 꽉 쥐었다. 단전에서 일어나는 심마의 통증이 다시금 그의 뇌리를 찌르고 들어왔지만, 그의 입꼬리는 냉소적으로 올라갔다. 천교 역시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검을 고쳐 잡았다. 비록 길은 달랐으나, 두 사람의 눈빛에 서린 귀기는 천명회방의 사악한 독기보다 더욱 짙게 타오르고 있었다.

"가문을 개들에게 넘길 바에야, 이 자리에서 먼저 네놈들의 목을 베어 제단에 바치겠다!"

천교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그의 외침은 숲 전체를 뒤흔드는 뇌성이 되어 쏟아졌다. 가문의 비장한 천재는 이미 자신의 파멸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오만과 자존심은 적들 앞에서 단 한 걸음의 퇴로도 허락하지 않았다.

스으윽.

천교의 신형이 안개 속을 가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뒤틀린 검날이 허공에 거대한 붉은 반월을 그리며 호법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철혈검법(鐵血劍法) 제삼초, 철혈낙화(鐵血落花)!

붉은 비가 내리듯 쏟아지는 검기가 귀면 호법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지붕 위에 서 있던 호법은 냉소하며 거대한 구환도(九環刀)를 치켜들었다. 쇠고리들이 절규하듯 울부짖으며 검기를 받아쳐 냈다.

콰아앙!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격렬한 파공음이 백야를 찢었다. 사방으로 튀는 불꽃이 안개 속에 붉은 궤적을 남겼다. 천교의 일격은 매서웠으나, 이미 주화입마로 뒤틀린 기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착지하는 천교의 무릎이 가볍게 꺾였다.

"쿨럭……!"

또다시 한 움큼의 검은 피가 그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허약하구나, 소가주여. 마공을 익히고도 제 통제조차 못 하는 그릇이라니!"

호법이 구환도를 크게 휘둘렀다. 칠흑 같은 마기가 칼날을 타고 일어나 천교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방어할 기력을 잃은 천교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흔들렸다.

그 찰나의 순간, 천교의 시야를 가로막는 무채색의 그림자가 있었다.

스어억!

차가운 설호의 진기가 허공을 가르며 마기를 동결시켰다. 우향의 검 끝에서 뻗어 나온 백색의 검기가 구환도의 무거운 칼날을 정면으로 튕겨냈다. 호법의 거구가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나며 지붕의 기와들이 사방으로 박살 나 튀었다.

"……설우향."

천교가 이를 악물며 우향의 등을 노려보았다. 구원받았다는 안도감보다, 서자에게 등을 보였다는 수치심이 그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그러나 우향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사방을 메운 백여 명의 척살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가문의 은원은 우리끼리 정리한다. 밖에서 기어들어 온 쥐새끼들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우향의 목소리는 밤바람보다 차가웠다. 그의 단전 깊은 곳에서 검선인결(劍仙因結)의 웅혼한 내공이 용솟음쳤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압도적인 힘. 무림 십대 고수급의 무력이 그의 손끝에서 맥동했다.

"오만하구나! 모두 처단하라!"

호법의 호령과 함께 사방의 숲에서 백여 명의 귀면 무사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그들이 뿜어내는 도광과 검기가 사당을 중심으로 거대한 그물을 형성하듯 좁혀왔다.

우향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검자루를 쥔 그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온다.’

검선인결의 힘을 해방하는 순간, 그가 감내해야 할 지옥이 또다시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우향은 검을 가슴 앞으로 세웠다.

검선인식(劍仙因式) 제이초, 인과선풍(因果旋風)!

비바람이 몰아치듯, 푸르고 투명한 검기가 우향의 신형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회전했다.

콰콰콰쾅!

사방에서 쇄도하던 척살대 무사들의 신형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그들의 검과 도가 허무하게 조각나 흩어졌다. 푸른 광풍이 지나간 자리, 수십 명의 무사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피를 뿜으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단 한 초식에 펼쳐진 압도적인 학살이었다.

"아아아악!"

"살려줘……!"

그 순간, 베어 넘어진 적들의 단말마가 우향의 고막을 찢고 뇌리로 침투했다.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원혼들의 울부짖음. 그들이 가진 사소한 미련과 원한, 가족을 남겨두고 죽어가는 비참함이 영적인 붉은 실이 되어 우향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전신의 혈도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우향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내색하지 않으려 버텼다. 그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며 심마의 기운이 뇌리를 흐리게 만들었다.

"흐하하하! 역시 소문대로군!"

뒤로 물러나 있던 귀면 호법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손에는 이미 기이한 붉은색 부적이 쥐어져 있었다.

"방주님께서는 이미 네놈이 가진 힘의 기괴한 대가를 간파하고 계셨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제 영혼을 갈아 넣는 괴물 놈! 어디 이 힘 앞에서도 버텨보아라!"

호법이 부적을 바닥에 내던졌다.

퍼엉!

사당 앞마당의 흙바닥이 시커멓게 뒤틀리며, 붉은 혈광(血光)이 대지 위로 솟구쳐 올랐다. 사당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백여 명의 시신과 생존자들이 일제히 발작을 일으키며 피를 토했다. 그들의 피가 바닥으로 흡수되며 기괴한 진법의 문양을 완성해 나갔다.

천명회방의 비기, 혈광결계(血光結界)가 가동되는 순간이었다.

붉은 장막이 사당 전체를 돔 형태로 덮어 씌웠다. 결계 내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사방에 음산한 음기가 가득 찼다. 우향의 단전에서 요동치던 심마의 독기가 결계의 사악한 기운과 공명하며 걷잡을 수 없이 날뛰기 시작했다.

"으윽……!"

우향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시야가 붉은 핏빛으로 물들며, 방금 자신이 벤 무사들의 환영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같이 가자……."

"왜 우리를 죽였느냐……!"

환청이 뇌수를 헤집어 놓는 와중에, 천교 역시 결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의 철혈검 기운이 결계의 마기에 흡수당하며 급격히 쇠약해지고 있었다.

고립무원의 사당. 백여 명의 적들이 뿜어내는 혈광 속에서 두 명의 가문 후계자는 완벽하게 갇혀버렸다.

귀면 호법이 구환도를 질질 끌며 우향을 향해 다가왔다. 쇠고리 소리가 저승사자의 발걸음처럼 가깝게 들려왔다.

"이 결계 안에서는 네놈이 천하제일의 내공을 가졌을지라도 산송장에 불과하다. 천명회의 제단에 피를 바치고, 가문의 몰락을 똑똑히 지켜보아라."

호법의 구환도가 우향의 정수리를 향해 무겁게 내려앉는 순간, 우향의 품 안에서 은은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일찍이 목연화가 그의 심마를 억제하기 위해 건네주었던 어떤 영물의 기운이었다.

우향의 흐려지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러나 결계의 붉은 쇠사슬은 이미 그의 사지를 단단히 묶어 내리고 있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우향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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