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비산했다. 사당의 단단한 청석 바닥을 찢고 솟구쳐 오른 것은 백골과 썩어 문드러진 살점들이었다. 은 장로가 흘린 붉고 검은 피가 밀벽의 주술 문양에 스며들자마자, 지하 설호룡맥의 거대한 음기(陰氣)가 폭사한 결과였다.
쿠구구구궁!
대지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사당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천장으로부터 기와가 떨어져 내리고 먼지가 자욱하게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 아비규환의 한가운데서, 어깨를 관통당한 은 장로가 피를 토하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늦었다! 방주님의 대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너희 모두 이 사당과 함께 묻히리라!"
은 장로의 목소리에는 이성을 잃은 자의 광기가 가득했다. 그의 비열한 안광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자의 그것이었다.
우향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밀려드는 사악한 음기와 독기는 그의 단전을 사정없이 옥죄었고, 검선인결의 업화가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격통을 유발했다. 머릿속에서는 수십, 수백 명의 망자들이 지르는 곡소리가 이명처럼 번지며 정신을 어지럽혔다.
‘베어라. 네 앞에 서 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베어 피로 단전을 채워라!’
심마의 음성이 귓가를 때렸으나, 우향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타인을 결코 믿지 않으며 오직 스스로의 힘만을 신뢰해 온 그의 지독한 고독과 결함이, 역설적으로 그가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심마의 유혹을 버텨내게 만드는 강인한 버팀목이 되었다.
"은 장로, 네놈의 얕은 수작은 여기까지다."
우향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바람 한 점 없는 사당 내부에 그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스스스슥!
흙을 뚫고 나온 꼭두각시 시신들이 일제히 우향을 향해 쇄도했다. 썩은 살점 사이로 드러난 뼈마디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갈랐다. 그들의 손가락 끝에는 시퍼런 독기가 서려 있었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그 기세에 눌려 숨조차 쉬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우향의 신형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스윽.
그가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자, 검신에서 눈이 시리도록 푸른 검광이 뿜어져 나왔다. 검선인결의 비기인 인과검식(因果劍式). 우향의 신형이 허공을 가르며 유려한 궤적을 그렸다.
초식명: 인과검식 제2식, 낙화무흔(落花無痕).
파아앗!
한 줄기 백색의 검기가 반월형을 그리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그 위력은 파괴적이었다. 우향의 앞을 가로막던 꼭두각시 시신들의 목이 일제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수십 개의 썩은 육신이 땅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 이럴 수가...! 그 나이에 어찌 그런 경지의 검기를...!"
도망치려던 은 장로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는 어깨의 부상을 무릅쓰고 품에서 사악한 혈단(血丹)을 꺼내 입에 넣으려 했다. 천명회방의 비약으로, 일시적으로 공력을 폭발시키는 금단의 약물이었다.
"어림없다."
우향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의 검 끝이 은 장로의 손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걱!
"아아악!"
은 장로의 오른손이 혈단과 함께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잘려 나간 단면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우향은 멈추지 않고 검을 일직선으로 뻗었다.
푸학!
차가운 철검이 은 장로의 가슴팍을 정확히 관통했다. 은 장로의 신형이 굳어졌다. 그의 입에서 거품 섞인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컥... 네, 네놈이... 어찌... 나락천에서 살아 돌아와..."
은 장로의 눈동자가 서서히 풀려갔다. 그리고 그 순간, 우향의 전신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검선인결의 대가. 자신이 벤 적의 마지막 원한과 미련,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이 고스란히 검신을 타고 우향의 영혼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우향의 시야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뇌리 속으로 은 장로가 평생 동안 품어온 지독한 원망과 서러움이 환각이 되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아들아... 내 아들아...’
기억 속에서, 은 장로는 천명회방의 비열한 첩자로 살아가며 단 한 번도 자신의 핏줄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했다. 가문의 눈을 피해 백협 설가의 가장 천한 노비이자 하급 마부로 숨겨두었던 자식. 평생 동안 첩자라는 신분 때문에 자식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주가의 눈치를 보며 멀리서 바라만 보아야 했던 한 노인의 처절한 슬픔이 우향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팠다.
‘내가 죽으면... 그 아이는 어찌 살란 말이냐. 가문에서 가장 천대받는 노비로 똥오줌을 치우며 평생을 멸시받아야 한단 말이냐...’
은 장로의 가슴속 깊이 응어리진 서러움이 우향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우향의 눈에서 핏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자신 역시 가문의 서자라는 이유로 모진 천대와 무시를 받으며 자라왔다. 그렇기에 버림받은 자식의 뼈아픈 눈물과 원망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지독한 심마가 그의 단전과 영혼을 짓눌러 숨조차 쉬기 힘들게 만들었다.
"우향 씨!"
사당의 천장이 무너지며 서까래가 떨어지는 와중에, 목연화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등 뒤로 백발검선의 허무맹랑한 영체가 나타나 혀를 찼다.
"쯧쯧, 미련한 녀석아. 남의 원한을 그렇게 고스란히 처먹었으니 속이 뒤집어질 수밖에 없지. 체하기 딱 좋은 상이로다. 어서 여길 빠져나가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우향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극악한 검독과 심마의 격통 속에서도, 그는 흔들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텼다. 은 장로의 시신은 이미 검선인결의 힘에 의해 서서히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우향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은 장로가 쓰러졌던 밀벽 아래의 흙바닥으로 향했다. 은 장로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장소였다.
서걱, 서걱.
그가 검 끝으로 단단한 돌바닥의 갈라진 틈을 파헤쳤다. 목연화는 그 광경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우향의 고집스러운 얼굴을 보고는 감히 말리지 못했다.
이윽고 흙더미 속에서 때 묻은 낡은 목함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향이 목함을 열자, 그 안에는 아주 낡은 은비녀 한 장과 핏빛으로 쓰여진 서신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은 장로가 평생 동안 자신의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으나, 끝내 전하지 못했던 유품이자 가슴 아픈 참회록이었다.
"그것은... 무엇인가요?"
목연화가 다가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배어 있었다.
"치러야 할 빚이다."
우향의 목소리는 쇠가 긁히는 듯 갈라져 있었다. 그는 목함의 먼지를 털어내고 품속 깊은 곳에 소중히 넣었다. 가슴속에서 요동치던 심마가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된 것은 아니었다. 이 유품이 주인을 찾아가기 전까지는, 이 고통은 끝나지 않을 터였다.
사당을 빠져나온 우향의 발걸음은 백협 설가의 서쪽 외곽으로 향했다. 그곳은 가문에서 가장 천한 마부들과 하급 무사들이 기거하는 마구간이 있는 곳이었다. 밤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와 대나무 숲을 흔들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타닥, 타닥.
어두운 마구간 한구석에서 희미한 등불만이 빛나고 있었다. 그곳에는 낡은 옷을 입은 소년이 홀로 앉아 말의 여물을 썰고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은소백. 가문의 하급 마부이자, 은 장로가 평생 숨겨온 유일한 아들이었다. 소백의 손은 차가운 밤바람에 터져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의 눈에는 지독한 외로움과 서러움이 서려 있었다.
우향이 어둠을 뚫고 소백의 앞에 섰다. 갑작스러운 소가주의 등장에 소백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하던 일을 멈추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소, 소가주님! 이 늦은 밤에 어찌 이런 누추한 곳까지... 제게 무슨 죄가 있사옵니까? 살려주십시오!"
소백의 전신이 낙엽처럼 떨렸다. 가문에서 천대받는 하급 마부에게 소가주라는 존재는 하늘과도 같았기에, 그의 등장은 죽음의 공포와 다름없었다.
우향은 아무 말 없이 소백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건조했으나, 그 안에는 묘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우향은 품속에서 은 장로의 낡은 목함을 꺼내 소백의 앞에 툭 던졌다.
"네 부친이 남긴 것이다."
소백이 바닥에 떨어진 목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목함을 열었다. 그리고 목함 안의 은비녀를 확인하는 순간, 소백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 이것은... 어머니의..."
그것은 아주 어릴 적,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소백에게 보여주었던 유일한 유품의 짝이었다. 소백은 떨리는 손으로 목함 안의 혈서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혈서에는 비록 가문을 배신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식만큼은 떳떳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던 은 장로의 피 끓는 고백과 참회가 담겨 있었다.
"아버... 지... 당신이 정말로 제 아버지이셨습니까... 왜 한 번도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으셨습니까..."
소백은 목함을 품에 안고 마구간 바닥에 엎드려 통곡을 터뜨렸다. 소년의 눈물이 차가운 땅바닥을 적셨다. 평생 동안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실제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는 진실을 마주한 소년의 가슴속 앙금이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우향의 가슴을 옥죄고 있던 보이지 않는 붉은 실, 인과의 고리가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화아아아악!
은소백의 눈물과 은 장로의 미련이 청산됨과 동시에, 우향의 단전 깊은 곳에서 태풍과도 같은 진기가 솟구쳤다.
늘 그의 기혈을 압박하며 괴롭히던 검독과 심마의 어두운 기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고대 검선이 남긴 순수하고 맑은 선천지기(先天眞氣)였다. 뒤틀려 있던 경맥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며 넓어졌고, 단전의 크기가 이전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검선인결의 진정한 힘이 깨어난 것이었다. 적을 베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적의 원한과 인과를 청산함으로써 스스로를 완성해 가는 무결(無缺)의 경지.
우향의 눈동자가 깊고 투명한 백색의 검광을 발했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이미 평범한 일류 고수들을 아득히 초월하여, 무림의 십대 고수 반열에 육박하는 웅혼함을 품고 있었다. 그의 육체는 한층 더 단단해졌고, 내공의 한계선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뒤에서 지켜보던 목연화가 조용히 걸어 나왔다.
그녀의 맑은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자신을 해치려 했던 음모자의 아들을 찾아가 그의 슬픔을 달래주고, 남의 원한마저 자신의 몸으로 감싸 안으며 묵묵히 고통을 견뎌내는 우향의 고결하고도 외로운 싸움. 그것은 그녀가 평생 보아온 그 어떤 무인의 길보다도 비장하고 아름다웠다.
"우향 씨..."
연화의 목소리가 밤바람에 실려 가늘게 떨렸다.
"남들은 그저 복수라 부르고 끝낼 일에... 당신은 왜 이토록 스스로를 깎아내며 타인의 원한까지 짊어지려 하십니까. 당신의 몸은 이미 성한 곳이 없는데..."
그녀의 눈에 담긴 진심 어린 걱정과 슬픔이 우향의 차가운 가슴을 두드렸다. 우향은 소백의 통곡 소리를 뒤로한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으나, 눈빛만큼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맑게 빛나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검이 가진 무게다. 내가 선택한 힘의 대가이기도 하지."
"하지만..."
연화는 우향이 짊어진 고독의 깊이를 느꼈다. 평생 아무도 믿지 못하고 외롭게 걸어왔을 그의 삶이, 이 거대한 인과의 저주 속에서 더욱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연화는 조용히 다가가 우향의 거칠고 상처 입은 손을 감싸 쥐었다. 따뜻한 온기가 우향의 차가운 피부를 타고 단전으로 스며들었다.
"그 무거운 짐을 혼자서 다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의 곁에서 그 독과 심마를 치료할 방법을 반드시 찾을 테니까요. 제 의술은 당신을 위해 쓰일 것입니다."
우향은 그녀의 따뜻한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평생 동안 타인을 경계하며 살아온 그였지만, 목연화라는 존재만큼은 그의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아주 조금씩 열어젖히고 있었다.
밤이 깊어 가며 사당 주변의 소란은 점차 가라앉았다. 우향은 내공이 정화되며 한결 가벼워진 신형을 이끌고 가문의 후원을 순찰하기 시작했다. 아직 천명회방의 마교 결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사각, 사각.
밤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가문 북쪽의 대나무 숲길을 걷던 우향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바람을 타고 기이한 쇠사슬 소리와 함께, 억눌린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우향은 신형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저 앞, 낮에 밀정들과의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던 폐허의 폐가 뒤편이었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가 나무를 붙잡고 몸을 떨고 있었다.
"끄으으윽...!"
고통에 찬 신음 소리와 함께, 그 인물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한 움큼의 시커먼 피를 대지 위에 구토했다.
달빛이 안개를 뚫고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는 사촌 형이자 가문의 독보적인 천재인 소가주 설천교였다. 그의 손에는 백협 설가의 검이 아닌, 검붉은 기운이 일렁이는 뒤틀린 검이 쥐어져 있었다. 천교의 얼굴에는 마교의 금기된 비기인 철혈검법(鐵血劍法)의 부작용으로 인한 검붉은 혈선들이 기괴하게 돋아나 있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 설천교의 처절하고 사악한 실체가, 우향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