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르릉! 쾅!
사당의 거대한 목조 문이 단숨에 박살 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휘날렸다. 자욱한 먼지 구덩이 사이로, 검은 연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일어섰다.
"이, 이럴 수가……!"
설천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사흘 전 분명히 서거하여 관 속에 누워 있어야 할 가주 설무강의 시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시신이 아니었다. 전신이 기형적으로 부풀어 올랐고, 피부는 검푸르게 죽어 있었으며, 온몸에 검은 사슬과도 같은 조종술의 붉은 궤적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마교의 천도가 가해진 괴뢰(傀儡).
가주의 거대한 시신 환영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허공을 향해 포효했다.
크오오오오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사당 내부에서 검은 폭풍이 불어 닥쳤다. 거대한 음기가 가도 전체를 휩쓸며 설우향과 설천교를 덮쳐왔다.
스산한 밤바람이 피비린내를 품고 울부짖었다. 은색의 달빛마저 먹구름 뒤로 숨어버린 밤, 사당 앞에 내려앉은 어둠은 질척하고 무거웠다.
우향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발끝이 대지를 굳건히 디디며, 뒤틀린 기혈을 억누르기 위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혈향이 번졌다. 지독한 심마의 속삭임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네가 벤 자들의 원한이 네 살을 파고들 것이다. 종국에는 너 또한 저 괴물과 다를 바 없는 시체가 되리라.’
환청을 짓밟듯, 우향은 차가운 안광을 폭사했다. 그의 시선은 가주의 괴뢰 너머, 사당의 본전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위선적인 곡소리. 가문의 멸망을 바라는 자들의 가증스러운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전해져 왔다.
"형님."
우향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가라앉아 있었다.
"저 움직이는 시체는 형님이 감당하십시오. 나는 가문의 진짜 썩은 살점을 도려내러 가겠습니다."
천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검붉은 피얼룩이 번진 가슴팍을 움켜쥔 채, 이를 악물고 검을 뽑아 들었을 뿐이다. 그의 검 끝이 부르르 떨렸으나, 눈빛만큼은 가문을 지키겠다는 고결하고도 처절한 집념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우향은 미련 없이 신형을 날렸다. 그의 몸이 한 마리 푸른 솔개처럼 허공을 가르며 가주의 장례식장이 마련된 사당 본전의 대동으로 날아올랐다.
***
사당 본전 내부.
사방에 걸린 백색의 조등(弔燈)이 음산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자욱한 향연(香煙) 사이로, 상복을 입은 무리들이 제단 앞에 엎드려 있었다. 그 중심에 선 사내, 설가의 외척이자 장로인 은태평(은 장로)이 가증스럽게 눈물을 훔치며 곡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가주님! 어찌 이리 허망하게 가시옵니까! 남겨진 우리 설가는 이제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의 목소리는 애통함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소매 속에 감추어진 손가락은 제단 밑바닥을 더듬고 있었다. 가문의 영맥인 설호룡맥(雪虎龍脈)을 통제할 수 있는 가주 전승의 신물, 설호인(雪虎印)을 찾기 위한 추악한 손짓이었다.
그때였다.
쿠웅!
천장을 뚫고 내려온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제단 정중앙에 놓여 있던 향로가 단숨에 박살이 났다. 흩날리는 잿가루와 부서진 백석 파편들 사이로, 한 자루 검을 쥔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우향이었다.
"누구냐!"
"무슨 놈이 감히 가주님의 영전에서 이리 불경한 짓을 펼친단 말이냐!"
엎드려 있던 장로들과 무사들이 경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 장로 역시 뒤로 자빠질 듯 놀라며 우향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설우향……! 네 이놈, 나락천의 깊은 심연에 떨어져 죽은 줄 알았더니, 감히 살아 돌아와 가주님의 장례식을 망치려 드는구나!"
우향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의 검 끝이 천천히 은 장로의 미간을 가리켰다.
"죽은 줄 알았던 사냥감이 살아 돌아오니 가슴이 서늘하십니까, 은 장로?"
"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게냐! 감히 가주의 서자 따위가 가문의 대례를 더럽히다니, 천인공노할 패륜이로다!"
은 장로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주위의 장로들과 외인 무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며 우향을 포위했다. 살기가 사당 내부의 공기를 얼려버릴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우향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사당 벽면에 걸린 가주 설무강의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은 장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가주님을 시해하고, 그 시신마저 마교의 주술에 바쳐 괴뢰로 만든 자들이 감히 효를 논하는가. 은 장로, 그대가 천명회방의 방주 은광태와 내통하여 이 가문을 통째로 팔아넘기려 한 음모를 모를 줄 알았더냐."
"닥쳐라! 저 미친놈이 가주님의 서거로 실성을 하였구나! 여봐라, 당장 저 패륜아의 목을 베어 영전에 바쳐라!"
은 장로의 안광에 살기 섞인 당혹감이 스쳤다. 그의 외침에 사당 뒤편에 매복해 있던 흑의무사 열두 명이 그림자처럼 튀어나왔다. 그들의 검 끝에는 백협 설가의 무공이 아닌, 검고 탁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마교의 사악한 연공인 철혈검기의 아류들이었다.
"어리석은 것들."
우향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자, 단전 깊은 곳에서 검선인결(劍仙因結)의 위대한 진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맑고 무구한 선천진기가 그의 혈도를 타고 폭풍처럼 몰아쳤다.
콰아아앙!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 무수한 원혼들의 비명이 솟구쳤다. 벼랑 끝에서 베어 넘겼던 적들의 마지막 고통과 원한이 그의 영혼을 갉아먹듯 짓눌러왔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극통이 찾아왔으나, 우향은 이를 악물고 그 통증을 내공의 기포로 치환했다. 고통은 곧 그의 검을 더욱 날카롭게 만드는 숫돌이 되었다.
"검선인결, 초식 무명(無名)."
우향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스스슥!
찰나의 순간, 청색의 검광이 사당 내부를 수놓았다. 그것은 한 줄기 빛에 불과했으나, 가해진 위력은 대지를 가를 듯 묵직했다.
쉬이익! 쾅!
흑의무사들이 장포를 휘날리며 펼쳐낸 검고 뒤틀린 검기들이, 우향의 청색 검광과 부딪치는 순간 비눗방울처럼 허무하게 부서져 나갔다.
두 토막.
단 한 번의 휘두름에 철혈의 검기뿐만 아니라 그들이 쥐고 있던 강철 검들까지 깨끗하게 두 동강이 났다. 무사들의 가슴팍에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고,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사당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이, 이럴 수가……! 저놈이 저런 무공을 어디서……!"
은 장로의 안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단 한 초식에 일류 고수 반열의 무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것이다.
우향은 검을 거두지 않고 제단 위로 한 걸음 내딛었다.
"아직도 곡소리가 나오십니까?"
사당 한편에 걸려 있던 거대한 동종(銅鐘)이 우향의 검압에 반응하여 스스로 울리기 시작했다.
두우우우웅――!
장엄하고도 무거운 종소리가 사당 안을 가득 메웠다. 우향은 그 울림 속에 자신의 무검(無劍)의 검기를 실어 보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형의 기압이 제단 주변의 공기를 짓눌렀다.
쿵! 쿵! 쿵!
"억……!"
"사, 살려주게……!"
위선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은 장로의 곁에 서 있던 중립파 장로들과 부응하던 자들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산에 눌린 듯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사당의 돌바닥이 그들의 무릎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오직 은 장로만이 이빨을 딱딱 마주치며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설우향! 네놈이 미쳤구나! 가문의 장로들을 겁박하고 반역을 꾀하다니, 소가주께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은 장로가 최후의 발악을 하듯 소리쳤다.
"누가 누구를 가만두지 않는다는 말이냐?"
사당 입구의 깨진 문 틈새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설천교였다.
그의 도포는 이미 검은 괴뢰의 피와 자신의 혈독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두 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당에 모인 모든 이들의 시선이 소가주인 그에게 집중되었다.
"소가주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저 서자 놈이 역적 무리를 이끌고 와 가주님의 영전을 더럽히고 우리 장로들을……!"
은 장로가 구세주를 만난 듯 외쳤으나, 천교의 검 끝은 은 장로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추하다, 은태평."
천교의 비장한 목소리가 사당의 벽을 울렸다.
"아버님을 음해하고, 내게 철혈검법이라는 악마의 무공을 권하며 가문을 마교의 제단으로 바치려 한 자가 누구인지,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조, 소가주님? 그게 무슨……!"
"이 설천교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가문을 지키려 했으나, 마교의 개들에게 가문을 통째로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설우향의 폭로는…… 모두 사실이다. 은태평, 그대와 그 무리들이야말로 백협 설가의 역적이다!"
천교의 준엄한 선언이 떨어지자, 사당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의구심을 품고 있던 가문의 충신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은 장로의 무리를 겨누었다. 전황이 완벽하게 뒤집힌 순간이었다.
은 장로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사면초가.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인 노회한 음모가의 눈에 광기가 서렸다.
"흐흐흐…… 으하하하하! 어리석은 놈들! 가문을 지키겠다고 제 손으로 마공을 익힌 소가주나, 천덕꾸러기 서자 놈이나 결국 파멸을 피할 수는 없다!"
은 장로가 소매 안에서 검은 호리병을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호리병이 깨지며 자욱한 보랏빛 독무(毒霧)가 사당 가득 살포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천명회방의 극독!"
우향의 눈이 가늘어졌다. 공기 중에 스며드는 음침하고 달콤한 냄새. 이것은 단순한 독이 아니었다. 은광태가 자랑하는, 생명력을 갉아먹고 내공을 부식시키는 사악한 죽음의 독기였다.
독기가 퍼지자 장로들과 무사들이 가슴을 쥐어짜며 비명을 질렀다. 우향 또한 몰려드는 독기에 단전의 기혈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검선인결의 부작용인 심마의 불꽃이 독기와 호응하여 그의 뇌리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베어라. 눈앞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베어 피로 가득 채워라!’
우향은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머릿속이 깨질 듯 아팠으나, 그는 흔들리는 검자루를 더욱 굳게 쥐었다. 타인을 믿지 못하는 그의 고독한 결함이, 역설적으로 그가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심마를 버텨내게 만드는 버팀목이 되었다.
"은 장로, 어디를 가느냐."
우향이 독무를 뚫고 신형을 움직였다.
사당 뒤편의 밀벽으로 도망치려던 은 장로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품에서 암기를 던졌다. 우향은 가볍게 고개를 돌려 암기를 피한 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부러진 검날의 파편을 발끝으로 걷어찼다.
쉬이익! 퍽!
"으아악!"
부러진 검날이 은 장로의 어깨를 꿰뚫었다. 은 장로는 비명을 지르며 사당 뒤편의 낡은 밀벽으로 쓰러졌다. 그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붉고 검은 피가 차가운 돌벽을 적셨다.
벽면에 새겨진 기이한 문양들이 은 장로의 피를 빨아들이듯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우향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쿠구구구구궁!
사당의 지하, 설호룡맥의 흐름이 급격하게 뒤틀리며 대지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은 장로가 흘린 피가 밀벽 뒤에 숨겨진 천명회방의 피의 결계를 활성화시킨 것이었다.
"크하하하! 늦었다! 방주님의 대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너희 모두 이 사당과 함께 묻히리라!"
은 장로가 피를 토하며 광소했다.
사당 바닥의 흙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투두둑, 흙더미가 갈라지며 그 안에서 시커멓게 썩어 들어간 손가락들이 솟구쳐 올랐다. 하나 둘이 아니었다. 수십, 수백 개의 뼈마디와 썩은 살점이 흙을 뚫고 초막의 바닥을 깨부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은광태의 사악한 조종술에 걸린, 과거 백협 설가에 의해 묻혔던 원혼들과 꼭두각시 시신들이 미친 듯이 지상으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우향의 검 끝이 떨렸다. 솟구쳐 오르는 망자들의 눈동자에 서린 붉은 안광이, 그의 뇌리에 직접적으로 인과의 독을 내뿜기 시작했다.
대지는 뒤흔들리고, 죽은 자들이 일어서는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 우향은 밀려오는 거대한 음기를 정면으로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