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사당 가도에서 가문을 홀로 수호하던 대천재 설천교가 돌연 그림자처럼 출현해 우향을 격렬한 살기로 쏘아보며 진검을 투척하듯 뽑아든다.

스릉!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사당 가도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뽑혀 나온 검날이 푸르스름한 달빛을 반사하며 가라앉은 대기를 가르는 소리는 기괴할 정도로 청아했다. 검끝은 정확히 설우향의 목울대를 겨누고 있었다.

설천교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어두웠다. 나락천의 절벽 아래로 떨어져 시체조차 찾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서자, 설우향이 제 발로 걸어 돌아왔다. 그것도 사흘 전 서거한 가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 금역의 사당 앞으로.

"네놈이 어찌 이곳에 서 있는 것이냐."

천교의 목소리는 쇠가죽을 긁는 듯 거칠고 차가웠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기는 짓눌린 맹수의 그것처럼 사나웠다.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집착, 그리고 정체 모를 불순분자를 향한 경계심이 뒤섞여 살기로 화한 것이다.

우향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눈빛 역시 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켜라. 천교 형님."

"서자 놈이 감히 가문의 금역을 더럽히려는구나. 나락천의 원혼들에게 혼백이라도 팔아넘긴 것이냐? 그 사악한 기운은 무엇이며, 죽은 가주님의 음성을 흉내 내는 수작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천교의 오해가 깊어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우향의 전신을 감돌고 있는 기운은 백협 설가의 정종 심법인 설호신공(雪虎神功)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검선의 인과가 깃든,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미지의 기운이었기에.

천교는 우향이 가문을 파멸로 몰고 가려는 마교의 세작이거나, 혹은 괴뢰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가문이 백척간두에 선 이 시점에, 죽은 자가 무덤을 깨고 나와 온기를 가장하는구나.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든, 이 사당의 문턱을 넘어서게 둘 수는 없다!"

쿠우우웅!

천교의 발끝이 가도 바닥의 청석을 짓밟았다. 그 충격으로 청석 틈새에 얼어붙어 있던 성에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의 신형이 흐릿해짐과 동시에, 백협 설가 최고의 기재만이 펼칠 수 있다는 비기가 밤공기를 갈랐다.

백협설가 검법, 설호검결(雪虎劍訣) 제일 초식. `설풍폭우(雪風暴雨)`!

사방에서 몰아치는 칼바람이 우향의 전신을 찢어발길 듯 몰아쳤다. 사나운 눈보라가 일어 시야를 가리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검세였다. 천교의 검은 단순한 철조각이 아니었다. 가문을 수호하겠다는 그의 처절한 집념이 서린, 매서운 빙한의 칼날이었다.

쉬이익! 슉!

검날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우향의 뺨 위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칼날처럼 매서웠다. 뺨 끝에 붉은 핏방울이 맺히기도 전에, 우향은 허리춤의 검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밀어붙이는 검세가 무겁구나.'

과연 가문의 천재라 불릴 만한 무위였다. 하지만 우향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요동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검선인결(劍仙因結)의 인을 얻은 이후, 그의 단전은 이미 범인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우향의 눈동자가 깊고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스어어억.

우향이 검을 반 보 비껴 잡았다. 그의 발이 지면에 닿는 순간, 주변의 거친 바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아니, 잦아든 것이 아니라 우향의 검 끝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검선의 무한한 내공을 다이렉트로 인출하는 신비의 비기. 검선인결의 푸른 힘이 검신을 타고 올라와 찬란한 광휘를 뿜어냈다.

"받아라!"

천교의 고함과 함께 설호의 발톱이 우향의 정수리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가도를 반으로 갈라버릴 듯한 압도적인 파괴력이었다.

그 순간, 우향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솟구쳤다.

인과검식(因果劍式) 제이 초식. `인과순환(因果循環)`!

깡!

귀를 찢는 듯한 마찰음이 고요한 사당 가도를 뒤흔들었다.

두 검이 맞부딪치는 찰나, 천교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자신의 검에 실린 가공할 만한 내공이, 우향의 푸른 검신에 닿는 순간 어디론가 흘러내리듯 흩어져 버린 것이다. 힘의 방향이 뒤틀리고, 오히려 자신이 쏟아부은 힘이 두 배의 무게가 되어 자신의 손목으로 되돌아오는 기괴한 감각.

"이, 이것은……!"

천교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우향의 검 끝에서 흘러나온 찬란한 푸른 충격파가 허공을 휩쓸었다.

콰아아앙!

대지를 뒤흔드는 검풍 대격상 충격파가 폭발했다.

사당 앞마당의 청석 수십 장이 한꺼번에 뒤집히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천하가 우러러보던 천교의 완벽한 검식 진법이, 단 이틀 동안 인과검식을 익힌 우향의 단 한 자루 검풍에 의해 완전히 마비되고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

"윽!"

천교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그의 스르륵 밀리는 가죽신 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청석 바닥에 깊은 고랑 두 줄이 파였다. 천교는 오른손을 부르르 떨었다. 검을 쥔 손바닥의 가죽이 찢어져 붉은 피가 검자루를 타고 흘러내렸다.

단 일격.

가문 최고의 천재라 불리던 소가주가, 서자 설우향의 일격에 완벽하게 완패했다.

우향은 차가운 눈빛으로 검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승리의 기쁨 대신 지옥 같은 고통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크윽……!'

검선인결의 힘을 끌어다 쓴 대가. 우향이 베어 넘겼던 척살대 사내들의 마지막 원한과 고통이 영혼의 외채가 되어 그의 심상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수십 명의 비명 소리가 이명처럼 울려 퍼졌다.

"죽여라…… 왜 우리를 죽였느냐……!" "네놈도 머지않아 도륙당할 것이다……!"

단전이 뜨겁게 끓어오르며 기혈이 뒤틀렸다. 우향은 턱관절이 으스러질 정도로 이빨을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붉은 선혈이 배어 나왔다. 심마의 불길이 그의 이성을 잠식하려 들었다. 눈앞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자신을 가로막는 천교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은 광포한 살의가 솟구쳤다.

스윽.

그때, 등 뒤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우향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목연화였다. 그녀는 언제 다가왔는지 우향의 맥을 짚으며 그의 뒤틀린 기혈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의 맑은 진기가 우향의 차가운 심마의 불길을 억누르는 소방수 역할을 했다.

"설 공자님, 안 돼요. 심마에 먹히면 안 됩니다. 이성을 잃지 마세요."

연화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가문의 장로들이나 주변의 가솔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소매 안에서 아주 작은 옥병을 꺼내 우향의 손바닥에 쥐여주었다.

그것은 그녀가 나락천 침전에서 극적으로 발견해 낸 극한의 차가운 얼음 정수, `빙로단의 정수(氷露丹之精)`였다.

"이것을 품에 넣으세요."

연화가 나지막이 소곤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오직 우향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았다.

"장로들의 눈이 도처에 깔려 있으니 지금 복용해서는 안 됩니다. 소매 안쪽 깊숙한 곳에 숨겨두세요. 심마가 뇌리를 완전히 잠식하려 할 때, 이 약의 극독 같은 빙한기가 공자님의 심장만큼은 지켜줄 것입니다. 부디 내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우향은 그녀의 손길에서 전해지는 따스함, 그리고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빙로단의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간신히 정신의 끈을 붙잡았다. 붉게 충혈되었던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본래의 서늘한 흑색으로 돌아왔다.

우향은 옥병을 소매 안쪽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천교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검을 고쳐 잡으며 우향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엄청난 충격과 의혹,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무공은... 대체 어디서 얻은 것이냐. 네놈은 정녕 내가 알던 설우향이 맞는가."

"내가 누구든, 그것이 중요합니까. 천교 형님."

우향이 건조하게 받아쳤다.

"중요한 것은 이 가문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는 것이고, 나는 내 것을 되찾으러 왔다는 사실뿐입니다."

천교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우향의 비상한 힘을 주시하면서도, 가슴속 깊이 묻어둔 고뇌를 억누르듯 한숨을 내쉬었다. 가문의 몰락을 막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고자 했던 대천재. 그의 눈빛에는 우향을 향한 적의와 함께, 기묘한 경고의 빛이 서려 있었다.

"어리석은 놈……."

천교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네놈이 어떤 기연을 얻었든, 이 가문에 드리운 파멸의 그림자는 네 상상을 초월한다. 천명회방의 마수가 이미 가문의 뼈대 깊숙한 곳까지 침식했다. 서자 인 네가 감당할 수 있는 판이 아니다. 목숨을 건졌다면, 더러운 싸움에 휘말리기 전에 당장 이 가문을 떠나라."

"떠나라?"

우향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냉소적인 미소였다.

"내가 떠난다고 해서 이 가문이 살아남을 것 같습니까? 가문을 수호하겠다는 형님의 그 고결한 집념이, 결국 가문을 마교의 제단으로 바치고 있지 않습니까."

"닥쳐라!"

천교가 가함과 동시에 몸을 돌렸다. 그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가치가 없다는 듯 사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스산한 밤바람이 그의 도포자락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 순간, 천교의 도포 앞깃이 벌어지며 가슴팍에 새겨진 거대한 흉터가 드러났다.

우향의 눈이 가늘어졌다.

천교의 가슴 흉터 주변으로, 검붉다 못해 시커먼 피얼룩이 번져 있었다. 그것은 백협 설가의 무공이 아니었다. 마교의 금기된 비기이자, 시전자의 생명을 갉아먹는 철혈검법(鐵血劍法)을 무리하게 수련한 자에게만 나타나는 혈독의 흔적이었다.

천교는 황급히 도포를 여미며 그 흔적을 감추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마공을 익혀 괴물이 되고자 했던 그의 처절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우향이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틈도 없었다.

쿠구구구구궁!

갑자기 사당 대지 전체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사당 내부 깊숙한 곳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조금 전 들렸던 가주 설무강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살아있는 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죽음의 심연에서 끌어 올려진, 기괴하게 뒤틀린 괴성의 형태였다.

콰르릉! 쾅!

사당의 거대한 목조 문이 단숨에 박살 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휘날렸다.

자욱한 먼지 구덩이 사이로, 검은 연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일어섰다.

"이, 이럴 수가……!"

천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사흘 전 분명히 서거하여 관 속에 누워 있어야 할 가주 설무강의 시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시신이 아니었다. 전신이 기형적으로 부풀어 올랐고, 피부는 검푸르게 죽어 있었으며, 온몸에 검은 사슬과도 같은 조종술의 붉은 궤적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마교의 천도가 가해진 괴뢰(傀儡).

가주의 거대한 시신 환영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허공을 향해 포효했다.

크오오오오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사당 내부에서 검은 폭풍이 불어 닥쳤다. 거대한 음기가 가도 전체를 휩쓸며 우향과 천교를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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