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수라검귀의 마지막 복수 섞인 저주 환청이 귓가에서 실체화되며 우향의 전신 관절이 거세게 뒤틀린다.
"끄아아악……!"
목구멍을 찢고 터져 나오려던 비명은 이빨 사이로 부서져 비린 핏물이 되었다. 어금니가 맞물려 유리가 깨지는 듯한 파열음이 두개골 내부를 사정없이 울려댔다. 눈앞이 핏빛 장막을 드리운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방금 전 벼랑 끝에서 베어 넘겼던 척살대놈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가죽이 벗겨진 채 울부짖는 원혼의 형상으로 허공에 떠올라 우향의 목을 졸라왔다.
인과(因果). 그것은 검선의 무한한 내력을 단전에 담은 대가로 치러야 할 영혼의 외채였다. 대업을 이루기도 전에 심마의 불길이 전신의 혈도를 불태워 재로 만들 기세였다.
'이대로……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우향은 땅바닥을 움켜쥐었다. 손가락톱이 깨져 흙바닥에 시뻘건 줄기가 그어졌다. 불과 반나절 전, 그는 어느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혼령의 지옥, 나락천(奈落川)의 그 아득한 심연에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의 어둠 속에서, 살을 에는 음풍이 계곡 아래로부터 칼날처럼 불어닥치던 곳. 우향은 가문의 배신자 은광태가 보낸 살수들의 칼날에 밀려 그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었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뼈도 추리지 못하고 형체도 없이 바스러졌을 그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그는 기어코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었다. 고대 검선의 원영을 만나 절대 무학의 정수인 검선인결(劍仙因結)을 전수받은 귀태(鬼胎)가 되어 이승의 문턱을 다시 밟은 것이다.
하지만 지상으로 이르는 길은 지옥 그 자체였다.
수직으로 뻗은 암벽은 이끼와 서리 가득한 빙벽처럼 미끄러웠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끝없는 나락의 아가리가 자신을 삼키려 침을 흘리고 있었다. 우향의 손에 쥐어진 것은 오직 녹슨 도끼 한 자루뿐이었다.
깡!
도끼날이 암벽의 틈새를 파고들 때마다 스파크가 튀며 둔탁한 소리가 고요한 심연을 흔들었다. 손끝의 가죽이 벗겨져 뼈가 허옇게 드러났고, 발끝을 지탱하던 가죽신은 이미 해어져 붉은 피가 암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지 마라……! 우리를 두고 어디로 가느냐!" "네놈이 어찌 살기를 바라느냐! 함께 썩자! 이곳에서 함께 썩자꾸나!"
나락천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수백 년 묵은 원령들의 비명이 폭우처럼 우향의 귓전을 때려눕혔다. 귀를 찢는 환청이 뇌수를 헤집어 놓을 때마다 우향은 스스로의 어금니를 깨물며 몸을 위로 끌어올렸다. 한 치의 흔들림도 허용치 않는 집념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가문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는 자들을 향한 극도의 증오와, 독존(獨尊)의 검선이 되어 천하를 굽어보겠다는 지독한 갈망이 그를 채찍질했다.
깡! 깡!
어둠을 뚫고 한 계단, 또 한 계단. 오직 낡은 도끼 한 자루와 기어오르는 집념만으로 사선을 넘나들던 무모한 몸부림. 마침내 나락천의 아가리를 밟고 올라서 지상의 흙을 밟았을 때, 우향은 붉은 피를 토해내며 대지에 엎어졌다. 가문 역사상 단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혼령의 지옥을, 서자라는 이유로 버림받았던 귀태가 맨몸으로 돌파해 낸 위업이었다.
그러나 지상의 공기는 차가웠고, 그를 기다리는 현실은 더욱 비정했다.
숲속 바위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던 우향은 단전에서부터 차오르는 기이한 한기를 느꼈다. 검선인결의 대가로 쌓인 마음의 영적 외채가 가슴을 짓눌렀다. 벼랑 아래에서 벤 자들의 원한이 고스란히 영혼의 빚이 되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었다.
스산한 바람이 숲을 흔들자, 우향의 시선이 가문 경계선에 서 있는 거대한 경계목으로 향했다.
그의 손끝이 나무 표면에 닿았을 때 느껴진 기이한 감촉. 거무스름하게 타들어 간 흑철(黑鐵)의 잔재와 사선으로 깊게 파인 기형적인 검흔.
그것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백협 설가의 정종 무예인 설호검법(雪虎劍法)의 흔적이 아니었다. 극도로 사악하고 파괴적인 기운, 마교의 숨결이 깃든 뒤틀린 철혈검법의 흔적이었다.
'가문의 경계에…… 어찌 이런 마교의 흔적이 있는 거지?'
밤마다 이곳에서 가문의 눈을 피해 기이한 마공을 수련한 자가 누구인지,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이 심마의 고통보다 더 차갑게 심장을 찔렀다. 하지만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전신의 혈도가 일시에 막히며 우향의 신형이 정원 바닥의 잡초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이어진 어둠.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가벼운 발소리와 은은한 약초 향기. 그의 이마에 닿았던 따스한 손길.
* * *
스스스.
바람이 창호지를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에 우향은 번쩍 눈을 떴다.
달빛이 창살을 타고 흘러내려 방 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지독한 두통과 함께 전신을 꿰뚫는 통증이 밀려왔다. 우향은 본능적으로 신형을 일으키려 했으나, 이내 전신이 단단한 광목천으로 감싸여 있음을 깨달았다. 상처마다 시큼하면서도 시원한 약초 냄새가 풍겼고, 찢어졌던 혈도들은 기이할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혈도를 억지로 열려다간 단전이 먼저 터져 나갈 겁니다."
청아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우향의 고개가 소리 나는 방향으로 거칠게 돌아갔다. 침상 옆, 희미한 등잔불 아래에서 한 여인이 약사발을 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색의 소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녀의 눈동자는 맑은 호수처럼 깊었고, 그 안에는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다. 설가의 의원이자, 세상의 뒤틀린 독을 치유하고자 하는 명의, 목연화였다.
"……누구냐."
우향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지극히 거칠었다. 그의 손은 본능적으로 침상 옆을 더듬었다. 대도를 쥐던 감각을 찾으려 했으나 손끝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경계하지 마셔요. 여기는 가문 후원의 서쪽 끝, 제 개인 약방 뒤편에 숨겨진 초막입니다. 가문의 순찰대도 이곳까지는 발걸음을 하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연화는 약사발을 들고 다가와 침상 머리맡에 놓았다. 그녀의 손길은 더없이 조심스러웠지만, 우향의 눈빛은 한여름의 서리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태생적인 천대 속에서 자라난 우향에게 타인의 호의는 언제나 독이 든 성배와 같았다. 아무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친절만큼 세상에 믿을 수 없는 것은 없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나락천 경계목 아래에서 쓰러져 계신 것을 제가 발견했습니다. 전신의 혈도가 뒤틀리고 외상 또한 깊어 이대로 두면 오늘 해를 넘기지 못했을 겁니다. 대체 무슨 무공을 익히셨기에 이리도 깊은 심마를 품고 계신 건가요? 그것도 평범한 내상의 흔적이 아니라, 마치…… 다른 이들의 원한이 고스란히 몸에 박힌 듯한 기이한 맥박입니다."
연화의 예리한 지적에 우향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의술의 깊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우향은 대답 대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검선인결의 비밀과 그 파멸적인 인과의 대가를 타인에게 털어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말하기 싫으시다면 굳이 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약만큼은 드셔야 합니다. 열독을 내리고 뒤틀린 기혈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우향은 연화가 건네는 약사발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검붉은 탕약 위로 자신의 수척해진 얼굴이 비쳤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약사발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쓴맛이 오히려 그의 정신을 또렷하게 깨웠다.
"가문은 어찌 되었지."
우향이 약사발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으나, 눈빛만큼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번뜩였다.
연화는 사발을 거두며 잠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녀의 얼굴그늘 속에 깊은 수심이 내려앉았다.
"……가주님께서 사흘 전에 서거하셨습니다."
쿵.
우향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설무강. 자신을 서자라 부르며 평생 벌레 보듯 멸시했던 친부. 그의 죽음이 이토록 허망하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슬픔은 없었다. 다만 가슴을 채우는 것은 기묘한 허탈감과, 가문이 본격적으로 파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직감이었다.
"서거하셨다고? 가문의 기둥이 무너졌는데, 가솔들은 잠잠하단 말인가."
"소가주이신 설천교 공자께서 가문의 모든 권한을 독단으로 장악하셨습니다.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봉쇄한 채 장례식을 치르고 있으며, 심지어 가문의 장로들조차 조문 외에는 가주님의 침전에 접근하지 못하게 통제하고 계시지요. 가문 내부의 경비는 이전보다 배 이상 삼엄해졌습니다."
설천교.
우향의 머릿속에 그 오만하고 비장한 사촌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괴물이 되어도 상관없다던 자. 가주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서 그가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그리고 경계목에 남겨진 그 마교의 흔적은 설천교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의혹의 실타래가 얽히고설키며 우향의 마음속에 차가운 불신의 서리가 더욱 깊게 내려앉았다.
"천교 형님이 가문을 통제한다고……."
우향의 입가에 냉소적인 비틀림이 흘렀다.
"가문을 지키겠다는 명분 아래, 스스로 마도의 길을 걷고 있는 줄도 모르고 미쳐 날뛰는 모양이군."
"공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연화가 놀란 눈으로 물었으나, 우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의 바람 소리가 문득 거칠어졌다. 나뭇가지들이 서로를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비명처럼 불길하게 들려왔다. 달빛마저 구름 뒤로 숨어버려 초막 안은 순식간에 짙은 어둠에 잠겼다.
스스스스.
풀벌레 소리가 일시에 뚝 끊겼다. 극도의 고요함. 그것은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의 기괴한 침묵이었다.
우향의 전신 세포가 본능적으로 깨어났다. 검선인결의 내공이 단전에서 꿈틀거리며 차가운 살기를 감지했다.
"……왔군."
우향의 눈동자가 깊은 심연처럼 가라앉았다.
"공자님?"
연화가 의아한 듯 물어보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광포한 가공의 내력이 실린 격돌음과 함께 초막의 낡은 나무 문짝이 형체도 없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나무 파편과 자욱한 먼지 구덩이 속에서, 퍼런 쇠붙이의 서슬 퍼런 안광들이 어둠을 뚫고 쏟아져 들어왔다.
"어디서 쥐새끼 썩는 냄새가 난다 했더니, 여기 숨어 있었구나."
먼지 장막을 헤치고 나타난 자들. 검은 가죽 옷을 입고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가문의 척살 밀정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병장기들이 살기를 뿜어내며 목연화와 설우향의 대가리를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