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업화(因果業火)의 중첩으로 우향의 두 눈이 마침내 무림 십대 마인의 붉은 안광처럼 물들 찰나, 마교 전위 호법이 목연화를 낚아채 정수 절벽 위로 퇴각한다.
나락천의 음풍이 절벽을 휩쓸며 울부짖었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은 칼날보다 매서웠고, 사위는 온통 핏빛 서기로 가득 찼다. 우향의 단전은 이미 검선인결(劍仙因結)의 폭발적인 내공과 베어 넘긴 자들의 원혼이 뒤엉켜 사나운용오름을 만들고 있었다. 전신의 혈도가 터져 나갈 듯 팽창했다. 붉게 물든 안광 사이로 투영되는 세상은 온통 피의 색깔이었다.
“어딜 도망치느냐.”
낮게 가라앉은 우향의 목소리는 지옥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것처럼 무겁고 음산했다. 수라의 기운이 그의 발끝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대지를 검게 물들였다.
전위 호법은 목연화의 가녀린 목덜미를 움켜쥔 채 절벽 끝자락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의 안색 역시 초조함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눈앞의 청년이 뿜어내는 기세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무림을 종횡하는 십대 고수의 반열에 든다 해도 믿을 법한 불가사의한 위압감. 그것이 전위 호법의 숨통을 조여 왔다.
“오지 마라!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이면 이 계집의 목뼈를 그 자리에서 가루로 만들어 주마!”
호법의 핏대 선 외침이 절벽 벽면에 부딪쳐 기괴한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그의 손가락이 연화의 하얀 목을 파고들자, 연화의 입술 사이로 가녀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고통 속에서도 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우향을 향하고 있었다. 흔들리지 말라는, 스스로를 잃지 말라는 무언의 애원이 눈물겨운 빛을 발했다.
우향의 품속에서 빙로단(氷露丹)의 정수가 뿜어내는 혹한의 기운이 간신히 그의 뇌리를 식히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척살대의 품에서 빼앗은 은광태의 수라흡혼잔(修羅吸魂盞) 파편이 기분 나쁜 소름을 돋우며 뜨겁게 요동쳤다. 사악한 마기와 혹한의 도기(道氣)가 우향의 가슴팍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음과 양, 마와 정이 뒤엉키는 혼돈 속에서 우향은 입안을 짓씹었다. 비릿한 선혈이 혀끝을 적시며 희미해지던 이성을 붙잡아맸다.
달빛조차 가라앉은 절벽 끝, 도주하던 호법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가문의 경계목이 서 있는 자리였다.
우향의 시선이 그 경계목의 표면에 머물렀다. 순간, 머릿속에서 강렬한 불꽃이 튀었다.
‘이 흔적은…….’
나락천의 그 어둡고 끔찍한 절벽을 기어 올라오던 날, 가문의 경계에 도달한 우향의 손끝에 닿았던 기형적인 검흔이 있었다. 뒤틀린 흑철의 찌꺼기가 묻어나던, 마치 악마의 손톱자국 같던 흉터. 당시에는 그저 마교의 침투 흔적인 줄로만 알았던 그 자국이, 눈앞의 경계목에도 똑같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침입의 흔적이 아니었다.
설호검법(雪虎劍法)의 정제된 궤적이 아니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몰락해 가는 백협 설가를 홀로 짊어지기 위해 스스로 파멸의 길을 택했던 자의 몸부림이었다. 소가주 설천교. 그가 밤마다 가솔들의 눈을 피해 내공의 과부하를 견디며 연마했던 금기된 마공, 철혈검법(鐵血劍法)의 뒤틀린 독기(毒氣)가 바로 이 나무에 고스란히 박혀 있었던 것이다.
가문을 수호하겠다는 고결한 집념이 어째서 마교의 더러운 철혈과 맞닿아야만 했는가. 천교가 느꼈을 그 처절한 고독과 짓눌리는 책임감이, 뒤틀린 흑철의 흔적을 통해 우향의 전신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크하하! 이 계집의 숨통이 끊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검을 버려라! 무릎을 꿇고 방주님의 자비를 구해라!”
호법의 광소가 절벽 위에 가득한 안개를 찢었다.
하지만 우향의 눈동자는 도리어 차갑게 식어 내렸다. 천교의 고통을 이해한 순간,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던 불신의 안개가 걷히고 기이한 명징함이 찾아왔다. 가문을 더럽히고 천교를 괴물로 만든 마교의 무리들. 그들을 향한 분노는 더 이상 심마의 먹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검선(劍仙)의 도를 날카롭게 벼리는 숫돌이 되었다.
스르릉.
우향의 검 끝이 천천히 대지를 가리켰다. 검신이 가늘게 떨며 백색의 검기를 토해냈다. 바람마저 멈춘 듯한 고요가 절벽을 지배했다.
“협박이라.”
우향의 입술이 가볍게 열렸다.
“내게는 통하지 않는 단어다.”
“무엇이……!”
호법이 경악하며 연화의 목을 꺾으려 힘을 주는 그 찰나.
시간이 정지했다.
아니, 정지한 것처럼 느껴질 만큼 아득한 초속(超速)의 경지였다. 검선인결의 은밀한 인과율이 허공을 지배했다. 원인과 결과가 뒤집히는 찰나의 공간. 우향이 검을 휘두르는 ‘원인’과 적이 베어지는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틈바구니가 완전히 사라졌다.
인과검식(因果劍式) — 무간(無間).
빛조차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우향의 신형이 허공을 지르밟았다.
콰아아앙!
그의 단전에서 잠자고 있던 초극강의 삼매진화(三昧眞火)가 폭발적으로 날뛰었다. 백색의 도기가 순식간에 붉고 푸른 극양의 불꽃으로 변하여 검신을 휘감았다. 절벽의 서리가 순식간에 증발하며 하얀 수증기의 장막을 형성했다.
“억……!”
전위 호법은 손가락에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힘을 주기도 전에, 이미 온 세상이 붉은 불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시야가 좌우로 갈라지고, 목덜미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서걱!
소리조차 뒤늦게 따라왔다. 우향의 단칼이 허공을 호선으로 그리며 호법의 머리를 정확히 이등분했다. 삼매진화의 열기에 닿은 상처는 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그대로 까맣게 타들어 갔다. 뇌수가 증발하는 비린내가 수증기 속에 뒤섞였다.
“아…….”
연화의 신형이 힘을 잃고 나락천의 절벽 아래, 천 길 낭떠러지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무너져 내리는 절벽의 바위들과 함께 그녀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우향은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그의 왼팔이 허공을 가르며 연화의 가냘픈 허리를 단단히 낚아챘다. 거친 바위 파편들이 우향의 등 뒤를 스치며 불꽃을 튀겼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연화를 자신의 안쪽 품에 완전히 끌어안아 품은 채, 오른손의 검을 절벽 벽면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카가가각!
검선인결의 내공이 검신을 타고 절벽으로 흘러들며 엄청난 마찰음을 냈다. 낙하하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며, 두 사람은 절벽 중턱의 작은 돌출부에 사뿐히 착지했다.
연화가 우향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우향의 가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향…… 씨…….”
“가만히 있어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향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으나, 연화를 쥐어쥔 그의 손아귀에는 은연중에 부드러운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안도는 찰나였다.
“크아아아아악!”
갑자기 우향이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단 한 번도 고통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던 그였다.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릴지언정 신음조차 내지 않던 우향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단명이 터져 나왔다.
검선인결의 대가. 인과의 업화가 그의 가슴 장막을 사정없이 직격했다.
방금 베어 넘긴 전위 호법의 마지막 원한과 미련이 붉은 실타래가 되어 우향의 영혼을 옭아맸다. 머릿속으로 호법의 기억이 해일처럼 밀려들어 왔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마인이 아니었다. 북방의 척박한 땅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신음하던 소수 민족의 수장. 겨울이 올 때마다 얼어 죽는 아이들의 시신을 묻으며, 그는 하늘을 원망했다. 그때 손을 내민 것이 마교의 천명회방주 은광태였다.
‘내게 충성해라. 그렇다면 네 부족에게 따뜻한 쌀과 옷을 주마.’
오직 살아남기 위해, 부족의 대를 잇기 위해 그는 스스로 마교의 충견이 되었다. 백협 설가의 가솔들을 무참히 도륙하면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늘 북방에 두고 온 어린 자식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나는 죽어도 좋다…… 하지만 내 아이들은…… 우리 부족은 어찌 부지한단 말이냐! 설우향, 네놈이 내 앞길을 막았구나! 네놈이 우리 부족의 숨통을 끊었어! 저주하마…… 영원히 이 피의 빚을 갚지 못하리라!’
원혼의 아우성이 우향의 귓가를 찢어발겼다. 단순한 악당의 최후가 아니었기에, 그 원한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거웠다. 살아남고자 했던 한 인간의 가장 처절한 미련이 우향의 도심(道心)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끄윽……!”
우향의 눈가가 피로 찢겨 나가며 붉은 선혈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전신의 기혈이 역류했다. 머릿속이 수천 개의 바늘로 찔리는 듯한 극치의 고통이 밀려왔다. 마교의 독문 심마가 그의 뇌를 폭발시키려는 듯 광폭하게 날뛰었다.
도심이 흔들리고, 전신의 혈도가 당장이라도 터져 나갈 것 같은 혼절의 대위험.
품 안에 안긴 연화가 사르르 떨리는 손으로 우향의 뺨을 감싸 안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온기가 가까스로 우향의 무너져 가는 이성을 붙잡아 매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궁!
가문의 지하 깊은 곳, 설호룡맥의 근원이 있는 사당 영단에서부터 대지를 찢는 듯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붉은 광채가 지하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밤하늘을 피비린내 나는 마기로 물들였다.
단순한 봉인의 해제가 아니었다.
공기가 무거워져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의 압도적인 위압감. 나락천의 음풍마저 그 기세에 눌려 강제로 잠잠해졌다. 절벽 전체를 뒤흔드는 사악한 파동의 중심에, 마침내 그자가 강림했음이 느껴졌다.
천명회방주, 은광태.
그의 사악한 기세가 사당 영단을 가득 채우며 가문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우향의 단전이 그 기세에 반응하여 미친 듯이 요동쳤다. 피로 물든 우향의 눈동자가 사당이 있는 방향을 향해 서서히 돌아갔다.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의 검 끝은 다시 한번 차가운 살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의 검 끝은 다시 한번 차가운 살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우향 씨, 안 돼요! 지금 그 상태로 움직이면 전신의 맥로가 완전히 파탄 납니다!”
연화가 그의 소매자락을 다급하게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길에는 애절함과 함께 의원으로서의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우향의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핏줄들이 검붉게 부풀어 올라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심마(心魔)가 단전을 장악해 가기 직전의 극 위험한 징후였다.
연화는 망설이지 않고 품속을 헤집었다. 일전에 나락천 침전에서 목숨을 걸고 채취했던 백색의 영물, 빙로단(氷露丹)의 정수가 그녀의 손끝에서 차가운 영기를 뿜어냈다.
“이것을…… 삼키셔야 합니다. 제발 믿으세요.”
그녀는 우향의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서늘한 빙단을 밀어 넣었다. 동시에 영적인 힘을 실은 침을 그의 백회혈(百會穴)과 영대혈(靈臺穴)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침끝을 통해 맑고 정순한 진기가 전도되며 얼음의 정수를 우향의 기혈 속으로 강제로 침투시켰다.
치이이익!
우향의 체내에서 뜨거운 업화와 극도의 한기가 충돌하며 기이한 마찰음이 일었다. 뇌리를 난도질하던 북방 호법의 원혼들이 서리 덮인 감옥 속에 갇힌 듯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귀를 찢던 환청이 멀어지고, 비틀거리던 우향의 눈동자에 맑은 백색의 신광이 잠시 되돌아왔다.
임시방편에 불과한 억제였으나, 폭주하던 내공을 통제하기에는 충분한 찰나의 시간이었다.
“가자.”
우향은 연화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은 채 절벽 위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신법을 전개할 때마다 발밑의 바위들이 부서져 내렸지만, 그의 신형은 한 마리의 거대한 설호(雪虎)처럼 가볍고 신속하게 사당의 영단을 향해 쇄도했다.
사당 부근에 도달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백협 설가의 영혼이 깃든 사당의 기와들이 붉은 마기에 부식되어 검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문을 지탱하던 거대한 기둥들은 이미 사선으로 꺾여 위태롭게 서 있었다.
콰아아앙!
사당의 두꺼운 목조 문이 마력의 폭풍에 박살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파편들 사이로 한 사내의 신형이 허공을 날아 돌계단 아래로 처박혔다.
“커헉……!”
핏물을 토해내며 구른 자는 소가주 설천교였다.
그의 몰골은 처참했다. 가문을 수호하기 위해 밤마다 몰래 연마했던 마공, 철혈검법(鐵血劍法)의 부작용으로 인해 전신의 피부가 뒤틀린 흑철처럼 변색되어 있었다. 그가 목숨처럼 쥐고 있던 가문의 보검은 이미 반절이 부러져 나간 채 검은 연기만 피워 올리고 있었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서라도 가문을 지키려 했던 오만한 천재의 자존심이, 차디찬 돌바닥 위에 피투성이가 된 채 짓밟혀 있었다. 천교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사당 내부를 향해 이빨을 갈았다.
“은…… 광태……!”
자욱한 붉은 안개 속에서, 대지를 울리는 묵직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천명회방주 은광태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설가의 영맥을 강탈해 응축한 핏빛의 수라핵(修羅核)이 심장처럼 불길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수라핵이 박동할 때마다 우향의 품속에 있던 수라흡혼잔의 파편이 살을 뚫을 듯한 고열을 내뿜었다.
“하찮은 발악이로구나, 설가의 애송이들아.”
은광태의 목소리에는 천하를 발밑에 둔 자의 오만함과 잔혹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시선이 돌계단 아래에 도달한 우향과 연화에게 머물렀다. 은광태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설우향, 네놈이 기어코 살아 돌아와 내 사냥개들을 물어뜯었더군.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설호룡맥의 힘은 내 손에 들어왔고, 가문의 시조들이 잠든 이 땅은 마교의 위대한 제단이 될 것이다.”
우향은 대답 대신 검을 고쳐 쥐었다. 빙로단으로 억누르고 있는 단전의 내공이 은광태의 마기에 반응해 다시금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은광태의 거대한 그림자 뒤에서 또 다른 신형이 기괴한 관절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터벅, 터벅.
생기 없는 발걸음으로 걸어 나온 인물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연화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입을 틀어막았다. 천교의 눈동자 역시 찢어질 듯이 확장되었다.
그것은 사흘 전 서거했다고 공표되었던 설가의 진짜 가주이자, 천교와 우향의 아버지인 설무강(薛武强)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생기를 완전히 잃은 채 칠흑 같은 마기로 뒤덮여 있었다. 전신의 관절에는 보이지 않는 마교의 괴뢰 무색선(無色線)이 연결되어 영혼 없는 인형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은광태가 가주의 죽음을 위장해 그의 육신을 마교의 살아있는 고기 방패이자 괴뢰로 개조해 버린 것이었다.
“살려…… 다오…… 우향아…… 천교야…….”
설무강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죽은 자의 영혼이 내지르는 비명 같은 목소리가 기괴하게 흘러나왔. 그것은 은광태의 마공에 지배당하면서도 육신에 잔존한 마지막 의식이 쥐어짜 내는 극한의 단말마였다.
“하하하! 자, 단란한 가족상봉이구나.”
은광태가 가주의 육신을 우향의 검 끝 앞으로 밀어 넣으며 광소했다.
“어디 한 번 베어 보거라, 서자 놈아. 네 아비의 육신을 베고 그 영혼을 네 검선인결의 업보로 삼킨다면, 과연 네 그 알량한 도심이 버텨낼 수 있을지 아주 기대가 되는구나!”
아비를 제 손으로 베어 그 원한과 업보를 고스란히 영혼에 고착시키거나, 혹은 아비의 손에 죽임을 당하거나.
은광태가 파놓은 잔혹한 인과의 덫 앞에서, 우향의 검 끝이 처음으로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