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세레나를 '이단 마녀'의 증거로 올가미 씌우려 하던 집행관 하인리히가 싸늘한 군화 소리를 내며 무도회 골목을 가로막아 서며 그녀의 목에 검을 겨누는 순간!

세레나는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손등으로 느릿하게 훔쳐냈다. 방금 전 머릿속을 사정없이 때린 호감도 불균형 페널티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아 속이 울렁거렸지만, 목덜미를 생생하게 파고드는 서늘한 검날은 고통보다 더 빠르게 그녀의 생존 본능을 일깨웠다.

숨이 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 하인리히의 회색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전 세레나가 각혈하며 쓰러졌을 때 받았던 충격과, 이단 집행관으로서의 본분 사이에서 그의 이성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모양새였다.

“……에버하르트 영애.”

하인리히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검을 쥔 그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설명해라. 방금 전 네 몸에서 뿜어져 나온 그 기괴하고 불길한 마력은 무엇이지? 제국의 법을 어기고 금기된 이단의 힘에 손을 댄 것인가?”

그의 목소리에는 억누를 수 없는 압박감이 실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자백을 받아내겠다는 듯, 검날이 세레나의 하얀 목덜미를 미세하게 짓눌렀다. 얇은 살가죽 위로 붉은 핏방울이 맺힐 듯 아슬아슬한 대치였다.

하지만 세레나의 머릿속은 하인리히의 협박 따위보다 훨씬 더 시급한 문제로 굴러가고 있었다.

‘마력 폭주라니? 이건 그냥 장부 이자가 연체돼서 청구된 악성 페널티라고, 이 융통성 없는 공무원 놈아.’

세레나는 눈동자를 살짝 굴려 허공에 떠 있는 투명한 시스템 창을 응시했다.

[보유 감정 자산: 380,000 골드 (출처: 황태자 킬리안의 후회 및 속죄의 감정 부채)] [※ 경고: 현재 신체 마력 흐름이 ‘이단 탐색 마법’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신속한 은폐 조치가 없을 경우, 3분 내로 ‘이단 확정 판정’ 및 즉결 처형 루트가 활성화됩니다.]

‘3분? 장난해? 퇴근도 못 하고 단두대 행이라니, 이 무슨 블랙기업 같은 시나리오야!’

세레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즉시 장부의 상점 탭을 마구 내리기 시작했다. 자산은 넉넉했다. 방금 전 킬리안에게서 뜯어낸 38만 골드라는 거금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으니까. 역시 남주의 후회만큼 달콤하고 확실한 안전자산은 없었다.

‘어디 보자, 쓸 만한 은폐 아이템이…… 아, 찾았다!’

[아이템: 이단 탐지 무효 마녀의 면사포] - 등급: 희귀 (Rare) - 가격: 150,000 골드 - 효과: 장착 즉시 시전자의 온몸을 감싸는 마력 오라를 완벽하게 무해하고 정결한 성력, 혹은 완전무결한 민간인의 상태로 세탁합니다. 이단 탐지기 및 마력 나침반을 완벽하게 교란합니다. (지속시간: 1시간)

‘비싸! 무려 15만 골드라니! 내 피 같은 은퇴 자금이!’

하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자산은 없었다. 세레나는 이빨을 꽉 깨물고 마음속으로 구매 버튼을 사정없이 연타했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150,000 골드가 차감됩니다. (잔여 자산: 230,000 골드)] [‘이단 탐지 무효 마녀의 면사포’ 효과가 즉시 적용됩니다. 온몸의 마력 오라 세탁을 시작합니다.]

위이이잉—!

미세한 진동과 함께 세레나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붉고 탁한 마력의 잔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눈이 부실 정도로 맑고 투명하며, 어딘가 모르게 성스럽기까지 한 온화하고 깨끗한 기운이었다.

눈앞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변화에 하인리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 그녀의 몸을 옥죄던 그 불길하고 어두운 기운이 흔적도 없이 정화되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하인리히는 쉽게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검끝을 거두지 않은 채, 더욱 강한 살기를 뿜어내며 세레나를 몰아세웠다.

“수작 부리지 마라. 방금 전의 그 기운이 마법적인 속임수로 가려질 리 없다. 어서 진실을 고해라.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집행관의 권한으로 네 목을 벨 것이다.”

목숨을 위협하는 끈덕진 칼날 앞에서도, 세레나의 안색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입가에는 세상에서 가장 온화하고, 영혼이 단 1퍼센트도 담기지 않은 K-직장인 특유의 가식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세레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인리히를 똑바로 응시했다. 극도의 긴장 상황 속에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다름 아닌 극존칭의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아, 집행관님. 피차 바쁘신 일정 중에 이렇게 야근까지 불사하시며 저를 심문해 주시니 그 노고에 깊은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뭐라?”

“제 목을 베어 실적을 올리시는 것이 집행관님의 원활한 부서 평가와 고과 반영에 도움이 되신다면,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증거를 찾으려 애쓰실 필요가 무엇이겠습니까? 제국의 평화와 집행관님의 깔끔한 면피를 위한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인 해결책이 바로 이것이니, 어서 저를 찌르시지요.”

세레나는 아주 우아하게 두 손을 모아 가슴 위에 얹었다. 마치 모든 것을 초탈한 성녀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희생을 자처하는 듯한 성스러운 태도였다.

“제 목숨 하나 바쳐서 집행관님의 퇴근 시간이 당겨지고, 가문의 번잡한 소란이 단번에 종식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이 한 몸 던져 드리겠습니다. 어서 검에 힘을 주시어 깔끔하게 업무 처리를 끝마쳐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너,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인리히의 안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보통 이단으로 의심받는 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울부짖거나,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히려 자신을 찌르라며 고압적이고도 우아한 미소를 지은 채, 마치 모든 죄업을 혼자 짊어지고 가겠다는 듯이 당당하게 굴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는 두려움이나 거짓의 떨림이 단 한 톨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직 세상을 다 산 듯한 깊은 피로감과, 타인을 향한 눈물겨운 배려만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들렸다.

“장난하지 마라, 에버하르트! 내가 눈감아 줄 것 같으냐!”

하인리히는 떨리는 손으로 품 안에서 황실 집행관의 전유물인 ‘마력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이단이나 사악한 마력을 감지하면 붉은색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대상을 가리키는 고대의 아티팩트였다.

그는 나침반을 세레나의 심장 부근에 거칠게 들이밀었다.

“이 나침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네 영혼의 색을 증명해 봐라!”

탁!

하인리히가 마력 나침반의 뚜껑을 열었다.

세레나는 속으로 침을 꿀꺽 삼켰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은은한 미소만을 유지했다. 15만 골드짜리 아이템의 성능이 제값을 하길 바랄 뿐이었다.

바늘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좌우로 세차게 요동치던 바늘은, 이내 세레나의 심장 방향을 가리키더니…… 갑자기 푸른색의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완벽하게 멈춰 섰다.

푸른 빛. 그것은 이단의 어둠이 단 0.1퍼센트도 섞이지 않은, 오직 순결하고 무해한 영혼만을 가리킬 때 타오르는 정결의 표식이었다. 심지어 바늘은 마치 성스러운 성물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미세하게 떨리며 세레나의 주위를 맴돌았다.

“……말도 안 돼.”

하인리히의 회색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나침반의 바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장치는 오직 영혼의 본질만을 꿰뚫어 보는 신성한 도구였다. 그런데 나침반이 가리키는 세레나 에버하르트의 영혼은, 이단의 마녀는커녕 제국의 그 어떤 고결한 사제보다도 더 순수하고 무해한 상태였다.

“어째서…… 방금 전의 그 불길한 오라는 대체 무엇이었지? 분명히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거늘…….”

하인리히는 당황하며 검을 쥔 손의 힘을 스르륵 풀었다. 칼끝이 바닥을 향해 툭 떨어졌다.

세레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예! 역시 자본주의 만세다! 15만 골드가 아깝지 않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슬픔과 자비가 가득한 K-직장인식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녀는 하인리히가 검을 거두자, 오히려 안타깝다는 듯이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집행관님의 훌륭한 장비가 오작동을 일으켜 참으로 유감입니다. 제 불덕으로 인해 집행관님의 완벽한 업무 처리에 혼선을 드려 송구할 따름이군요.”

세레나는 슬픈 눈빛으로 하인리히를 바라보며, 마치 그의 곤란한 처지를 걱정해 주는 듯한 어조로 속삭였다.

“그냥 제가 이단이 맞다고 보고서를 올리셔도 저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가문의 평화를 위해서든, 제국의 안녕을 위해서든…… 누군가 한 명은 이 모든 악소문의 책임을 지고 사라져야 마땅하니까요. 그러니 부디 마음 쓰지 마시고, 편하신 대로 처리해 주십시오.”

그 순간, 하인리히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뇌내 망상 회로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

하인리히는 머리를 한 대 얻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평소 아카데미 내에서 세레나 에버하르트가 저질렀다는 온갖 악행과 가혹한 소문들을 떠올렸다. 의붓동생인 엘리제를 괴롭히고, 황태자를 스토킹하며, 가문의 권세를 믿고 안하무인으로 군다는 소문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세레나는 어떠한가?

이단 집행관의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타인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고, 심지어 가문과 제국의 평화를 위해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쓰고 희생하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모든 악소문들은 전부 거짓이었단 말인가?’

하인리히의 이성이 빠르게 퍼즐을 맞춰 나갔다.

에버하르트 가문의 유일한 친녀이자 후계자 구도에서 밀려나고 있던 세레나. 그리고 언제나 가련하고 순진한 척하며 모두의 동정을 사던 의붓동생 엘리제.

‘가해자는 세레나가 아니라, 가문과 엘리제였던 거다. 저 고결하고 여린 영애는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의붓동생의 추악함을 덮어주기 위해 스스로 온갖 비난과 치욕을 홀로 짊어지고 가려 했던 거였어……!’

그녀가 아까 흘렸던 붉은 피는 이단의 마력이 폭주한 것이 아니었다. 가문에서 가해진 보이지 않는 압박과 억압 속에서, 홀로 속앓이를 하며 몸을 망쳐 가면서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터져 나온 피눈물이었던 것이다!

하인리히는 자신이 그런 그녀에게 칼을 겨누고 침묵을 강요하며 몰아세웠다는 사실에 뼈저린 죄책감이 밀려왔다.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고결한 희생양에게 이단의 올가미를 씌우려 하다니!’

그의 머리 위로 갑자기 투명한 시스템 알림창이 미친 듯이 팝업되기 시작했다.

딩동! 딩동! 딩동!

[인물 ‘하인리히 폰 아델하이트’가 깊은 죄책감과 참회에 휩싸입니다.] [감정 채무 발생: ‘죄책감 및 속죄’의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합니다!] [하인리히의 호감도 부채: +50,000 골드] [하인리히의 호감도 부채: +80,000 골드] [하인리히의 호감도 부채: +120,000 골드……!]

[현재 보유 총자산: 480,000 골드]

세레나는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솟구치는 황금빛 숫자들을 보며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와, 미친. 이 집행관 녀석, 보기보다 감수성이 엄청 풍부하잖아?! 그냥 영혼 없이 몇 마디 얹었을 뿐인데 자산이 복사되고 있어!’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기적이었고, K-직장인식 접대 화법의 위대함이었다. 세레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이 기세를 몰아 확실하게 쐐기를 박기로 결심했다.

“집행관님, 밤바람이 많이 찹니다. 감기에 걸리시면 내일 업무에 지장이 생기실 테니, 이만 처소로 돌아가 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레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럼, 저는 이만 퇴근…… 아니, 실례하겠습니다. 부디 평안한 밤 되십시오.”

그녀는 하인리히가 어버버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사이, 우아한 걸음걸이로 그를 지나쳐 골목 너머로 향했다.

하인리히는 멀어지는 세레나의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마 그녀를 붙잡지 못하고 제자리에 망연자실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손에 쥔 마력 나침반은 여전히 그녀의 무고함을 증명하듯 푸른 빛을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온 세레나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드디어 살았네. 진짜 심장 마비 걸리는 줄 알았잖아.”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세레나는 머리를 짚었다.

방금 전 하인리히에게서 뜯어낸 자산 덕분에 총액은 늘어났지만, 그만큼 ‘감정 부채’가 쌓였다는 뜻이기도 했다. 장부의 이율이 언제 또 요동쳐서 자신에게 치명적인 페널티를 청구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주기적으로 욕을 먹거나 뺨이라도 한 대 맞아서 부채를 탕감해야 하는데…… 이 멍청한 남주 놈들이 나를 아주 성녀로 모시고 있으니 뺨을 맞을 기회가 없네, 기회가.’

세레나가 툴툴거리며 아카데미 정문 쪽 마차 승강장으로 향하던 그때였다.

따가닥! 따가닥!

어둠이 짙게 깔린 사도 너머에서, 미친 듯한 속도로 거칠게 달려오는 고급 마차 한 대가 보였다. 마차 측면에 새겨진 황금빛 돈주머니와 저울 문양—제국 최대의 상단인 벨몬트 상단의 마차였다.

콰아아앙!

마차는 비명을 지르듯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세레나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가운데, 마차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세레나 영애!”

마차 창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흐트러진 금발을 쓸어 넘기며 숨을 헐떡이고 있는 사내였다. 벨몬트 상단의 젊은 행주이자, 철저한 이익 추구형 인간인 루카스 벨몬트였다.

그의 안색은 평소의 여유롭고 능글맞은 태도와 달리,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루카스는 마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창가로 몸을 쑥 내밀며 세레나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지금 당장 타십시오! 에버하르트 가문에서 영애를 이단 혐의로 고발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엘리제가 움직였어요!”

세레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퇴근길의 험난함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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