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지는 관군들의 말발굽 소리가 매봉골의 좁은 계곡 사이에 길게 메아리쳤다.
태오는 움직이지 않았다. 가죽신 끝으로 바닥을 짓이기며 말에 오르던 김윤철의 마지막 동작, 그리고 그의 넓은 비단 소맷자락이 묵직하게 가라앉던 그 찰나의 궤적을 뇌리 속에서 몇 번이고 되감았다. 김윤철이 주워 간 것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석탄을 밀폐된 요(窯)에서 건류하여 휘발분을 날려 보내고 탄소의 순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고열의 정수, 즉 코크스(Coke)의 파편이었다.
"태오야, 저 간악한 자가 가져간 것이 정녕 괜찮겠느냐?"
가마 뒤편에서 흙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킨 석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아직 부러진 갈비뼈가 완치되지 않은 탓에, 그의 손은 옆구리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태오는 시선을 바닥에 떨어진 붉은 가마 점토 조각으로 돌렸다.
"그 조각은 겉보기엔 그저 단단하고 무거운 석탄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구워내기 위해 가마 내부의 산소를 차단하는 밀폐율, 점토와 모래의 배합 비율, 그리고 점진적으로 열을 올리는 조절법을 모른다면 가마 전체를 태워 먹는 독약이 될 뿐입니다."
태오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시릴 정도로 건조했다. 공학의 영역에서 결과물만을 모방하려는 시도는 대개 파멸로 끝난다. 화학적 매커니즘과 열역학적 수치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고탄소 연료를 일반 가마에 집어넣는다면, 가마는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거나 불순물이 섞여 쇠를 완전히 망쳐버릴 것이었다.
"게다가 대감의 소매에 들어간 그것은 일종의 미끼이기도 하지요."
태오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옆에 서 있던 예영이 비단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미끼라니? 저자가 저것을 명나라 사신단이나 조정의 야금 장인들에게 넘겨 분석하게 만든다면, 우리의 고열 제강법이 탄로 나는 것은 시간문제네. 자네는 매사 너무 태연해서 탈이야."
"대방 행수께서는 장사의 이치만 보시고, 율법의 그물은 보지 못하시는군요."
태오는 품에서 누런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그것은 지난날 예영을 통해 세자 향에게 상고하여 받아낸, 경국대전 초안의 일부를 필사한 초록이었다.
"경국대전 형전(刑典) 사유조를 보면, '향화인(向化人) 및 사노비라 할지라도 스스로 개척한 황무지나 가마터의 소유권은 관에서 함부로 몰수할 수 없으며, 사사로이 그 기술과 생산물을 탈취하는 자는 율에 따라 장형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김 대감이 훔쳐 간 코크스는 이 사유지 안에서 생산된 엄연한 '사유 재산'입니다. 그가 그것을 조정이나 대외에 공표하는 순간, 스스로 장형을 자초하는 격이 되지요."
예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사대부들이 법을 만드는 이들이라 생각했지, 그 법에 스스로 발목이 잡힐 것이라곤 상상치 못했다. 태오는 현대의 정밀한 법률적 방어기제를 조선의 법전에 이식하여, 김윤철의 손에 시한폭탄을 쥐여준 셈이었다.
"이제 그들이 훔쳐 간 돌덩이에 신경 쓸 시간은 끝났습니다. 진짜 폭풍은 북쪽에서 불어올 테니까요."
태오의 시선이 매봉골 너머, 멀리 북쪽 하늘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 * *
경태(景泰) 원년(1450년) 2월 12일. 한양의 조정은 북방에서 날아온 긴급 파발로 인해 발칵 뒤집혔다.
함경도 영북진(寧北鎭) 인근 회령천 유역. 강이 단단히 얼어붙은 틈을 타, 여진 우디게(兀狄哈) 부족의 정예 철갑 기병 삼백여 기가 국경을 넘어 영내를 유린했다. 평소의 단순한 약탈이 아니었다. 그들은 명나라 국경지대에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견고한 냉간 가공 철갑을 말과 몸에 두르고 있었다.
조선의 주력 무기인 승자총통과 편전(片箭)은 그들의 두꺼운 철갑 위에서 힘없이 튕겨 나갔다.
"보(步)당 백 장 거리에서 쏜 편전이 놈들의 흉갑을 뚫지 못하고 꺾였습니다! 총통의 화력을 늘리고자 화약을 두 배로 넣었으나, 오히려 총신이 파열하여 아군 사수 열두 명의 손목이 날아갔사옵니다!"
승정원 율당에서 병조판서가 올린 장계가 낭독되자, 세자 향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했다.
"철갑이라니…… 여진의 가난한 야인들이 어찌 명나라의 정예군도 갖추기 힘든 철갑을 두르고 나온단 말이냐?"
향이 주먹을 쥐자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명나라 동북면의 간작들이 묵인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들은 조선의 북방 방어선이 어디까지 버티는지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우의정이 상소문을 정리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신철(神鐵)이 필요하옵니다. 저들의 철갑을 단숨에 관통하고, 동시에 폭발하지 않는 질기고 단단한 포신을 만들 수 있는 강철이 없다면, 이번 봄에 있을 대규모 남침을 막아낼 길이 없사옵니다."
조정 백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모였다.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은 단 하나, 군기시의 천역 노비이자 매봉골에서 괴이한 흙가마를 굴린다는 설태오였다.
"아니 되옵니다, 저하!"
김윤철이 대신들 사이에서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소맷자락 안에는 며칠 전 매봉골에서 훔쳐낸 코크스 조각이 여전히 들어있었다.
"일개 노비의 요사스러운 기술에 나라의 명운을 맡길 수는 없사옵니다! 게다가 그자가 만드는 쇠는 국법으로 통제되지 않는 사적인 가마에서 나오는 법외의 물건입니다. 군국의 대사에 쓰이는 무기는 마땅히 군기시의 정통 관가마에서 생산된 청동과 철로 만들어야 법도에 맞사옵니다!"
"법도라 하셨소?"
세자 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유학자다운 온화한 얼굴에 서릿발 같은 분노가 서렸다.
"내 내경(內經)을 읽고 국조오례의를 보았으나, 백성이 칼날에 쓰러지고 국경이 허물어지는 마당에 관가마의 정통성만을 고집하라는 구절은 찾지 못했소! 김 대감, 대감이 말하는 법도가 영북진의 아군 정라군 삼백 명의 목숨보다 무겁단 말이오?"
"저, 저하! 그것이 아니오라……."
"더는 논하지 말라!"
향은 소맷자락에서 어인이 찍힌 지칙(旨勅)을 꺼내 단상 아래로 던졌다. 빳빳한 한지가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매봉골의 야장 설태오에게 북방 방어용 극비 화포 및 제식 갑주 제작의 전권을 부여한다. 군기시와 병조는 그가 요구하는 모든 인력과 원자재를 한 치의 지체도 없이 공급하라. 이를 방해하거나 사사로이 간섭하는 자는 군령으로 다스릴 것이다!"
조칙이 하사되는 순간, 김윤철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자신이 훔쳐낸 기묘한 석탄 조각의 비밀을 밝혀내기도 전에, 노비 놈이 전 조선의 존망을 쥔 비밀 국책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등선해 버린 것이다. 이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실상 병조판서에 버금가는 기술적 권력을 쥐어준 것과 다름없었다.
* * *
매봉골의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가마터 주위는 마치 한여름처럼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어억……!"
태오는 가마 옆 나무 그루터기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뇌리 속에서 기하학적인 선들이 엉키며 거대한 설계도가 강제로 투사되고 있었다. 19세기 유럽에서 사용되었던 고장력 강철 제강법과 청동포의 장력을 극대화하는 '외주 수축(Shrinkage) 공법'의 도면이었다.
골든핑거, '역사적 설계도 침탈'의 대가는 가혹했다.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뇌척수액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손끝이 마비되어 부르르 떨렸고, 입안에서는 비린 피의 맛이 감돌았다.
"태오야! 괜찮으냐?"
완치되어 가마터로 막 복귀한 석두가 허겁지겁 냉수가 담긴 바가지로 태오의 머리 위에 물을 퍼부었다. 찬물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자, 타들어 가던 신경의 통증이 겨우 진정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태오는 거친 숨을 내쉬며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그의 눈빛은 고통 속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맑고 냉정했다.
"석두 아저씨, 몸은 좀 어떠십니까."
"내 몸뚱이야 진즉에 다 나았지! 그보다 네놈 꼴이 이게 뭐냐? 귀신이라도 쓰인 것처럼 매번 쇠를 녹이기만 하면 머리를 쥐어짜니, 내 가슴이 철렁한다."
석두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태오가 바닥에 그려놓은 기괴한 도면들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대포와는 달리, 포신의 뒤쪽이 극도로 두껍고 포강 내부에 미세한 나선형 홈이 파여 있는 기묘한 무기였다.
"이것이 무엇이냐?"
"장력포(張力砲)입니다."
태오가 바닥의 물기를 닦아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기존의 청동포나 무쇠포는 화약의 폭발 압력을 견디지 못해 포신이 터지거나, 탄환이 사방으로 흔들리며 날아가 명중률이 극악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마에서 정련한 탄소 함량 0.4%의 중탄소강(Medium Carbon Steel)을 사용하고, 포신 내부에 회전력을 주는 선을 파 넣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태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여진의 철갑이 제아무리 단단한들, 초속 삼백 보의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가는 철갑관통탄 앞에서는 종잇장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때, 가마터 입구로 예영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조정에서 보낸 황금색 끈으로 묶인 수임 전서가 들려 있었다.
"태오! 세자 저하의 조칙이 내려왔네. 자네를 '극비 북방 방어 화기 제작 총지휘'로 임명한다는 어인이 찍혔어!"
예영은 전서를 태오의 손에 쥐여주며 몸을 떨었다. 흥분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이제 한양의 모든 눈과 귀가 이곳 매봉골을 향할 걸세. 군기시의 장인 오십 명과 병조의 수송 마차가 내일 아침이면 이곳으로 들이닥칠 거야. 법적으로 사유권을 보장받았다고는 하나, 이 엄청난 규모의 국책 사업을 감당할 수 있겠나?"
태오는 전서를 펼쳐보지도 않은 채, 가마 안에서 붉게 이글거리는 쇳물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대방 행수."
"어?"
"나라를 구하겠다고 명검 만 자루를 밤낮으로 두드려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검 한 자루는 군사 한 명의 손에 들릴 뿐이고, 백 병의 검은 백 명의 피를 요구하니까요."
태오가 가마의 송풍구를 조절하는 무쇠 레버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가마 내부로 엄청난 양의 공기가 유입되며, 코크스가 타오르는 백색의 화염이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제대로 만든 장력포 백 대가 있다면, 전장의 판도 자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저들의 심장부에 고열의 쇳덩이를 정확히 꽂아 넣는 것만이, 이 미개한 대륙의 압제로부터 조선을 지키고 진정한 평화를 선량(宣揚)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의 선언은 오만했으나, 용광로의 열기만큼이나 뜨겁고 확고했다.
석두는 가슴속에서 웅장한 무언가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평생 똥철이나 만지며 천대받던 노비 장인이, 이제는 천하를 뒤흔들 신무기를 만드는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좋다! 내 이 늙은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네놈의 대포를 세상에 내놓고야 말겠다!"
석두가 쇠망치를 치켜들며 포효했다.
* * *
그러나 영광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다음 날 아침, 조정의 조칙이 공식적으로 반포되자마자 도성은 거대한 혼란에 휩싸였다.
사대부의 명분과 유교적 질서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온 훈구파 대신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들의 수장인 영의정 하연과 훈구 대신들은 대궐 뜰에 엎드려 통곡하며 상소를 올렸다.
"저하! 어찌 사직의 명운이 걸린 무기 제작을 천역 노비의 손에 맡기신단 말입니까! 이는 성리학의 명분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멸의 길입니다!"
"전장에서 사노비가 만든 무기를 쥐고 싸우는 것은 사대부와 국군의 수치이옵니다! 군기시의 정통 장인들을 두고 요사스러운 사노비 놈의 법외 기술을 채택하시다니, 천하가 조선을 비웃을 것입니다!"
김윤철은 대신들 뒤에 서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조정의 난동을 틈타, 명나라 사신단에게 매봉골의 비밀 가마와 코크스 조각에 대한 정보를 은밀히 흘릴 준비를 마쳤다.
조정의 거센 반발과 명나라의 외교적 압박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매봉골의 작은 흙가마를 향해 무섭게 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