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매봉골의 좁은 계곡 사이로 솟구치던 백색의 연기는 이미 하늘을 뒤덮은 상태였다. 섭씨 1,500도를 넘어선 반사로의 굴뚝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아지랑이가 되어 계곡 전체를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그 일그러진 공기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붉은 융복의 무리가 가마터를 겹겹이 에워쌌다.

"저 사악한 가마를 당장 때려 부수고, 관련자들을 모두 의금부로 압 압송하라!"

사헌부 장령의 서슬 퍼런 외침이 가마벽에 부딪쳐 둔탁하게 울렸다.

관군들의 손에 쥔 도끼와 쇠망치가 서늘한 햇빛을 받아 번뜩였다. 석두를 비롯한 야장소 장인들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진흙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거대한 가마의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은빛 쇳물이 대지를 달구는 동안, 일촉즉발의 침묵만이 매봉골을 지배했다.

김윤철은 말 위에서 거만하게 턱을 치켜세웠다. 그의 눈가에는 가마를 부수겠다는 파괴욕보다, 이 가마에서 흘러나오는 신철(神鐵)의 야금 기술을 기필코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집요한 탐욕이 도사리고 있었다.

"노비 놈이 감히 성 밖 사유지에 비인가 무단 관청을 참칭하고, 사사로이 야업을 행하였으니 이는 영락없는 역모다."

김윤철이 가죽 채찍으로 태오의 코앞을 가리키며 읊조렸다. 채찍 끝이 바람을 가르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태오는 물러서지 않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반사로의 복사열이 등을 구웠지만, 그의 눈동자는 쇳물보다 더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머릿속의 신경 마비 증세는 이미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공학적 인과관계로 가득 찬 그의 머릿속에서, 지금 당장 작동시켜야 할 전술적 카드는 단 하나였다.

태오는 허리춤에 매달아 둔 질긴 가죽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에서 한지 몇 장을 겹쳐 만든 두꺼운 첩(帖)이 모습을 드러냈다.

"멈추시오."

태오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계곡의 바람을 타고 관군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명징했다.

"무엇이냐? 대역죄인이 감히 누구의 명을 거스르려 하느냐!"

사헌부 장령이 소리를 지르며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이곳은 사유지가 아닙니다. 또한 비인가 무단 관청도 아닙니다. 사헌부의 서리들께서 법을 집행하시려거든, 먼저 이 땅의 명의와 조정의 공식 수교(受敎)부터 확인하심이 법도에 맞을 줄 압니다."

태오가 한 걸음 나아가 첩을 높이 들어 올렸다. 김윤철의 눈썹이 꿈틀했다.

"사유지가 아니라니? 이 매봉골 일대는 본래 한성부 동부의 관할 밖 야산으로, 사사로이 개간하거나 점유할 수 없는 국유지이거늘, 네놈들이 무단으로 가마를 짓고 쇠를 구웠으니 그것이 불법 점유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김윤철의 힐난에 태오는 차분하게 한 장의 문서를 펼쳐 보였다. 관인(官印)이 선명하게 찍힌 한성부의 토지 대장이었다.

"이 매봉골의 야산 사(四) 마지기는 본래 향화인(向化人) 출신의 사노비 가문이 대대로 경작권을 인정받아 온 사유 토지입니다. 태종 대의 법령과 금상 전하께서 반포하신 법령에 의거하여, 사노비라 할지라도 스스로 일군 사유 재산과 토지는 국가가 함부로 압수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태오의 목소리에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현대의 법률적 지식뿐만 아니라, 조선의 법전인 『경제육전』과 세종대왕이 다듬고 있는 『경국대전』 초안의 세부 조항까지 완벽히 꿰뚫고 있었다.

"황당한 소리를 하는구나! 노비의 재산은 곧 상전의 재산이며, 관에서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 몰수할 수 있는 법이다. 어찌 미천한 노비 놈이 사유권을 주장한단 말이냐?"

사헌부 장령이 비웃으며 채찍을 휘두르려 했다.

"그것이 바로 무식한 소리입니다."

태오가 장령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장령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감히 노비 신분의 야장이 사헌부 장령에게 '무식하다'는 언사를 던진 것이다.

"『경제육전』 형전(刑典) 사유재산조를 보십시오. '사노비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군 가민(家民)의 토지와 재물은 주가(主家)라 할지라도 관청의 허가 없이 사사로이 빼앗지 못하며, 만약 이를 위반하여 강탈할 시에는 장(杖) 일백 대에 처하고 그 재물을 원주인에게 돌려준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세종 13년(1431년) 신묘년 수교에 따르면, '향화인 및 면속(免屬) 특전을 받은 가민의 토지는 국가에 중대한 모반죄를 짓지 않는 한, 관청이라 할지라도 법적 절차 없이 압수하거나 가마를 파괴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태오의 입에서 나오는 정확한 연도와 법전 명칭, 그리고 정확한 자구(字句)들에 김윤철은 말문이 막혔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고, 성리학은 곧 법치와 명분의 나라였다. 아무리 미천한 노비라 할지라도, 왕이 직접 제가하여 반포한 법전의 자구를 들이밀며 항변할 경우, 사헌부라 할지라도 이를 무시하고 법을 집행하면 '불법적 공권력 남용'으로 대간(臺諫)들의 탄핵 대상이 되었다.

"이 가마터는 제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양도받은 사유지입니다. 여기 한성부윤의 직인이 찍힌 '토지 사유 양도 서첩'이 그 증거입니다. 사헌부에서 이 가마를 부수겠다는 것은, 조선의 국법이 보장한 사유 재산권을 공권력으로 강탈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습니다. 장령 대감께서는 과연 법을 수호하는 사헌부의 관리이십니까, 아니면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국법을 짓밟는 무법자이십니까?"

태오의 서릿발 같은 일침이 장령의 가슴에 꽂혔다. 장령은 황급히 김윤철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손에 쥔 칼자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이 교활한 놈이! 감히 율법의 자구를 왜곡하여 조정을 기만하려 드는구나!"

김윤철이 말에서 내리며 소리쳤다. 그의 가죽신이 흙바닥을 거칠게 짓밟았다.

"설령 토지가 네놈들의 사유지라 할지라도, 무기를 주조하는 야업은 오직 군기시와 국가의 허락을 맡은 관청만이 행할 수 있는 법이다. 사사로이 철을 녹이고 화기를 제조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역모의 증거다. 이 가마에서 나오는 저 쇳물이 무기가 아니라고 내게 증명할 수 있느냐?"

김윤철이 가마 안에서 붉게 끓어오르는 도가니를 가리켰다.

"저것은 무기를 만드는 철이 아닙니다."

태오가 단호하게 답했다.

"거짓말을 하는구나! 무쇠를 녹여 무엇을 만든단 말이냐? 쟁기나 솥을 만들기 위해 이 깊은 산골에 거대한 반사로를 지었단 말이냐? 어설픈 변명으로 형벌을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김윤철이 비장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관군들이 다시금 가마를 향해 전진하려던 그 찰나였다.

"그 증명, 내가 대신 서 주면 되겠는가?"

맑고 꼿꼿한, 그러나 내면에 묵직한 힘을 담은 목소리가 매봉골 입구에서 들려왔다.

두 마리의 말이 울창한 수풀을 헤치며 나타났다. 말 위에는 비단 도포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예영과, 그 옆에서 묵직한 기운을 내뿜는 검은 융복 차림의 사내가 타고 있었다. 사내의 허리춤에는 세자의 직할 부대인 '별호위(別護衛)'의 표식이 선명하게 새겨진 마패와 검이 채워져 있었다.

"대방 예영...!"

김윤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영은 말에서 가볍게 내려 김윤철을 향해 예의를 갖추었으나, 그 눈빛에는 장사치 특유의 날카로운 계산과 경멸이 교차하고 있었다.

"김 대감,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헌부의 장령 대감까지 이 깊은 골짜기까지 걸음 하시다니, 조정에 그리도 할 일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예영! 네가 감히 무역의 대방이라는 신분으로 역적들의 소굴에 발을 들이는구나. 이 가마가 네놈의 자금으로 지어진 것이냐?"

김윤철의 다그침에 예영은 차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역적이라니요.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이 가마는 사사로운 무기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저의 상단이 조정의 허가를 받아 진행하는 '민관 합동 농기구 및 건축용 특수 철재 개발소'입니다. 그리고..."

예영이 옆에 선 검은 융복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품속에서 황금색 비단으로 감싼 서책 하나를 꺼내 들었다. 사내의 손끝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그의 안광은 사헌부 관군들을 단숨에 압도했다.

"세자 저하의 친필 봉수령(奉授令)이오."

사내의 목소리가 숲속을 울렸다.

'세자 저하'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사헌부 장령과 관군들은 일제히 자신들의 환도를 칼집에 집어넣고 무릎을 꿇었다. 김윤철 역시 굳은 표정으로 허리를 숙여야만 했다.

사내가 서책을 펼쳐 보였다. 서책의 중앙에는 세자 향의 친필 서명과 함께 동궁전의 어인(御印)이 붉고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동궁전 서리 및 별호위 사부 이정현이다. 세자 저하께서 친히 하교하시기를, '매봉골의 야업소는 동궁전의 직할 연구 기지로서, 북방의 개간과 도성 보수를 위한 고강도 농기 및 철재를 시험 생산하는 곳이다. 사헌부와 의금부를 비롯한 외정의 관청들은 이 가마의 운영에 일절 간섭하지 말며, 만약 이를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저하에 대한 공식적인 항명으로 간주하겠다' 하셨다."

이정현의 낭독이 끝나자, 김윤철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이... 이럴 수가... 저하께서 어찌 이 미천한 노비 놈의 가마에 어인을 내려주신단 말입니까? 장령 대감, 이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김윤철이 다급하게 장령을 돌아보았으나, 장령은 이미 이마를 땅에 댄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세자의 어인이 찍힌 봉수령은 왕명에 준하는 권위를 지닌다. 사헌부가 아무리 권세를 부린다 한들, 저하의 친필 명령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은 즉시 목이 달아날 수 있는 대역죄였다.

태오는 품속의 서류를 챙기며 김윤철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승자의 오만한 미소 대신, 지극히 공학적인 계산이 끝났음을 알리는 무표정만이 남아 있었다.

"김 대감."

태오가 나직하게 불렀다.

"법전의 자구도, 세자 저하의 어인도 모두 이곳이 합법적인 공간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국법을 어지럽히지 마시고 물러가시는 것이 대감의 신조(身朝)를 보존하는 길일 것입니다."

김윤철은 이빨을 으드득 갈았다. 그의 손끝이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사노비 놈에게 이토록 철저하게 패배당하고 법적으로 짓밟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세자 향이 이 노비 놈의 뒤를 이토록 단단히 받쳐주고 있을 줄이야.

"철수하라."

김윤철이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대감! 정말 이대로 물러나시렵니까?"

사헌부 사령 중 하나가 억울한 듯 묻자, 김윤철은 그자의 뺨을 가죽 채찍으로 후려쳤다.

"물러가라 하지 않느냐! 당장 말머리를 돌려라!"

관군들이 허둥지둥 환도와 도끼를 챙겨 퇴각하기 시작했다. 사헌부 장령 역시 흙먼지를 털어내며 황급히 말에 올라탔다.

태오는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가마 뒤편에서 숨어 있던 석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살았다... 살았어, 태오야...!"

예영이 태오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내 약조는 지켰네. 저하를 설득해 이 어인을 받아내느라 상단의 은자가 제법 깨졌으니, 나중에 그 신철로 갚아야 할 걸세."

"약조는 지킵니다. 고순도의 강철이 곧 생산될 테니 걱정 마십시오."

태오가 짧게 답했다.

그러나 태오의 시선은 퇴각하는 무리 중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말을 돌려 매봉골 입구로 향하던 김윤철이 갑자기 고삐를 늦추었다. 그의 시선이 바닥의 진흙투성이 찌꺼기 틈새에 머물렀다.

가마를 운전하면서 밖으로 긁어내 버린, 검고 단단한 광물 조각들이었다. 일반적인 석탄과는 달리, 구멍이 숭숭 뚫려 있으면서도 쇠처럼 단단하고 은근한 금속 광택이 도는 기묘한 물질.

코크스(Coke)의 잔해였다.

김윤철은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채찍 끝으로 그 검은 덩어리 하나를 툭 쳐서 제 가죽신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재빠르게 몸을 숙여 그 뜨거운 석탄 찌꺼기를 주워 올려 넓은 소맷자락 속에 밀어 넣었다.

그의 입가에 기괴하고 비틀린 미소가 번졌다.

'이것이 네놈이 숨겨둔 고열의 비밀이구나.'

김윤철은 말배를 세차게 차며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태오는 그의 소맷자락이 미세하게 무거워진 것을 놓치지 않았다. 새로운 위기의 불씨가 명나라의 간작들과 훈구파의 손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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