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석두를 태운 거적이 야장소 문턱을 넘어 멀어질 때까지, 붉은 낙수가 태오의 턱밑을 타고 흘러내렸다.

툭, 투둑.

석탄 가루와 피가 한데 뒤엉켜 검붉은 점토처럼 변한 바닥을 태오는 멍하니 응시했다.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시작된 격렬한 박동이 뇌수를 짓이겨 놓는 듯했다. 귀청을 찢는 이명이 고막을 후벼 팠고, 오른팔은 어깨부터 손가락 끝까지 얼음물에 담근 것처럼 감각이 사라져 갔다.

'숨을 쉬어야 한다.'

태오는 왼손으로 굳어버린 오른손목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맥박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머릿속의 어둠 속에서 투사된 거대한 설계도가 뇌세포를 하나하나 태우며 백색 광망을 뿜어냈다.

반사로(Reverberatory Furnace).

연료가 타는 연소실과 철광석이 녹는 용융실을 완전히 분리하여, 오직 천장의 아치형 곡면을 타고 굴절되는 열반사만으로 선철을 녹여내는 근대 야금학의 결정체였다. 조선의 조잡한 석탄에 섞인 황과 불순물이 쇠에 직접 닿지 않게 차단하는 유일한 열쇠였다. 섭씨 1,600도라는 한계 온도를 뚫어야만 도가니 속의 철이 탄소를 뱉어내고 질긴 강철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곳은... 더는 방벽이 되지 못해."

태오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새어 나갔다.

군기시 야장소는 조정의 이목이 사방에 깔린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김윤철이 보낸 자작 첩자들이 들끓고, 사헌부의 감찰관들이 수시로 문턱을 넘나들며, 무기 제조의 효율성보다 성리학적 명분을 앞세우는 서리들이 장부를 쥐고 흔드는 곳. 그 안에서는 단 한 걸음의 도약도 사대의 예법이라는 칼날에 잘려 나갈 터였다.

태오는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야장소 구석의 흙벽 뒤로 기어들었다. 아직 온기가 남은 아궁이 옆, 버려진 한지와 굳어가는 먹을 찾아냈다.

그는 입으로 붓대를 물고 왼손으로 그것을 받아 쥐었다. 오른손은 이미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굳어 있었다. 마비의 대가는 가혹했으나, 머릿속에 각인된 도면의 수치들은 기어코 종이 위로 내려앉아야 했다.

서까래 틈으로 새어 드는 달빛을 등대 삼아, 태오는 붓을 내리눌렀다.

연소실의 가로 길이는 사 척 오 촌, 용융실의 바닥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녹은 쇳물이 한곳으로 모이도록 설계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천장의 곡률이었다. 열기를 한 점으로 모아 굴절시키는 포물선 아치. 각도가 일 분만 틀어져도 열은 굴뚝으로 빠져나가거나 반대로 연소실을 덮쳐 폭발할 터였다.

"황토와... 백토를 삼 대 일로 섞는다. 거기에 굴껍데기를 태운 석회 가루를 섞어 내화 점토를 가공해야 해."

태오는 한 손으로 종이를 누르고, 입술을 깨물며 붓끝을 굴렸다. 극심한 두통이 전두엽을 찌를 때마다 붓끝이 사정없이 흔들려 궤적을 이탈했다. 그럴 때면 제 살을 이빨로 씹어 가며 이성을 붙잡았다.

조선의 조잡한 원석과 황토벽돌로 수천 도의 열기를 견뎌내려면, 가마의 두께는 최소한 두 척 이상이 되어야 했다. 외벽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두르고, 내벽은 곱게 거른 진흙을 서너 번 덧발라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균열을 막을 수 있었다.

새벽녘의 찬 서리가 야장소 지붕을 하얗게 덮을 즈음, 태오의 앞에는 붉은 피와 검은 먹이 얼룩진 서너 장의 도면이 완성되어 있었다.

오른팔의 마비는 서서히 풀려갔지만, 손끝은 여전히 겨울날 얼어붙은 나뭇가지처럼 딱딱했다. 태오는 도면을 품속 깊이 쑤셔 넣었다.

이 도면을 실물로 바꿀 힘, 그리고 관청의 손아귀가 미치지 않는 은밀한 땅이 필요했다. 그리고 한양 땅에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명뿐이었다.

***

도성 서쪽, 마포나루에서 멀지 않은 아현(阿峴)의 한 은밀한 객주.

장문(帳門)을 열고 들어선 태오를 맞이한 것은 매캐한 침향 냄새와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예영의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녀는 태오의 흐트러진 옷자락과 핏기가 가신 얼굴, 그리고 부자연스럽게 늘어진 오른팔을 천천히 훑어내렸다.

"군기시에서 큰 사단이 났다더니, 몰골이 과연 볼만하구나. 목숨을 건진 것이 용할 정도야."

예영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찻물이 가볍게 흔들렸다. 은은한 비단 소맷자락 사이로 그녀의 가늘고 단단한 손가락이 보였다.

태오는 예의를 차리지 않고 맞은편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매캐한 유황 냄새와 탄내가 방 안의 침향을 단숨에 압도했다.

"쓸데없는 문안은 생략하지. 사리판단이 빠른 대방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관청의 감시가 닿지 않고, 땔감과 철광석을 은밀히 실어 나를 수 있는 땅이 있소?"

예영의 눈썹이 가늘게 치켜 올라갔다.

"땅이라. 한양 인근의 산지는 모두 국유지이거나 권세가들의 원각(園閣)이 있는 곳이다. 노비 놈이 사사로이 가마를 짓고 쇠를 부릴 만한 땅은 존재하지 않아. 설령 있다 한들, 내가 왜 내 수하의 사유지를 네 광증(狂症)을 위해 내주어야 하지?"

"사사로운 광증이 아니니까."

태오는 품에서 품어 두었던 도면들을 꺼내 탁자 위에 거칠게 던졌다. 종이 가장자리에 묻은 마른 피가 붉은 흔적을 그리고 있었다.

예영은 핏자국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으나, 이내 도면에 그려진 기괴하고 정밀한 형상에 시선을 빼앗겼다. 검은 먹선으로 그려진 아치형 천장과 연도, 그리고 석탄과 철의 분리 구조. 상인으로서, 그리고 수많은 금속 기물을 다뤄온 대방으로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조선의 그 어떤 장인도 생각해 내지 못한 괴물 같은 물건이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반사로요."

태오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석탄의 독한 기운을 쇠에 닿지 않게 하면서도, 무쇠를 완전히 물처럼 녹여낼 수 있는 가마요. 이 가마가 완성되면 기존 야장소에서 하루에 생산하던 무쇠강의 다섯 배를 뽑아낼 수 있소. 그것도 칼날이 부러지지 않고 말의 편자가 닳지 않는 고순도의 강철로 말이오."

예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추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다섯 배라... 허풍이 심하구나. 군기시의 수십 명 야장들이 매달려도 하루에 얻는 두드림쇠는 극히 적거늘."

"허풍인지 아닌지는 가마를 지어보면 알 일이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감시받지 않는 공간이오. 대방께서는 이 가마에서 나오는 신철(神鐵)의 독점 유통권을 가지게 될 것이고, 사사로운 무역로를 통해 명나라나 여진의 상인들에게 넘길 수도 있겠지. 조정의 눈을 피해서 말이오."

독점 유통권. 그 다섯 글자가 예영의 장사꾼 본능을 강하게 관통했다. 명나라와의 밀무역에서 고순도 철기는 황금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물건이었다. 특히 변방의 여진족들은 조선의 무쇠 가마솥 하나를 얻기 위해 담비 가죽 수십 장을 바쳤다.

"매력적인 제안이군."

예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한양 서산(西山) 안산 자락에 내 명의로 된 은밀한 사유지가 있기는 하나, 사헌부나 한성부에서 무단으로 사설 야업(冶業)을 단속하러 들이닥치면 내 명줄도 무사하지 못해. 조선의 법은 사서(私署)에서 무기를 주조하는 것을 모반으로 다스린다."

태오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마비가 덜 풀린 검지손가락이 둔탁한 소리를 냈다.

"법이라... 그렇기에 나는 법의 틈새를 이용할 생각이오."

"틈새?"

태오는 소매 안에서 또 다른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누렇게 바랜 율법서의 필사본이었다.

"조선의 근간인 육전등록(六典謄錄)과 세종 대의 사노비 사유재산 보장 선례에 관한 조항이오. 경국대전 초안에 삽입된 향화인(向化人) 및 사노비 가문의 토지 대지 사유권 보장 규정을 보시오. 본래 상왕 전하와 주상 전하께서는 사노비라 할지라도 스스로 일구어낸 재산과 대지는 관청이 사사로이 몰수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셨소. 특히 향화인이나 군공이 있는 자의 사유지는 조정의 승인 없이 압수할 수 없다는 선례가 분명히 존재하오."

예영은 태오가 내민 구절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그녀의 눈에 경악의 빛이 스쳤다.

"네가... 이 법조문을 어찌 아느냐? 이것은 이조와 형조의 서리들조차 명확히 알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선례일 텐데."

"합법적인 울타리를 만드는 법을 배운 것뿐이오."

태오는 냉혹하게 미소 지었다.

"이 안산 자락의 땅을 대방의 명의가 아닌, 내 사유 재산으로 위장 등재하는 계약서를 작성합시다. 나는 대방의 돈을 빌려 이 땅을 임차한 사노비가 되는 것이고, 이 가마는 내 사유재산으로 분류되오. 관청에서 들이닥쳐도, 주상 전하께서 법전의 자구를 직접 뒤흔들지 않는 한 '경국대전' 초안의 사노비 재산권 보장 조항에 걸려 합법적으로 압수할 수 없게 만드는 방어막이오."

예영은 혀를 내둘렀다. 눈앞의 사내는 공학적인 천재일 뿐만 아니라, 유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공부하는 성리학적 법전의 허점을 칼날처럼 파고드는 괴물이었다.

"좋다."

예영이 손을 뻗어 태오가 내민 계약서 조항 위에 자신의 인장을 찍었다.

"한양 서산, 안산 자락의 은밀한 계곡 매봉골을 내주마. 숯과 광석의 운반은 내 상단에서 책임지겠다. 대신, 석 달 안에 내 눈앞에 부러지지 않는 신철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네 목숨은 내가 직접 거둘 것이다."

"약조는 성립되었소."

태오는 계약서를 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이미 섭씨 1,600도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

닷새 뒤, 한양 도성 서쪽 안산의 깊은 계곡, 매봉골.

사방이 울창한 참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연기조차 쉽게 보이지 않는 골짜기였다.

이곳에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기괴한 형태의 가마가 대지를 딛고 솟아올랐다.

"영차! 조심해서 쌓아라! 아치형 천장의 돌이 하나라도 어긋나면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석두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고함을 질렀다. 주위에는 예영이 고용한 비밀 장인 수십 명이 태오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태오는 가마의 중심부에서 지흙과 말똥을 이겨 만든 내화 점토를 직접 만지며 벽돌의 틈새를 메웠다.

"석두 형님, 가마 안쪽의 백토 두께를 더 두껍게 해야 합니다. 반사열이 벽을 뚫고 나가면 가마 전체가 무너집니다."

"걱정 마라, 태오야. 내 이 짓거리를 평생 해왔지만, 이토록 기괴한 가마는 처음 본다. 정말로 석탄 연기가 쇠에 닿지 않고도 쇠가 녹는단 말이냐?"

석두가 땀을 훔치며 물었다. 그의 눈에는 의구심과 함께 기묘한 열망이 서려 있었다.

"보여드리겠소. 우리가 만들 강철이 어떤 것인지."

태오는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반사로의 내부 설계를 검증했다.

불순물이 섞인 조선의 석탄은 가마 전면의 연소실(Firebox)에서 타오른다. 그곳에서 발생한 초고온의 가스와 화염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솟아오른 아치형 천장(Roof)을 때린다. 천장은 이 열기를 아래쪽의 용융실(Hearth)로 굴절시켜 반사한다. 용융실 바닥에 놓인 철광석과 선철의 혼합물은 화염의 직접적인 접촉 없이, 오직 천장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복사열과 연소가스의 흐름만으로 녹아내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석탄의 황 성분을 완벽히 차단하면서도 탄소 함량을 1.0% 이하로 제어하는 '반사로 제강법'의 핵심이었다.

"불을 지펴라!"

태오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연소실 하부에 마른 장작과 석탄이 가득 채워졌다.

화선(火線)이 탄재에 닿자, 무시무시한 기세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가마의 거대한 연도가 공기를 빨아들이며 웅장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익!

가마 내부에서 공기가 급격히 팽창하며 내는 바람 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

태오는 가마 벽면에 뚫어놓은 관측 구멍(Peep hole)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붉은 화염이 아치형 천장을 타고 굴절되어 용융실 바닥의 철광석 위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섭씨 1,000도, 1,200도... 그리고 마침내 가마 내부가 눈이 부실 정도의 백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1,500도를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녹는다...! 녹아 흐른다!"

지켜보던 장인 하나가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도가니 속에 담긴 선철이 마치 봄날의 얼음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리며 맑은 액체로 변해가고 있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쇳물의 은빛 물결이 용융실 바닥을 채웠다.

석두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야장소에서 보냈지만, 석탄을 쓰면서 이토록 맑고 깨끗한 쇳물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잡질이 섞이지 않아 거품조차 일지 않는, 완벽한 무쇠강의 시초였다.

"성공이오."

태오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가에 맺힌 땀방울이 열기에 증발해 날아갔다. 조선의 낙후된 기술과 흙벽돌로 일궈낸, 백 년을 앞선 기술적 도약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두두두두두!

매봉골 입구의 울창한 숲을 헤치며, 거친 말발굽 소리가 골짜기를 뒤흔들었다.

"무슨 소리냐?"

석두가 황급히 연장을 쥐어 잡았다.

숲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붉은 융복을 입은 사헌부의 서리들과 그 뒤를 따르는 수십 명의 무장 관군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차가운 미소를 지은 김윤철과 그의 심복, 사헌부 장령이 말을 타고 서 있었다.

"이놈들! 사사로이 가마를 짓고 무기를 주조하는 역적 무리들이 여기 있었구나!"

장령의 호통이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관군들이 일제히 환도를 빼어 들며 가마 주위를 포위했다. 장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고, 석두는 태오의 앞을 막아서며 이빨을 갈았다.

김윤철이 말 위에서 내려와, 활활 타오르는 반사로와 그 옆에 서 있는 태오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기술을 침탈하겠다는 탐욕과, 눈앞의 눈엣가시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군기시의 노비 놈이 감히 성 밖 사유지에 비인가 무단 관청을 참칭하고, 사사로이 야업을 행하였으니 이는 명백한 모반이다! 저 사악한 가마를 당장 때려 부수고, 관련자들을 모두 의금부로 압송하라!"

관군들이 쇠망치와 도끼를 들고 가마를 향해 전진했다.

완성된 반사로가 첫 불을 뿜어내는 순간, 일생일대의 위기가 그들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태오는 품속의 계약서를 꽉 쥐며 김윤철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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