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오전 1시~3시)의 칠흑 같은 어둠이 군기시 야장소의 지붕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낮 동안 내린 빗물은 흙바닥에 고여 시커먼 웅덩이를 이루었고, 간간이 불어오는 밤바람에 물비린내가 섞여 들었다. 사방은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했다. 낮의 소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식어가는 흙가마만이 간간이 미약한 온기를 뿜어내며 어둠 속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스스슥.
서늘한 밤공기를 찢고 풀잎이 쓸리는 소리가 울타리 너머에서 스며들었다.
야장소 동쪽, 낮고 허름한 흙담 위로 검푸른 포를 깊게 눌러쓴 그림자들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다섯 명. 그들의 발걸음에는 발소리를 죽이는 보법이 배어 있었다. 손에 쥔 기름병에서 풍기는 지독한 석유(石油)와 초황(硫黃)의 썩은 냄새가 바람을 타고 야장소 내부로 번졌다.
그들의 눈빛은 차가운 살의로 번뜩였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손짓을 하자, 두 명의 괴한이 허리춤에서 육중한 쇠곡괭이를 꺼내 들었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세자 향의 극찬을 받았던 저 기괴한 흙가마의 연도(煙道)와 연소실 벽을 파쇄하고, 그 안에 기름을 부어 흔적도 없이 불태우는 것.
괴한들이 흙가마 밑바닥을 향해 은밀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 두 발. 그들이 가마의 가장 취약한 열기 배출구로 접근해 곡괭이를 치켜올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바스락.
"어라?"
가장 앞서가던 자객의 발밑에서 기괴한 감촉이 느껴졌다. 짚과 흙으로 허술하게 덮여 있던 바닥이 허공으로 꺼져 내렸다.
콰당!
"크아악!"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세 명의 자객이 동시에 바닥 밑으로 추락했다. 그곳은 태오가 낮 동안 대구경 화포 주조용 거푸집을 묻기 위해 깊이 다섯 척(약 1.5m)으로 파내려 갔던 토광(土壙)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구덩이가 아니었다. 구덩이 바닥에는 사냥용으로 쓰이는 질긴 삼포 그물과 무쇠 철조망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떨어짐과 동시에 그물에 달린 도르래식 무게추가 작동하며 그들의 몸을 꽁꽁 묶어 버렸다. 엉겨 붙은 철조망의 가시가 살을 파고들자 자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누구냐!"
구덩이에 빠지지 않은 나머지 두 명의 자객이 급히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침입자를 환대하는 법치국의 예법치고는 제법 쓸 만하지 않습니까?"
어둠을 가르고 횃불이 켜졌다. 가마솥 뒤편, 거뭇한 그을음이 가득한 벽 틈새에서 태오가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횃불이,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야장소에서 사용하는 가늘고 긴 무쇠 집게가 쥐어져 있었다. 그의 뒤로는 굵은 몽둥이를 쥔 석두가 침을 삼키며 버티고 섰다.
자객들의 우두머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잔머리를 굴렸구나, 관노 놈이! 죽여라!"
남은 두 자객이 태오를 향해 쇄도했다. 칼끝이 밤공기를 가르며 번뜩였다.
태오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물과 궤적을 철저히 공학적으로 계산하는 그의 눈이 자객의 어깨 움직임을 포착했다. 칼을 휘두르는 각도, 체중의 중심이 쏠리는 방향. 태오는 상체를 비틀어 칼날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함과 동시에, 손에 쥔 무쇠 집게의 끝날로 자객의 손목 관절을 정확히 내리쳤.
딱!
"윽!"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자객의 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의 자객은 태오가 아닌 흙가마 옆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낮에 온 힘을 다해 정련해 둔 용광 강판 주형(도가니강을 부어 식히던 진흙 거푸집)이 보관되어 있었다. 만약 저 거푸집이 깨지면 세자에게 바칠 신철(神鐵)의 증거가 완전히 소멸한다. 자객은 들고 있던 무거운 쇠망치를 주형을 향해 내리찍으려 했다.
"안 돼! 이 똥물에 튀겨 죽일 놈들이!"
석두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우직하고 미련할 정도로 쇠밖에 모르던 사내였다. 석두는 자신의 몸을 던져 진흙 주형을 껴안았다.
퍽!
"아아악!"
자객이 내리친 망치가 석두의 오른쪽 어깨와 등줄기를 강타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둔탁한 음향이 야장소에 울려 퍼졌다. 석두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석두는 주형을 감싸 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선 채 가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오의 눈동자가 급격히 수축했다. 가슴 속 밑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이성을 마비시키며 치밀어 올랐다. 효율과 인과율로만 세상을 재단하려던 그의 머릿속에, 평생을 천역으로 살며 쇠 하나에 목숨을 걸던 석두의 울부짖음이 박혔다.
"이 자식이!"
태오는 가죽끈으로 묶인 횃불을 자객의 얼굴에 그대로 처박았다. 불꽃이 밤공기를 가르며 자객의 후드에 옮겨붙었다.
"아악! 불, 불이야!"
얼굴에 화상을 입고 비틀거리는 자객의 복부를 향해 태오가 무쇠 집게를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쇠붙이가 갈비뼈 사이를 파고들며 둔탁한 타격음이 났다. 자객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져 구르며 신음했다.
"석두 형님!"
태오가 횃불을 바닥에 던져두고 석두에게 달려갔다.
석두의 어깨는 이미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가죽 옷 격자 사이로 드러난 살점이 짓겨 나가 뼈가 하얗게 보일 지경이었다. 석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었다.
"태... 태오야... 쇠... 쇠는 무사하냐...?"
"미련하게 왜 몸을 던집니까! 쇠 따위는 다시 녹이면 그만인 것을!"
태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자신의 가죽 앞치마를 거칠게 찢어 발겼다. 손끝이 피로 붉게 물드는 와중에도, 그는 군기시 의무용 소독제도 없는 이 열악한 환경에서 지혈을 해야 했다.
거친 가죽 천으로 석두의 어깨를 단단히 동여매며, 태오의 눈가에 고인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뇌의 오작동이라 치부했던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슴을 찌르는 통증이 실재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숨 크게 쉬십시오. 폐는 상하지 않았습니다. 제발 말하지 말고 가만히 계십시오."
그때, 야장소 정문이 거칠게 열리며 횃불 무리가 밀려들어 왔다.
"사헌부 감찰이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포박당하라!"
세자 향이 미리 배치해 두었던 사헌부 감찰 도사 이원신과 관군 십여 명이 칼을 뽑아 들고 들이닥쳤다. 구덩이에 갇힌 자객들과 바닥에 쓰러진 자들을 본 이원신은 상황을 즉시 파악하고 소리쳤다.
"이놈들을 당장 묶어라!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선 안 된다!"
관군들이 자객들을 쇠사슬로 결박하는 사이, 태오는 석두를 바닥에 조심히 눕혀두고 이원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옷과 손은 온통 석두의 피와 검은 그을음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감찰 나리."
태오의 목소리는 기괴할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분노가 극에 달해 오히려 냉혹한 이성으로 치환된 상태였다.
"이 자들은 단순한 도적이 아닙니다. 조선의 군사 군기를 파괴하고, 세자 저하께서 친히 윤허하신 가마를 파괴하려 한 대역죄인들입니다."
이원신이 눈살을 찌푸렸다.
"증거가 있느냐? 이들의 배후를 입증하지 못하면 단순 야간 강도로 처리될 뿐이다."
태오는 한쪽 구석에 쌓여 있던 가마니를 가리켰다. 그리고 품속에서 낡았지만 정갈하게 작성된 장부 한 권을 꺼내 보였다.
그것은 지난 2화에서 김윤철파의 상인들이 군기시에 고의로 납품했던, 황(黃)과 잡석이 다량 섞인 '불량 수입 숯'의 상세 비축 장부와 성분 분석표였다. 태오가 훗날을 위해 야장소 한구석에 철저히 은닉하고 장부를 따로 작성해 두었던 결정적 카드였다.
"이 장부를 보십시오. 여기 적힌 납품 상단은 경강의 '동회상단'입니다. 그리고 오늘 침입한 자들이 소지하고 있던 지령서와 기름병의 낙인을 대조해 보십시오."
태오는 쓰러진 자객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기름병을 발로 차서 이원신 앞으로 보냈다. 기름병 바닥에는 동회상단의 고유 인장인 '동(東)' 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동회상단은 이조판서 김윤철대감의 사돈 가문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군기시에 불량 탄재를 납품하여 화포 주조를 망치려 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사가(私家)의 무사를 부려 국책 가마를 방화하려 했습니다. 이는 경국대전 형전(刑典) 제십오조, '국가 군기 및 관청의 시설을 고의로 훼손한 자는 참형에 처하고 그 배후 역시 멸족한다'는 조항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역모입니다."
이원신은 장부와 기름병의 인장을 번갈아 보며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단순한 야장소의 다툼이 아니라, 조정의 거물인 김윤철의 목을 단번에 벨 수 있는 완벽한 법적 올가미가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 장부가 진짜란 말이냐?"
"군기시 부장부와 대조해 보십시오. 단 한 글자의 오차도 없을 것입니다. 저들이 보낸 불량 숯의 양이 무려 오백 석(石)에 달합니다. 조정을 기망하고 군력을 약화시키려 한 명백한 증거입니다."
태오의 논리 정연하고 거침없는 폭로에 이원신은 마른침을 삼켰다.
"알겠다. 이 장부와 도적 놈들을 즉시 사헌부로 압송하겠다. 세자 저하께도 이 사실이 가감 없이 보고될 것이다."
자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끌려나갔다. 김윤철이 파놓은 수많은 함정과 음모가, 오히려 태오가 준비해 둔 '합법적 덫'에 걸려 그들의 목을 죄는 형국이 되었다.
야장소 내부의 소란이 잦아들고, 완전하게 수복된 무쇠 주형만이 가마 옆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태오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옆에 누워 신음하는 석두의 손을 꼭 쥐었다.
"석두 형님, 가마와 쇠는 무사합니다. 형님이 지켜내셨습니다."
석두는 겨우 눈을 뜨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행... 이다. 내 평생... 너처럼 미친놈이랑... 이런 신철을 만들 줄은... 몰랐다..."
석두를 임시 의실로 이송하기 위해 관군들이 가마를 준비하는 것을 보며, 태오는 차가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군기시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김윤철 일파가 이번 사태로 큰 타격을 입겠지만, 그들의 발악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사헌부의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들은 또 다른 자객이나 권력을 동원해 자신과 석두의 목숨을 노릴 터였다. 조정의 이목을 완전히 피하고,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독자적인 공간에서 고온의 선철을 생산할 수 있는 '비밀 가마'가 절박했다.
태오는 신음하는 석두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더 강한 기술, 더 완벽한 보안이 필요했다.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닫으며 머릿속의 심연으로 의식을 침잠시켰다.
'역사적 설계도 침탈.'
그의 뇌리 속에 잠들어 있던 수천 년의 군사 공학 지식의 도서관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태오는 책장 사이를 헤치며 한 장의 도면을 강하게 갈망했다. 외부의 열을 천장으로 반사시켜 내부 온도를 섭씨 1,600도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석탄의 불순물이 철에 직접 닿지 않게 차단하는 근대식 제강의 핵심 기술.
'반사로(Reverberatory Furnace) 제초 도면.'
쿠르릉!
뇌리를 강타하는 극심한 두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머릿속이 수천 개의 바늘로 찔리는 듯한 통증에 태오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오른팔의 감각이 싸늘하게 마비되며 손가락 끝이 굳어갔다. 코에서 붉은 코피가 한 방울 뚝 떨어져 바닥의 핏자국 위로 섞여 들었다.
하지만 태오는 이성을 붙잡고 도면을 강제로 인출했다. 머릿속에 투사되는 정밀한 내화벽돌의 배치와 연도의 각도, 그리고 열반사 천장의 곡률 설계도.
두통 속에서 태오는 눈을 부릅떴다. 이 설계도를 조선의 진흙과 흙벽돌로 구현해야만 한다. 석두의 피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