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야장소 마당의 진흙 구덩이를 사정없이 때려눕히고 있었다. 가죽 앞치마를 걸친 장인들의 어깨 위로 차가운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누구 하나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나흘 안에 조량포 폭발 사고의 책임을 지고 목이 달아날 처지인 노비 놈이, 느닷없이 말똥과 모래를 섞어 가마를 지으라 하니 기가 찰 뿐이었다.
"태오야, 미련한 놈아! 관청의 법도가 엄연한데, 이런 해괴한 짓을 하다가 판관 나리께 들키면 당장 곤장 맞고 뼈도 못 추린다!"
석두가 빗물을 훔쳐내며 his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답답함이 가득했다.
태오는 대답을 아꼈다. 대신 빗물에 젖어 끈적해진 황토를 양손 가득 움켜쥐었다.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리는 진흙의 점도를 손가락 끝의 감각으로 가늠했다.
'현대식 내화벽돌은 없다. 알루미나와 실리카의 비율을 맞춘 정밀 내화물은 이 조선 땅에 존재하지 않아.'
그렇다면 당대 가용한 자원으로 초고온을 견딜 수 있는 도가니와 가마벽을 급조해야 했다. 태오는 머릿속으로 역사적 설계도를 호출했다.
징하는 금속음과 함께 관자놀이가 쪼개질 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백색으로 점멸했다. 뇌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에 태오의 왼쪽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금니를 악물자 입안에서 비릿한 피맛이 돌았다.
뇌리에 떠오른 것은 18세기 유럽에서 사용되던 도가니 제강법(Crucible Steel Process)의 가마 구조도였다. 고온을 견디기 위해 점토와 흑연, 그리고 유기물 섬유를 배합하는 비율이 정밀한 수치로 안구 뒤편에 투사되었다.
태오는 숨을 몰아쉬며 통증을 억눌렀다. 그리고 침착하게 손가락을 꼽아 보였다.
"황토 세 몫에 고운 모래 한 몫, 그리고 말똥 반 몫입니다. 말똥 속의 잘게 씹힌 풀잎 섬유질이 진흙 속에서 뼈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가마가 구워지면서 섬유질이 타버리면 그 자리에 미세한 구멍들이 생깁니다. 그 구멍들이 열을 가두고, 급격한 온도 변화에도 가마벽이 갈라지지 않게 버텨주는 숨구멍이 되는 것입니다."
"말똥이... 숨구멍이 된다고?"
석두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십 년을 야장소에서 쇠를 두드렸지만, 가마벽에 일부러 구멍을 내어 열을 가둔다는 발상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모래에 섞인 이산화규소는 열을 받으면 유리질로 변해 가마 안쪽을 단단하게 코팅할 것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가마를 올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 나흘 뒤 서소문 밖에서 목이 잘려 효수될 것입니다."
그 냉혹하고도 확신에 찬 어조에, 야장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태오의 두 눈은 광기에 찬 미치광이의 그것이 아니었다. 극도로 냉정하게 계산된 공학자의 눈빛이었다.
"에이, 빌어먹을! 어차피 죽을 목숨, 밑져야 본전이다! 얘들아, 태오 놈이 시키는 대로 황토랑 모래 퍼 오너라! 나는 마간(馬廏)에 가서 말똥을 긁어올 테니!"
석두가 먼저 바지춤을 치켜올리며 소리치자, 얼어붙어 있던 야장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빗속에서 괭이질 소리와 흙을 이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태오는 흐르는 빗물로 얼굴을 씻어내며 가마의 기초를 다졌다. 높이 다섯 자, 지름 세 자 반의 원통형 도가니 가마. 조선의 전통적인 야철로보다 훨씬 작지만, 내부 온도를 섭씨 1,300도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압축식 고온로의 형태였다.
송풍구의 위치는 아래쪽으로 치우치게 뚫고, 바람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며 상승하도록 나선형 유로(流路)를 설계했다. 손으로 진흙을 발라 가마벽을 올리는 태오의 손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새벽녘이 되자, 야장소 뒤편 음침한 구석에 기괴한 모양의 진흙 가마가 우뚝 섰다. 빗물에 젖은 표면을 야장들이 볏짚으로 덮고 그 위에 불을 지펴 강제로 말리기 시작했다. 가마 내부에서 수분이 증발하며 뿜어내는 수증기가 밤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태오야, 이제 쇠를 넣고 녹이면 되는 것이냐?"
온몸이 진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석두가 물었다.
"아닙니다. 조선의 무쇠는 황(S)과 인(P)이 너무 많아 부러지기 쉽습니다. 게다가 군기시에서 쓰는 평안도산 석탄은 황 성분이 극심합니다. 이대로 구우면 쇠가 똥철이 됩니다."
태오는 가마 옆에 쌓인 검은 석탄 더미를 가리켰다.
"그럼 어찌한단 말이냐? 숯을 쓰면 좋겠지만, 조정에서 내려온 목탄 배급량은 이미 바닥이 났다."
"황을 흡착해야 합니다. 석회석을 잘게 부수어 석탄과 함께 섞어 넣을 것입니다. 탄산칼슘이 고온에서 분해되면서 황과 결합해 슬래그, 즉 쇠똥으로 분리되어 위로 뜰 것입니다."
태오는 야장소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흰 석회석 덩어리들을 가져와 망치로 부수기 시작했다.
"석회석을 섞는다고 쇠가 맑아진단 말이냐? 그런 법은 주례(周禮)에도, 천공개물(天工開物)에도 나와 있지 않다."
"책에 쓰인 것은 과거의 기술일 뿐입니다. 쇠를 다스리는 것은 문자가 아니라 불과 흙의 성질입니다."
태오의 어조는 단호했다. 그는 잘게 부순 석회석과 불순물이 많은 평안도산 석탄을 일정 비율로 배합했다. 그리고 가마 바닥에 먼저 깔았다. 그 위에 조선의 조잡한 선철(무쇠) 조각들을 도가니에 담아 가마 중앙에 안치했다.
"풍구를 돌리십시오. 쉬지 않고 뿜어야 합니다."
석두의 지시에 따라 두 명의 장정이 거대한 나무 풍구의 손잡이를 힘차게 밀고 당기기 시작했다.
풍구에서 뿜어져 나온 바람이 나선형 송풍구를 타고 가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불길이 순식간에 붉은색에서 황색으로, 그리고 마침내 눈이 시릴 정도의 백청색으로 변해갔다. 가마의 숨구멍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야장소 마당의 빗물을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불길이... 불길이 예사롭지 않다!"
석두가 불빛을 가리며 경탄했다. 평소 쓰던 야철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극도로 집중된 고온의 불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야장소 입구의 목책 문이 거칠게 열리며, 군기시의 하급 관리인 도역잡이(徒役雜) 최 씨가 포졸 둘을 거느리고 거만하게 걸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장부가 들려 있었고, 그 뒤로 마차 한 대가 삐걱거리며 들어섰다.
"이놈들! 역병이라도 도진 줄 알았더니, 밤새 도둑질이라도 하려는 셈이냐? 이 해괴한 진흙 덩어리는 무엇이냐!"
최 씨가 가마를 가리키며 빽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빛은 탐욕스럽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태오는 차분하게 허리를 숙였다. 신분은 노비였기에, 관원의 권위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나리, 사흘 뒤 세자 저하와 상선 나리들 앞에서 시연할 화포의 철재를 정련하는 중입니다. 윤허받은 일입니다."
"정련? 허, 가소롭구나. 내 오늘 야장소에 쓸 숯을 새로 반입해 왔으니, 쓸데없는 짓거리 집어치우고 이 숯이나 창고에 부려라."
최 씨가 턱짓으로 마차를 가리켰다. 마차 위에는 가마니에 담긴 숯들이 실려 있었다.
태오가 다가가 가마니 하나를 열고 숯을 한 움큼 집어 올렸다. 손끝에 닿는 촉감이 축축했다. 숯을 코에 가져다 대니 퀴퀴한 흙냄새와 함께 매캐한 황의 냄새가 진동했다.
'물에 적신 저급 석탄과 잡목 숯이다.'
이런 불량 숯을 고온 가마에 넣으면 수분이 급격히 팽창해 가마가 폭발하거나, 엄청난 양의 황이 쇳물에 스며들어 철을 완전히 망가뜨리게 된다. 김윤철 일파의 사주를 받은 도역잡이가 태오의 정련 작업을 원천적으로 방해하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석두가 숯을 보더니 낯빛이 흙빛이 되어 소리쳤다.
"최 나리! 이 숯은 물을 잔뜩 먹어 불도 붙지 않고, 유황 기가 가득해 쇠를 잡치는 똥숯입니다! 이런 것을 군기시 야장소에 들이시면 어찌합니까!"
최 씨가 채찍을 휘두르며 석두의 어깨를 내리쳤다.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석두의 얇은 저고리가 찢어지며 붉은 선혈이 배어 나왔다.
"이 천한 야장 놈이 감히 관청에서 검수하여 들여온 군수 물자를 폄훼하느냐! 함경도에서 공물로 올라온 극상품 숯이거늘, 네놈들이 관물(官物)을 빼돌리려 핑계를 대는 것이로구나!"
석두가 고통에 신음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야장들이 분노로 주먹을 쥐었지만, 관원의 채찍 앞에서는 무력했다.
태오는 차가운 눈으로 최 씨를 응시했다. 지금 여기서 최 씨의 뺨을 때리거나 대들면, 경국대전의 강상죄와 관청 소란죄로 즉시 참수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철저히 법과 규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야 했다.
태오는 바닥에 엎드려 최 씨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도역 나리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어찌 관가에서 엄선한 물품을 의심하겠습니까. 다만 법도에 따라, 반입된 군수 물자의 수량과 질을 장부에 상세히 기록해야 저희 노비들도 나중에 횡령 혐의를 벗을 수 있습니다."
최 씨가 콧방귀를 꼈다.
"장부? 네놈이 글을 아느냐?"
"미천한 재주나마 군기시의 일일 물류 장부를 작성할 줄 압니다. 나리께서 가져오신 이 숯의 가마니 수와 무게, 그리고 '함경도산 극상품'이라는 관인을 장부에 명확히 기재해 두겠습니다. 나중에 사옹원이나 호조에서 검수가 나올 때 오차가 없도록 말입니다."
태오는 품에서 군기시의 이면지 조각과 먹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최 씨가 보는 앞에서 붓을 놀려 적기 시작했다.
[세종 ○년 ○월 ○일, 도역잡이 최필성이 반입한 함경도산 공납 목탄 수십 가마니. 수분에 젖어 무게가 평소의 배에 달하며, 황 성분의 매연이 극심함. 인도자 최필성 서명.]
최 씨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호조의 검수 항목 중 가장 엄격한 것이 군기시의 연료 횡령과 불량품 반입이었다. 만약 이 장부가 상부로 올라가고, 실제로 가마가 폭발하거나 화포 제작에 실패했을 때 원인을 추적하면 이 장부가 결정적인 역적의 증거가 될 터였다.
"이, 이놈이 무슨 짓이냐! 감히 관원에게 붓대를 들이대?"
"나리, 저는 그저 군기시의 규정대로 장부를 적었을 뿐입니다. 만약 이 숯에 문제가 없다면 서명하시는 것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만약 서명을 거부하신다면, 저는 이 장부와 물 젖은 숯 샘플을 들고 당장 승정원 문 앞의 신문고를 두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세자 저하께서 직접 관장하시는 화포 제작을 방해한 죄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태오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는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협박이 담겨 있었다.
신문고. 그리고 세자 향의 이름이 나오자 최 씨의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사대부 김윤철의 푼돈 몇 푼에 목숨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으, 으음... 내 생각해보니 이 숯은 다른 창고로 갈 것이 잘못 온 듯하구나. 야장소에 쓸 숯은 따로 있으니, 이번 장부는 없던 것으로 하자!"
최 씨는 서둘러 포졸들을 재촉해 마차를 돌렸다. 도망치듯 야장소를 빠져나가는 최 씨의 뒷모습을 보며 태오는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가 작성한 역장부는 품속 깊은 곳에 보관되었다. 훗날 김윤철과 그 일파의 목을 조르는 가장 확실한 올가미가 될 터였다.
"태오야... 고맙다. 네 덕에 살았다."
석두가 어깨의 상처를 움켜쥐며 겨우 일어났다. 그의 눈에는 이제 태오에 대한 의심 대신 깊은 신뢰와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아재, 아파할 시간도 없습니다. 쇳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태오가 가마를 가리켰다.
가마의 감시 구멍을 통해 보이는 내부의 도가니는 이미 백색의 광체를 뿜어내고 있었다. 섭씨 1,400도. 석회석이 황을 흡착하며 발생한 짙은 슬래그 가스가 가마 천장으로 빠져나가고, 순수한 연철이 녹아내려 도가니 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지금입니다. 도가니를 꺼내십시오!"
야장들이 긴 쇠집게를 이용해 붉게 달아오른 도가니를 가마 밖으로 끌어냈다. 주위의 공기가 순식간에 후끈해지며 열기가 사방으로 아지랑이를 피워 올렸다.
태오는 도가니를 기울여 미리 준비해 둔 모래 거푸집에 쇳물을 부었다.
꿀처럼 걸쭉하게 흐르는 주홍빛 쇳물은 이전에 조선의 야장소에서 보던 검붉고 불순물이 둥둥 떠다니던 똥철이 아니었다. 투명할 정도로 맑고 균일한 빛을 발하는, 불순물이 완벽히 제거된 순수한 용융강(熔融鋼)이었다.
쇳물이 식어가며 점차 검푸른 금속빛을 띠기 시작했다.
석두가 떨리는 손으로 망치를 들고 다가갔다. 그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철판의 모서리를 힘차게 내리쳤다.
쨍!
맑고 청아한 금속음이 야장소 마당을 가득 메웠다. 보통의 조선 무쇠라면 부러지거나 금이 갔을 강도였지만, 태오가 만든 철은 망치 자국만 살짝 남았을 뿐, 질기 탄성을 유지하며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다.
"이... 이것은..."
석두가 철판을 들어 올렸다. 그의 거친 손이 쇠 표면을 쓸어내렸다.
"무쇠의 단단함과 연철의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녔구나. 아니, 그보다 더 맑아. 평생 쇠를 만졌지만 이런 신철(神鐵)은 처음 본다! 태오야, 네가 정녕 귀신이라도 부린 것이냐!"
야장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태오를 둘러쌌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도 잊은 채 경탄과 환희가 피어올랐다. 노비 태오가 보여준 기적 같은 과학의 힘 앞에, 그들은 완전히 굴복했다.
태오는 굳은 표정으로 식어가는 철판을 바라보았다.
'이것으로 1단계는 성공이다. 하지만 이 정도 강도로는 서구식 대포의 높은 약실 압력을 버티지 못해. 탄소 함량을 조절하는 참탄(參炭) 공정이 더 필요하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단계의 계산으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야장소 밖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횃불의 무리가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군기시의 경비를 담당하는 갑사(甲士)들이 일제히 야장소를 포위했다.
야장들이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횃불의 붉은 그림자 사이로, 푸른색 철릭을 입은 젊은 사내 한 명이 호위무사들을 거느리고 걸어 들어왔다. 그의 눈빛은 깊고 총명했으며, 범접할 수 없는 군왕의 기품이 흘러넘쳤다.
세자 향(向)이었다.
향은 야장소 한구석에 서 있는 진흙 가마와, 그 앞에 놓인 맑은 빛깔의 철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마침내 태오의 흙투성이 얼굴에 머물렀다.
"네놈이 나흘 만에 철을 다스리겠다 호언장담한 그 노비 놈이냐?"
세자의 묵직한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야장소에 무겁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