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명나라 황제의 특사인 직강(直講) 한림원 태관 사신단이옵니다! 예고도 없이 불시 정남 행렬을 이끌고 도성 대로에 당도하였옵니다! 저들이 지금... 군기시와 매봉골의 가마터를 수색하겠다며 숭례문을 통과해 이쪽으로 오고 있사옵니다!"
내관의 다급한 외침이 막사 천장을 때렸다.
예영이 쥐고 있던 백자 찻잔이 미세하게 떨리며 찻물이 출렁였다. 옥빛 자기에 가느다란 균열이 가는 듯한 팽팽한 침묵이 감돌았다. 태오는 들고 있던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탁자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막사 내부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예고 없는 정남(征南) 행렬이라."
태오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서늘했다.
황제의 특사라는 명분 아래, 조선의 군사 기밀을 합법적으로 탈취하겠다는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세종의 비호 하에 이제 막 국책 용광로로서의 기틀을 다지려던 주선제강소가 통째로 대국의 손아귀에 넘어갈 위기였다.
태오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푸른 안개가 피어오르며, 시공간을 초월한 지식의 도서관이 열리기 시작했다. 뇌리에 깊숙이 각인된 '역사적 설계도 침탈'의 권능을 강제로 깨우는 순간이었다.
'저들에게 던져줄 가짜 뼈다귀가 필요하다.'
그가 소환하려는 것은 19세기 영국 헨리 코트가 발명했던 초기 반사로, 즉 '퍼들법(Puddling process)'의 도면이었다. 선철을 연철로 정련하는 획기적인 기술이지만, 초기 도면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했다. 가스 순환계의 압력 조절 밸브가 없어 고온의 일산화탄소가 역류하면 가마 전체가 폭발하거나, 탄소가 과도하게 잔류해 철이 유리처럼 깨지는 거대한 결함.
"끄윽...!"
우측 관자놀이부터 시작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뇌척수액을 타고 흘러내렸다. 왼쪽 팔의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가늘게 경련했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전신 마비의 전조 증상에 태오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입안에서 비린 쇠맛이 감돌았다. 뇌신경이 불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치명적인 결함이 포함된 반사로의 연도(煙道) 설계와 가스 배출구의 수치를 뇌리에서 한지 위로 강제로 인출해 냈다.
"태오 행수! 괜찮으십니까?"
예영이 급히 다가와 그의 어깨를 짚었다. 태오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상관없소. 대방, 지금 즉시 상단의 서기들을 소집하시오. 내가 지금 받아 적는 이 도면을 '조선식 토법 가스 순환 정련로'라는 이름으로 급히 위조해야 하오. 낡은 한지에 그을음을 묻혀 최소한 십 년은 묵은 비급처럼 보이게 만드시오."
"이것이... 무엇입니까?"
"대국의 탐욕스러운 눈을 멀게 할 독이 든 미끼요."
태오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
한 시진 뒤, 매봉골 가마터 외곽은 이미 군기시 관원들과 사헌부의 군졸들, 그리고 명나라 사신단의 수행 무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다.
"비키지 못할까! 사헌부 집의 김 대감의 명을 받들어, 이곳의 불법 사영 가마를 압수하고 정밀 조사를 실시하겠다!"
김윤철의 수하인 사헌부 감찰이 칼자루를 쥐고 소리쳤다. 그의 뒤에는 명나라 사신단의 정탐 밀정들로 의심되는 한림원 서리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가마터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때, 태오가 예영과 함께 가마터 입구의 목책 앞으로 걸어 나갔다. 태오의 걸음걸이는 당당했고, 그의 손에는 누런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사사로이 적몰하다니요. 이 가마터는 엄연히 국법에 의해 보호받는 사유지이옵니다."
태오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사헌부 감찰이 기가 막히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천한 사노비 놈이 어디서 국법을 운운하느냐! 이 땅은 나라의 산천이요, 가마 또한 조정의 군기시가 관할해야 마땅한 물건이거늘!"
"틀렸습니다."
태오는 품에서 붉은 직인이 찍힌 문서를 꺼내 들어 올렸다. 그것은 지난 6화에서 태오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그리고 세자 향의 묵인 아래 예영의 상단이 확보해 둔 '경국대전(經國大典) 초안'의 사목(事目) 사본이었다.
"과거 태조 대왕 이래로 향화인(向化人)과 사노비라 할지라도,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여 일군 기지(基地)와 가옥, 그리고 생업을 위한 도가니와 가마[窯]는 그 사유 재산권을 완벽히 보장한다 하였습니다. 이는 경국대전 호전(戶典) 전택(田宅) 조항의 명백한 선례이옵니다. 또한, 이 매봉골 가마터는 사영 상단인 주선상단이 국가에 정당한 세납을 바치고 영구 임차한 토지이며, 주선제강소의 설비는 저 본인의 사유 재산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국법을 집행하는 사헌부가 어찌 대명률(大明律)도 아닌 우리 조선의 조종조법(祖宗朝法)을 정면으로 위배하려 하십니까!"
"무어라...?"
사헌부 감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사대부들이 그토록 신성시하는 경국대전의 자구를, 그것도 천한 노비의 입에서 완벽한 논리로 전해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뒤에 서 있던 명나라 한림원 서리들이 통역을 통해 태오의 말을 전해 듣고는 저희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조선의 완고한 법적 명분 앞에서는 명나라 사신단이라 할지라도 대놓고 약탈을 감행하기는 외교적으로 껄끄러운 일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세자 저하께서 직접 내지(內旨)를 내리시어 그 독점 운영권을 보장하신 곳. 사헌부가 저하의 뜻을 거스르고 대국의 사신들을 이 사사로운 분쟁에 끌어들이려 하는 것은, 상국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조정에 대한 항명입니다!"
예영이 한 걸음 나서며 쐐기를 박았다. 그녀의 매서운 기세에 사헌부 군졸들이 찔끔하며 주춤거렸다. 조선의 법률적 방패는 완벽하게 작동했다. 김윤철의 음모는 시작부터 국법의 그물망에 걸려 좌초되고 있었다.
***
"흥, 조선의 법도가 참으로 번잡하구려."
명나라 사신단의 야금 기술 관원인 주관(主管) 팽희(彭喜)가 거만한 태도로 걸어 나왔다. 그는 비단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태오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법도는 법도고, 기술은 기술이지. 우리가 듣기로 이 매봉골에서 천하를 가르는 신철(神鐵)이 나온다 하였는데, 대국의 황제 폐하를 모시는 우리 가마의 기술보다 뛰어날 리가 있겠소? 어디 그 대단하다는 철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증명해 보시오."
태오는 속으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팽희의 눈빛에는 기술을 탐하는 탐욕과 조선을 얕잡아보는 오만이 가득 차 있었다.
"어찌 대국의 신공(神工) 기술에 비하겠습니까. 저희는 그저 흙가마에서 조잡하게 쇠를 끓이는 천한 야장들에 불과합니다. 마침 이번에 새로 구워낸 시편이 있으니, 대국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태오가 석두에게 눈짓을 보냈다. 석두는 미리 준비해 둔 철편 상자를 들고 나왔다.
상자 안에는 푸르스름한 광택이 흐르는, 겉보기에는 매우 훌륭해 보이는 철편 세 조각이 들어 있었다. 팽희는 눈을 빛내며 철편을 집어 들었다.
"오... 과연 빛깔이 곱구나. 탄소의 함량이 매우 균일해 보여."
팽희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철편을 가볍게 두드려 보았다. 맑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 철편은 태오가 일부러 황(S)과 인(P)의 함량을 높이고, 고탄소 상태에서 급냉시켜 만든 극도의 '취성(Brittleness) 강철', 즉 똥철이었다. 겉은 단단하고 눈부시지만, 약간의 유황 불순물로 인해 고온이나 충격을 받으면 유리처럼 맥없이 부서지는 불량품이었다.
"이것이 조선이 자랑하는 신철이란 말이지?"
"예, 나으리. 저희가 수백 번 가마를 깨뜨려 겨우 얻어낸 정화이옵니다. 감히 상국의 가마 기술에 비할 바는 못 되오나, 저희 수준에서는 최선이옵니다."
태오가 비굴할 정도로 허리를 굽히며 아첨했다. 팽희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하하! 과연 조잡하구나. 겉만 번지르르할 뿐, 대국의 서안(西安) 대야장소에서 나오는 백련강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구나. 조선의 기술이란 결국 이 정도 수준이었어."
팽희는 철편을 자신의 품속으로 슬쩍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가마터 구석, 일부러 허술하게 나뭇가지로 덮어놓은 궤짝으로 향했다. 그 궤짝 틈새로 아까 태오가 위조해 만든 '결함이 있는 반사로 설계도'의 모서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팽희가 수하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수하 중 하나가 은밀하게 움직여 그 궤짝에서 위조 도면을 훔쳐내어 팽희의 소매 속에 집어넣었다.
태오는 그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면서도 모른 척 고개를 숙였다.
'어리석은 자들. 그 도면대로 가마를 지어 대포를 주조하는 순간, 너희 명나라의 야장소는 거대한 화약고처럼 폭발하게 될 것이다.'
상국의 야금 기술이 우월하다는 자만심에 취해, 치명적인 독약을 보물인 줄 알고 삼킨 꼴이었다. 완벽한 지적 우위의 승리였다. 예영은 옆에서 태오의 치밀한 덫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
***
상황은 완벽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사신단의 야금 관원들은 가짜 기술을 손에 넣었다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윤철의 사헌부 관리들도 명분이 막혀 더 이상 강제 수색을 고집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태오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마비가 풀려가는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할 때였다.
"멈추어라."
도성 대로 방향에서 묵직하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신단의 행렬 한가운데, 화려하게 장식된 대형 가마의 휘장이 천천히 걷혔다.
그곳에서 내린 인물은 명나라 황제의 친필 조칙을 가슴에 품은 특사, 한림원 직강(直講) 태관 '주호(朱浩)'였다. 그의 눈빛은 아까의 하급 관원들과 달리, 깊고 음험한 지혜로 가득 차 있었다.
주호는 한 걸음씩 걸어와 태오의 앞에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이 태오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네놈이 군기시의 노비이면서, 이 모든 해괴한 가마를 설계했다는 '태오'라는 자냐?"
태오는 예법에 맞춰 엎드렸으나, 등 뒤로 서늘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하옵니다, 대감."
주호는 품에서 누런 비단으로 싸인 서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정식 외교 수속을 거치지 않은, 황제의 직속 정보기관인 동창(東廠)의 문양이 선명하게 찍힌 사적 청문서였다.
"조선의 왕세자가 너를 면천하려 한다는 첩보를 들었다. 하지만 대국의 황제 폐하께서는 조선의 군기(軍器)가 사사로이 유출되는 것을 염려하고 계신다. 하여, 본 특사는 대명률과 황제의 칙권에 의거하여, 네놈을 사적으로 대명 사신관(태평관)으로 연행하여 서신 청문(淸問)을 진행하겠다."
"대감! 그것은 조선의 사법권을 침해하는...!"
예영이 경악하여 소리쳤으나, 주호의 수하 무사들이 일제히 칼을 반쯤 뽑아 들며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조선의 국법은 조선인에게나 통하는 법. 황제의 뜻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주호의 차가운 눈빛이 태오를 꿰뚫었다.
"수속은 이미 마쳤다. 이놈을 결박하여 태평관으로 압송하라!"
사신단의 무사들이 태오의 양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낚시가 성공했다고 믿었던 순간, 명나라의 거대한 권력이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태오의 신변을 직접 확보하려 드는 최악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