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패천이 손가락을 퉁기며 주술의 고리를 조이자, 청명진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칠흑 같은 마기에 잠식되어 검붉은 빛으로 물든다. 이성을 상실한 제자의 검끝이 매서운 파공음을 내며 사부인 백무린의 가슴팍을 향해 짓쳐 들어온다. 검인(劍刃)이 옷자락을 찢고 가슴팍의 살을 파고들기 시작한 찰나, 백무린은 피하지 않는다. 백무린의 두 눈에 스민 빛은 도리어 심연처럼 깊고 고요할 뿐이다. 신형을 뒤로 물리는 찰나 제자의 단전이 파멸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천지를 뒤흔드는 뇌성이 하늘의 은하 한가운데서 내리꽂히며 붉은 먹구름을 찢어발긴다. 백무린은 천벌의 번개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오직 눈앞의 제자만을 응시한다. 검은 마기에 휩싸인 청명진의 검로가 공간을 찢으며 백무린의 심장을 향해 쇄도한다.
서늘한 쇠붙이의 감각이 가슴뼈에 닿기 직전, 백무린은 오른손을 뻗는다.
그의 손길에는 살기가 없다. 오직 제자를 향한 숭고하고도 무거운 인과의 자비만이 깃들어 있을 뿐이다. 백무린의 맨손이 날카롭게 회전하는 청명진의 철검 검신을 움켜쥔다.
스르릉!
피가 흘러내린다. 살이 베이고 뼈가 긁히는 참혹한 마찰음이 고요한 비무대에 울려 퍼진다. 백무린의 손바닥에서 흘러내린 진붉은 선혈이 검신을 타고 흘러내려 청명진의 손목을 적신다. 맨손으로 검날을 쥐어 잡은 백무린의 신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차가운 쇠붙이를 타고 전해지는 사부의 온기와 피비린내에, 청명진의 검붉은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진(眞)아."
백무린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가르침을 내리는 스승의 엄격함이요, 제자의 영혼을 붙잡는 마지막 동아줄이다.
바로 그 순간, 비무대 밑바닥에서 패배의 굴욕과 질투에 눈이 먼 종남학이 비열한 안광을 번뜩인다. 오른쪽 어깨를 관통당해 피를 흘리면서도, 그는 품속에서 영혼을 좀먹는 파혼침(破魂針)을 꺼내 든다. 사패천의 주술로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청명진의 등 뒤를 꿰뚫어 그 영혼을 완전히 파멸시키겠다는 음독한 심산이다. 종남학의 손끝에서 튕겨 나간 세 대의 파혼침이 소리도 없이 청명진의 명치를 향해 날아든다.
그러나 백무린의 감각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초월해 있다. 제자의 검을 쥔 손에서 피가 솟구치는 와중에도, 백무린의 좌수가 가볍게 허공을 젓는다.
파지직!
공기를 찢으며 날아들던 세 대의 파혼침이 백무린이 펼쳐낸 보이지 않는 진기의 장막에 걸려 멈춰 선다. 백무린의 눈동자에 기괴한 시각 왜곡이 발생한다. 제자와의 깊은 인과적 교감이 극에 달하자, 심마의 부작용이 발동하여 세상이 온통 뒤틀린 흑백의 선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왜곡된 시야 속에서 오직 사악한 인과의 실타래만이 붉게 불타오른다.
백무린이 손가락을 퉁긴다.
멈춰 섰던 파혼침 세 대가 그대로 방향을 꺾어, 그것을 날린 주인을 향해 광풍처럼 역사출된다.
"억……!"
종남학의 비명이 비무대 아래에서 터져 나온다. 자신이 사두한 비열한 암기가 제 가슴과 목덜미, 그리고 이마에 정확히 박힌 탓이다. 파혼침이 지닌 영혼을 좀먹는 독기가 순식간에 종남학의 전신 경락을 타고 들어가 뇌수를 헤집는다. 종남학은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무대 바닥을 뒹군다. 살을 깎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의 단전이 스스로 붕괴하며 품고 있던 진기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비열한 음모의 대가는 이토록 참혹한 자멸로 돌아온다.
하지만 백무린은 자멸하는 적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그의 눈은 오직 눈앞에서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제자에게만 고정되어 있다.
설자화의 소매 속에서 고대 검의 파편이 더욱 세차게 울부짖으며 푸른 뇌전의 불꽃을 튀긴다. 하늘에 도사린 천벌의 뇌겁이 백무린의 머리 위로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웅웅거린다. 백무린은 제자의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준다.
이제 남은 수명은 단 한 줌에 불과하다. 생사경의 문턱에서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지막 명줄을, 백무린은 아낌없이 불태우기로 결심한다.
'겁경무량(劫境無量).'
백무린의 단전이 역류하며 숨겨져 있던 태고의 봉인이 풀린다. 그의 전신에서 백색의 광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타인의 한계와 운명을 비틀어 기연을 설계하는 신공이 발동하는 순간, 그에 따르는 모든 천벌과 시련의 무게가 백무린의 영혼으로 직결된다. 그의 남은 수명이 수년씩 급격히 소실되며 전신의 혈도가 터져 나간다. 입가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지만, 백무린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제자의 검신을 잡은 손을 통해 자신의 정순한 진기와 인과를 청명진의 전신으로 불어넣기 시작한다.
따스하고도 웅장한 백무린의 진기가 청명진의 손목을 타고 들어가, 그의 경락을 하나씩 훑어 내린다. 마기에 잠식되어 굳어 있던 청명진의 경맥들이 사부의 진기가 닿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열린다. 백무린의 의식은 제자의 단전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다. 그곳에는 사패천이 심어놓은 검고 사악한 마교의 씨앗, 즉 마태(魔胎)가 독사처럼 또아리를 틀고 청명진의 도심을 갉아먹고 있다.
"진아, 똑똑히 보아라."
백무린의 전음이 청명진의 뇌해를 울린다. 그것은 소리로 전해지는 것이 아닌, 영혼과 영혼의 직접적인 울림이다.
청명진의 감각이 극도로 맑아진다. 검붉게 물들었던 그의 시야 뒤로, 사부의 일그러진 육신이 들어온다. 청명진은 사부의 심장박동을 느낀다. 한 번 뛸 때마다 생명의 불꽃이 급격히 사그라지는 그 처절한 박동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단전에 깃든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사부가 자신의 영혼과 수명을 통째로 불사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 부……."
청명진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그의 눈가에서 핏물과 뒤섞인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순간, 청명진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던 아집과 원망의 장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도심낙추(道心落雛).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겠다던 독종의 아집이, 사부의 숭고한 희생 앞에서 비로소 참된 도(道)의 마음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이놈이 감히 나의 인과를 거스르려 하느냐!"
사패천이 안색을 굳히며 주술의 고리를 더욱 강하게 조인다. 흑색의 마기가 비무대 사방에서 솟구쳐 청명진의 등을 덮치려 한다.
그러나 청명진은 더 이상 마기의 노예가 아니다.
사부의 심장박동과 영혼의 소멸을 목도한 제자의 도심이 마침내 임계점을 돌파한다. 청명진의 단전 내부에서 잠들어 있던 정종 자하진기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사부의 백색 진기와 제자의 자색 진기가 단전 한가운데서 융합하며, 화산의 참된 정수가 실체화된다.
웅-!
청명진의 전신에서 찬란한 자색의 신광이 뿜어져 나온다. 그것은 마기를 밀어내는 가장 순수하고 정종무해한 화산의 빛이다. 단전 깊숙이 도사리고 있던 사패천의 검은 마태가 자하진기의 맹렬한 회전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백무린은 자신의 마지막 진기를 쏟아부어 마태의 숨통을 조인다. 제자의 도심 돌파와 스승의 생명 희생이 맞물려 일어나는 숭고한 구도의 행위가 마침내 기적을 만들어낸다.
치이익!
검은 마태가 뜨겁게 달아오른 자하진기의 불꽃 속에서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청명진의 영혼을 갉아먹던 사독한 기운이 정화되어, 순수한 자색의 진기로 변모하며 그의 단전을 채운다. 마교의 씨앗이 완전히 사멸하고, 그 자리에 화산의 위대한 자하신공이 완전한 형태로 부활하는 순간이다.
청명진의 두 눈이 마침내 본래의 맑고 깊은 빛을 되찾는다. 그의 손에 들린 녹슬고 이 빠진 철검이 자색의 검기를 뿜어내며 웅장하게 공명한다.
"이, 이럴 수가……!"
사패천의 고결하던 안색이 흉측하게 일그러진다. 자신이 청명진의 단전에 심어두고 십수 년간 공을 들였던 마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감지한 탓이다. 화산의 영맥을 오염시키고 청명진을 마교의 완벽한 피조물로 타락시키려던 그의 모든 원대한 계획이, 일개 점소이에 불과해 보이던 사내의 희생과 제자의 도심 돌파로 인해 완전히 무위로 돌아갔다.
"네놈들이 감히 나의 대업을……!"
사패천의 목소리에서 정중함이 사라지고, 날 것 그대로의 광기와 분노가 터져 나온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장이 비무대 사방의 석판들을 가루로 만들며 하늘의 붉은 먹구름을 더욱 짙게 물들인다.
이성을 잃은 사패천이 품속으로 손을 뻗는다.
그가 꺼내 든 것은 검붉은 가죽으로 감싸인, 기괴하고 사악한 마기를 풍기는 두루마리였다. 천마신교의 신물이자, 인간의 절망과 고통을 양분 삼아 세상을 파멸시키는 역천사마도(逆天邪魔圖)의 본장이다.
사패천이 두루마리를 하늘을 향해 거칠게 펼쳐 올린다.
스스스스!
역천사마도가 허공에 넓게 펼쳐지는 순간, 하늘의 은하가 피빛으로 물들며 거대한 어둠의 소용돌이가 대지를 집어삼킬 듯 회전하기 시작한다. 비무대 주변의 모든 이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지고, 대지가 무참히 갈라지는 파멸의 전조가 화산 전체를 뒤덮는다.
피빛으로 물든 하늘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울부짖는다. 허공에 넓게 펼쳐진 역천사마도(逆天邪魔圖)에서 뿜어져 나오는 칠흑 같은 마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화산의 영맥을 무참히 짓밟기 시작한다.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갈라지고, 갈라진 틈새마다 검은 기운이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다. 그 악독한 마장에 비무대 주변의 장로들과 제자들은 가슴을 쥐어짜며 피를 토하고 쓰러진다.
"크아악! 영맥이…… 영맥이 뒤틀린다!"
숨이 막히는 압박감 속에서 화산의 제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무릎을 꿇은 채 오들오들 떠는 그들의 살갗 위로 검은 반점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사패천이 펼쳐 든 마도(魔圖)는 단순히 기운을 뿜어내는 병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지에 흐르는 영적인 맥을 오염시켜, 그 위에 서 있는 모든 생명체의 도심을 썩혀 문드러뜨리는 파멸의 제단이었다.
이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는 백무린의 시야가 다시 한번 거세게 흔들린다.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지더니, 이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득한 물속으로 가라앉듯 고요해진다. 심마의 역풍이 그의 청각마저 앗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눈앞의 광경은 이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무성영화처럼 기괴하게 흘러간다. 시각은 이미 흑과 백의 무채색으로 변해 버렸고, 청각마저 상실한 육신은 마치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백무린의 손끝은 차갑게 식어가는 와중에도 제자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있다.
그의 무채색 시야 속에서, 오직 단 한 곳만이 이질적인 빛을 발하며 고동친다. 비무대 아래, 사지가 마비된 채 쓰러져 있는 설자화의 품속이다. 그녀가 백무린을 살리기 위해 천하를 헤매며 모아왔던 고대 검의 파편이, 이제는 스스로 만개하듯 눈부신 은빛 광휘를 뿜어내고 있다. 그것은 하늘에 가득 찬 천벌의 뇌겁(雷劫)을 아낌없이 빨아들이는 주뢰(鑄雷)의 철물이었다.
백무린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단전이 갈라지고 전신의 경맥이 뒤틀리는 고통이 엄습하지만, 그의 안면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다.
스슥.
소리 없는 세계 속에서 백무린의 신형이 설자화의 앞에 당도한다. 설자화는 사부의 육신이 붕괴하고 있음을 직감한 듯,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그녀의 입술이 무언가 절규하듯 움직이지만, 청각을 잃은 백무린에게는 그저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하다. 백무린은 묵묵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소매 속에 있던 고대 검의 파편을 쥐어 잡는다.
찌르르릉!
쇳조각을 쥔 손바닥을 타고 전율할 만한 뇌전의 기운이 온몸으로 내달린다. 백무린의 전신이 푸른 불꽃으로 뒤덮이며, 굳어 가던 그의 오감이 일순간 강제로 깨어난다.
"……무린 씨! 안 돼요! 그걸 잡으면 당신의 혼백마저 타버릴 거예요!"
설자화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그제야 고막을 때린다. 백무린은 대답 대신 나직이 미소를 지을 뿐이다. 이미 인과의 굴레에 발을 들여놓은 몸, 제자를 구하고 화산을 살릴 수 있다면 한 줌의 재로 화한들 무슨 후회가 있으랴.
백무린이 고대 검의 파편을 쥔 손을 청명진의 녹슨 철검을 향해 뻗는다.
"진아, 검을 들어라."
그의 목소리는 평온했으나, 그 안에 담긴 도(道)의 무게는 태산보다 무거웠다. 청명진은 사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뇌전과 자신의 자하진기가 공명하는 것을 느낀다. 그는 이가 빠진 철검을 두 손으로 굳게 쥐고 하늘을 향해 치켜든다.
백무린이 고대 검의 파편을 청명진의 철검 검신에 그대로 맞대어 문지른다.
콰콰콰쾅!
마치 하늘의 문이 열린 듯, 붉은 먹구름을 뚫고 거대한 백색의 번개 줄기가 청명진의 철검으로 수직 강하한다. 천벌의 뇌겁이 철검과 고대 검의 파편을 매개로 삼아 지상으로 쏟아진 것이다. 그 무지막지한 벼락의 힘이 철검에 묻어 있던 사패천의 잔재를 완전히 태워버리고, 청명진의 자하진기를 극한으로 정련하기 시작한다. 녹슨 철검의 표면이 떨어져 나가며, 그 안에서 자줏빛 광채를 투과하는 신검(神劍)의 본질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끝까지……!"
사패천이 광소하며 역천사마도를 더욱 넓게 펼친다.
마도에서 뿜어져 나온 수천 수만의 검은 사슬이 허공을 메우며 백무린과 청명진을 향해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린다. 그 사슬 끝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의 얼굴이 매달려 울부짖고 있다. 사슬이 스치는 곳마다 공간이 썩어 들어가며 지독한 악취를 풍긴다.
청명진이 자색의 신광이 일렁이는 검을 비스듬히 눕힌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사부가 목숨을 바쳐 열어준 길, 그 끝에 도사린 어둠을 베어내겠다는 일념만이 그의 도심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화산(華山)의 검은 꺾이지 않는다."
청명진의 신형이 대기를 가르며 비상한다. 그의 검끝에서 피어난 자색의 매화가 허공을 가득 메운다. 단순한 환영이 아닌, 정종의 자하진기와 천벌의 뇌전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파멸의 꽃송이들이다. 자색 매화가 검은 사슬과 부딪칠 때마다 가공할 폭음과 함께 사마의 기운이 정화되어 사라진다.
사패천의 안광이 극도로 좁혀진다. 자신의 필살의 초식이 한낱 애송이의 검로에 상쇄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다.
"역천(逆天)의 법륜은 멈추지 않는다! 대지를 삼켜라!"
사패천이 제 가슴을 강하게 내리치며 본명진혈(本命眞血)을 역천사마도에 뿜어낸다. 붉은 피를 머금은 마도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배로 팽창하더니, 이내 화산파 전체를 송두리째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어둠의 해일로 변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가히 천재지변이라 할 만한 위력이었다.
청명진의 신형이 그 거대한 어둠의 해일 앞에서 한없이 작아 보인다.
바로 그 찰나, 백무린의 육신이 격렬하게 진동한다. '겁경무량'의 마지막 대가가 그의 영혼을 통째로 뜯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심장이 고동을 멈추고, 단전의 잔여 진기가 완전히 고갈되어 전신의 혈관이 일제히 파열된다. 선혈이 안개처럼 그의 몸 사방으로 뿜어져 나온다.
동시에, 하늘의 붉은 은하 한가운데서 지금까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칠흑처럼 어두운 보랏빛의 종말의 번개가 태동하기 시작한다. 백무린이 천기를 누설하고 인과를 뒤흔든 대가로 내리는, 신벌(神罰)의 최종장이다.
그 종말의 번개는 사패천의 마도를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천도의 순리를 거스르고 기연을 강제로 거머쥔 청명진과, 그 기연을 설계한 백무린의 머리 위를 정확히 조준하고 있었다. 하늘은 마교의 사술뿐만 아니라, 인과를 어지럽힌 구도자들 역시 용서치 않겠다는 듯 무자비한 안광을 번뜩인다.
대지를 뒤덮는 어둠의 해일과,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종말의 천벌.
이 절대절명의 파멸적 위기 속에서, 소리도 빛도 잃어가는 백무린의 시야 위로 마지막 인과의 실타래가 날카롭게 얽혀 들어간다. 백무린은 제자를 향해 검을 쥔 손을 뻗으려 하지만, 그의 손가락 끝은 이미 석화(石化)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과연 백무린은 전신이 붕괴하는 임사(臨死)의 고통 속에서 제자를 구하고 이 인과의 재앙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