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탈 모니터의 경고음이 수술실의 무거운 공기를 찢고 메아리칩니다.
"수축기 혈압 70 밑으로 떨어집니다! 하이드레이션(수액 투여) 풀 드립하고 에피네프린 준비하세요!"
마취과 의사의 날카로운 비명이 차가운 스테인리스 벽면에 부딪쳐 튕겨 나갑니다. 수술 필드는 이미 통제 불능의 붉은 수렁입니다. 흡인기(Suction) 관을 타고 넘어가는 선혈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배액병을 채워 가고 있습니다.
이사장 아들 김태준의 손에 들린 모스키토 포셉이 사시나무 떨듯 흔들립니다. 췌장 두부 종양을 박리하던 중, 그의 서투른 메스 끝이 상장간막정맥(SMV)의 후벽을 그대로 찢어발겼습니다. 문맥압으로 인해 뿜어져 나오는 암적색의 정맥혈은 순식간에 수술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습니다. 어디가 찢어졌는지, 어디가 묶어야 할 혈관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혼돈 상태입니다.
"아, 아니야... 대동맥이 아니라 정맥인데 왜 이렇게 피가 쏟아져? 야! 석션 제대로 안 해?!"
김태준이 애꿎은 1년 차 레지던트에게 소리를 지르지만, 그의 동공은 이미 풀려 있습니다. 수술용 글러브를 적신 피가 그의 가운 소매를 타고 뚝뚝 떨어집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직감하고 있습니다. 환자는 정계의 거물급 VIP. 이 수술실에서 환자가 테이블 데스(Table death)를 맞이하는 순간, 집도의인 김태준의 의사 커리어는 물론 이사장 일가의 가문 전체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것입니다.
"윤, 윤우주..."
김태준이 겁에 질린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방금 전까지 당신의 공을 가로채며 기고만장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습니다. 그는 슬그머니 수술대 뒤편으로 발을 빼며 압박포를 던지듯 내려놓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당신에게 떠넘기고 이 아수라장에서 도망치려는 비열한 본능이 그의 눈빛에서 고스란히 읽힙니다.
"네가... 네가 이거 마무리해. 난 과장님 불러올 테니까, 어시스트 서면서 기구 잡고 있어!"
말도 안 되는 억지입니다. 흉부외과 스태프가 도착하기 전에 환자의 심장은 멈출 것입니다.
당신의 안구 앞 허공으로 '정밀 수술 라이선스 시스템'의 반투명한 푸른색 스캔 창이 떠오릅니다.
[환자: 오병철 (68세)] [진단: 췌장암 Stage IIB, 상장간막정맥(SMV) 1.8cm 활동성 파열] [예상 생존 시간: 180초] [시스템 제안: 초감각 시야 모드를 활성화하여 침착하게 사틴스키 클램프(Satinsky clamp)를 가하고, 5-0 프롤린(Prolene)으로 연속 봉합을 시행하십시오.]
눈앞에서 붉게 점멸하는 사망 타이머의 숫자가 맹렬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179... 178... 177...
사방이 피로 물든 이 수술실은 지금 거대한 갈림길입니다. 여기서 메스를 빼앗아 쥐고 환자를 살려낸다면, 당신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천재적인 의학 실력을 만천하에 증명하며 이 대학병원의 권력 구도를 뒤흔들 강력한 카드를 쥐게 됩니다.
반면, 김태준이 저지른 이 살인적 의료 사고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당신을 파멸시키고 면허를 빼앗았던 이사장 일가와 병원 재단은 수습할 수 없는 파멸의 한복판으로 곤두박질칠 것입니다. 비록 환자의 목숨은 스러지겠지만, 원수들을 단 한 번에 몰살할 가장 확실한 칼날이 완성되는 셈입니다.
환자의 심전도 그래프가 급격히 완만해지며 경고음의 박자가 빨라집니다. 피비린내 나는 침묵 속에서, 수술실 안 모든 스태프의 시선이 당신의 손끝을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