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기획조정실장의 방은 지독하리만큼 고요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대학병원 본관의 화려한 전경과 대비되게, 방 안의 공기는 마치 얼어붙은 포르말린처럼 차갑고 뻑뻑하다.

소파 깊숙이 몸을 묻은 박민현 기획조정실장은 비웃음기가 채 가시지 않은 눈으로 당신을 내려다본다. 그가 가죽 테이블 위에 툭 던진 것은 두꺼운 파란색 차트다.

"소아 흉부외과의 유일한 스태프가 학회 차 출국한 지 정확히 세 시간 지났네. 그리고 마침 오늘 태백에서 비장 파열로 뇌사 판정을 받은 소아의 기증 심장이 이송 중이지."

그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차트 첫 페이지를 톡톡 두드린다.

"좌심실형성부전증후군(HLHS). 이미 세 차례의 단계적 개심술을 거쳤으나 우심실 기능 부전과 폐고혈압이 극도에 달한 5세 환아야. 기증 심장의 냉허혈 시간(Cold Ischemic Time)은 헬기 이송을 감안해도 최소 4시간 10분. 소아 심장 이식의 한계치인 4시간을 초과하네. 기증자와 수혜자의 주폐동맥 직경 차이는 8밀리미터 이상. 게다가 이전 수술로 인한 종격동 유착은 흉벽 뒤쪽까지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지."

박민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간다. 안경 너머의 눈빛에는 하이에나 같은 잔혹함이 도사리고 있다.

"생존율은 1% 미만. 이 수술방에 들어가겠다고 자원할 미친 교수는 이 병원에 없네. 어때, 윤우주 선생? 지난번 대동맥 박리를 기적처럼 봉합했다는 그 신의 손으로, 이 불쌍한 아이에게 새 생명을 선물해 볼 텐가?"

이것은 제안이 아니다. 정교하게 올가미를 씌운 교수대다. 1년 차 레지던트인 당신이 집도의로 나서 수술을 실패하는 순간, 박민현은 기다렸다는 듯 모든 언론과 의학회에 '라이선스 없는 임상시험 수준의 무모한 살인 행위'로 대대적으로 공표할 것이다. 의사 면허 영구 박탈은 물론이요, 형사처벌을 피할 길 없는 확실한 죽음의 덫.

그때, 당신의 망막 위로 정밀한 푸른빛의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명멸하며 떠오른다.

[알림: 정밀 수술 시스템의 연동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신규 정밀 스킬 개방: '나노 미세 봉합 (Nano-micro Suture)'] [- 효과: 수술 필드를 최대 12배율 미세현미경 수준으로 확대 인지하며, 직경 1mm 이하의 영아 관상동맥 및 섬유화된 심벽 외막 혈관을 0.03mm 차이 이내로 정밀하게 재건 제어합니다.]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정보창이 당신의 시야를 선명하게 메운다. 박민현의 추악한 야심이 담긴 차트 속, 1%의 확률로 꺼져가는 소아 환자의 심장 박동이 손끝에 닿을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살아있는 생명을 제물 삼아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간계를 꺾고, 저 오만한 기득권의 심장에 메스를 꽂아 넣을 기회이기도 하다. 당신의 눈이 가라앉으며 결단의 순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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