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원장실의 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닫힌다. 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 미세한 기계음 외에는 적막만이 흐르는 방. 두꺼운 카펫 위에 선 당신의 시선 끝에는 은은한 조명을 받는 원목 책상, 그리고 그 뒤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부원장 한기태가 있다.
그는 병원 내에서 가장 냉혹하고 치밀한 전략가로 통한다. 이사장의 아들 김태준이 지난 수술의 공을 가로채 기고만장해하는 동안, 유일하게 진실을 꿰뚫어 본 인물이기도 하다. 한기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손가락 끝으로 태블릿 화면을 슬며시 밀어낸다.
"이사장 패거리들이 눈이 멀어 널 소모품으로 쓸 생각만 하는 모양인데, 난 달라. 진짜 칼잡이가 누군지 정도는 구별할 줄 알지."
화면에는 삼혈관 질환(3VD)을 앓고 있는 환자의 관상동맥 조영술(CAG)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좌전하행지(LAD) 전체가 하얗게 석회화되어 거칠게 좁아진 상태. 당신의 망막 위에 정밀 수술 라이선스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경고 창을 띄운다. [경고: 목표 혈관 석회화 지수 극도로 높음. 불완전 문합 시 10분 내 급성 심근경색 유발 가능.]
"유강진 의원이야. 이번 재단 이사장 선임에서 표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거물이지." 한기태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그의 음성에는 가느다란 살기가 서려 있다. "일주일 뒤, 김태준이 집도의로 들어가는 관상동맥 우회술(CABG)에 너도 퍼스트 어시스턴트로 들어가게 될 거다. 내가 원하는 건 심플해. 수술은 실패해야 한다."
"실패…… 말씀이십니까." "완벽한 의료 사고를 바라는 게 아니야. 정밀 의료의 한계처럼 보이는 정교한 실수. 예컨대 미세 혈관 문합 도중 매듭이 약간 느슨해지거나, 석회화된 내벽을 건드려 미세 혈전이 뇌로 날아가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지. 영구적인 인지 장애나 경미한 편마비 정도면 충분해. 집도의인 김태준과 그 아비는 단숨에 파멸이고, 유 의원은 정치 생명이 끝나겠지."
당신의 목울대가 잘게 떨린다. 흉부외과의로서 환자의 목숨을 정쟁의 도구로 삼으라는 제안. 심장을 살리기 위해 메스를 잡았던 과거의 기억과, 자신을 짓밟았던 기득권 세력을 향한 복수심이 가슴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한다.
"나와 손을 잡는다면, 네 면허 박탈의 위협은 전부 내가 해결해 주지. 약속하지. 태준이 떨어진 자리에 서게 될 차기 과장은 네가 될 거다." 한기태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민다. "하지만 거절한다면…… 넌 유 의원 수술실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오늘부로 임상에서 영구 배제될 거다. 내 힘이 어떤 것인지 굳이 확인하려 들지 마라."
당신의 시선이 악마의 제안을 건네는 부원장의 손과, 태블릿 화면 속 검붉게 타들어 가는 환자의 심장 영상 사이에서 멈춘다. 생과 사의 경계를 조율하는 가장 정밀한 칼날이, 이제 당신의 손끝에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결정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