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ICU)의 모니터가 일정한 박자로 바이탈 사인을 그립니다. HR 72회, BP 115/75 mmHg. 대동맥 박리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환자의 생체 신호는 거짓말처럼 안정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삽입한 대퇴동맥 캐뉼라와 완벽했던 원위부 문합(Distal Anastomosis) 덕분입니다.
하지만 수술실 문이 열리자마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당신이 아닙니다. 하얀 가운을 단정하게 걸친 김태준이 기자들과 재단 관계자들 앞에서 안경테를 지적으로 치켜올리며 미소 짓습니다.
"대동맥 궁 부위의 미세 파열을 임기응변으로 잡아내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다행히 제 판단이 늦지 않았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눈부시게 터집니다. 이사장의 외아들이자 펠로우인 김태준. 수술 중 당황하여 손을 떨며 구경만 하던 그가, 이제는 완벽한 집도의의 가면을 쓰고 찬사를 독식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끝이 만들어낸 기적을 제 공로로 둔갑시킨 채 말입니다.
"윤 선생."
사람들이 빠져나간 복도, 김태준이 당신의 어깨를 툭툭 칩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값비싼 명품 만년필이 오만하게 돌아갑니다.
"오늘 어시스트는 제법 쓸 만했어. 앞으로도 내 밑에서 내 손과 발이 되어 움직여봐. 라인만 잘 타면, 레지던트 수련 기간이 아주 편해질 테니까."
역겨운 호의입니다. 눈앞의 이 남자는 과거 당신을 파멸시키고 죽음으로 몰고 갔던 이사장 가문의 혈육이자 페르소나입니다. 과거의 당신이었다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회귀를 거친 지금의 당신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숙입니다. 망막 위에 흐릿하게 떠오른 푸른색 시스템 메시지를 응시할 뿐입니다.
[정밀 수술 라이선스 싱크로율: 15%] [특수 스킬: '결함 추적(Defect Tracking)' 활성화]
당신의 눈에 김태준의 화려한 겉포장 밑에 숨겨진 무능이 낱낱이 파헤쳐집니다. 불안정한 봉합 기술, 압박 상황에서의 판단력 마비. 그는 스스로를 빛나게 해줄 도구로 당신을 선택했다고 믿겠지만, 그것은 제 목에 스스로 교수형 밧줄을 거는 행위와 다름없습니다.
의학의 세계는 냉혹하고 엄정하여, 단 1밀리미터의 허영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특히 가슴을 여는 흉부외과에서 무능한 자가 메스를 잡는 것은 예고된 재앙입니다. 김태준이 높이 올라갈수록, 그가 추락할 때의 파열음은 더 크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그 추락의 무대를 설계해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 칼날을 벼리던 당신의 시선이, 병원 권력 지형도의 두 갈래 길을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