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머릿속을 지배하던 푸른빛의 정밀 수술 라이선스 홀로그램이 핏빛 경고등으로 깜빡이기 시작한 것은, 당신이 VIP 환자의 급성 대동맥 박리(Aortic Dissection)를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 방치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경고: 의사 면허 동화율 0% 도달. 시스템을 영구 폐기합니다.]

망막을 찢을 듯한 이명과 함께 가슴을 관통하는 통증이 밀려왔다. 손끝을 타고 흐르던 신의 영역과도 같던 감각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메스를 쥔 손이 꼴사납게 떨렸다. 수술실의 메인 라이트 아래에서, 당신의 처참한 지체와 흔들리는 눈동자는 어시스트로 들어온 동료들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

"윤우주 선생. 지금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캐뉼라가 엇갈렸잖아요! 환자 바이탈이 무너집니다!"

민 교수의 날카로운 고함이 고막을 때렸지만, 이미 당신의 머릿속은 복수와 탐욕의 계산기로만 가득 차 있었다. 박 실장을 완벽히 매장하기 위해 수술방 내부의 데이터를 조작하고,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재단 지분을 요구하던 추악한 거래. 그것이 당신이 선택한 복수의 방식이었다.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더 추악한 괴물이 되는 길을 택한 대가는 참혹했다.

"선생님께선 더 이상 의사가 아닙니다. 그저 메스를 든 장사꾼일 뿐이죠."

언제나 당신의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던 한혜원의 차가운 선언을 끝으로, 병원의 모든 동료들이 당신에게 등을 돌렸다. 박 실장 세력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의 무덤 위에 세워진 새로운 권력은 지저분한 비밀을 너무 많이 아는 당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보건복지부의 면허 영구 취소 처분서가 이사장실 테이블 위로 툭 떨어졌다. 과거 대리 수술 공모와 임상 데이터 조작 혐의. 당신이 적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묵인하고 이용했던 바로 그 죄목들이, 이제는 완벽한 그물이 되어 당신의 목을 죄어왔다.

...그리고 지금, 차가운 장대비가 쏟아지는 대학병원 뒤편의 어두운 골목길.

"컥, 으윽..."

당신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울컥 뿜어져 나왔다. 복부를 깊숙이 찌르고 들어온 예리한 회칼 선 날이 차갑게 식어가는 체온을 뺏어갔다. 재단의 새로운 비선 실세들이 보낸 괴한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의사로서의 감각은 잔인하게도 살아 있어, 당신은 자신의 육체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정교하게 진단해 냈다.

우측 폐의 호흡음 소실. 기관 변위(Tracheal deviation). 경동맥의 박동은 분당 140회 이상으로 급격히 치솟다가 이내 실처럼 가늘어지고 있었다. 긴장성 기흉(Tension pneumothorax)으로 인한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

치료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14게이지 카테터 바늘 하나만 가슴에 찔러 넣어 압력을 빼내면 살 수 있었다. 바지 주머니 속에 늘 넣고 다니던 일회용 주사기가 만져졌다.

하지만 메스를 잃어버리고 손가락 뼈마디가 으스러진 당신에게는, 제 가슴 가죽을 뚫을 손아귀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빗물이 고인 아스팔트 바닥으로 피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불이 꺼진 거대한 대학병원의 실루엣이 멀리 보였다. 저 안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려냈던 천재 의사 윤우주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복수에 눈이 멀어 메스의 신성함을 더럽힌 시체 지망생만이 차가운 빗속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시야가 서서히 좁혀지는 흑암 속에서, 당신은 최후의 호흡을 내뱉으며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그것은 어떠한 구원도, 회귀도 없는 영원한 나락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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