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뚝.

찰나의 침묵. 전자기기들이 내뿜던 일정한 백색소음이 거짓말처럼 소멸합니다. 뒤이어 비상등의 붉은 불빛이 복도를 차갑게 물들임과 동시에, 중환자실(ICU) 저편에서 들려오는 인공호흡기의 저압 경보음(Low Pressure Alarm)이 비명처럼 쏟아집니다.

"정전입니다! 메인 전력뿐만 아니라 비상 발전기 릴레이까지 차단되었습니다!"

간호사의 다급한 외침이 정적을 깨부숩니다. 파멸을 예감한 이사장과 박 실장 무리가 병동 전체의 동력원을 강제로 끊어버린 것입니다.

당신의 시야에 정밀 수술 라이선스 시스템의 반투명한 경고창이 점멸합니다.

[경고: 병원 내부 전력 공급률 0%] [집중치료실(ICU) 내 무정전 전원 공급 장치(UPS) 배터리 가동 중.] [잔여 데드라인: 12분 40초.]

12분. 그 짧은 시간이 지나면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전신마취 환자들과, 기계식 심폐보조장치(ECMO)에 의지해 연명하던 중환자 수십 명의 동맥압(ABP) 그래프가 평평한 직선으로 내려앉게 됩니다.

그 순간, 당신의 모니터에 지하 4층 비밀 서버실의 내부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는 시스템 알림이 추가로 들어옵니다. 적들이 도주하기 전, 자신들의 추악한 비자금 내역과 대리 수술 지시서가 담긴 메인 서버를 물리적으로 소각하기 위해 소방 설비를 무력화하고 폭파 시한장치를 가동한 것입니다. 지금 내려가지 않으면 더러운 기득권의 악성 종양을 완전히 도려낼 마지막 기회가 영원히 타버립니다.

"이러면... 기계가 다 꺼져요! 윤 선생님, 어떡합니까!"

수동식 엠부백(Ambu bag)을 손이 터져라 짜대던 동료 레지던트의 눈에 절망이 서립니다. 암흑 속에서 오직 비상등의 적색광만이 가쁘게 조여드는 숨소리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뇌리를 때리는 시스템의 기계음이 선택을 종용합니다.

[긴급 분기점 활성화] [루트 A: 지하 4층 비밀 서버실. 적들의 도주 경로 차단 및 원본 데이터 회수.] [루트 B: 지하 2층 메인 전기실. 발전기 수동 강제 바이패스 시도를 통한 전력 복구.]

적들을 추격해 완벽한 복수의 쐐기를 박을 것인가, 아니면 의사로서의 맹세를 지키며 당장 숨이 넘어가는 환자들을 구할 것인가. 당신은 어둠 속에서 메스를 쥐듯 주먹을 꽉 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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