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전 앞뜰을 가득 메운 백색의 물결은 흡사 거대한 상여가 대궐 한복판에 들이닥친 듯한 기괴한 광경을 자아냈다.
사헌부 대간들과 지평, 장령 등 백여 명의 사림이 하얀 소복을 입은 채 부복해 있었다. 짚자리를 깐 흙바닥 위에 이마를 짓찧으며 내지르는 그들의 곡소리가 차가운 밤안개를 뚫고 좌우의 회랑을 뒤흔들었다.
"전하! 세제의 무도한 사술을 금하시고, 종묘사직의 기강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사사로이 화기를 단련하고 역부를 모아 대궐 밖에서 병장을 주조하니, 이는 필시 조정을 겁박하고 천조(天朝)의 뜻을 거스르려는 역모의 싹이옵니다!"
맨 앞자리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목을 놓아 부르짖는 이는 예조판서 김덕형이었다. 그의 백색 도포 자락은 이미 흙과 눈물로 얼룩져 있었으나, 치켜뜬 두 눈 속에서 이글거리는 안광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서슬 퍼랬다.
이강은 그 처절하리만치 정교하게 기획된 정치적 연극의 현장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사정전의 문턱을 넘어섰다.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침착하고 고요한 움직임이었다.
편전 내부의 공기는 서리가 내린 듯 얼어붙어 있었다.
용상에 앉은 국왕 이도의 안색은 황토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며칠 밤을 설쳤는지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편전 바닥을 밟는 이강의 그림자를 집어삼킬 듯 노려보았다.
"세제는 앞으로 나오라."
이도의 목소리는 낮게 갈라져 있었다. 평소의 온화함은 온데간데없고, 왕권을 수호해야 하는 군주로서의 극도에 달한 피로감과 압박감만이 묻어났다.
이강은 관복 소맷자락을 가지런히 모으며 무릎을 꿇었다. 바닥의 차가운 온돌기가 무릎뼈를 타고 시리게 올라왔지만, 그의 척추는 대나무처럼 곧게 뻗어 있었다.
탁!
이도가 용상 옆 탁자를 내리쳤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헌부와 예조가 연명으로 올린 탄핵 성안이다. 네 사저의 가마터에서 무쇠를 녹여 병기를 만들고, 화약을 사사로이 정제하여 군사를 기르려 했다는 탄핵이 빗발치고 있다. 이백 명이 넘는 대간들이 궐문 밖에서 곡을 하며 단식을 하고 있단 말이다! 세제,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이도가 내던진 두꺼운 장계 서류가 이강의 무릎 바로 앞에 흩어졌다. 종이 위에 적힌 붉은 글씨들은 하나같이 '대역(大逆)', '참주(僭主)', '사도(邪道)'라는 극단적인 단어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강은 흩어진 장계들을 응시했다. 시야 한구석에서 '정밀 설계의 안'이 작동하며, 장계의 종이 질감과 먹물의 수분 함량까지 분석해 내는 미시적 수치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는 감정의 동요 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전하, 소신이 사저의 가마터에서 철을 다루고 화약의 원료를 정제한 것은 사실이옵니다."
"틀림없는 사실이라? 네 가마터에서 나온 강철이 명나라의 명검을 일격에 동강 내었다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하다! 세제가 사사로이 천민들을 거느리고 천하를 호령할 병기를 만드는데, 내 어찌 이를 묵인하겠느냐!"
이도의 추궁은 날카로웠다. 그것은 동생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 사림들의 칼날이 왕실 전체를 겨누기 전에 꼬리를 자르고자 하는 처절한 방어기제에 가까웠다.
그때, 편전 문이 열리며 예조판서 김덕형이 대신들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 들어왔다. 그의 이마에는 흙바닥에 머리를 찧어 생긴 붉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전하! 세제 저하께서는 지금 사직의 근간을 뒤흔드는 망동을 '학문과 실리'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하고 계시옵니다!"
김덕형의 목소리가 사정전 대들보를 울렸다. 그는 이강을 쏘아보며 가시 돋친 훈계를 쏟아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무기를 만드는 기술은 천한 기예에 불과하거늘, 왕실의 적통이신 세제께서 친히 천민 박기현 무리와 어울려 밤낮으로 쇳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더욱이 명나라 천자께서 조선의 병기 주조를 극도로 경계하시는 이때에, 이토록 불온한 제철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대명 사대의 예를 저버리고 조선을 전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대역죄가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당장 저 요사스러운 가마터를 폐쇄하시고, 주동자 천민들을 참수하여 천조에 충성을 보여야 하옵니다!"
김덕형의 주장은 정교했다. 사대 명분론이라는 거대한 방패와 대명 천자의 권위라는 무기를 동시에 들이밀어 이강을 율법의 덫에 가둔 것이다. 대신들 사이에서 동조하는 나지막한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이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가에는 차가운 호선이 그려져 있었다.
"예조판서 대감의 충심이 참으로 눈물겹사옵니다."
이강의 어조는 비아냥거리거나 흥분하지 않고, 지극히 담담하고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대감께서는 성리학의 대의를 말씀하시면서, 정작 주자학의 근본인 '민생'과 '애민'의 가치는 어디로 팽개치셨는지 묻고 싶사옵니다."
"민생이라니! 세제가 사사로이 대포와 칼을 만드는 것이 어찌 백성을 위한 일이란 말이오!"
김덕형이 핏대를 세우며 반박했다.
이강은 품속에서 미리 준비해 둔 서찰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병기 설계도가 아니었다. 조선 팔도의 세입과 공납 현황이 빽빽하게 적힌 호조의 공식 통계표였다.
"전하, 그리고 예판 대감. 지금 조선의 백성들이 국가에 바치는 공납 중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청동 제기(祭器)'와 놋그릇이옵니다."
이강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조선 전국의 현감과 수령들이 종묘제례와 각 지방의 사직제에 쓸 청동 제기를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의 집에 있는 놋그릇과 숟가락까지 강제로 수탈해 가고 있사옵니다. 구리가 나지 않는 이 땅에서 청동을 만들기 위해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고혈을 짜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옵니다."
이강은 김덕형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대감께서는 예법을 숭상한다 하시며 종묘사직의 제기가 규격에 맞지 않으면 불충이라 다스리셨지요. 그로 인해 매년 황해도와 평안도의 백성들이 구리 공납을 맞추지 못해 야반도주를 하고, 가정이 파탄 나는 실정을 단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셨습니까?"
"그, 그것은 국방과 제례의 법통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불가피하다 하셨습니까?"
이강이 김덕형의 말을 사정없이 자르며 일어섰다. 그의 장대한 기개가 편전 안의 공기를 압도했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이 부족한 구리를 충당하기 위해 우리 조선이 매년 대명국에서 막대한 양의 동전(銅錢)을 밀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이옵니다. 호조의 기록에 따르면, 매년 명나라로 유출되는 은(銀)만 해도 수만 냥에 달하옵니다. 청동 그릇 몇 개를 만들기 위해 나라의 곳간을 털어 명나라의 배를 불리고, 우리 백성들의 뼈를 깎아 바치는 것이 대감께서 말씀하시는 사대의 예이자 성리학의 도리이옵니까?"
이강의 날카로운 수치 지적에 김덕형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편전에 입시한 대신들 역시 서로의 눈치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조선의 만성적인 구리 부족과 그로 인한 국부 유출은 조정의 고질적인 골칫거리였으나, 누구도 감히 사대 명분과 제례의 영법 때문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던 치부였다.
이강은 이도의 앞으로 다가섰다.
"전하, 소신이 사저의 가마터에서 연구한 것은 단순한 살상용 병기가 아니옵니다. 구리를 대체할 수 있는 극도의 고강도 '무쇠'를 제련하는 기술이옵니다."
이강의 뇌리에 지난번 가마터에서 행했던 고된 실험의 과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이강은 가마터 수색 도중 우연히 유황 광석 내부에서 미세하게 빛나는 결정을 발견했었다. '정밀 설계의 안'을 통해 투시한 결과, 그것은 황의 순도를 극대화하고 열전도율을 제어하는 특수한 '화성황(火星硫黃)' 결정체였다. 이강은 이를 은밀히 추출하여 가마 내벽에 바르는 특수 도료 배합식에 첨가했었다.
이 기술적 돌파구가 없었다면, 조선의 조악한 가마는 백련강을 제련하는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진즉에 붕괴했을 터였다. 화성황 결정이 도료 내에서 탄소 분자와 결합하여 열 손실을 보강하는 단열층을 형성해 주었기에, 가마는 이천 도에 달하는 초고온을 장시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온의 가마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구리보다 질기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고장력 선철이었다.
"소신은 황해도의 야철지에서 정취한 특수 화성 결정을 정제하여 가마의 구조를 보강하는 도료를 개발해 냈사옵니다. 이를 통해 가마 내부의 온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잡철 속에 섞인 불순물을 완벽히 정화하는 제철법을 확립하였습니다. 이 공정으로 생산된 무쇠는 청동보다 훨씬 단단하며, 녹이 슬지 않고, 청동 제기와 비교해도 그 기품과 정밀함이 결코 떨어지지 않사옵니다."
이강은 목소리를 한층 더 웅장하게 울렸다.
"소신이 가마터에서 장인들과 수백 번 가마를 깨부수며 얻어낸 이 백련강 기술을 종묘의 제기 제작에 도입한다면, 더 이상 구리를 구하기 위해 명나라에 은을 바칠 필요도 없고, 백성들의 숟가락을 빼앗을 필요도 없사옵니다! 이것이 바로 주자께서 강조하신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체이자, 나라의 근간을 지키는 참된 도리가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편전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종묘사직의 명분을 앞세워 세제의 목을 죄려던 김덕형의 논리는, 오히려 이강이 제시한 '백성을 구하고 국부 유출을 막는 무쇠 제기'라는 거대한 대의 앞에 완전히 조각나 버렸다. 이강의 철공소는 반역의 온상이 아니라, 조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청동 공납의 사슬을 끊어줄 유일한 구명줄이자 종묘사직을 진정으로 수호할 열쇠가 된 것이다.
국왕 이도의 눈빛에 깊은 경외감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세제의 말이…… 일리가 있구나. 구리 부족으로 인한 민폐가 극에 달했음을 과인도 늘 고심하던 바였다. 세제가 개발한 무쇠 기술로 종묘의 제기를 대체할 수 있다면, 이는 참으로 사직과 백성을 위한 경사로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김덕형이 다급하게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분노와 당혹감으로 뒤범벅되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사직의 제기는 예로부터 청동으로 주조하는 것이 천하의 법도이옵니다! 어찌 천한 무쇠 따위로 조상신의 위패를 모시는 제기를 만든단 말이옵니까! 이는 유교적 예법을 모독하는 일이며, 명나라 천조의 제례 규범에도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예판 대감."
이강이 차가운 안광으로 김덕형을 내려다보았다.
"대감께서는 예법의 껍데기만 보시고 그 알맹이는 보지 못하시는구려. 백성들이 굶어 죽고 나라의 재정이 파탄 나는데, 오직 청동 그릇만을 고집하는 것이 조상신들이 원하시는 예법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공맹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위선에 불과합니다."
"세제 저하!"
김덕형의 얼굴이 붉다 못해 검게 죽어갔다. 주변의 사림 대신들조차 이강의 명쾌한 논리와 수치적 증거 앞에 더 이상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궐 밖에서 곡을 하던 대간들의 명분은 이미 편전 안에서 완전히 와해되고 있었다.
이강은 이도를 향해 정중히 읍했다.
"전하, 소신에게 기회를 주시옵소서. 소신이 사저의 가마터를 활용하여, 먼저 종묘에 바칠 무쇠 제기를 한 벌 주조해 올리겠사옵니다. 그 정밀함과 견고함이 기존의 청동 제기를 압도함을 눈으로 확인하신 후에, 이 기술의 존폐를 결정해 주시옵소서."
이도는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림의 극단적인 단식 투쟁을 잠재우고, 동시에 왕실의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최선의 타협안이었다.
"좋다. 세제에게 사직 제기 주조의 전권을 임시로 부여하노니, 가마터의 폐쇄 논의는 그 제기를 본 후에 다시 논하도록 하겠다."
"신 세제 이강, 전하의 성은에 보답하겠사옵니다."
이강은 고개를 숙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사림공동 서명문을 들고 기세등등하게 들이닥쳤던 김덕형의 탄핵 공세는 도리어 이강의 철공소에 '국가 공식 제기 제작소'라는 합법적인 면죄부를 쥐여주는 꼴이 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수세에 몰려 부들부들 떨고 있던 예판 김덕형의 눈빛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그는 이강의 승리감 어린 표정을 노려보며, 광기에 찬 웃음을 흘렸다.
"하하…… 하하하! 세제 저하, 참으로 영악하십니다. 말재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시는구려."
김덕형은 품속 깊은 곳에서 누렇게 바랜 가죽 뭉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상소문이 아니었다. 조선 건국 초기에 작성된, 사림의 전유물이자 극비리에 보관되어 오던 종묘제례 관련 비망 예서(禮書)였다.
김덕형이 그 고서를 높이 치켜들며, 눈이 뒤집힌 채 소리쳤다.
"전하! 소신이 선대 왕들의 예장 전례가 담긴 고법전을 가져왔사옵니다! 사직의 규례상, 구리가 아닌 무쇠로 제기를 마련하는 것은 경국대전 영법에 명시된 '반상(反常)의 치죄'에 해당하옵니다! 이는 단순한 예법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를 전복하려는 대역죄의 극치이옵니다! 세제 저하, 어디 이 법전 앞에서도 그 요사스러운 수치 나부랭이를 읊어 보시옵소서!"
사정전 내부에 다시 한번 폭풍 같은 침묵이 감돌았다. 김덕형의 손에 들린 빛바랜 고서가 횃불 빛을 받아 불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