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가죽 장막을 찢고 들어온 야철 냄새 섞인 밤바람이 이강의 뺨을 서늘하게 때렸다.

명광개를 걸친 명나라 감찰관들의 어깨 너머로 붉은 횃불의 불꽃이 이리저리 요동쳤다. 사저 가마터의 입구를 가로막은 목책은 이미 반쯤 부서져 흙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양서화는 언제나처럼 단정한 도포 자락을 여미며 입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렸다. 그 정중한 태도 뒤에 숨겨진 독니가 이강의 목덜미를 겨냥하고 있었다.

"세제 저하, 밤이 깊었사온데 이리 험한 곳에서 사사로이 화약을 단조하신다는 소문이 돌아 조정의 심려가 크옵니다."

양서화가 허리를 숙여 읍하는 시늉을 했으나, 그의 구두 굽은 이미 가마터 경계선 안쪽의 젖은 흙을 짓밟고 있었다. 그의 뒤에 선 명나라 감찰관, 동창 백호(百戶) 장경의 눈길이 이강의 발치에 놓인 순백색 염초 결정을 매섭게 훑었다.

"조선은 천자국의 울타리거늘, 황제의 허락 없이 군용 화약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것은 대명률에 의거해 명백한 모반의 전조로 해석될 수 있나이다."

양서화의 부드러운 음성에 명나라 군사들의 철컥거리는 쇠사슬 소리가 겹쳤다. 천자국의 권위를 등에 업은 고압적인 압박이었다. 가마터의 장인들은 이미 사시나무 떨듯 떨며 흙바닥에 이마를 찧고 있었다. 명나라 군사들의 요도가 반쯤 칼집에서 흘러나와 살기를 뿜어냈다.

이강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양서화의 가식적인 미소와 명나라 장수의 오만한 안광을 관통하듯 차갑게 내려앉았다.

"모반이라."

이강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는 가슴팍에서 손을 빼내어, 사저 서고에서 미리 챙겨 두었던 가죽 주머니를 툭 던졌다.

*툭.*

먼지 쌓인 두꺼운 고서 한 권이 양서화의 신발 앞코에 떨어졌다. 책 표지에는 황실의 상징인 황금색 비단 띠가 흐릿하게 남아 있는 '대명률(大明律)'과 '황명조필(皇明祖弼)'의 한역 성안이 선명히 박혀 있었다.

"양 판서. 공맹의 도를 읊조리는 입으로 대명률조차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모양이군."

양서화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저하, 이것이 무슨……."

"대명률 호율(戶律) 제칠조, 그리고 선대 홍무제께서 친히 반포하신 황명조필 외교 전례를 펼쳐 보아라."

이강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수치와 규격을 다루는 공학자의 어조 그대로, 차갑고 명확했다.

"거기에는 천자국의 봉호를 받은 친왕국(親王國)의 왕실 직계 사저에 한하여, 가내 요역 및 가마의 영위는 오직 국왕의 전결에 따르며 외부 감찰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천자국의 동창이라 할지라도 배신(陪臣, 제후국의 신하)의 사저를 수색할 때는 반드시 요동도사(遼東都司)의 정식 관인과 조선 국왕의 교지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지."

이강이 상체를 약간 숙이며 양서화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금 네놈들의 손에 들린 수색 교지는 어디에 있느냐? 동창의 관인이 찍힌 정식 공문은 어디에 숨겨 두었기에, 감히 군사를 이끌고 조선 세제의 사저 사문을 무단으로 돌파하는 것이냐?"

명나라 감찰관 장경의 안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허리의 요도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중국어로 거칠게 내뱉었다.

"조선의 세제가 감히 황제의 사신에게 율법을 논하는가! 화약은 천하의 병기이거늘, 이를 사사로이 만드는 자는 지위를 막론하고 압송할 수 있다!"

양서화가 다급히 그 말을 통변하려 했으나, 이강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유창하고 오차 없는 북경 관화가 이강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압송이라 했느냐?"

장경의 눈이 크게 떠졌다. 조선의 어린 왕세제가 황실의 관화를 완벽하게 구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탓이다.

"대명률 형율(刑律) 무고조에 따르면, 확실한 물증 없이 친왕가의 사저를 수색하고 모반을 주장한 자는 그 죄가 무고한 대상을 해하려 한 만큼의 형벌로 되돌아온다. 네놈이 말하는 화약은 어디에 있느냐? 이것이 화약으로 보이더냐?"

이강이 발치에 쌓인 백색 결정을 가리켰다.

"이것은 함경도와 평안도 경계에서 채굴한 단순한 온돌용 전돌의 가공재이자, 사저의 온기를 보존하기 위해 배합 중인 흙의 응축물일 뿐이다. 황의 냄새가 나느냐? 초석의 화약 반응을 입증할 연기라도 피어올랐더란 말이냐?"

"그, 그것은……."

"조사하고 싶다면 하거라. 단, 이 가마터에서 화약의 완제품이 나오지 않을 시, 네놈들의 목숨과 관직을 대명 황제 폐하의 법정에 정식 교서로 청구하겠다. 조선의 국왕과 사헌부가 연명하여 명나라 조정에 무고죄를 물을 것이다. 천자국의 법을 가장 엄격히 수호해야 할 동창이 법률을 어기고 속국의 친왕가를 겁박했다는 사실이 윤허 없이 황실에 상소될 때, 네놈들의 목길이 온전할지 내 친히 지켜봐 주마."

장경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대명률의 조항은 명나라 관리들에게는 목숨줄과 다름없었다. 황제의 직속 감찰관이라 할지라도, 법적 근거 없이 친왕가를 무단 수색했다가 무고로 판명 나면 참형을 면치 못한다. 게다가 조선 세제의 눈빛에는 추호의 거짓이나 두려움도 없었다. 철저히 계산된 법리적 수렁에 빠졌음을 직감한 장경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양서화가 상황을 수습하려 다급히 나섰다.

"저하, 장 장군은 오직 천자국의 안위를 걱정하여……."

"입을 다물라, 양 판서."

이강의 음성이 채찍처럼 양서화의 뺨을 후려쳤다.

"조선의 조정에서 밥을 먹는 자가 천자국의 군사를 이끌고 세제의 사저를 짓밟았다. 이 사실만으로도 사헌부의 탄핵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내일 아침, 주상 전하께 네놈의 이 기특한 충심을 가장 먼저 고할 테니 그리 알라."

양서화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가식적인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 내렸다.

장경은 결국 요도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포권을 취했다.

"……오해가 있었던 듯하오. 소장, 이만 물러가겠소."

"물러가는 길에 부서진 목책의 값은 내일 사헌부를 통해 청구할 것이니 그리 알라."

이강의 냉혹한 배웅을 받으며, 명나라 군사들과 양서화는 쫓기듯 가마터를 빠져나갔다. 말발굽 소리가 어둠 속으로 멀어지자, 가마터에는 오직 거친 숨소리만이 남았다.

사이다 같은 역공이었으나, 이강의 안색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법전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돌려세운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명나라의 감시망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이제 시간은 조선의 편이 아니었다.

"모두 일어나라."

이강의 명령에 흙바닥에 엎드려 있던 장인들이 덜덜 떨며 몸을 일으켰다. 철화장 박기현이 이마의 흙을 털어내며 이강에게 다가왔다.

"저하, 천자국의 사신들까지 들이닥쳤으니 이제 어찌합니까? 이대로 가마를 계속 돌리다가는 정말로 역모로 몰려 목이 달아날 것입니다."

"목이 무서워 무기 제련을 멈춘다면, 다가올 외침에는 온 나라 백성의 목이 달아날 것이다."

이강의 차가운 눈빛이 가마터 중앙의 도가니 화로로 향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박기현, 가마의 온도가 왜 이 모양이냐?"

"예?"

박기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마를 바라보았다. 화로 안에서는 붉은 화염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이강의 눈은 속지 않았다.

이강이 눈을 감았다가 뜨자, 시야가 푸른빛으로 물들며 '정밀 설계의 안(眼)'이 가동되었다.

가마의 내벽과 무쇠 도가니의 미시 구조가 3D 설계도처럼 투명하게 투시되기 시작했다.

화로의 중심 온도는 약 1,250도. 강철을 제련하기 위한 최소 온도인 1,500도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가마 내부의 열 흐름을 분석하는 붉은색 벡터 화살표들이 가마 외벽을 뚫고 사방으로 분산되는 모습이 보였다. 황토와 짚을 섞어 만든 내벽의 다공성 틈새로 엄청난 양의 열에너지가 소실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도가니의 하단부는 열팽창 계수의 불균형으로 인해 미세한 균열이 발생해 뒤틀리고 있었다. 이대로 온도를 더 올렸다가는 도가니가 깨져 쇳물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대폭발이 일어날 판이었다.

"도가니가 열을 가두지 못하고 밖으로 뿜어내고 있다. 가마 내벽의 단열이 무너졌어."

이강의 지적에 박기현이 가마 벽을 만져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황토에 가랑잎과 재를 섞어 두껍게 발랐사옵니다만,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가마 벽이 달아올라 열을 밖으로 내뿜습니다. 조선의 흙으로는 이 이상의 고온을 견디는 화로를 만들 수 없사옵니다."

"흙의 한계가 아니다. 배합의 한계지."

이강은 품속에서 작은 목함을 꺼냈다.

그 안에는 1화에서 가마터 수색 도중 우연히 발견하여 특수 추출해 두었던 황백색의 결정체, '고결정 유황석'이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일반 유황과 달리 화산 대지 깊은 곳에서 고압을 받아 규산염 성분과 전이원소가 기묘하게 결합한 특이 결정이었다.

'정밀 설계의 안'이 목함 속 결정을 스캔했다.

[성분: 황화규소(SiS2) 및 다황화 화합물. 열적 분석: 특정 온도에서 규산염 점토와 반응 시 자가 유리화 코팅층 형성 가능.]

이강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조선의 조악한 가마터 인프라를 극복할 열쇠가 바로 이 손바닥만 한 결정에 있었다.

"박기현. 이 가루를 가져가라."

이강이 고결정 유황석 가루를 박기현에게 건넸다.

"이것을 고온에서 분해하여 황 성분을 날려 보낸 뒤, 남은 잔여물을 고령토와 1대 5의 비율로 정밀하게 섞어라. 그리고 물 대신 정제된 염초 수용액을 부어 걸쭉한 점토 도료를 만들어라."

박기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결정을 받아들였다.

"유황 가루를 황토에 섞는단 말씀이십니까? 유황은 불에 타면 요사스러운 냄새를 풍기며 스러질 뿐인데, 어찌 그것이 가마를 버티게 한단 말입니까?"

"질문하지 말고 손을 움직여라. 도덕을 백 번 외치는 것보다 잘 제련된 강철 1톤이 백성을 지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명분이 아니라 수치다."

이강의 서늘한 다그침에 박기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맷돌로 향했다.

장인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유황석이 곱게 갈려 미세한 황백색 입자가 되었고, 고령토 가루와 섞여 진흙빛의 도료로 변해갔다. 이강은 '설계의 안'을 통해 배합 비율의 오차를 소수점 이하까지 잡아내며 장인들의 손길을 통제했다.

"더 저어라. 기포가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완성된 도료는 기묘하게도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회색 진흙의 형태를 띠었다.

"이것을 가마 내벽과 도가니 외벽에 얇고 고르게 도포해라. 단 한 곳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박기현과 장인들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가마 안으로 기어 들어가 가죽 붓으로 도료를 바르기 시작했다. 도료가 뜨겁게 달아오른 화로 벽에 닿자, 치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옅은 백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유황석 속의 황화규소 성분이 점토의 규산염과 반응하며 가마 내벽 표면에 차갑고 매끄러운 유리질 코팅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열을 흡수하여 밖으로 방출하던 다공성 황토 벽이, 이제는 열을 안으로 반사하는 완벽한 내화 단열 벽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불을 지펴라. 송풍구를 최대로 열고 탄을 투입해라."

이강의 명령에 장인들이 풀무질을 시작했다.

*쉬이익! 콰아아아!*

바람이 화구로 빨려 들어가며 불길이 미친 듯이 솟구쳤다.

이강의 시야에 구동된 '정밀 설계의 안'이 실시간으로 온도의 변화를 수치로 출력했다.

[1,250℃... 1,320℃... 1,410℃...]

온도 그래프가 가파른 수직 곡선을 그리며 상승했다. 이전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었던 마의 영역을 돌파하고 있었다.

"저, 저하! 가마 외벽이 차갑습니다!"

가마 겉면을 만져보던 장인이 경악 섞인 비명을 질렀다. 화로 내부의 온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고 있었지만, 이강이 설계한 단열 도료가 열을 오롯이 내부에 가두어 둔 덕분에 가마 바깥쪽은 손을 대도 무방할 정도로 열 손실이 완벽히 차단된 것이다.

[1,550℃ 돌파. 무쇠 도가니 내부 선철 용융 상태 안정.]

"됐다."

이강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화로 내부의 도가니 속에서 선철이 완벽한 백열색 액체로 변해 끓어오르고 있었다. 열팽창으로 인한 미세 균열은 단열 막의 보호 아래 완벽히 제어되고 있었다. 조선의 낙후된 기술과 인프라의 한계를 오직 정밀한 공학적 계산과 화학적 결합으로 극복해 낸 순간이었다.

"박기현. 도가니를 꺼내라."

"예, 저하!"

쇠집게를 쥔 박기현의 눈에 광적인 흥분이 서렸다.

두꺼운 내화 가죽 장갑을 낀 장인들이 도가니를 들어 올려 야철대 위에 부었다. 눈이 멀 것 같은 하얀 쇳물이 거푸집으로 흘러들었고, 이내 붉고 묵직한 강철 괴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메질을 시작해라. 탄소를 몰아내고 기포를 짓눌러라!"

박기현이 거대한 철퇴를 치켜들었다.

*깡-!*

대지를 흔드는 웅장한 타격음이 가마터에 울려 퍼졌다.

달구어진 쇠가 두들겨질 때마다 붉은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고, 철화장들의 거친 숨소리와 망치 소리가 교차하며 밤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백 번을 접고, 다시 백 번을 두들기는 백련(百鍊)의 과정이 어둠 속에서 쉼 없이 반복되었다.

이강은 묵묵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쇠가 단단해질수록, 그가 꿈꾸는 자주 국방의 미래 역시 단단하게 제련되고 있었다. 명나라의 위협도, 사림의 명분론도 이 뜨거운 강철의 불꽃 앞에서는 한낱 재로 화할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백 번의 메질이 끝났다.

박기현이 마지막 망치를 내리친 후, 거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섰다.

야철대 위에는 붉은 기운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식어가는 한 자루의 강철 막대가 놓여 있었다.

장막 틈새로 흘러든 푸른 달빛이 강철의 표면을 비추었다.

그 단면이 푸르스름한 수은광을 발하며 매끄럽게 빛나기 시작했다. 조선의 흙과 철로 빚어낸, 탄소 함량이 완벽히 제어된 완전무결한 백련강(百鍊鋼)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가마터를 가득 채웠던 웅장한 철추 소리가 고요와 함께 딱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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