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저하! 오시면 안 됩니다! 뒤로 물러서십시오!"

박기현이 온통 그을음으로 뒤덮인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서 거대한 옹기 가마가 비정상적인 기세로 웅웅거리고 있었다.

붉은 불길이 가마의 숨구멍을 뚫고 나와 밤하늘을 할퀴었다. 진흙으로 두껍게 바른 가마 벽면에는 이미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 틈새로 시큼하고 매캐한 황의 냄새가 뿜어져 나와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이강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가마를 향해 구두 굽을 무겁게 디뎠다.

'정밀 설계의 안(眼)'이 그의 망막 위에 푸른 광막을 펼쳤다. 가마의 흙벽을 투과하여 내부의 열역학적 상태가 실시간 수치로 치환되어 떠올랐다.

[경고: 내부 온도 1,230도 돌파. 압력 임계치 초과율 142%.] [원인 분석: 가마 내벽 도포용 유황 도료의 열 보존 촉진 반응 과부하. 초석 내 산소 방출 속도 기하급수적 증가.]

1화에서 가마터 주변을 수색하다가 추출해 두었던 유황 내 특정 화성 결정이 문제였다. 가마 내벽의 온도 손실을 막기 위해 황토와 배합해 바른 그 특수 도료가 문제의 촉진제였다. 조선의 조악한 가마가 견뎌낼 수 있는 한계 온도를 지나치게 효율적으로 초과해 버린 것이다.

가마 내부의 압력은 이미 폭발 직전의 보일러와 같았다. 조금이라도 균형이 무너지면, 가마 안에 든 수십 근의 초석 가루는 그대로 거대한 폭탄이 되어 가마터 전체를 날려버릴 터였다.

"이탄수(泥炭水)를 가져와라!"

이강의 목소리가 폭풍 속의 쇠방울처럼 맑고 단호하게 가마터를 울렸다.

"예? 저하, 이탄수라 하심은……!"

박기현이 넋을 잃고 되물었다.

"진흙과 숯가루를 갠 물이다! 좌측 창고에 준비해 둔 대형 주입기를 가져와라. 당장!"

이강의 시선은 여전히 가마의 특정 부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설계의 안이 가리키는 붉은 점, 가마 우측 하부의 세 번째 통기구였다. 그곳이 바로 열적 붕괴가 시작되는 화학적 급소였다. 그곳의 압력을 제어하지 못하면 가마는 15초 안에 산산조각이 난다.

장인들이 비틀거리며 구리 관이 연결된 가죽 주입기를 끌고 왔다. 진흙과 숯가루가 섞여 걸쭉하고 검은 빛을 띠는 이탄수가 주입기 통 안에서 출렁였다.

"우측 세 번째 통기구에 주입기의 노즐을 수평으로 밀어 넣어라! 상부의 배출구는 진흙 가마니로 반만 막아 숨구멍을 확보하되, 압력이 한 번에 빠져나가지 않게 차단하라!"

"하지만 저하! 불길이 뿜어지는 곳에 물을 넣었다간 가마가 통째로 깨질 수도 있사옵니다!"

박기현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주장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합리적인 만류였다. 뜨거운 옹기에 찬물이 닿으면 열충격으로 깨지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물이 아니다. 숯가루가 열을 흡수하며 가스를 흡착하고, 진흙이 벽면의 균열을 메울 것이다. 내 계산은 단 한 치도 틀리지 않는다. 밀어 넣어라!"

이강의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수치와 물리 법칙을 확신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극단적인 오만함이었다. 그 기세에 압도된 박기현이 침을 꿀꺽 삼키며 주입기의 손잡이를 잡았다.

"밀어라!"

박기현의 외침과 함께 장인 서넛이 가죽 피스톤을 힘껏 밀어붙였다. 걸쭉한 이탄수가 구리 관을 타고 가마의 붉은 숨구멍 속으로 세차게 뿜어져 들어갔다.

*치이이이이익!*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가마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가마 구멍에서 검붉은 연기 대신 하얗고 두꺼운 수증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지며 가마터를 가득 메웠다. 열기가 순식간에 화상에 가까운 통증으로 장인들의 살결을 자극했다. 몇몇 장인이 뜨거운 김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멈추지 마라! 계속 주입해라! 상부 배출구를 막아라!"

이강이 수증기 속에서 직접 젖은 거적을 집어 들고 가마 상부로 다가갔다. 세제의 고귀한 도포 자락이 진흙과 그을음으로 더러워졌으나, 그의 안중에는 오직 설계의 안이 보여주는 압력 수치뿐이었다.

[압력 임계치 95%로 하강.] [내부 온도 800도로 급감.] [위험 단계 해제.]

가마를 쥐고 흔들던 불길한 진동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쩍쩍 갈라지던 흙벽의 틈새로 흘러내린 이탄수가 빠르게 굳어 가며 균열을 단단히 메웠다. 마침내 웅웅거리던 굉음이 잦아들고, 가마터에는 가쁜 숨소리와 대지를 적시는 하얀 수증기만이 자욱하게 남았다.

이강은 젖은 거적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턱끝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강은 슬며시 주먹을 쥐어 떨림을 감추며 턱 끝을 강하게 깨물었다. 절체절명의 위기는 넘겼으나, 입안에서 비릿한 피사탕 맛이 감돌았다.

'조선의 인프라는 생각보다 더 조악하다.'

아무리 머릿속에 완벽한 현대식 방산 도면과 화합물 수식이 존재한다 한들, 그것을 구현할 가마의 내화벽돌 수준과 황토의 순도가 받쳐주지 못하면 결과는 이처럼 참혹한 폭사뿐이다. 물리적 등가교환의 법칙은 자비가 없다. 기술의 단계를 건너뛰려 할 때마다 자연은 이처럼 잔혹한 청구서를 밀어밀어 내밀 터였다.

"저하…… 살아났사옵니다."

박기현이 가마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의 거친 얼굴은 온통 검은 숯가루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주변의 장인들도 넋이 나간 채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살아난 것에 안도할 때가 아니다."

이강의 서늘한 목소리가 장인들의 귓가를 때렸다.

"이번 실패로 가마 내벽의 온도를 유지하는 방식에 결함이 있음이 증명되었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초석의 순도가 일정치 않아 가열 시 가스 방출량이 불규칙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료의 정제가 이토록 조잡하니 불길의 세기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박기현이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저하. 소인들이 나름대로 재를 섞고 달여 불순물을 걸러내었사오나, 나라에서 관리하는 염초청의 비법마저도 이 이상은 깨끗하게 만들지 못하옵니다. 소인들의 천한 재주로는 이것이 한계이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좌절과 피로가 묻어났다. 며칠 밤을 새우며 가마를 지킨 장인들의 얼굴에 그늘이 깊게 드리웠다. '역시 천한 기술로는 왕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체념이 가마터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이강은 그들을 향해 사대부들이 흔히 하는 성리학적 훈계나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고귀한 도덕률이나 평등에 대한 가당치도 않은 연설은 이 가혹한 물리 법칙의 세계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장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꺾인 기를 세우는 것은 오직 눈앞에 나타나는 확실한 '물리적 실체'뿐이다.

"한계라고 단정 짓지 마라."

이강이 도포 소매를 거칠게 걷어붙였다. 그의 하얗고 고운 세제의 팔뚝이 드러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바닥의 진흙탕을 밟고 정제조 앞으로 걸어갔다.

"저하! 직접 손을 대시면 안 되옵니다!"

박기현이 놀라 만류하려 했으나, 이강은 이미 정제조 옆에 놓인 나무 바가지를 집어 들고 있었다.

"너희가 사용하는 염초 정제법은 단순히 물에 삶아 거르는 도 조(稌 條) 방식에 불과하다. 그리하면 흙먼지는 걸러낼 수 있을지언정, 눈에 보이지 않는 염화나트륨과 마그네슘 같은 이물질은 그대로 남아 불꽃의 순도를 떨어뜨리고 폭발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지금부터 내가 보여주는 것을 똑똑히 보아라."

이강은 설계의 안을 집중시켰다. 정제조 안의 용액 속에서 이온 상태로 떠도는 성분들이 분자 기호와 함께 색깔별로 구분되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것이 초석의 침전 삼단 야철정리법이다."

이강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첫째, 달인 물에 메밀 재와 쑥 탄 재를 특정 비율로 섞는다. 재에 포함된 칼륨 성분이 가마 안의 염초와 결합하여 고순도의 질산칼륨으로 변환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그는 준비해 둔 부드러운 재 주머니를 용액 속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길쭉한 나무 주걱을 잡아 직접 용액을 젓기 시작했다. 세제의 고귀한 몸이 천한 노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장인들은 숨을 죽였다.

"둘째, 아교와 동백기름을 아주 미량 첨가한다."

이강이 작은 병에 든 동백기름 몇 방울과 끓인 아교를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이것이 용액 속의 잡질을 한데 뭉치게 만드는 응집제가 된다. 온도가 약 육십 도에 이르렀을 때, 표면에 떠오르는 끈적한 거품을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걷어내어라."

그의 지시에 따라 박기현이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표면의 검은 거품을 걷어냈다. 거품이 걷힐 때마다 용액의 탁도가 눈에 띄게 맑아졌다. 마치 흐린 개울물이 깊은 우물물처럼 투명해지는 과정이었다.

"마지막 셋째다."

이강이 가마터 한편에 보관되어 있던 겨울철의 얼음 조각들을 정제조 외벽에 채우도록 지시했다. 급격한 온도 강하를 유도하는 단계였다.

"온도를 급격히 낮추면, 물에 녹아 있던 다른 성분들은 그대로 남고 오직 순수한 질산칼륨만이 먼저 결정이 되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것이 선택적 석출이다."

차가운 부동의 냉기가 정제조를 감싸 안았다.

장인들은 숨을 죽이고 용액 내부를 주시했다. 시간이 흐르며 맑은 물속에서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투명한 액체 속에서, 하얗고 정교한 결정들이 마치 한겨울 밤의 눈꽃처럼 송이송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결정들은 서로 엉겨 붙으며 순식간에 정제조 바닥에 찬란한 백색의 퇴적물을 형성했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강은 구리 국자를 들어 바닥에 가라앉은 하얀 결정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넓은 한지 위에 펼쳐 놓았다.

기존의 염초가 회색빛이 도는 칙칙하고 거친 가루였다면, 이강이 만들어낸 결정은 마치 햇빛을 받아 부서지는 소금 결정처럼 맑고 투명하며 순백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조선 역사상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고순도 염초 결정이었다.

"이것을 만져보아라."

이강이 차갑게 말했다.

박기현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손가락 끝으로 하얀 결정을 찍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 닿는 촉감은 비단처럼 고왔고,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도 특유의 역한 잡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만든 염초란 말입니까? 나라의 군기시에서도 이토록 맑은 염초는 본 적이 없사옵니다."

박기현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떨렸다. 그의 눈에 고인 눈물이 그을린 뺨을 타고 흘러내려 하얀 길을 만들었다.

"천벌 따위는 없다."

이강이 손에 묻은 백색 가루를 털어내며 장인들을 평온하게 내려다보았다.

"오직 철저한 물리적 인과와 규칙만이 존재할 뿐이다. 너희가 흘린 땀과 내가 제시한 수식이 결합했을 때, 이 땅의 흙은 성스러운 불꽃의 씨앗으로 변한다. 이제 알겠느냐?"

장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조아렸다.

"저하의 신묘한 가르침에 머리를 조아리옵니다!"

"소인들, 목숨을 바쳐 이 법을 지키겠나이다!"

기술의 절대적인 위력 앞에 장인들의 마음에 서려 있던 신분적 한계와 공포는 깨끗이 씻겨 내려갔다. 그들의 눈빛에는 이제 단순한 노역자의 고단함이 아닌, 새로운 기적을 창조하는 장인으로서의 광적인 집념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강은 그들의 경외 섞인 시선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야말로 사상을 외치지 않고도 사람을 부리는 가장 완벽한 공학적 지배였다.

그러나 찬란한 성취의 여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둥-! 둥-!*

가마터 외곽의 삼중 장막 너머에서 경계용 목종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가마터 입구를 막아선 목책 너머로 거친 말발굽 소리와 병장기가 서로 부딪치는 예리한 금속성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세제 사저의 가마터를 봉쇄하라! 단 한 놈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

위압적인 외침과 함께 가마터의 가죽 장막이 거칠게 찢기듯 젖혀졌다.

횃불의 붉은 광운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도포 자락을 단정히 휘날리는 사대파의 책사, 양서화였다. 그의 입가에는 언제나 그렇듯 정중하면서도 뱀처럼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이강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양서화의 뒤를 따르는 무리였다.

그들은 조선의 군복이 아닌, 화려한 명광개(明光鎧)를 걸치고 허리에는 명나라 특유의 요도를 찬 장수들이었다. 대명 천자국의 동창(東廠) 소속 감찰관 장수들이 번뜩이는 안광을 내뿜으며 가마터 안으로 난입하고 있었다.

"세제 저하, 야밤에 이토록 외진 곳에서 사사로이 화약을 단조하신다는 참소가 조정에 접수되었나이다."

양서화가 허리를 숙여 절을 올렸으나, 그의 눈빛은 이미 이강의 발밑에 놓인 순백색의 염초 결정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천자국 외에는 허락되지 않은 고순도 화약의 제조공정을 사사로이 개발하는 것은 대명 천자에 대한 명백한 반역이자 참람한 도발이옵니다. 하여, 황제 폐하의 감찰관들께서 직접 이 요사스러운 가마터를 수색하고자 오셨나이다."

양서화의 고압적인 목소리가 밤하늘을 갈랐고, 명나라 장수들이 일제히 요도 손잡이에 손을 얹으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철컥하는 쇳소리가 가마터의 온기를 단숨에 얼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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