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지러지는 파공음과 가고일의 낙하 소리에 놀란 한서희가 기겁하며 고개를 완전히 윤진이 서 있는 방향으로 반사적으로 급격하게 돌렸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먼지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나와 가고일의 시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 찰나의 순간, 내 뇌세포들은 아밀라아제를 분비하듯 아드레날린을 사방으로 폭사시키며 초당 3억 번의 연산을 시작했다. 눈동자의 회전 속도, 목의 각도, 그리고 한서희의 시선이 내 허리춤에 닿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0.05초.
여기서 들키면 대치동 은퇴용 8층 빌딩은 고사하고, 평생 아카데미의 노예로 굴러야 한다. 신상 털리는 순간 던전 난이도가 파멸적으로 폭증한다는 시스템의 경고가 뇌리를 스쳤다.
‘좆 됐다! 눕자!’
나는 즉각 0.1초 만에 척추의 모든 관절을 흐느적하게 풀었다.
스르륵, 쿵!
마치 벼락 맞은 미역마냥 온몸을 흐느적거리며 바닥의 진흙 구덩이로 해사하게 슬라이딩했다. 그 반동을 이용해 주변의 썩은 낙엽 한 움큼을 머리통 위에 기가 막힌 각도로 얹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얼굴을 흙바닥에 가차 없이 처박고, 사지를 기괴하게 비틀어 바람 빠진 풍선인형처럼 수풀 뒤에서 허우적댔다.
“아으으…… 으허억! 살려, 살려주세요…… 마수가, 마수가 날아다녀요오오……!”
눈물과 콧물, 그리고 축축한 진흙이 한데 뒤섞인 완벽한 ‘F랭크 찐따’의 발악이었다. 몸을 배배 꼬며 낙엽 더미 속을 구르는 내 모습은 그야말로 밟힌 지렁이, 혹은 뒤집어진 개똥벌레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윤진?”
한서희의 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방을 가득 채운 매캐한 독무와 흙먼지 너머로, 방금 전까지 아카데미 지하를 뒤흔들던 변종 가고일의 거대한 형체가 보였다.
하지만 가고일의 상태가 기괴했다.
강철보다 단단하다던 녀석의 거대한 석조 날개 두 쌍이 기하학적으로 뒤틀려 잘려 나간 채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단면은 마치 초고온의 광선검으로 두부 썰듯 매끄럽게 타들어 가 있었고, 녀석의 가장 단단한 심장 부위는 정체 모를 거대한 물리력에 꿰뚫려 텅 빈 구멍만이 숭숭 뚫려 있었다.
쿠구구궁…… 콰아아앙!
마침내 가고일의 거대한 석조 신체가 완전히 무너지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한서희의 어깨가 크게 움츠러들었다.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는 소름이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 정도의 파괴력을 단 일격에 낼 수 있는 존재가 이 아카데미 안에 존재한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들이 기절해 있던 그 짧은 찰나에?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쥔 채, 슬금슬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 끝에 걸린 것은, 수풀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엉덩이만 하늘 높이 치켜든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한심한 동기 녀석이었다.
“윤, 윤진…… 너 괜찮아?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한서희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 어깨를 흔들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동공을 사정없이 지진 내듯 굴리며, 이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를 연출했다.
“히, 힉! 때, 때리지 마세요! 저 돈 없어요! 가고일 형님, 제발 살려주세요오오!”
“정신 차려! 가고일은 죽었어! 대체 누가…… 누가 이 녀석을 이렇게 만든 거지?”
한서희의 눈빛에 깃든 것은 거대한 경외심, 그리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녀는 박살이 난 가고일의 가슴팍과 내 몰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코끝이 미세하게 실룩였다.
지독한 마수의 피비린내와 타버린 먼지 냄새 사이로, 아주 미세하고 이질적인 향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차갑고도 상쾌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몽환적인 밤의 향기.
‘이 냄새는…….’
한서희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밤마다 라이브 중계로 보며 동경하던 정체불명의 스트리머, ‘가면 헌터’의 방송 화면 너머로 들려오던 기공의 미세한 잡음과 함께 언급되던 그 특유의 향수 성분. 일명 ‘티트리 루나’의 잔향이었다.
실제로 내 주머니 속 스마트폰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채 미세한 고주파 음향 데이터를 흘려보내고 있었고, 그 마이크를 통해 한서희가 풍기는 향수 냄새와 내 몸에 묻은 냄새가 실시간으로 변조되어 가상 채널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질질 짜는 쪼다일 뿐이었다. 한서희는 내 찌질한 몰골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너 같은 녀석이 그분일 리가 없지. 내가 잠시 미쳤었나 보네.”
그녀는 내 멱살을 잡아채듯 일으켜 세우며 혀를 찼다.
“일어나, 바보야. 상황 끝났으니까. 대체 운이 얼마나 좋으면 이런 난장판 속에서 찰과상 하나 없이 살아남는 건지.”
“히익, 고, 고맙습니다, 서희 님! 역시 수석 소대원님은 다르시네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굽실거렸다. 완벽했다. 이로써 나의 아싸 신분은 더욱 공고해졌고, 동기들의 의심 레이더망에서 한 걸음 멀어졌다.
한편, 내가 꺼두었던 방송 플랫폼의 보이지 않는 가상 화면에서는 그야말로 대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은 꺼졌지만, 성좌들과 시청자들의 뇌리에 동기화된 가상 채팅창은 쉴 새 없이 스크롤을 올리며 광란의 댄스를 추는 중이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방금 날개 잘려 나가는 거 연출 실화냐? - 프레임 드랍 보소 ㅋㅋㅋ 그래픽 카드 뭐 쓰냐? 3060 쓰냐? - 렉 걸려서 날개 날아간 것처럼 보이는 거 개웃기네 주작 방송 수준 ㅉㅉ - 야 근데 타격감은 지리긴 했다. 요즘 모션 그래픽 기술 많이 발전했네. - [성좌 'CG_Slayer': 하! 어설픈 렉 현상을 이용해 속도감을 위장하다니, 이 얼마나 가소로운 눈속임인가! 저 가고일의 텍스처 붕괴는 명백한 렌더링 오류다! 내 눈은 속이지 못한다! (50,000코인 후원)] - [성좌 '방구석아재': 에이 형씨, 그래도 볼만했어. 그래픽 맛집이네 여기 ㅋㅋㅋ 주작비로 소소하게 쏜다. (20,000코인 후원)] - [성좌 '삼대500치는토끼': 주작이든 뭐든 타격감 하나는 합격임. 헬스장 화면으로 틀어놓기 딱 좋네. (30,000코인 후원)]
스마트폰의 무음 진동이 내 허벅지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징징징징!
귓가로 쏟아지는 시스템의 경쾌한 알림음은 그야말로 천상의 오케스트라였다.
[성좌들의 집단 불신과 주작 의심 수치가 92%를 돌파했습니다!] [역설적 가스라이팅 버프의 효과로 획득한 성좌의 권능 조각이 실시간 환산됩니다!] [후원 코인 정산 완료: **22,500,000원**이 가상 계좌로 입금되었습니다!] [보너스 보상: '성좌의 마력 결정(하급)' 3개가 인벤토리로 발송되었습니다!]
‘오오오오옷……!’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 맛에 주작 방송 하는 거지!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 성좌 새끼들이 내 실전 무빙을 ‘그래픽 버그’라며 비웃을 때마다 내 통장 잔고는 강남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2200만 원이라니! 갓 채용한 편의점 알바생의 연봉을 단 10분 만에 벌어들인 셈이다.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 끝에 닿는 차가운 감각이 있었다. 지난번 그림자 하수도에서 몰래 챙겨두었던 보스 마수 도살자의 푸른 심장 핵 파편이었다. 이 녀석과 이번에 얻은 가고일의 잔뼈까지 합치면, 암시장에서 부르는 게 값인 초고가 장비 재료가 된다.
‘크으, 조금만 더 모으면 진짜 은퇴다. 마포구에 내 이름으로 된 빌딩 세우고, 아침 11시에 일어나서 배달 앱 켜는 삶이 머지않았어!’
그때였다.
구관 던전 입구 쪽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마력 불빛들이 어지럽게 흔들리며 다가왔다.
“이쪽이다! 마력 반응이 폭발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부상자 확인해! 소대원들은 경계를 늦추지 마라!”
아카데미 교관 부대와 정예 수색대원들이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무거운 철 갑옷을 입은 수석 교관이 검을 뽑아 든 채 서 있었다.
그들이 현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처참하게 굳어버린 채 반쯤 모래가 되어 부서져 내리는 변종 가고일의 시체였다.
“이, 이건…… 변종 가고일?”
수석 교관의 얼굴이 단숨에 흙빛으로 변했다.
“재난 등급에 준하는 마수가 어떻게 이런 구관 초입에…… 게다가 이 파괴 흔적은 대체 뭐지? 날개가 통째로 절단되고 핵이 일격에 소멸했다. 소대급 마법 화력을 집중해도 이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하진 못했을 텐데!”
교관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현장에 있던 유일한 생존자들, 즉 한서희와 나에게로 쏠렸다.
한서희는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고, 나는 머리에 낙엽을 얹은 채 바닥에서 바르르 떨며 침을 흘리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서희 양!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자네가 이 녀석을 처치했나?”
교관의 질문에 한서희는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정신을 잃기 직전…… 어떤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 가고일을 단숨에 베어 넘겼습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속도였습니다.”
“그림자……? 혹시 정체를 알 수 있는 단서나 문양 같은 것은 없었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한서희는 말을 흐리며 힐끗 나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마수의 포효 소리에 놀라 기절해 있었습니다. 제가 깨웠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난 뒤였습니다.”
교관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F랭크 낙제생 수준에 이런 마수와 대치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지. 운이 억수로 좋았군, 윤진 군.”
“헤헤, 죄송합니다아…… 저 다리가 안 움직여요오…….”
나는 이빨을 덜덜 떨며 비굴함의 극치를 달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완벽한 연기력.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 있다면 단연 내 차지였다.
“이봐라! 어서 들것을 가져와라! 부상자들을 보건실로 후송한다!”
교관의 외침과 함께 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왔다.
나는 들것에 실려 가면서도 내심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다.
‘아아, 완벽하다. 완벽해.’
아카데미 최고의 엘리트라는 교관들과 동기들은 세계 규모의 재난 마수 사태라며 사색이 되어 소름을 떨고 있었지만, 정작 그 원흉인 나는 아주 편안하게 들것에 누워 무임승차를 즐기고 있었다.
보건실의 푹신한 침대에 누워 하얀 시트를 덮고 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스르륵 문이 닫히고 커튼이 쳐지며 완벽한 나만의 ‘안전 구역’이 확보되자, 나는 즉각 침대 시트 속으로 대가리를 처박았다. 그리고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가상 은행 앱을 켰다.
[가상 계좌 잔액: **148,500,000원**]
“흐, 흐흐흐…… 흐흐흐흐!”
입꼬리가 귀에 걸리다 못해 정수리를 뚫고 승천할 것 같았다.
주변 엘리트 새끼들은 지금쯤 지하 던전의 차원 침식 분석이니, 정체불명의 고수에 대한 수색이니 하며 머리를 싸매고 야근을 때리고 있겠지. 하지만 이 아싸 윤진 님은 보건실 침대에 누워 따뜻한 둥굴레차를 마시며 억대 잔고를 구경하고 계신단 말씀이야.
이게 바로 인생이지! 이게 바로 아싸의 삶이지!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해. 성좌 빡대가리 새끼들, 앞으로도 주작이라고 많이많이 욕해라. 형이 서울에 빌딩 올리는 머릿돌로 요긴하게 써줄 테니까.”
나는 은밀한 조소를 흘리며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완벽한 은신, 완벽한 보상. 오늘 하루도 무사히 아싸로서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켜내며 한 걸음 더 건물주에 가까워진 것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 평화가 깨진 것은, 불과 몇 시간 뒤였다.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PC를 켜고 늘 하던 대로 다크웹의 스트리머 커뮤니티와 인방 포럼을 모니터링하던 내 동공이 순간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화면 가득 띄워진 붉은색 경고 창들과 굵은 볼드체 글씨들.
**[실시간 베스트] 주작 감별단 공식 성명서: 가면 헌터 IP 추적 완료.**
내 손가락이 마우스를 쥔 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침을 꿀꺽 삼키며 스크롤을 내리자, 극성 ‘주작 감별단’의 정밀 분석 글이 눈에 들어왔다.
- 분석관 ID 'Fact_Storm': 가면 헌터가 방송을 송출할 때 발생한 미세한 주파수 왜곡과 주변 소음 신호를 아카데미 구관의 마력 제어 장치 주파수와 대조해 보았음. - 오차 범위 0.01%. - 송출 안테나의 실시간 위성 추적 결과, 최종 IP 주소지는 서울 외곽의 대한 아카데미 기숙사 2동 구관으로 완벽히 검출됨.
그 아래에는 붉은색 고지서 모양의 그래픽과 함께, 기숙사 2동의 입체 도면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 결론: 가면 헌터는 대한 아카데미 기숙사 2동에 거주하는 학생 혹은 관계자임이 100% 확실함. 내일부터 기숙사 2동 인원 전수 조사 및 향수 성분 대조 들어간다. 딱 대라 주작러 새끼야.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내 정체가 100% 확정되는 순간, 시스템 버프는 영구 소멸하고 나는 던전의 심연 속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포위망이, 내 기숙사 방 문턱 밑까지 조여들고 있었다.